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이준은 오랜만에 학교 밖으로 나왔다.
수련으로 인해 기숙사 밖에선 산만 탔었다. 간만의 외유라 신날 법도 하지만, 그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했다.
‘사부님. 꼭 이래야겠어요?’
[네 형편없는 실력을 빨리 늘리려면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는구나.]
‘너무 옛날 방식인데.’
[이 방식이 널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니라.]
이준이 즐비하게 들어선 건물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학교 근처의 상점가다.
각성자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곳으로 여러 종류의 상품을 팔았다.
이준이 필요한 건 모래주머니 역할을 하는 철환이었다.
탕탕탕-
빌딩 1층에 대장간이라.
굉장히 희귀한 광경이었으나, 요즘같이 몬스터가 출몰하는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다.
이준이 빌딩 1층으로 들어갔다.
“계세요?”
안에서 중년 남자가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장은 이준을 깍듯하게 대했다.
각성자가 판치는 세상.
어려 보인다 해서 얕보면 큰일 났다.
“철환 같은 걸 구할 수 있을까요?”
“철환이라…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사장이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의 묵철을 들고 왔다.
“여기 있습니다.”
“몇 키로입니까?”
“이건 10kg 정도 합니다.”
“혹시 하나에 50kg짜린 없어요?”
50kg라는 말에 사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50kg요? 어떤 용도로 사용하시려고….”
“손목이랑 발목에 각각 차려 하거든요.”
“헉. 도합 200kg이나 하는 무게를 말입니까?”
“예.”
사장이 무언갈 고민하다가 이내 말했다.
“있긴 합니다만 착용하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닌지라… 제련하면 착용할 수 있게끔 만들 수는 있습니다. 겉보기엔 흉하겠지만요.”
“상관없어요. 옷 안에 착용할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할까요?”
“요즘 묵철 같은 건 쓰임이 별로 없어 네 덩어리에 200 정도만 주시면 되고, 제련 비용까지 추가하면 총 400만 원입니다.
“결제… 해 주세요.”
이준이 깨톡페이를 이용해 결제했다.
고2 학생에겐 아주 큰 돈.
자신이 각성자라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다.
“감사합니다. 제련은 4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다 되면 연락 주세요.”
이준이 상점에서 나와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이왕 학교 밖으로 나온 김에 없는 돈까지 긁어모아, 펑펑 쓸 생각이다.
* * *
‘빈털터리가 됐네.’
학생이 무려 400만 원의 거금을 썼다.
일반 학생이라면 쉽게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이 세계는 몬스터가 돈 아니겠느냐. 너도 사냥해서 벌면 금방이다.]
‘학생은 함부로 게이트에 못 들어갑니다.’
[흥. 그딴 건 개나 줘 버리라 해라.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못 말리는 사부였다.
근엄하다가도 꼬장을 부리질 않나, 어떨 때는 괴팍하기까지 했다.
성격이 변화무쌍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자신도 이런 규칙을 지킬 생각 따윈 없었다.
이준은 아이스 초코를 한입 먹고는 상태창을 열었다.
[기본 정보]
칭호: 낙오자
이름: 이준
나이: 18
잠재력: 등급 외
스킬: 혼원신공(SSS)
특성: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
[능력치]
체력: 15/100
신체: 13/100
힘: 15/100
민첩: 13/100
-특수항목-
내공: 63/620
정신력: 32/150
능력치가 생각보다 안 올라서 아쉬웠다.
100kg짜리 돌을 들고 죽어라 산을 탔지만, 오른 능력치는 끽해 봐야 2, 3이었다.
물론 괜찮은 것도 있었다.
일취월장한 내공 상태.
삼재심법을 익혔을 때 내공의 한계가 50이었는데 혼원신공으로 바뀌고 나서 한계가 무려 620으로 늘어났다.
‘확실히 혼원신공은 엄청난 무공이야.’
[사부가 다시 말하지만 내 일평생 심득이 담긴 내공으로서 고금제일…(중략)]
한번 칭찬을 했더니 무극자 사부의 말이 또 길어지기 시작했다. 말을 못 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의외로 말이 많았다.
긴 자랑이 끝났다. 이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치켜세웠다.
‘역시 고금제일의 사부님이십니다.’
[사부도 알고 있느니라. 홀홀홀.]
이준은 무극자 사부가 다시 말을 하기 전에 특성창을 열었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등급: ??
