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화
남자는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다친 데… 없어?”
“전 괜찮아요. 아저씨는요?”
“나도… 괜찮아.”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녀를 조심히 일으켜 세웠다.
“여긴, 큭! 위험하니까, 어서 엄마한테 가.”
“아, 아저씨 옆구리에 피나요.”
소녀의 큼지막한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소녀의 말대로 남자의 옆구리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저씨 각성자야. 이런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어서 가.”
남자가 소녀의 등을 밀었다.
소녀는 남자를 보다가 엄마가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소녀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감사의 인사를 했다.
두 모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자가 자리에 풀썩 앉았다.
아니, 다리가 풀려 서 있지 못했다.
남자의 눈에 폐허가 된 도시가 들어왔다.
곳곳에는 여전히 각성자와 몬스터가 격전을 치루고 있었다. 그 여파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 는 최선이야….”
남자의 눈에 몬스터와 격렬히 싸우는 이가 보였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검룡이라는 이명으로 불린 녀석.
친구지만 질투가 났다.
녀석은 자신과는 달리 가문의 무공을 온전히 계승했으니까.
그래서 너무 부러웠다.
만일 자신도 가문의 무공을 온전히 계승했다면.
‘나도… 저렇게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죽어라 수련해도.
흔하디흔한 삼재심법으로는 D급 각성자가 한계였다.
고작 아이를 구하는 게 끝이었다.
‘젠장….’
무력감이 찾아왔다.
무거운 눈꺼풀이 아래로 감겼다.
깊은 수마가 몰려왔다.
그러던 중.
[특성 무공 루트가 개방되었습니다.]
특성을 각성하고 말았다.
죽어 가는데 말이다.
“X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누굴 엿 먹이나.
각성자 시스템을 향해 갖은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깊은 수마가 자신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제1화
‘으음….’
이준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난… 죽었는데?’
육체의 느낌이 생생히 느껴졌다.
깊은 수면이 덮친 것과 다르게 정신 또한 멀쩡했다.
‘사후세계인가?’
이준이 슬며시 눈을 떴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천장이었다.
“뭐야?”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윽.”
조금 전 느꼈던 근육통이 다시 올라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를 돌려 근육을 풀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기숙… 사?”
명색에 각성자라고 8평 남짓한 방을 혼자 사용할 수 있게 해준 학교.
침대와 냉장고 TV와 싱크대.
거기에 작은 화장실까지.
기본적인 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2025년 1월 2일… 2025년?”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숫자가 잘못된 듯싶었다.
자신이 죽은 날로부터 7년 전 날짜였다.
“이상해….”
이준이 저도 모르게 손을 아래로 내리 그었다.
그러자 눈앞에 홀로그램이 떴다.
“각성자 시스템이 왜 뜨는 거야?”
그가 뜨악한 표정으로 있다가 상단 오른쪽에 있는 날짜를 보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손으로 눈을 비비곤 다시 쳐다봤다.
[2025.01.02]
이준이 손으로 뺨을 세차게 때렸다.
빨갛게 부어오른 볼에선 화끈한 통증이 올라왔다.
여전히 날짜는 변하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기숙사 방에 있는 탁상용 달력까지 확인했다.
그도 모자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움직여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
눈에 드넓은 운동장이 보였다.
어떤 학생은 가볍게 달리기를 하고 있었고, 어떤 학생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7년 전으로… 돌아왔어?”
저들은 모두 이 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이다.
한동안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봤다.
창문을 닫고 침대로 와서 앉았다.
“난 분명 죽었었어….”
옆구리에 구멍이 뻥 뚫렸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느껴진 감각이었는데, 과거에 와 있다니.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앞으로 어쩌지?”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고민이 많아졌다.
“하.”
한숨이 흘러나왔다.
7년 후에 있을 대전쟁.
그곳에서 삼재심법이나 익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선 내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겠지.”
허공에 손을 젓자, 상태창이 나왔다.
[기본 정보]
칭호: 낙오자
이름: 이준
나이: 18
잠재력: 등급 외
스킬: 삼재심법(FF), 삼재검법(FF), 삼재보(FF)
특성: 무공루트(??)(루트를 선택해 주세요.)
[능력치]
체력: 10/100
신체: 10/100
힘: 10/100
민첩: 10/100
-특수항목-
내공: 10/50
정신력: 30/150
“내가 죽기 전에 봤던 특성이야.”
이준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공루트란 특성을 눌렀다.
띠링-
알림음이 들림과 동시에 메시지가 출력됐다.
[특성 무공루트(??)가 발동됩니다.]
[루트를 선택해 주세요.]
