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미련한 놈이로고.]
이준은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재차 말했다.
[갓 태어난 놈이 걸음마를 떼려 하는구나. 그만하고 눈뜨지 못할까.]
노인이 호통을 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 것뿐.
이준은 그제야 혼원신공을 멈출 수 있었다.
“푸하아아. 사, 살았다.”
이준도 혼원신공을 운용하면서 느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걸.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멈추지 못한 게 맞았다.
자신이 혼원신공을 이끌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도리어 혼원신공에 끌려가다가 골로 갈 뻔했다.
[네놈은 죽다 살았느니라.]
“누, 누구세요?”
이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두컴컴해진 공터.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
사람이 있나 싶어 주위를 살폈으나, 어떤 기척도 없었다.
“환청? 설마 귀신인가?”
이준은 몸이 오싹했다.
기가 허해지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 듯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순간.
[나를 뭐로 보고 그딴 하찮은 것들과 비교를 하는 것이냐!]
“그럼… 누구세요?”
[크흠. 내 친히 말할 터이니 잘 듣거라. 노부는 고금제일인인 무극자이니라.]
“무극자?”
이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한민국에 무극자란 칭호를 쓴 각성자가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명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조금 전에 본 듯한 느낌이랄까.
생각날 듯 말 듯 하다가 문득 어떤 문구가 떠올랐다.
-무극자가 말년에 깨달음을 얻어 남긴 심법.
혼원신공의 설명에 친절히 적혀 있는 문구였다.
“혼원신공을 만든 무극자?”
[맞다. 노부가 그 대단한 신공을 만든 장본인이니라.]
늙은 목소리의 주인공.
무극자의 말투에 자부심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
이준은 말이 안 나왔다.
무공을 만든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단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말까지 걸어왔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 어떻게 제게 말을 거실 수 있으세요? 살아 계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너 같은 덜떨어진 놈 때문에 안심이 안 돼서 노부가 혼원신공 속에 잠들어 있었느니라.]
“예?”
[답답한 놈이로고. 내 고금제일의 신공이 너 같은 놈 때문에 사장되면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아서 영혼을 남겼느니라.]
노인은 자기가 만든 무공이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했던 거다.
그 대단한 무공을 이준이 이어받은 거고.
“대충은 알겠습니다.”
[뭐? 대충? 고얀 놈을 봤나.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대충은 얼어 죽을 대충이야. 노부의 말을 한 번이라도 듣고 싶어 안달 난 놈들이 수천, 수만이었느니라. 너는 그 엄청난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근엄하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꼬장꼬장한 노인네로 변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이준이 다시 혼원신공에 집중했다. 잡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눈을 감아 버렸다.
그의 행동에 무극자가 비웃음을 흘렸다.
[끌끌. 백날 심법수련을 해봐라 네놈이 2성의 경지에 오르나. 그토록 원하던 힘은 물 건너가고 주화입마에 빠지려나?]
무극자란 노인네가 재수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음성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집중할 수 없었던 나머지, 무극자에게 물었다.
“제가 힘을 얻으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힘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노부한테까지 전해지는데 어찌 모를꼬.]
현시대.
대격변에 살아가려면 힘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은 권력.
제 몸 하나 지키는 장치.
그게 바로 강력한 무공 실력이었다.
무극자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힘을 얻고 싶으냐?]
달콤한 속삭임.
말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마치 악마의 유혹 같았다.
이준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극자가 씨익 웃었다.
[혼원신공은 앉아서 하는 수련이 아니다. 혼돈에서 태어난 심법. 몸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빛을 발하는 천고의 심법이니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극자는 혼원신공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어떤 수련을 하면 될까요?”
이준의 물음에 무극자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굴러라. 구르면 네가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니라.]
* * *
“정말…”
쿵.
“이렇게 하는 게.”
쿵.
“…맞습니까?”
움직일 때마다 육중한 소리가 났다.
이준이 들고 있는 건 커다란 바위였다.
무게는 족히 100kg은 나가 보였다.
각성자라곤 하나 아직 고등학생. 내공을 이제 모으기 시작한 초짜였다.
그런데도 무극자는 봐주지 않았다.
[잔말 말고 계속 움직이거라.]
이준의 전신은 땀으로 가득했다.
강해질 수 있단 생각에 그의 말을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수련을 해도 강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내부를 들여다봐라. 네가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혼원신공이 알아서 움직이지 않느냐.]
무극자의 말마따나 자신의 내부에서 느껴졌다.
정말로 혼원신공이 쉬지 않고 전신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할 때보다 더욱 거세게 움직였다.
“후욱… 정말이… 후욱… 군요.”
[움직임을 멈추지 마라. 그러면 내공이 계속 쌓일 것이니라.]
숨이 가빴지만, 무거운 몸을 계속 움직였다.
100kg의 돌을 들고 움직이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걸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건 힘이 배로 드는 일.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마저도 못하면 힘을 어떻게 얻겠다는 거야.’
이전의 삶에선 혈족계승조차 받지 못한 서자라고 천한 핏줄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가문을 넘어 정점에 서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이깟 수련쯤은 가뿐히 이겨야 했다.
마침.
[체력이 +1 올랐습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신체가 +1 올랐습니다.]
능력치가 주르륵 올랐다.
[더 빨리! 굼벵이가 너보다 더 빠르겠다. 내공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리 느리면 수련을 하겠다는 소리냐.]