설명: 세상에는 수많은 은거자가 존재합니다. 깨달음을 쫓는 자, 공적으로 몰려 수십 년간 몸을 숨긴 자 등. 은거자는 자유로웠고, 선택에 따라서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효과: 모든 무공 숙련도 +20%
‘미쳤어.’
파천의 길도 괜찮았으나, 자신을 가르쳐 준 사부를 버릴 수 없었다.
고심 끝에 그와 관련된 루트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특성의 효과가 안 좋은 것도 아니다.
모든 무공 숙련도 20% 상승.
자신이 빠르게 강해지는데 제일 필요한 효과였다.
이준이 루트를 눌렀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은거자(0) - 은거기인의 막내제자(0/100,000)
무공(0) - 군림보(0/650,000)
능력치(0) - 힘+15(0/100,000)
∴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
세 개의 목록이 나타났다.
‘사부님. 테크트리 포인트는 어떻게 얻는 겁니까?’
[퀘스트나, 게이트를 깨면 얻을 수 있다.]
꼬장꼬장한 사부지만 은근히 시스템에 대해 아는 게 많아 도움은 됐다.
‘얻는 방법이 한정적이군요.’
테크트리를 타는 걸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듯싶었다.
이준이 각자의 항목을 눌러 살폈다.
[은거기인의 막내제자(0/100,000)]
등급: D
효과: 전투력 +10%, 새로운 항목 개방
[군림보(0/650,000)]
등급: B(성장형)
보상: 군림보, 새로운 항목 개방
[힘+15(0/100,000)]
등급: D
보상: 힘+15, 새로운 항목 개방
무공은 테크트리 포인트가 650,000p이나 필요해 탈락.
두 개의 선택지만 남았다.
‘은거자랑 능력치 항목을 각각 하나씩 올려야겠어.’
한 번 누를 때마다 50,000p씩 차올라 두 번을 눌렀다.
[칭호 은거기인의 막내제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자연의 벗이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항목이 개방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능력치 포인트를 찍었다.
[힘 +15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힘 +15가 생성되었습니다.]
이준이 새로 생긴 항목을 열었다.
[자연의 벗(0/250,000)]
등급:C
효과: 모든 속성 친화력 20%상승
[힘+15(0/100,000)
등급: D
보상: 신체+15, 새로운 항목 개방
‘와.’
이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공 루트가 생기고 나서부터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등급들을 죄다 보는 것 같았다.
새로 생긴 항목도 마찬가지.
등급에 비해 효과가 상당했다.
거저 주는 느낌이랄까.
이 중에 100,000p로 올릴 수 있는 능력치가 제일 꿀이었다.
‘정말 게이트라도 돌아야겠습니다.’
[왜?]
‘테크트리 포인트를 한번 찍고 나니 다른 것도 찍고 싶어졌어요.’
뭐라도 홀린 듯 손이 근질거렸다.
[이래서 도박 중독이 무서운 것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이준과 무극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있으니 스마트폰이 울려서 봤다.
-철환 작업 끝났답니다.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을 맡긴 빌딩 1층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여기 철환 네 짝입니다.”
검은 팔찌 모양의 철환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괜찮군요.”
“제가 신경 좀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준이 철환을 찼다.
제련을 팔찌 모양으로 해서 그렇지, 한 짝에 무게가 50kg 나 나갔다.
네 짝의 철환을 몸에 다 걸치자.
쿵.
움직일 때마다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윽.”
“괜찮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들릴 게요.”
내공을 사용하지 않자, 몸의 움직임이 굉장히 둔했다.
혼원신공을 운용하지 않고 오직 육체의 힘만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기적거리며 상점을 나왔다.
[그래가지고 기숙사로 언제 돌아갈 테냐. 빨리 움직이지 못할까!]
여지없이 무극자 사부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장장 200kg입니다. 지금 제 속도도 기적에 가까워요.’
[갈! 내 때는 말이다. 사부님의 사부께서….]
또 옛날 옛적 이야기가 나왔다.
사부는 엄청난 꼰대였다.
항상 ‘내 때는 말이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저 소리가 빨리 끝나려면 최대한 사부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한참을 설교로 귀가 아파 올 때.
“여, 낙오자.”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 * *
정말 오랜만이다.
아니지.
오랜만이랄 것도 없다.
저 화상들은 무림 사관학교를 졸업하고도 매일 봤으니까.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자, 가솔의 자식들.
자신들의 힘을 믿고 깝치는 전형적인 양아치들이었다.
등급은 E급.
그리 높은 등급으로 보이지 않지만 F급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F급은 F급.
