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모두가 각자의 아티팩트를 들고 박물관에서 나왔다.
“이제 아티팩트를 확인하러 갈 시간이지?”
“네!”
“수준에 맞지 않은 아티팩트는 화를 부르니 그에 걸맞게 강해지길 바라.”
학생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특히 박혁진은 아주 좋아 미쳐 날뛰었다.
“준아, 준아. 봐봐. 존나 멋있지 않냐?”
고풍스러운 파란색 검갑.
검의 주위에 아주 미세한 뇌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름은 뇌격검으로 게이트에서 얻은 무기였다.
“그래, 멋있다.”
이준이 박혁진의 반응에 대충 맞장구쳐 줬다.
“그렇지? 캬.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무기랑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아.”
“그러냐?”
“그럼. 내가 가진 게 아-아주 조금 밀릴까?”
“좋아 죽네.”
“히히. 넌 뭘 골랐어?”
“난 이거.”
이준의 손에 들린 망치를 본 박혁진이 말을 더듬었다.
“이, 이딴 쓰레기를 고른 거야? 나한테는 이렇게 좋은 걸 추천해 놓고?”
박혁진이 눈물을 글썽였다.
1등 조는 3동만이 아니고 박물관 전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준이 쇠못이나 박을 망치를 골라 왔으니.
마음이 찢어지는 박혁진이었다.
“이 형을 위해. 아티팩트를 포기한 거야? 그런 거야?”
“아 쫌. 달라붙지 말라니까!”
그가 이준을 와락 끌어안았다.
거의 신파극 수준.
이준은 박혁진을 품에서 떼어내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밀쳤다.
“저리 꺼지라고.”
“흑흑. 이 형이 성공해서 꼭 너를 먹여 살리마.”
자기가 고른 물건을 준다는 말은 절대 안 하는 박혁진이다.
이준이 뇌격검으로 시선을 옮기자, 도리어 검을 뒤로 감추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이 검은 절대 못 준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으휴. 저딴 게 친구라고.”
이준이 박혁진을 놔두고 자리를 떴다. 뒤에서 박혁진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 준아아아….”
* * *
이준은 호숫가를 지나, 운동장 벤치에 앉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아티팩트를 고른 학생들은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학교에서 배려해 줬다.
수업에 안 들어가도 된 그는, 망치는 내려다보았다.
[철장의 망치]
등급: A
설명: 마정석뿐만이 아니라, 만년 한철도 깰 수 있는 망치이다. 속성에 제한받지 않아, 고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 제련할 때 쓰는 보조 기구.
효과: 속성 제한 무.
설명만 보면 그냥 제련 도구다.
이게 정말 천중호수를 깰 열쇠인지, 이준조차 긴가민가할 정도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걸로 빙하바닥을 내려치면 열린다고?”
시크릿 루트로 가는 길.
불패의 신화를 깬 사람은 다름 아닌 만독암가의 대장장이였다.
이가 빠진 무기를 고치려고 망치를 두드리는데, 바닥이 열렸다.
그것도 극빙하수가 잠들어 있는 통로가.
공략대는 허탈해했다.
수년 동안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게이트가 망치질 한 번에 클리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이트는 알다가도 모르는 곳이야.”
이준이 망치를 보며 중얼거리고 있는데 한지유가 다가왔다.
“개인 훈련하러 안 갔어?”
“그게 말이야….”
그녀가 뜸을 들였다.
“나한테 할 말 있어?”
“저… 음….”
“뭘 말하려고 뜸을 들여.”
“연검 연습은 어떻게 해?”
“응?”
“알면 가르쳐 줘.”
알 턱이 있나.
무극자 사부가 말해준 설명을 읊었을 뿐. 연검을 사용하는 방법도 몰랐다.
* * *
학교 랭커들은 각자의 수련실이 따로 있었다.
랭킹 10위인 한지유도 포함됐다.
학교 개인 수련 동.
그곳에서 격한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쉬이익쉭쉭-
흐물거리는 검이 허공을 갈랐다.
뱀이 움직이듯 날카롭게 움직이다가 힘을 잃고 낙하했다.
[손목을 더 쓰라 하거라.]
“지유야. 손목을 더 써야지. 유연하게 이렇게 알겠어?”
이준이 시범을 했는데, 전혀 유연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한지유는 이준이 말한 시범대로 다시 연검을 휘둘렀다.
검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앞으로 뻗어 나갔다.
전과 같은 움직임.
검의 길이가 늘어났다.
칼끝이 목표가 있는 목각 인형을 때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지. 잘했어.”
“후욱… 후욱….”
한지유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잘했어?”
그녀의 눈이 빛났다.
“응. 손목만 유연하게 움직이면 공격 거리가 더 늘어나겠어.”
이준은 그저 무극자 사부의 말을 전해 주고 있었다.
연검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이준의 시범은 엉터리였다.
그럼에도 한지유가 연검을 터득하는 속도는 엄청났다.
[재능 있는 아이다.]
‘괜히 천재들이 아니네요.’
그녀의 재능에 놀라고 있는데, 한지유의 맑은 음성이 들렸다.
“더 해 줘.”
“뭘?”
“칭찬. 어서.”
“……?”
가문 사람들한테 항상 듣는 말일 텐데, 칭찬에 목마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안 해 주면 저 날카로운 연검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
이준은 억지로 칭찬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너보다 빨리 연검에 적응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게 다야?”
“엄청난 극찬인데?”
