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
“아이고 삭신이야.”
이염걸에게 보답하기 위해 웨폰 러셀 4에 잠깐 엑스트라로 출연하려고 했던 일은 예상보다 커지면서 매일 특훈을 받았다.
“오빠. 괜찮아? 가슴이랑 팔에 멍이 심한데, 병원에 안 가도 괜찮겠어?”
“제시카가 멘소래담을 발라 주니까 하나도 안 아파. 괜찮아.”
액션 훈련을 하다가 동민의 수준이 예상보다 뛰어나자 이염걸이 함께 일하는 스턴트맨들의 대련 강도가 계속 올라갔고, 매일 몸에 타박상과 근육통을 달게 되었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밤마다 제시카가 로션을 발라준다는 것이었다.
제시카도 걱정 하는 척 했지만, 격렬한 운동으로 잔근육이 갈라진 동민의 몸에 로션을 발라주는 걸 은근 즐기는 것 같았다.
“몸이 어떻게 이렇게 딱딱할 수가 있어?”
당연히 동민은 제시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근육에 힘을 주었고, 매번 음란마귀가 찾아 왔지만, 두 사람은 세탁소 휴게실에 있었기에 다음에는 조금 더 은밀한 공간에서 로션을 발라달라고 해야겠다 다짐했다.
“오빠는 원래도 멋있었는데, 대한민국 육군 병장 제대하더니 더 매력적으로 달라졌어. 구릿빛 피부도 섹시했는데, 조금씩 색이 연해지고 있네.”
“제시카가 원한다면 태닝 할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너무 하얗게 되면 바다에 가서 태닝 하러 가야겠다. 같이 가자.”
제시카와 살짝 핑크빛 대화를 주고받다가 요즘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에 관해 물어 보았다.
“연기는 할 만해?”
“어렵긴 한데 그래도 다들 잘 대해줘서 힘들지는 않아.”
제시카는 매력적인 외모에 동민의 여자친구라는 소문이 나면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그녀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오빠가 만들 영화에 출연 안 시켜 줄 거야?”
“여자친구나 가족을 본인이 만드는 작품에 출연 시키면 객관적으로 일하기가 힘들어서 안 돼. 할리우드에서도 감독이 자기 부인을 출연 시키면서 망하는 영화를 많이 봤거든. 내가 아니더라도 제시카는 좋은 작품의 주인공 역을 맡을 수 있을 거야.”
동민은 이번 여름 방학에 USC 영화학과에서 내어준 과제로 단편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이미 시나리오 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제시카가 자신도 출연하고 싶다고 욕심을 부렸지만, 여자친구라서가 아니라 그녀의 연기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차마 제시카를 캐스팅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여자 주인공은 누구를 뽑을 거야?”
“여주인공 비중이 별로 크지 않은데 존재감이 있는 사람을 쓰려고. 일단 앤젤리나에게 부탁해 봐야지.”
“그럼 나쁜년 배역은 누가 맡아?”
“올해 새로 만드는 드라마가 있는데 거기서 메인 캐릭터 중 한명인 세라 제시카 파커를 악역으로 등장 시킬 거야. 드라마 캐스팅 할때 미리 말해 뒀어.”
동민은 케이블 방송국에서 새로 제작에 들어가는 여성들을 위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시트콤에 투자를 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엄청난 여성팬을 거느리고 있는 드라마인데다 사회적인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는 드라마라서 고민 끝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뉴욕에 정착한 30대 중반 여자 세 명과 40대 여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싱글 여자들의 사랑와 우정, 일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펼쳐 진다.
배경이 뉴욕인데다 이성 관계와 쇼핑, 패션, 맛집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면서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주면서 여성들과 동성연애인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젝스 엔더 시티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격으로 나오는 세라 파커는 살짝 말상의 긴 얼굴에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 동민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악역에 꽤나 어울리는 외모를 하고 있었고, 젝스 엔더 시티가 시작되면 엄청나게 유명한 셀럽이 되기에 그 전에 잠시 출연시키기로 했다.
앤젤리나 역시 올해부터 출연하는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과 존재감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게 되니 더 유명해 지기 전에 병맛 캐릭터를 부여했다.
남자 배우들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지인들이 출연해 주겠다고 했지만, 영화관에 상영할 계획도 없는 단편 독립 영화에 유명 배우가 출연 했다가는 작품이 묻혀 버릴 것 같아 거절했다.
그래도 엑스트라나 까메오로 몇 명은 출연시키기로 했다.
“쿠안틴 감독님이 도와주기로 했지?”
“사실 배우보다 스테프 구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인데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본 쿠안틴이 조감독을 맡기로 했어. 쿠안틴 초기 작품 만들때는 내가 도와 줬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도움을 받기로 했지.”
독립 단편 영화를 만드는 데는 당연히 배우도 중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스테프가 훨씬 더 중요했다.
학생이 만드는 영화이다 보니 많은 스테프를 고용할 수도 없는데다 예산의 한계가 있기에 전문가를 쓸 수도 없었다.
최대한 인맥을 활용해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었고, 동민이라면 할리우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스테프를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학생이 만드는 단편 독립 영화답게 저예산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제시카의 마사지를 받은 다음날 쿠안틴을 만나 본격적으로 동민이 만들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겠어? 너 라면 얼마든지 훨씬 더 뛰어난 퀄리티의 작품을 뽑아 낼 수 있잖아.”
“고민 많이 해 봤는데, 지금이 아니면 이런 작품은 만들 수 없겠더라고요. 제가 가장 찍고 싶은 내용인데 학생 때나 영화관에 상영하지 않은 거라는 조건으로 이런 걸 찍을 수 있지 본격적으로 장편 상업 영화를 만들게 되면 B급 정서의 메니악 한 건 못 만들 잖아요.”
