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
동민이 선택한 영화는 성용이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하는 러시아 워라는 중국과 미국, 러시아의 전쟁을 다룬 액션 영화가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납치극을 해결하는 버디 형사물 이었다.
홍콩의 전설적인 형사인 성용과 LAPD 형사인 크리스 커터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납치 된 중국 영사 한의 딸인 수영을 구하는 내용의 액션 코미디 영화였다.
뛰어난 무술 실력과 우수한 수사 경력을 가진 홍콩에서 파견 된 성용과 LAPD의 사고뭉치 형사 크리스 커터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사건을 해결해가는 구성으로 버디 형사물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낸다.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성용의 액션과 흑인 코미디가 더해지면서 신선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고, 북미 박스오피스 1억 4,100만 달러로 상당히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해외에서도 1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총 2억 5천만 달러의 극장 수입을 벌어들이는데, 제작비는 할리우드에서는 적은 편인 3,300만 달러 밖에 들지 않았다.
“성용이 세탁소에 찾아와서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긴 했는데 제가 보기엔 미국 시장에서 충분히 먹힐 내용이에요. 홍콩에서는 액션의 비중이 적고, 미국 유머가 난무해서 조금 비난을 받긴 하겠지만, 그래도 미국 진출에 성공 하는 게 더 중요하죠.”
“오락성은 확실히 있겠네요. 그런데 성용은 영어를 잘 못하지 않나요? 세탁소에서도 중국어만 쓰던데요?”
“영화에서도 영어를 못하는 홍콩 형사로 나오니까 괜찮을 거예요.”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면서 성용은 크리스 커터가 입에서 쏟아내는 수다를 거의 못알아 듣기도 한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영어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고 영어 공부에 정진하게 되니 성용에게도 도움이 되는 영화였다.
“러시아 워에는 1,650만 달러를 투자하는 거로 하죠.”
“총 제작비의 절반 인데 괜찮을까요?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걱정이 되네요.”
“성용이라면 최소 1억 달러는 넘길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러시아 워에 투자를 마치고 다음 액션 영화를 고르고 있는데 닐에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며 보여 주었다.
“이것도 일본에서 유명한 작품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하는 거더라고요. 독립기념일의 감독인 롤란드 에머리히가 만드는 거라서 주목을 많이 받고 있던데요?”
“서니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거죠? 시나리오를 보긴 했는데 원작을 너무 파괴해서 오리지날 팬에게 쓴소리를 많이 들을 것 같던데요?”
“그래요? 시나리오는 재미있던데, 일본판은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네요. ‘사이즈는 중요하다’라니 케치프레이즈가 성인영화 같기도 한 게 재미있지 않아요?”
닐이 고른 영화는 일본의 고지나 시리즈를 리메이크 하는 고질나였다.
일본의 대형 제작사인 토호는 1992년부터 할리우드에서 고지나를 리메이크 하려고 여러 시도를 해 왔지만, 여러 이유로 많은 프로젝트들이 무산되었다.
결국, 토호의 지원을 받은 서니와 트라이스타가 손을 잡고, 독립기념일을 찍으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자리 잡은 롤란드 에머리히를 감독으로 선택한다.
이때 에머리히 감독의 머리속에는 세기말이라 그런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내용의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는데, 고질나 제안이 들어오자 빨리 찍고 나서 운석 영화를 만들자는 마인드로 시작하게 된다.
에머리히는 오리지널 고지나의 디자인이 말도 안 된다며 퇴짜를 놓고, 미국에서 설정한 컨셉도 거부 하면서 날렵한 고질나를 원하게 되는데, 그 결과 참치 먹는 고질나가 탄생하게 된다.
고지나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대표 괴수 였는데 에머리히가 자신의 임의로 컨셉을 바꾸는 바람에 많은 평론과 마니아로 부터 비판을 듣게 된다.
고지나의 이름만 따왔지, 특성은 완전히 무시했다며 고지나의 특성인 방사열선 불은 뿜는 것과 천하무적으로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걸 무시했다며 재난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 영화계의 재난을 만들어냈다며 대차게 까 내린다.
사실 고지나와 때어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고 일반 관객에게는 재미있는 영화로 받아들여지지만, 여러 디테일을 따지기 좋아하는 괴수 마니아에게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총 매출도 3억 8천만 달러나 벌어들이면서 흥행에 성공하지만, 문제는 제작비에 1억 4천만 달러나 투입하고도 투자대비 돌아오는 수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투자하기에 위험 부담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 자금도 많이 받을 거라서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네요.”
고질나 시나리오를 보고 있으니 그 다음해인 99년에 한국에서 제작되는 괴수 영화가 떠올랐다.
고지나가 욕을 먹기는 하지만, 98년 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수준 높은 CG 실력을 보여 주는데 다음해 한국의 용구 아트에서 한국 배우 없이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해 만드는 영가리는 참아 평가를 내리기 민망한 수준 이었다.
‘용구 아트가 공룡에 집착해서 제작비를 날려먹긴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 특수효과 발전을 이루는 큰 이바지를 하기는 하지.’
용구 심영래가 대표로 있는 용구 아트는 계속되는 삽질으로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되지만, 한국 영화계에 특수효과 전문가를 양성했다는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 이었다.
결과를 못만들긴 해도 자금은 꾸준히 투입 하면서 조금씩 기술이 발전하게 되고, 미래 한국 영화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가리 만들 때 도와 줘야하나? 한국에서 먼저 연락이 올 것 같은데,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한국 영화의 아픈 손가락 영가리를 떠올리며 고질나 투자는 서니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이 영화는 도저히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닐은 어떻게 생각해요?”
