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
해운대로 돌아와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가까이에 있는 동백섬으로 산책을 나갔다.
때마침 보름달이 떠 있었고, 파도 소리와 바다내음이 어우러져 동민과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브리트니랑 어스틴도 손을 잡고 걷네?”
“아무래도 지금 분위기가 좋아서 어스틴이 잡은 것 같아.”
동민과 제시카는 손을 잡고 동백섬을 걷다가 뒤에서 따라 오는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것을 보고 둘이 사귀는 것 같다며 이야기했다.
“야. 다들 손잡고 걷는데 나만 안 잡으면 이상하니까 내 손 좀 쓰자.”
“뭐? 우리가 사귀는 것도 아닌데 싫어.”
“손 좀 잡는다고 닳냐?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빨리 손이나 내놔.”
다들 손을 잡고 걷자 소외받은 것 같은 크리스티나가 라이온의 손을 낚아채더니 씩씩하게 손을 잡고 걸었다.
라이온이 뻘쭘해했지만, 워낙 분위기가 로맨틱해서 그런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크리스티나의 손을 잡고 같이 걸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은데 탭 댄스나 춰 볼까?”
“갑자기 왠 탭 댄스?”
“그냥 지금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달빛과 조명 아래 걷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라이언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랄라랜드가 생각났고, 로스앤젤레스 그린피스 천문대 올라가는 길에서 탭 댄스를 추는 장면을 재연하고 싶어졌다.
“남녀가 포크 댄스 추듯이 탭 댄스로 교감하는 거야. 잘 보고 따라 해 봐.”
동민이 제시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했고, 연기력은 부족해도 댄스에는 자신 있는 그녀가 금방 동민의 말을 이해하고 함께 탭 댄스를 추었다.
“흠. 꽤나 멋있는 걸?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아.”
“탭 댄스로도 로맨틱할 수 있는 거구나.”
다른 아이들도 디주니 미미 클럽에서 다져진 춤 실력으로 금방 동민과 제시카를 따라 했고, 오히려 더 멋있는 탭 댄스를 선 보였다.
외국인 아이들이 동백섬에서 갑자기 커플 탭 댄스를 추자 산책하던 부산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고 환호하며 손뼉을 쳤고, 작을 공연을 마친 일행은 재미있어 하며 호텔로 돌아갔다.
“하하. 미국이었으면 쑥스러웠을 건데 여기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걸 해도 재미있네.”
“디주니 미미 클럽에서 함께 춤추던 기억이 났어. 오랜만에 다 함께 춤을 춘 것 같아.”
부산을 돌아다니고, 열정적으로 탭 댄스를 춘 아이들은 금방 잠에 들었고, 동민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피곤했는지 다음 날 다 함께 늦잠을 잤다.
“오늘은 어디 갈 거야?”
“아주 특별한 곳에 갈 거니까 기대하고 따라 와.”
호텔에서 오랜만에 한식이 아닌 토스트와 오믈렛이 나오는 조식을 먹고 농심호텔이 있는 온천장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쇼핑몰 같은데?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코리안 스파야. 저번에 한국 왔을 때 못 가 봤는데 여기가 한국에서도 유명한 곳이라 부산에 오면 꼭 들려야 하거든.”
동민이 목욕탕을 설명하자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에 아이들이 당황해했지만, 그동안 함께 돌아다니며 수영도 하고, 샤워장도 함께 들어가며 지냈기에 서로의 알몸을 보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평범한 곳이면 데리고 왔겠어?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자. 그런데 남자랑 여자는 층이 따로 나뉘어져 있어서 남자는 내가 설명하면 되는데 여자 목욕탕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미리 알려 줄게.”
동민은 제시카와 크리스티나, 브리트니에게 먼저 샤워를 하고, 탕에서 몸을 불린 다음 때를 미는 법을 알려 주었다.
“초록색 이탈리아산 장갑 말하는 거지? 저번에 한국 왔을 때 오빠 어머니랑 같이 목욕탕 가 봤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따가 찜질방에서 보자.”
세 사람은 서울에서 목욕탕 경험을 했었고, 세신을 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럼 1시간 반 뒤에 찜질방에서 보자. 혹시 모르니 현금은 미리 줄게.”
여자아이들은 수건과 때밀이 타올, 목욕용품을 사서 여탕으로 들어갔고, 남자들은 동민을 따라 탈의실로 이동했다.
“정말 다들 벗고 돌아다니네. 탈의실이 왜 이렇게 커?”
“사람이 많이 들어가는 곳이라서 그래. 옷은 락커에 넣고, 키는 발목에 차고 있으면 돼.”
목욕탕에서 유일한 외국인인 어스틴과 라이언을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았고, 아직 사람들 앞에서 맨몸으로 다니기 어색한 두 사람은 허리에 수건을 두른 채 욕탕으로 들어갔다.
“우와~! 여기가 스파라고? 수영장 같은데?”
“야외에도 핫스파가 있어, 여기는 온천수를 쓰는 곳이라서 피부에도 좋고 피로 회복에도 좋은 곳이야.”
목욕탕의 거대한 규모에 두 사람이 놀라워했고, 동민은 먼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온탕으로 들어갔다.
“으~~ 좋다.”
“앗! 뜨거!”
“다니엘. 여기 어떻게 들어간 거야? 몸이 익어 버릴 것 같은데?”
“처음에는 뜨거운데 참다 보면 괜찮아져. 다리만 먼저 넣고 조금씩 몸을 담가 봐.”
동민의 조언을 듣고 라이온과 어스틴은 몇 번 더 시도하다가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며 튀어나왔다.
“야. 거긴 열탕이잖아. 처음부터 거기에 들어가면 어떡해. 여기에 들어와 봐.”
“여긴 들어갈 만하네?”
