제63화
천중호수 3차 공략 날이 다가왔다.
대중들의 지지에 실시간 공략 방송이 결정되었다.
참여 가문은 신력권가, 패왕도가, 신기지가, 그리고 철혈검가였다.
인원은 가문당 200명.
총 800명으로 이루어진 초대형 공략대였다.
천중호수 입구.
바리케이드가 쳐진 곳에는 대한민국 기자란 기자들은 죄다 몰려 있었다.
그들뿐인가.
천중호수 클리어를 응원하는 시민들도 함께했다.
“저기 패왕도가의 흑사자단이 왔어.”
“뒤에 신력권가의 천왕대도.”
패왕도가와 신력권가의 인원은 엄청난 투기를 발하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전쟁을 하러 가는 것처럼 비장했다.
뒤이어 철혈검가의 창궁검단이 왔다.
“후계자들까지 전부 참여한 공략대는 처음 아니야?”
“20년 전, 세대교체 했을 때 말고는 없었지.”
“천중호수를 통해 각 가문이 세대교체를 하려는 건가?”
“그럴 수도 있어.”
기자들은 손이 분주해졌다.
자리 잡은 곳에서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렸다.
기자들은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을 때, 응원하고 있던 시민들이 야유를 했다.
“우우우.”
“신력과 패왕은 물러가라.”
“무슨 낯짝으로 고개를 들고 다니는 거야!”
몇몇 사람들이 이신과 최태민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그거에 맞을 두 사람이 아니었다.
계란은 투명한 막에 막혀 공중에서 터졌다.
뿌득.
이신이 이를 갈았다.
이 같은 치욕은 처음이었다.
계란이라니.
언제 적 시절의 시위라는 말인가.
이신이 계란을 던진 이들을 노려봤다.
“무시하십시오. 가주님께서 자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천왕대주인 사형준이 이신을 말렸다.
아니었으면 당장 계란을 던진 사람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신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애써 무시했다.
“두고 보자.”
곧이어 신기지가의 현원단이 이준과 함께 나타났다.
“이준이다. 찍어!”
기자들은 이준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준아.”
박혁진이 이준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이준이 손으로 막지 않았다면 카메라에 이상한 장면이 담겼을 것이다.
녀석의 머리를 밀고 있는 사이.
“이준!”
와락.
누군가 등에 올라탔다. 동시에 부드러운 향이 코끝에 닿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이 갔다.
“누, 누나. 내려와.”
박혁진의 누나이자, 검화 박정연이었다.
“싫은데. 이 넓은 등에서 왜 내려오냐.”
그녀가 이준의 등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단 말이야.”
그 말에 박정연이 고개를 들었다.
사진을 찍다 말고 멍하니 있는 기자들이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녀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 폭탄을 터트렸다.
“찍으라지.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
“아 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이준이 빽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박정연의 목소리는 기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방금 검화가 말한 거 들었지?”
“으, 응. 귀창와 검화가 사귀는 사이라니.”
“대박이야.”
귀창이란 이준을 칭하는 말.
학교에서 업로드한 영상 중 이준이 요정의 꽃밭에서 창을 쓰는 걸 보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원래라면 창룡이라 불리는 게 옳았다.
하나, 이미 신창조가의 아들이 창룡이라 불리고 있어 부득이하게 이준은 귀창으로 불리게 됐다.
“어쩐지 오늘 취재를 오고 싶더라니.”
“전 휴가도 반납하고 왔습니다.”
화색이 도는 얼굴로 키보드를 누르는 기자들. 가문의 등장만으로도 벌써 특종을 2개나 건졌다.
과연 이번 공략으로 인해 얼마의 특종이 더 나올지 기대가 됐다.
한편 이준은 허리를 꼿꼿이 세워 박정연을 등에서 떼어냈다.
“복수하고 말 거야.”
“그러던지.”
검화가 혀를 빼꼼 내밀며 이준을 놀렸다.
박혁진은 자신이 누나한테 밀렸다는 것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돌리려는데 한지유의 얼굴이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박정연을 노려보고 있는 그녀.
‘얘는 왜 또 저래.’
어떤 게 한지유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쯧쯧. 넌 아직 멀었느니라.]
‘제가 왜요?’
[모르면 말거라.]
천중호수에 들어가기 전부터 진이 빠진 이준이었다.
그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이신이 살기 가득한 말을 했다.
“버러지. 몸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 걱정해주는 거냐. 정신 차렸나 봐?”
“크크크. 마음대로 생각해라 천중호수는 너의 무덤이 될 거니까.”
웬일인지 이신이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꺼림칙한데.’
녀석이 비웃음을 남기고 신력권가의 진영으로 갔다.
* * *
지잉-
게이트의 문을 통해 나왔다.
[천중호수에 입장하셨습니다.]
[천중호수의 주인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파랑이가 금역의 주인이 되고 나서부터 게이트의 주인들이 경계를 했다.
뭐, 상관없었다.
여기도 곧 자신이 깰 던전이니까.
경계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소개하겠소. 이번 3차 공략대를 이끌 풍사도 최대웅이라 하오.”
최대웅의 인사에 모두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패왕도가의 장로이자, AA급 각성자였다.
최태민의 작은 할아버지로 패왕도가의 최고 어른이었다.
이번 천중호수의 공략에 패왕도가는 모든 사활을 건 것이다.
“앞서 설명은 들었을 것을 감안하고 공략하겠소.”