“멜 기브슨과 데니 클로버가 나오는 웨폰 러셀 4로군요. 마지막으로 3편이 92년에 제작된 거로 기억하는데 오랜만에 다시 나오네요. 버디 물의 시초이자 오랜 팬을 거느린 웨폰 러셀이라면 당연히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까요?”
닐의 생각처럼 웨폰 러셀 4편은 10년이 넘게 시리즈가 나온 만큼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었고, 2억 8천만 달러라는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기록 하게 된다.
하지만, 전작들과 다르게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제작비를 1억 4천만 달러나 써 버리고, 극장 수익을 때 주고 나면 겨우 본전치기만 하고 남는 게 없어진다.
시리즈 최대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만큼 스케일도 커지고 볼거리도 많아지는데, 이제는 늙어서 현역에서 물러나야 하는 주인공과 전편들과 다르게 흘러가는 스토리 라인이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제작비가 고질나와 같은 1,400만 달러라는 거예요. 솔직히 고질나 보다 흥행 수익은 적을 것 같거든요.”
“그럼 투자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인 거군요.”
동민이 수익도 남지 않는 웨폰 러셀에 투자를 고민하고 있는 건 사부가 할리우드에 이번 영화를 통해 데뷔하기 때문 이었다.
삼합회의 히트맨으로 나와 멜 기브슨과 데니 클로버를 열심히 때려주는 역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얼굴을 알리게 된다.
원래는 성용에게 제안이 들어가지만, 그는 악역은 하지 않는다며 거절하고, 아직은 할리우드에서 인지도가 없는 이염걸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전형적인 중국인 악당 스트레오 타입이라, 그의 인지도가 높은 아시아권에서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지만, 상당히 간지 나는데다가 엄청난 실력으로 주인공들을 가지고 노는 슈퍼 악당으로 출연하기에 이염걸의 존재를 북미 시장에 확실히 각인시키게 된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리처드 도너 감독이 액션 장면에서 이염걸에게 속도를 줄여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이염걸의 동작이 카메라 셔터 속도보다 더 빨라서 필름에 담기질 않는다며 난처해한다.
할리우드 배우들도 이염걸과 액션 장면을 찍을 때 맞을까봐 긴장을 하는데,
이염걸이 수십 번 넘게 이런 연기를 해 보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맡기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주인공 배우들의 몸이 굳어 여러 번 NG를 내기도 한다.
영화 촬영 중 멜 기브슨이 이염걸에게 푹 빠지게 되고, 이후 할리우드 활동에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무리 사부님이 출연한다고 해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영화에 투자하기엔 무리가 있네요. 직접 만나서 물어 봐야겠어요.”
“벌써 할리우드에 와 있는 거예요?”
“홍콩이 중국에 반환 되자마자 미국으로 도망 치셨어요. 같이 만나러 가요.”
동민은 닐과 함께 이염걸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그 곳에 도착한 닐이 속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염걸씨가 여기에서 지내고 있다는 말이죠?”
“뒷마당으로 가면 볼 수 있을 거예요.”
동민은 할리우드 세탁소 입구로 들어와 카운터를 지났고, 세탁소 내부를 가로질러 뒷마당으로 나가자 이염걸이 그곳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사부 몸은 괜찮아요?”
“네가 보내준 의사와 마사지사 덕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사부는 몸이 재산이니까 관리를 잘 하셔야 해요.”
원래는 부상으로 여러 합병증을 몸에 달고 살고, 훅 늙어 버니는 이염걸이지만, 동민의 관리로 큰 부상 없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미스터 닐과 함께 찾아 온 거냐?”
“내년에 사부가 출연하는 영화 관련해서 고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웨폰 러셀 4를 말하는 거구나. 내가 악역으로 출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아시아인이 할리우드에서 주인공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거든요. 오히려 악역으로 자리를 잘 잡으면 더 많은 영화에 출연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중간한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 보다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에 악역으로 나오는 것이 훨씬 더 인지도 측면에서는 유리하죠.”
이염걸에게 웨폰 러셀 4편은 전편들이 유명하고 멜 기브슨의 인지도가 있는 만큼 흥행에는 성공하겠지만,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봤자 영화 제작비이지 않느냐? 도대체 영화를 만드는데 얼마나 들어가기에 그렇게 걱정을 하는 거냐?”
“웨폰 러셀 4편을 만드는데 대략 1억 4천만 달러가 측정되어 있네요.”
홍콩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제작비에 이염걸이 잠시 암산을 하느라 가만히 있었고, 계산이 끝나가 눈을 번쩍 뜨며 놀라워했다.
“뭘 찍기에 돈을 그렇게나 많이 쓴다는 말이냐? 이정도 돈이라면 홍콩에서 영화 10편은 찍을 수 있을 것 같구나.”
“멜 기브슨 출연료가 비싸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보니 작정 하고 있더라고요. 영화 초반부터 총격씬에 주유소도 날려 버리고, 철갑옷을 입은 테러리스트나 화염 방사기를 갈기던데, 돈이 불타오르는 게 눈에 훤하네요.”
웨폰 러셀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예감 했는지, 영화의 구성을 아주 화려하게 채웠고, 이염걸의 액션도 볼거리가 풍성했다.
“제자야.”
“네. 사부.”
제작비 금액을 들은 이염걸이 동민에게 다가오더니 양 팔을 붙잡고 말했다.
“사부가 할리우드에 데뷔를 하는데 제자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금액이 큰 만큼 부담이 가지 않게 작은 성의만이라도 보이길 바란다.”
결국 웨폰 러셀에 5%인 7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이염걸에게도 영화 촬영할 때 쓰라며 10만 달러를 상납했다.
“제자가 스승을 위해 주는 거라니 거절하기 힘들 구나. 대신 수련의 강도를 높여 주도록 하마.”
< 180 > 끝
ⓒ 돈많을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