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1 >
거실로 나오자 수십 벌의 옷이 펼쳐져 있었고, 드류와 앤젤리나는 머리띠와 머리 고무줄도 여러 개 사와서 자랑했다.
“너무 재미있었어. 동대문이라는 곳은 옷도 많은데 정말 저렴하더라.”
“아무거나 입어도 다 잘 어울려서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단다.”
쇼핑을 다녀와서도 수다가 멈추지 않는 엄마와 여자 아이들을 보자 리오와 토미는 함께 가지 않고 따로 행동한 동민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희들 옷도 사 왔으니 입어 보렴.”
엄마는 친 아들 옷은 안 사고 리오와 토미 옷을 여러 벌 사 오셨고, 배우라서 그런지 두 사람은 자다 일어난 모습으로 옷을 입어도 모델 같은 느낌이 났다.
“어머어머. 너무 잘 어울린다. 내일은 다 함께 쇼핑을 가야겠구나.”
오늘 예쁜 외국인 여자아이들의 옷을 사 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엄마는 토미와 리오를 데리고 다시 가야겠다고 했고, 드류와 앤젤리나도 내일 또 가자며 좋아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저는 내일 아빠 회사에 잠시 다녀와야 하니 좋은 시간 보내세요.”
동민이 혼자 살아 보겠다며 꾀를 부렸지만,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집에서 이야기하면 되니 올 필요 없다며 도와주지 않았고, 세 남자는 한국에서 그 어떤 날 보다 지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이 너무 많은데 미국에 다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수화물비를 더 내면 되니까 상관 없을 거야. 정 안되면 삼촌 세탁소로 국제 우편 보내면 되겠지.”
리오와 토미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앤젤리나와 드류는 추가로 구입한 이민 가방이 다 찰 정도로 쇼핑을 해 버렸다.
동민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한 아빠의 수입이 안정적으로 늘어났고,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오면서 엄마에게 용돈을 드렸더니 딸이 생긴 기분에 엄마가 폭주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엄마가 계속 옷을 사주자 고맙지만 부담스러워 하던 드류와 앤젤리나도 동대문의 저렴한 가격을 확인하고는 이성을 상실했고, 한국어로 가격을 깎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아직 돌아가려면 여유가 있으니 옷들은 내가 미국으로 보내 두마.”
동민에게 소포를 여러 번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가 미리 삼촌 세탁소로 옷을 보냈고, 짐 걱정이 줄어든 친구들이 다시 편하게 현지인처럼 한국 여행을 즐겼다.
앞으로 리오와 토미, 드류, 앤젤리나가 이번처럼 편하게 한국 관광을 오기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동민이 서울 구석구석 재미있는 곳을 보여 주었고,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가서 관광을 마치고 제주도를 들렸다가 서울로 돌아 왔다.
“한 달이라서 길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지나가 버렸네.”
“그러게 벌써 돌아가야 한다니 아쉽다.”
한 달 일정으로 한국에 놀러온 친구들은 처음에는 시간이 천천히 가더니 돌아갈 날짜가 다가오자 너무 순식간에 한 달이 흘렀다며 아쉬워했다.
두 번째 한국 방문을 한 앤젤리나는 한국어도 꽤 늘었고, 토미와 리오는 오락실 아이들과 어느 사이 친해져 있었다.
미국에서 또래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 한 드류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다시 한국에 놀러 올 거라고 했다.
“미국 가서도 동민이랑 친하게 지내고, 조만간 미국에서 보자구나.”
부모님도 그 사이 정이든 아이들이 돌아가자 아쉬워하셨고, 미국에서 다시 보자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짧았던 한국 여행이 끝났고, 동민도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사람이 많다 보니 정신없긴 했는데 그만큼 재미있었어요.”
미국으로 돌아온 동민은 닐을 만나 그동안 투자한 영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 받았다.
보고를 마치고, 동민 때문에 한국에 출장 다녀왔던 닐도 한국에 다시 가보고 싶다며 한국 이야기에 공감했고, 동민이 무엇을 하고 돌아 다녔는지 물어 보았다.
“조만간 다시 출장 갈일이 있을 거예요. 종종 갈 수도 있으니 시간 있을 때 한국어 배워 두세요.”
“제가 외국어에는 소질이 있어 금방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럼 혹시 스페인어도 할 줄 알아요?”
닐은 남미 친구들이 많아 스페인어는 자신 있다고 했고, 동민은 잘 되었다며 멕시코시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며칠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향했고, 모조리 리콜이 촬영되고 있는 세트장에 방문했다.
“다니엘. 오랜만이구나. 멕시코에서 보니 느낌이 다르네.”
“오랜만이에요. 세탁소에 놀러오고 그래요. 안 온지 너무 오래 되었어요.”
“하하. 그래 돌아가면 꼭 들리마.”
오랜만에 만난 슈워츠 아놀드제네거와 인사하고, 로버트캅을 만든 네덜란드 출신의 폴 버호벤 감독을 만나러 세트장으로 갔다.
촬영장은 SF 영화답게 엄청난 세트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스태프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쓰며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멕시코까지 찾아오다니 열정이 넘치는 투자자시군. 만나서 반갑네 폴 버호벤이라고 하네.”
“다니엘이에요. 감독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세트가 아주 멋있네요.”
로보트캅을 재미있게 본 아놀드가 폴 버호벤 감독에게 영화를 찍어 달라고 제안하고, 그가 흔쾌히 받아 들여 훌륭한 SF 작품이 완성되게 된다.
폴 감독은 여기서 호흡을 맞춘 샤론 스톤스를 주연으로 2년 뒤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한다.