“그렇긴 한데,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그래 하고 싶으면 해야지.”
동민의 새로운 시도에 B급 감성의 대가 쿠안틴도 두 손을 들었고, 원하는 데로 서포트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촬영팀이랑 음향, 조명 쪽으로 아는 사람들 있죠?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말고, 취미로 하고 있는 아마추어 소개 해 주세요.”
“실력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긴 한데, 시나리오대로 하려면 의상비가 많이 들어 갈 것 같은데? 아! 삼촌께 부탁할 생각이구나. 그래도 인력이 많을수록 좋은데, 부를 사람은 없어?”
“작년이랑 올해 제대한 후임들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할리우드에서 촬영할 기회를 준다고 했더니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공짜로 일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비행기 티켓은 보내줘야겠지만. 인건비 보다는 싸겠죠.”
쿠안틴과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고민하자 학교 측에서 제안한 예산 안으로 제작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제작비를 줄이는 게 보통인데, 넌 돈은 많은데 커트라인이 정해져 있어서 장부 조작을 해야 하다니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
“장부 조작이라니요. 무료 봉사와 재능기부가 많긴 하지만, 따로 분식 회계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요.”
“그래도 따로 수고비는 챙겨 줄 거잖아.”
“그건 제작비 예산에 포함되는 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용돈을 주는 거니 포함 시키면 안 되죠.”
필름 값과 장비 렌탈비를 제외하고,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인건비를 최소한으로 측정 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예산을 장비에 쏟아 부었다.
배우 출연료 역시도 지인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주기로 했고, 주연 배우는 무명의 연극 배우와 출연료가 비교적 낮은 드라마 배우를 뽑았기에 스태프 인건비 보다 더 적게 들었다.
“그런데 주인공은 조금 더 경력이 있는 배우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두 명의 버디 물인데 한 명은 연극 배우고 한 명은 하이틴 드라마 배우라니 조합이 영 이상한걸?”
“캐릭터에 가장 맡는 사람으로 고른 거니까 캐스팅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름 방학에 촬영을 할 건데 스케줄은 괜찮은 거죠?”
“브라운 잭키 촬영도 끝났고, 아직 다음 작품 시나리오 구상 중이라 당분간은 여유 있어. 그리고 도와주기로 약속 했는데 스케줄이 있더라도 시간 내야지.”
드디어 동민이 첫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 간적 경험은 많이 있지만, 각본과 연출 감독으로 전면에 나서는 건 처음이라 생각 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았다.
대충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만 만들 수 있는 영화를 찍기로 했기에 욕심을 부렸고, 그나마 저예산 촬영 경험이 있는 쿠안틴이 도와주어 어려움 없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촬영과 녹음, 조명 스태프를 구할 테니, 넌 배우 캐스팅이랑 한국에서 오는 스테프 준비를 해 둬. 장비 임대는 학교에 있는 걸 쓰기로 했지? 필름도 학생 할인이 된다고 했으니 거기서 구입하는 게 좋겠다.”
학교 측에 쿠안틴과 함께 만든 품의서를 제출하고, 방과 후에 이염걸의 연습실로 찾아가자 처음 보는 사람이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니엘. 어서와. 이쪽은 내 절친인 도니 옌이야.”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만나보게 되어 반갑네요.”
“오! 당신은 베이징 스차하이 체육학교 출신의 전쯔단 아니신가요?”
“저를 알고 계시군요.”
“소림사에 엑스트라로 출연 하셨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황비옹에도 출연 하셨잖아요.”
전쯔단은 이염걸과 동갑에다 베이징 스차하이에서 함께 무술을 배워 아주 친한 사이였다.
무술대회에서도 이염걸이 항상 1등을 하고 2등은 전쯔단이 차지했는데, 그래서 인지 90년대에는 이염걸과 성용에 비해 주목을 덜 받게 되었고, 두 사람의 활동이 주춤해지는 2000년대부터 전쯔단의 인지도가 올라가게 된다.
다행인지 80,90년대 주연으로 발탁을 덜 받으면서 몸이 망가지지도 않아 혹사로 인해 부상을 달고 사는 성용와 이염걸 보다 장수한다.
“영어를 아주 잘 하시네요. 동부 쪽 억양인데 보스턴 출신이신가요?”
“엑센트가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 했는데, 바로 알아보다니 대단하네요. 다니엘 군은 발음이 완전 서부 사람이네요.”
어려서 부터 미국에서 자란 전쯔단은 영어가 현지인처럼 능숙했다.
보스턴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다 공부는 안하고 클럽에서 비보잉을 하고 다니자 부모님이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 버리고, 거기서 이염걸을 만나 두 사람은 절친이 되었다.
홍콩에서 배우로 여러 작품에서 경력을 쌓다 무술 감독도 맡았고, 작년에는 직접 영화사도 설립해 본격적으로 자기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영화사 까지 만드셨다니 대단하시네요. 앞으로 할리우드에서도 활동 하실 거죠?”
“미국 시민권도 있으니 가능하다면 여기서도 활동을 해야죠. 그런데 염걸이가 제자 자랑을 많이 하던데 실력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전쯔단이 동민의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며 대련을 요청했고, 동민의 의사는 무시한 채 이염걸이 대련을 허락했다.
“웬만한 공격은 도니가 다 받아 줄 수 있으니 보여 줄 수 있는 건 보두 펼쳐 보이도록.”
갑작스럽게 전쯔단과의 대련이 성사 되었지만, 최근들어 이염걸에게 강도 높은 수련을 계속 받아 왔기에 동민도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상태였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오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겠군요. 선공은 양보 하도록 하지요.”
동민은 전쯔단에게 포권을 하고는 시간을 두지 않고, 바로 정권을 찔러 들어갔다.
< 192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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