한지유가 뽀로통하게 있었다.
이준은 이상함을 느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안 하던 짓을 하는 건 죽을 때가 됐을 때 하는 거라는데.
‘아, 얘 4차원이었지.’
차가운 얼굴에 가려져 안 보인 그녀의 성격.
둘만 있으니 본래의 성격이 드러난 것이다.
이준이 다른 칭찬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한지유가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저기… 이거 저리 좀 치워 줄래?”
그녀가 우물쭈물거리다 이내 눈을 흘겼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봄바람과 같은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얼음장 같았다.
이준이 칭찬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넌 연검을….”
“됐어.”
한지유가 매몰차게 대답을 한 후, 목각 인형의 앞에 섰다.
그녀가 연검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리그었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검신이 길어졌다.
목표물을 휘감은 뱀의 꼬리.
그녀의 내공이 검으로 흘러 들어가자, 변화가 생겼다.
평범하던 검날에서 날이 서더니 목표물을 짓이겼다.
그그그극!
목각 인형이 톱니에 갈리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그 모습을 보던 이준이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소, 소름.’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한다던데, 안 됐구나, 제자야.]
‘무슨 말씀이세요?’
[풍류 서생이었던 나였으면 저 아이의 마음을 단번에 간파했을 텐데. 쯧쯧. 이 한심한 제자를 어찌할꼬.]
사부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이준은 속으로 억울해했다.
‘다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 * *
“이준! 이주우우운!!”
이신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벽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이준 때문에 놓친 중간고사 1등.
그것만 해도 비통해 죽겠는데, 하필 들키면 안 되는 일을 들키고 말았다.
“그 새끼만 아니었으면 됐는데.”
목숨이 위태로우면 도망칠 수도 있지 않은가.
조원들의 복수는 나중에 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이준이 나타나는 바람에 모든 게 흐트러졌다.
녀석으로 인해 자신은 조원을 버린 비겁자란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버러지 같은 게! 감히! 용서할 수 없어.”
이신이 분노로 사로잡혔을 때, 그의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도련님, 나갈 시간입니다.”
이신은 현재 가문에 감금되어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죄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간 빛 한 점 없는 동굴에 갇혀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야?”
얼마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면 목소리가 다 갈라졌다.
“예.”
“밖에는 어땠어?”
“가주께서 이준을 후계자 경쟁에 참여시켰습니다.”
으득.
이신이 어금니를 세게 깨물었다.
“버러지 같은 서자 따위가.”
“도련님과 함께 이준도 천중호수 3차 공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젠장.”
쿵!
이신이 벽을 강하게 때렸다.
꿈쩍도 않은 벽.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특수 감옥이라, 내공이 담긴 주먹에도 멀쩡했다.
“어째서 아버지는 그 버러지 같은 자식과 나를 경쟁시킨단 말이냐.”
“이준이 가주님의 관심을 끌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당연하게도 이준은 강해졌습니다. 어쩌면 도련님보다 더 강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가 은근슬쩍 이준이 강해졌다는 걸 강조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이미 발끈하고도 남았을 터.
그는 지금과 같은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다.
천왕대주인 사형준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수하.
어머니가 친히 패왕도가에서 데려왔다며 소개해준 인물인 성우건이었다.
이신의 눈이 흔들렸다.
“그 새끼가 나보다 강해졌어…?”
“도련님도 몸소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이준의 강함을.”
“혈족 계승도 못한 놈이 어떻게 나보다 강해질 수 있단 말이냐!”
이신은 자신보다 강한 이준을 부정했다.
그럴수록 성우건은 이신의 빈틈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마… 마공에 손대지 않았을까 합니다.”
“마공?”
“혈족 계승도 받지 못한 사람이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는 건 마공밖에 없습니다.”
“맞아! 그 새끼가 마공을 익힌 게 분명해. 그거 말고는 말이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당장 말해야겠어.”
이신이 당장이라도 동굴을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성우건이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도련님께서 해결하시면 가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겁니다.”
“내가? 어떻게? 난 그놈한테 졌… 는데.”
“사모님께서 도련님을 보필하라고 절 붙여 주셨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그래. 나한텐 네가 있었지?”
천왕대의 대주인 사형준도, 가주인 아버지도 모를 것이다.
천왕대에 숨어 있는 인물 중에 사형준보다 더 강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오직 자신과 어머니만이 성우건의 진정한 실력을 알고 있었다.
“제가 도련님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성우건이 이신에게 옥함을 내밀었다.
“이건…?”
“도련님께서 바라던 힘입니다.”
이신이 옥함을 열었다.
하나의 동그란 단환이 보였다.
단환 주위에는 검은 연기가 맴돌았다.
“이게 내가 바라던 힘….”
이신은 단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약의 냄새가 이신의 코로 빨려 들어간 순간, 취한 사람처럼 눈이 몽롱해졌다.
“…내가 원하는 힘이 여기에 있어.”
이신이 단환을 입에 털어 넣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몸속에 흐르는 혈액이 급격히 빨라졌다.
“크흑!”
이신의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다.
입가에선 마치 내상이라도 입은 듯 선혈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차츰 안정을 찾은 이신.
그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크큭.”
이신의 눈이 검붉게 번들거렸다.
“새로 태어나신 걸 축하드립니다. 어떠십니까?”
성우건의 말에 이신이 자신의 몸을 보았다. 넘쳐흐르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아버지라도 말이야.”
“곧 그리될 겁니다.”
이신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