이후 흥행과 실패를 번갈아 가면서 하지만, 쇼걸과 스타쉽 트루퍼즈를 만들면서 다시 이름을 알린다.
적나라한 노출과 폭력, 사회풍자를 B급 감성에 버무린 특유의 연출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는데, 자극적인 영상과 대화를 쓰면서 훌륭한 각본과, 스피디한 연출로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었다.
동민도 폴 버호벤 감독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는데 쿠안틴이 그의 광팬이라 아주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감독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이번 멕시코행은 아놀드를 보기 위함이 더 컸고, 겸사겸사 샤론 스톤스와도 인사했다.
“아놀드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직 파릇파릇한 신인 샤론 스톤스를 보자 섹시함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동민의 얼굴에는 바보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용산 굴다리와, 청계천을 직접 돌아다니며 원초적인 본능 무삭제판을 어렵게 구해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돌려가며 보았는데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올라 동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샤론 스톤스는 아직 어린 동민이 자신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자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동민을 안아주며 장난을 쳤고, 동민은 멕시코시티까지 찾아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멕시코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인사를 마친 동민은 스튜디오 가까이 있는 센뜨랄 텔레비지온 방송국으로 향했다.
닐이 방송국 안내데스크에서 까루셀 드 니뇨스 촬영장 방문 약속이 잡혀 있다며 스페인어로 말했고, 동민과 함께 어린이 방송이 촬영 중인 스튜디오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장면이 촬영되고 있었고, 동민은 드디어 히메나 선생님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올해까지는 천사들의 합창 1기가 촬영되고 있었고, 동민이 알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국에는 3기 까지 수입이 되긴 하지만, 2기 부터는 아이들이 전부 교체되고, 1기를 가장 좋아했기에 맞춰서 직접 찾아왔다.
“미국에서 직접 찾아온 여러분들의 팬이랍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닐이 스페인어로 동민을 소개했고, 아이들은 멕시코까지 찾아온 동민을 신기하게 보았다.
아쉽지만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동민은 간단한 인사만 했고,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 받는 거로 만족해야했다.
직접 만나본 히메나 선생님은 영상에서 보다 더 착한 사람이었고, 아이들도 순수하고 착한데다 아주 귀여웠다.
닐도 아이들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이런 드라마를 알고 찾아온 동민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팬미팅을 마치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면서 닐이 미국 어린이 방송에는 관심 없으면서 왜 멕시코 방송을 좋아하냐고 물어 보았다.
순전히 전생에 경험으로 찾아온 것이지만, 잠시 고민하던 동민이 대답했다.
“디즈니에서 만드는 미미 마우스 클럽은 좋아해요.”
“디즈니는 가까이 있으니 가 보셨겠네요.”
“아직은 안 가봤는데 시간 나면 한 번 들러야겠네요.”
미국 어린이 방송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지만, 조만간 디즈니에서 만드는 미미 마우스 클럽이 호화 맴버로 구성된다는 게 떠올라 내후년에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다녀오고 바로 연이어 멕시코까지 갔다 온 동민은 할리우드 세탁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보냈던 소포가 도착했다.
“우와. 딱 맞춰서 도착했네. 내년에도 한국 갈거지?”
“아직은 계획 없는데? 너도 내년이면 바쁘지 않을까?”
“너희 어머니가 또 오라고 하셨단 말이야. 내년에도 다시 가자.”
옷을 가지러 드류와 앤젤리나가 찾아 왔고, 한국에서 재미있었다며, 벌써부터 또 가자며 동민에게 재촉했다.
내년부터는 가고 싶어도 친구들이 바빠질 거라 생각한 동민은 대충 대답하며 여러 장 현상한 사진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이런 사진도 찍었네. 재미있었는데.”
달고나를 핥고 있는 사진을 보고 웃기도 하고, 다 함께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고 또 가고 싶다며 여자아이들의 수다가 시작 되었다.
잠시 후 토미와 리오나르도도 소포를 받으러 왔고, 한국에 다녀온 후로 처음 다 같이 모여 사진을 보며 한국 여행 이야기를 했다.
“다니엘 덕분에 올 여름은 재미있게 보냈네. 오락실 가고 싶다.”
미래의 할리우드 스타에가 한국을 경험시켜주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동민도 추억이 생겼고, 이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세탁소 휴게실에서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해어졌고, 동민은 남은 방학을 팀 볼튼 감독의 촬영장에 들르며 보냈다.
“친구들이랑 한국에 다녀왔다면서? 나도 예전 생각이 나네.”
“형이 왔을 때랑은 많이 달라졌어요. 올림픽 후로 새로 건물이 많이 생겼어요.”
특수 분장을 하고 있는 조니 데브와 한국 이야기를 했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위노 라이더도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사귀는 거예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는데 사귀고 있어.”
위노 라이더와 조니 데브는 누가 봐도 티 나게 행동하고 있었고, 동민은 자신도 이제 여자 친구를 만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나 사귀기에는 너무 많은 할리우드 미녀를 보았기에 눈이 한 없이 높아져 있었고,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유교보이 동민은 사생활이 복잡한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맘 편하게 여러 여자를 만나는 조니 데브를 잠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말년에 이상한 여자를 만나 고생하는 그가 떠오르자 부러운 마음이 쑥 가셨다.
“조니는 특수 분장이 잘 어울리네요.”
동민은 괜한 마음에 칭찬을 하고는 팀 볼튼 감독에게 가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 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베버리힐즈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들던 데 소식 들으셨습니까?”
“오디션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건 봤어요.”
“시장에서 기대가 크던데 여기는 투자할 계획 없으신가요?”
< 061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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