“저긴 뜨거운데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들어간 거지?”
“어르신들은 감각이 덜 예민해서 괜찮은 거야. 어때? 여긴 괜찮지?”
“몽롱해지는 게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온탕에서 적응을 한 세 사람은 다시 열탕에 도전했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왔고, 거대한 냉탕에서 수영을 하며 놀다 때밀이를 받으러 갔다.
“그래 거기 누워 봐 그럼 저분이 피부를 벗겨 주실 거야.”
“이거 무서운데 괜찮은 거지?”
“전문가니까 믿고 맡겨 봐.”
태어나서 처음으로 때를 밀어본 두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 이상한 국수 같은 것이 나오자 당황해했지만, 금방 적응하더니 꽤 만족하며 또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다니엘도 많이 나오네.”
“난 군대에 있으니까 당연히 많이 나오지. 야외 활동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때밀이를 마친 세 사람은 다양한 탕과 사우나를 하나씩 시도해 보며 놀다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찜질복을 입고 찜질방으로 이동했다.
“우와~ 여기도 엄청 크네.”
“여긴 남녀가 같이 있는 곳이구나.”
“온도계가 방 온도를 말하는 거지? 저기 들어가면 죽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들어 있는 걸 보니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여자애들은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자는 남자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동민은 어스틴과 라이언을 데리고 찜질방 시설을 구경시켜 주었다.
“오락실도 있고, 가라오케도 있네?”
“우와. 식당도 있어. 배고픈데 여기서는 뭘 먹으면 되는 거야?”
“기다렸다가 다른 아이들이 오면 같이 먹자. 먼저 먹으면 화낼 수도 있어.”
다행히 여자아이들이 금방 나타났고, 다들 거대한 목욕탕과 찜질방에 신나 하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서로 이야기했다.
“일단 맥반석 달걀이랑 식혜를 시켜 먹자.”
“난 라면 먹을래.”
“나도!”
라면과 김밥, 돈까스를 주문해 주었고, 기다리는 동안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다.
“수건을 이렇게 접고, 뒤집어서 말아 주면 모자가 완성되는데 이걸 쓰고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이걸 쓰고 있는데 왜 쓰고 있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양머리라고 하는 건데 재미 삼아 쓰는 거야.”
“크크. 너희들 잘 어울리는 걸?”
여자아이들은 양머리를 하고 있는 어스틴과 라이온, 동민을 보고 웃었고, 어색한 세 남자와는 달리 여자아이들은 양머리가 잘 어울려 놀릴 수가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아이들이 찜질복을 입고 다 같이 양머리를 하고, 찜질방 식당에 앉아 분식을 먹으며 재미있게 놀았고, 여러 종류의 찜질방을 경험해 보더니 한쪽에 다 같이 모여 낮잠을 잤다.
“오늘은 푹 쉬었네. 이제 나가 볼까?”
“찜질방에 들어갔더니 다시 땀이 났는데 또 씻어야 해?”
“간단하게 샤워만 하고, 로비에서 보자.”
이번에도 여자아이들이 씻는 데 시간이 더 걸렸고, 남자들은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면서 로비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이건 처음 마셔 보는데 왜 이렇게 맛있어?”
“목욕탕 나와서 꼭 마셔 줘야 하는 국민 음료야. 지금 마시는 게 가장 맛있어.”
자그마한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는 동민에게 라이온이 다음은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았다.
“부산에서 진주로 갔다가 보성에 들러서 목포까지 갈 거야. 그리고는 광주로 이동해서 전주를 갔다가 군산까지 보고 서울로 올라갈 거야.”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다니엘 휴가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전부 볼 수 있는 거야?”
“원래 계획은 그랬는데 사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서 부산에서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정확한 일정 없이 상황 되는 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었고, 동민의 휴가가 며칠 남지 않아 서울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자아이들이 발그레한 볼을 하고 로비로 나왔고, 동민은 바나나맛 우유를 하나씩 물려주었다.
“오늘도 재미있었어. 이렇게 큰 목욕탕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처음에는 아주머니랑 할머니가 계속 쳐다봐서 불편했는데 나중에는 간식도 주고, 용돈까지 주시더라.”
여탕에 나타난 외국인이 신기했던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하시다가 용돈을 주고 가셨고, 브리트니가 천 원짜리 한 장을 자랑하며 보여 주었다.
“다니엘이 오늘까지만 부산에 있고, 이제 서울로 돌아간대.”
“그래. 사실 이제 조금 피곤하기도 했어. 다니엘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들도 슬슬 돌아가고 싶어 했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낙곱새를 먹으러 갔다.
곱창이 뭔지 물어보았지만, 대충 설명해 주었고, 한식에 적응한 아이들은 낙곱새에 밥까지 볶으며 맛있게 먹었다.
“오빠를 만나면서 나름 한국 음식 많이 먹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못 먹은 메뉴가 많은 것 같아.”
“지역별로 특산물이 달라서 메뉴가 다양한 편이야. 목포에 가서 홍어를 먹어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아쉽네.”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려다가 평소 탈 기회가 없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직은 KTX가 개통하기 전이라 일반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고, 아이들과 이번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여행이 재미있긴 했는데 서울이 익숙해서 그런지 편하긴 하네.”
“이번에 한국에 오길 잘한 것 같아. 바다도 좋았고, 산에 올라가는 건 힘들긴 했는데 정상에 도착하니 너무 뿌듯했어.”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압구정으로 가자 부모님이 반겨 주셨고, 아이들은 어디에 가서 무얼 했는지 부모님께 자랑 겸 이야기를 했다.
“동생들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했겠구나. 그래도 재미있었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온 것 같네요. 사진 많이 찍었으니까 인화하면 보여 드릴게요.”
서울로 복귀한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금방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다 같이 SN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 157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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