이준이 이를 악물었다.
한발 한발.
최선을 다해 산을 올랐다.
“허어억… 허억….”
기본적인 훈련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옷이 땀에 홀딱 젖었다.
이젠 옷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간신히 산 중앙에 올랐을 때.
[5분만 쉬도록 해라.]
무극자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을 땅에 내려놨다.
쿵!
“하악, 하악….”
이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려 했다.
[동작 그만! 앉지 말고 서서 쉬어라. 그래야 덜 힘들다.]
무극자의 목소리에 하는 수 없이 서서 쉬었다.
5분이라는 시간을 말씨름하는 데 소비할 순 없지.
한 1분이 지났을까.
다시 무극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휴식 끝났다.]
“벌써 말입니까?”
달콤한 휴식은 빨리 지나간다고 했던가. 고작 1분밖에 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5분이나 지나 버렸다니.
“조금만 더 쉬면 안 될까요?”
[가아아알! 강해지고 싶지 않단 말이냐!]
무극자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자아이를 구했을 때가 생각났다.
너무 약한 나머지, 몬스터와 싸우기는커녕 여자아이 한 명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때의 무능력함이 떠올랐다.
돌을 다시 들어 올렸다.
한 발, 한 발.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산 정상까지 올랐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은 수련만 반복했다.
* * *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혼원신공이 2성에 도달했습니다.]
[메인 퀘스트1 - 혼원문 입문 수련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혼원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가 지급됩니다.]
[경이로운 발전 속도로 인해 추가 보상으로 테크리트 포인트 150,000p가 지급됩니다.]
[다음 루트가 개방됩니다.]
“아.”
이준의 앞에 빛이 번쩍이더니 허공에서 하나의 반지가 떨어졌다.
잽싸게 반지를 낚아챘다.
“와, 영롱하다.”
[큼큼. 그건 우리 혼원문의 기물이구나. 한번 껴 보아라.]
무극자의 말이 아니라도 껴 볼 생각이었다.
그는 반지를 왼손 약지에 착용했다.
사이즈가 커서 안 맞을 줄 알았는데, 막상 껴 보니 손가락에 맞게 알아서 줄어들었다.
“디자인이 정말 세련됐어요.”
[노부의 안목은 수천 년을 앞서갔느니라.]
입만 벌리면 자랑인 무극자의 말을 무시했다. 그보다 혼원반지의 정보가 더 궁금했다.
[혼원반지]
등급: S
설명: 혼원문의 기보로 내공을 빠르게 모아줄뿐더러 주화입마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효과: 운기 효과 +50%, 본신내력 은신상태, 주화입마 -70%
“이, 이거 S급 물건이었습니까?”
이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무극자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않느냐. 혼원문의 기보가 그 정도 등급은 돼야지.]
도대체 어떤 문파길래 이 정도 보물이 있는 걸까.
무협지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혼원문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준이 무극자에게 대놓고 물었다.
“영감님 문파는 어떤 곳이었어요?”
한 달 동안 수련을 하면서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그중 하나가 호칭이었다.
[갈! 고금제일인인 노부를 영감이라니. 사부라 부르라고 몇 번을 말했잖느냐.]
“입에 달라붙지 않아서….”
[어서 사부라 불러 보거라.]
“사… 부님.”
[크흠. 오랜만에 들으니 아주 좋구나.]
그렇게 사부란 말이 좋은 걸까.
무극자가 기뻐하는 게 마음까지 전달되었다.
“그런데 사부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사부는 세상에 죄를 많이 지어 은거를 했느니라.]
“악인이셨습니까?”
[가아아알! 누구도 감히 노부를 죄인이라 말하지 못하느니라.]
화악-
무극자는 영혼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나무들이 미친 듯 흔들렸다.
땅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미줄이 되어 쩍 갈라졌다.
“헉!”
이준이 기겁했다.
영혼밖에 없는 사람이 이 정도의 기를 뿜어 대다니.
현시대의 최강자라 여긴 일제오왕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비교를 한다면 7년 후 이세계 포탈에서 나온 악마들.
그들에게서나 느껴졌던 위압감이었다.
[큼큼. 노부가 잠깐 흥분을 했구나.]
흔들렸던 나무와 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운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경지인가보다.
이준은 무극자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흥분하셨다간 건물까지 날아가겠습니다.”
[이건 힘의 1할도 안 되느니라.]
그 말을 칭찬으로 알아들은 무극자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참 단순한 사부였다.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
“루트 개방.”
[루트가 개방됩니다.]
[질서를 수호하는 무신의 길 (난이도: 상)]
[세상에 회의를 느껴 은거한 무극의 길 (난이도: 상)]
[천지를 집어삼킬 파천의 길 (난이도: 상)]
이준의 움직임이 멈췄다.
선택지가 나오자,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생각에 잠긴 끝에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선택지. 사부님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무극이라고 대놓고 적혀 있지 않은가.
하지만 파천이란 단어가 더욱 끌렸다.
세상을 뒤집는다. 이 얼마나 강렬한 단언지.
메시지를 선택하기 전에 다시 한번 무극자를 불렀다.
“사부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 번 더 불러 봤으나 여전히 무극자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잘 선택해야 할 것 같은데….”
한참을 이어진 고민 끝에 눈을 딱 감고 하나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