다음 등급으로 넘어가기 굉장히 힘든데, 저 녀석들은 훈련만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돈 높은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녀석들은 자신과 달리 부모에게 혈족 계승을 받은 놈들이었으니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도련님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실까?”
“시비 걸지 말고 가라.”
“아쭈? 이 새끼 보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자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을 타고 전해져오는 압력.
쇄골을 부수려는 힘이 담겨 있었다.
“아차차. 내가 너무 성급했어. 개학하기 전에는 기홍이가 널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어깨를 부술 뻔했네.”
일진의 능청스러운 말에 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기홍.’
이준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이기홍은 자신과 사촌지간.
어렸을 적 자신을 괴롭혔던 놈 중 한 명이다.
폭군이란 이명답게 성격이 더러웠다.
고유 무공 스킬은 패권.
타고난 신력을 바탕으로 싸움에 능했다.
등급은 저 양아치들과는 달리 D급.
훈련만 열심히 하면 A급에 올라설 수 있다고 사람들은 평가했다.
‘내 단전을 망가트린 주범.’
이기홍은 자신과의 대결에서 일부러 손을 악독하게 썼다.
덕분에 단전이 망가져 한동안 폐인 생활을 했다.
이후 7년을 개같이 살며 달성한 경지가 겨우 D급.
이기홍이 18살에 이룬 경지를 자신은 스물 중반이 돼서야 간신히 달성했다.
D급을 달성해 좋아해야 했지만,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삼재심법과 검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왜 가문이 자신을 버렸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다를 거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눈 옆 근육에서 경련이 일었다.
“어이쿠야. 한 대 치시겠다?”
“치워.”
자신의 어깨를 잡은 놈의 손을 가볍게 치웠다.
그 모습에 일진은 당황했다.
부모에게 혈족 계승도 못 받은 쓰레기가, 일반인보다 조금 강한 실패작이 자신에게 벗어났다.
어이가 없었다.
그는 추태를 감추기 위해 이준을 자극했다.
“신력권가에 가는 길인데 너도 따라갈래? 우리랑 가면 통과 시켜 주지 않을까?”
“그 입 닥치는 게 좋아.”
“아 맞다. 너는 천한 핏줄이라 사모님이 네 얼굴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시지? 크크크… 커억!”
비웃고 있던 일진의 얼굴에 이준이 주먹을 꽂았다.
뒤로 나가떨어진 녀석.
단 한방에 기절한 친구를 본 일행이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치사하게!”
“야. 저 자식 조져!”
방심한 틈을 타 이준이 기습해서 친구가 당했다고 생각한 그들이었다.
모두가 E급 각성자.
학교에서 한 따까리 하는 녀석들이기도 했다.
‘보인다.’
혼원신공을 끌어 올리자, 주먹의 궤적이 너무도 잘 보였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했다.
이준이 몸을 틀었다.
주먹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일진의 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으드득!
그리고 그대로 꺾어 버렸다.
“아악, 내 팔!”
일진이 어깨를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녀석을 무시하고 다른 놈들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뭐, 뭐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일진들이 당황했다.
이준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의 손에 잡힌 주먹에서.
콰득!
악력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악!”
자신의 손을 부여잡으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녀석.
이준이 발로 녀석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퍽-
일진이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서 있는 녀석은 단 한 명.
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오, 오지 마.”
이준이 순식간에 두 명을 제압하자, 남은 일진이 뒷걸음질을 쳤다.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이 봐 온 이준. 절대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빵 셔틀을 하고, 빌빌 기던 쓰레기.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그런 놈에 불과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부들부들 떨던 그가 이준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알아. 내가 혈족 계승을 못한 쓰레기라는 걸.”
이준의 음성은 씁쓸했다.
자신은 위대한 가문의 격을 떨어트린 존재. 서자인 것도 모자라 혈족 계승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가문에서 살려 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만 했다.
‘기분 엿 같네.’
과거에는 가문에 인정받고 싶어 무슨 짓이든 했다.
아들을 버린 아버지.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고 죽이려는 큰어머니.
모두가 자신을 버렸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와서까지 가문에 목을 매야 할까.
아니었다.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강해져서 혼자 우뚝 설 거야.’
이준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가 일진에게 걸어갔다.
자신에게 발톱을 드러낸 놈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오, 오지 말라고!”
엉덩방아를 찍은 일진이 두려움에 질린 얼굴을 했다.
그럼에도 이준은 주저 없이 그의 얼굴을 피 떡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