그는 가문의 중요한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하나, 단 한 사람.
이준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철저한 무시였다.
[저 늙은이가 감히 내 제자를!]
무극자 사부가 발끈했다.
‘참으세요. 저 할배, 사부님과는 달리 아주 편협해요.’
[크흠. 하긴 이 사부는 아주 포용적인 사람이니라.]
이준도 최대웅을 무시했다.
옛날에도 이런 대우는 수시로 받았다.
아니지, 항상 받았었다.
이젠 이딴 걸로 기분 나빠 할 시기는 지났다.
다만 노골적으로 보내는 살기에 짜증이 커져만 갔다.
‘저 자식 지금 묻어 버릴까요?’
[허허. 사부도 참았으니, 제자도 참아야 하느니라.]
이준이 가리킨 이들은 이신과 이민욱이었다.
이민욱은 이기홍의 일 때문에 이준에게 악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게이트에 들어오고서부터 줄곧 살기를 뿜어 댔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뒤에서 칼을 꽂을 기세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최태민도 이준을 향해 이를 갈았다.
2년 가까이 착실하게 만들어 온 이미지.
이준 때문에 적나라하게 벗겨졌다.
동영상이란 확실한 증거까지 남기면서 명성에 똥칠을 냈다.
이민욱 못지않게 이준에 악감정이 있는 최태민이다.
저들의 행동이 지나쳐서 그런지.
한지유가 나서려 했지만, 현원단주가 손으로 막았다.
“우리가 나설 입장이 아니에요.”
한지유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이준도 한지유를 향해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태연스럽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준의 속은 달랐다.
‘수틀리면 여기서 다 묻어 버리겠어.’
* * *
불패의 게이트라 불린 천중호수.
걸어오면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위험이 없었다.
공략대가 처음 만난 몬스터는 나파였다.
얕은 물에서 서식하는 몬스터.
상체는 인간이나 하체는 뱀의 꼬리를 지녔다.
등급은 블루급 몬스터로 최정예로 이루어진 공략대의 위협은 되지 않았다.
현재는 공략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신과 최태민은 온 힘을 다해 나파를 상대했다.
파괴적이고 내공 소모가 큰 무공을 쓰고 있는 두 사람.
뒤는 걱정하지 않고 무공을 거침없이 썼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뒤를 받쳐주는 이들이 천왕대와 흑사단이었으니까.
한두 번 합을 맞춰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신의 붉은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나파가 그 여파에 휩쓸려 갔다.
드드드득!
붉은 권기로 인해 단단한 바닥도 움푹 파였다.
주먹질 한 번에 수십 마리가 죽어버렸다.
이신은 늑대가 양 떼 무리에 뛰어든 것처럼 적진 한복판으로 가서 날뛰었다.
붉은 패기가 감싸진 주먹으로 바닥을 찍으니.
쩌어억-
지축이 울리며 흙무더기가 나파를 덮쳤다.
나파 무리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
“최대한 빨리 도련님의 곁으로 돌아간다.”
천왕대주인 사형준의 명이 떨어졌다.
“예!”
천왕대는 이신처럼 요란하지 않았다.
딱 몬스터를 죽일 내공만 썼다.
바깥에서부터 착실하게 적을 처리하고 들어가는 그들.
솜씨가 아주 깔끔했다.
그들을 본 풍사도 최대웅이 감탄을 했다.
“신력의 진정한 정예들은 천왕대라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손자인 최태민과 흑사자단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엔 천왕대보다 모자라 보였다.
무엇보다 천왕대주라는 남자.
바깥에선 유심히 보지 못해 몰랐는데, 상당히 강했다.
못해도 A급의 완숙.
운이 좋다면 곧 AA급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저런 놈이 패왕도가에 있어야 했는데, 가주는 그동안 뭘 했을꼬.”
사형준은 신력권가의 핏줄이 아니었다.
스카우트으로 얻은 인재.
그런 인재를 데려오지 못한 패왕도가의 가주를 나무랐다.
“그보다 저놈은 생각보다 형편이 없어.”
최대웅은 창을 휘두르고 있는 이준을 보았다.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B급.
창을 엉성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신력권가에서 창이라니.
“가문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들었는데.”
저 어벙한 짓거리는 뭐란 말인가.
“가문에서 버림받은 반항심인가?”
병신 짓이 따로 없었다.
15가문 연맹의 무공은 현시대 최고였다.
신력권가는 패왕도가만큼이나 패도적인 무공을 지닌 가문.
그런 가문의 무공을 버리고 뜬금없이 창을 든다는 건 객기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저런 놈이 우리 태민이를 제압하고 리자드맨을 죽였다는 건 말도 안 되지. 비열한 방법을 쓴 게 분명해.”
최대웅이 내린 결론이었다.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 그가 이준에게 시선을 거뒀다.
때마침 각 가문에서 보고가 이루어졌다.
“신력 나파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패왕 나파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철혈…….”
“신기…….”
바닥에 잔뜩 널브러져 있는 나파의 시체들.
대지에는 공략대만 서 있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1차 관문은 통과했으니, 이대로 2차까지 단번에 갑시다.”
천중호수의 공략 방법.
영역을 차지한 땅따먹기식 공략을 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문이 열린다.
때마침 허공에 붉은빛 포탈이 열렸다.
다음 관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입구였다.
모두의 얼굴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천중호수 공략의 진짜 시작은 2차 관문부터였다.
1차 관문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