그 뒤로 촤르르륵 여러 목록이 떴다.
이준은 특성을 볼 때보다 더 격양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여기서 왜 나와?”
[구양신공]
[달마역근경]
[창궁대연신공]
……
……
……
하나같이 절세의 무공들이었다.
그것도 무림 사관 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진 무공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희대의 보물들.
격이 한 단계 올라갈 때, 복권 당첨 확률로 얻을 수 있는 무공이었다.
이준이 연신 감탄만 하고 있을 때, 재촉하는 음성이 들렸다.
[이 무공 중에 하나의 루트를 선택하십시오.]
“나보고 이걸 고르란 말이지?”
이준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호흡법은 삼재심법. 목록에 보이는 희대의 신공과는 질이 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간신히 진정시켰다.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합니다. 한 번 루트를 타시면 추후에는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 지금,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래도 몇 개는 거를 수 있었다.
“세가 쪽 무공은 제외하자.”
현재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은 무협지에서 나온 무림과 똑같았다.
시대가 현대로 옮겨졌을 뿐.
무림과 다르지 않았다.
이게 모두 다 1세대 각성자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그란투스 대륙의 마법과 오러, 다른 하나는 무림의 무공이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는 그란투스 대륙을 선택했고, 아시아는 무림을 선택했다.
이게 현대 시대로까지 내려와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현대판 판타지와 무림의 세력이 생겨난 것이다.
아무튼 목록에 나온 것처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이 있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공은 없을까.”
이준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손이 멈췄다.
여러 목록 중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공이 있었다.
[천마신공]
[자하신공]
[혼원신공]
제일 밑에 있는 혼원신공.
이준이 아는 지식으로는 정사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공이었다.
“혼원신공으로 하자.”
마음에 결정을 내리곤 혼원신공을 클릭했다.
[혼원신공(SSS)를 터득하셨습니다.]
[혼원신공 루트를 타셨습니다.]
[기존에 있던 삼재3종을 삭제합니다.]
[메인 퀘스트1 - 혼원문 입문 수련이 생성되었습니다.]
“헉!”
이준은 그 어떤 메시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혼원신공의 옆에 붙은 저 SSS만 보였다.
* * *
이준은 학교 뒤편, 한적한 산에 올랐다.
여긴 과거에 항상 수련했던 곳. 사람의 시선이 없어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공터에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했다.
“후우우우.”
최근 배운 혼원신공을 천천히 운용했다. 잠시 운용을 한 것만으로 몸 주변의 기운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몇 시간 뒤, 이준은 눈을 번쩍 떴다.
동공에 회색빛이 일렁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게 SSS급 심법!”
이준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홀로그램에 나온 혼원신공을 보았다.
[혼원신공(SSS) - 1성]
설명: 무극자가 말년에 깨달음을 얻어 남긴 심법이다.
천지간에 흩어진 진기를 한곳으로 모으는데 탁월하며 그 어떤 무공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
삼재심법과는 하늘과 땅 차이.
몇 시간밖에 운용하지 않았는데도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상식 밖이었다.
혼원신공을 느끼고 나니, D급 내공심법만으로 기고만장해하던 녀석들이 이해 갔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강해질 수 있어.”
드디어 이준에게도 희망이라는 게 생겼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이 보이기도 했다.
강해질 수 있는 장치를 얻었으니, 그걸 활용해야 했다.
이준이 설명창을 집어넣고 퀘스트 창을 눌렀다.
[메인 퀘스트1 - 혼원문 입문 수련]
난이도: D
설명: 혼원문은 1인 전승문파로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자가 말년에 만든 문파입니다. 혼원문의 정식 제자가 되려면 혼원신공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완료 조건: 혼원신공 2성
보상: 혼원반지, 테크트리 포인트100,000p, 다음 루트 개방
퀘스트 난이도에 비해 상당히 쉽게 느껴졌다.
SSS급 심법인 혼원신공을 얻어서 그런가. 의욕이 샘솟았다.
몇 시간, 아니 온종일 심법수련을 하고 싶을 지경이다.
퀘스트 창을 집어넣고 곧바로 눈을 감았다.
‘우선 퀘스트부터 완료하자’
혼원신공을 천천히 운용했다.
단전에 쥐꼬리만큼 쌓인 내공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폭주 기관차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원신공에 빠져 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무아지경인지.
어느새 1시간이 흘렀다. 금세 2시간이 흐르기도 했다.
혼원신공을 끊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운용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갈 무렵.
이준의 얼굴이 붉어졌다 창백해지길 반복했다.
이준은 자신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혼원신공에만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이준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