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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부흥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대회였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30여년 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일어난 발전을 세계적으로 과시한 올림픽이었다.
긴 냉전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이 아닌 세계 최다 국, 최다 인원이 출전한 온전한 세계인의 축제임을 보여주었고, 세계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몇 안 되는 올림픽이 된다.
갑작스러운 도시 개발과 친 정부 중심의 대기업 몰아주기로 몸살을 앓긴 했지만, 올림픽 전과 후로 나라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 마당에서 채화된 성화는 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타고 8월 27일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제주도 일주 봉송을 마친 성화는 올림피아호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고, 남해안을 일주한 다음 목포에 도착, 이후 대구와 동해안, 구미, 전주, 서해안, 청주, 강릉 일대를 돌고 원주에 갔다가 인천에 들러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 도착했다.
손기정 어르신께서 직접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오셨고, 성화 점화는 정선만, 김원탁, 손미정 선수가 함께 불을 붙였다.
성화대에 불이 타오르는 순간 비둘기가 화형식을 당하는 것을 전세계인이 목격하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비둘기들이 난간 바깥에 앉아 있어 대부분 무사 탈출에 성공하고, 한 마리만 장렬하게 사후 피닉스로 부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지금은 다시 못할 수많은 사람이 동원된 화려한 개막 행사가 진행 되었고, 코리아나가 손에 손 잡고를 열창했다.
여러 나라에서 음악에 맞춰 전통복장을 입고 퍼레이드 하는 장면은 동민의 가슴에 국뽕을 한껏 쏟아 부었다.
태권도 격파 시범도 펼쳐지고,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르던 중 음악이 멈추고 경기장이 비어지더니 한 소년이 굴렁쇠를 밀며 운동장 한 가운데로 달려 나왔다.
그 소년은 81년 서울 올림픽이 확정 되던 날 태어난 아이로, 전쟁국가이자 분단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상처에서 회복해 성장했다는 상징을 보여주었다.
“개회식을 직접 보니 정말 좋구나.”
“아들 덕에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보네.”
동민은 비싼 개회식 VIP 좌석 3장을 구매해 부모님과 함께 직관하러 왔다.
영상으로만 보아왔던 화려한 88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을 직접 보자 감회가 남달랐다.
앙드래 김이 디자인한 올림픽 유니폼은 레트로 한 감성이 있으면서도 세련된 멋이 있었고, 특히 올림픽 포스터가 이상하게 현대적이며 완성도가 아주 높았다.
이후 김영남, 한명우 선수의 금메달이 나오는 레슬링을 관전했고, 유도의 김재엽 선수와 이경근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장면도 직접 보았다.
콧수염이 특이한 복싱 플라이급의 김광선 선수의 시합을 보았다.
양궁 역시 김수녕 선수의 여자 양궁 개인 금메달을 시작으로 남여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획득하며 대한민국 양궁의 시작을 알렸다.
여자 핸드볼도 구기 종목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부모님과 가장 재미있게 본 시합은 여자 탁구 복식의 양영자, 현정화 선수 시합이었는데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모두를 열광하게 했다.
“역도는 처음인데 저렇게 신기하구나.”
“터키 선수는 키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터키 출신의 슐레이마놀루는 150이 안 되는 작은 키로 자기 몸무게 3배 이상을 들어 올리는 기예를 선보이며 세계 신기록을 갈아세워 터키의 국민 영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다이빙의 그렉 루가니스는 다이빙 도중 뒤통수를 점프대에 부딪히면서 머리가 찢어지게 되는데 응급 처치 후 다시 다이빙을 하여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
이후 그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것이 밝혀져 한동안 난리가 나긴 하지만, 승리를 향한 집념은 대단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세계적인 스타인 칼 루이스를 캐나다 출신 벤 존슨이 앞서면서 금메달을 따게 되지만, 이후 약물 사용이 밝혀지면서 금메달을 박탈당하게 되었다.
“우와. 젊은 손석휘 앵커가 텔레비전에 나오네.”
미래에 방송국 사장으로 유명해 지는 손석휘 아나운서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일은 소련의 1위 독주에 불만이 생긴 미국 국가대표 선수가 한국에서 여러 일탈을 저지르고, 편파판정에 불만을 표하면서 한국 국민의 비호감을 샀고 급기야 한국 시민이 소련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은 미국에서 사과 방송도 하고 뒷수습을 하려 했지만, 한국 시민의 반미 감정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네? 저보고 방송이랑 폐막식에 나가라고요?”
유행이 시작된 컵라면을 먹으며 올림픽을 즐겁게 만끽하고 있는데 미국 대사관에서 사람이 찾아와 동민에게 방송 출연을 부탁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신 동민군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양국의 긴밀한 동맹을 위해 도와주십시오.”
갑작스러운 미국 측의 부탁에 동민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대사관에서는 앞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이 원활하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했고, 동민에게는 빠른 시민권 부여와 부모님은 영주권을 발급해 주기로 약속했다.
신분 문제도 해결 되고 앞으로 공항에서 검문 없이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도록 해 주겠다는 말에 동민이 부탁을 받아들였다.
“여기가 조선의 임금님이 사셨던 궁전이에요.”
동민은 미국 육상 스타인 칼 루이스와 88 서울 올림픽 베스트 드레서로 뽑힌 그리피스 조이느와 함께 경복궁을 걸었다.
다들 한복을 입었는데 운동선수라 그런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편파 판정으로 불만이 쌓여 있던 복싱의 로이 존스 주니어는 동민과 함께 명동에서 쇼핑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구리스에 나왔던 데이타랑 관광이라니 신기하네. 영화배우 많이 봤겠네?”
“할리우드에 살고 있어서 평소에 자주 봐요. 형은 마이크 타이슨 봤어요?”
미래에 유명한 복싱 선수로 성장하는 로이 존스 주니어는 아직 20살이라 호기심도 많았고, 매운 건 잘 못 먹었다.
동민과 함께 미국 선수들이 서울 투어를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자 국민 여론이 빠르게 좋아졌고, 미국 측에서도 동민에게 고마워했다.
“이걸 먹어야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고요. 매워도 무조건 맛있다고 말 해야 해요.”
당연히 동민은 미국 선수들에게 김치를 강요했고, 처음부터 매운 배추김치를 먹은 대표선수는 엄지를 세우며 마시써요~ 라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 맛있게 김치를 먹는 모습이 보이자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까지 생겨났다.
김치를 너무 못 먹는 선수에게는 김치 볶음밥이라도 먹였다.
한국 국민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더 많은 미국 선수가 김치를 먹기 시작했고, 그들이 김치를 먹는 장면이 미국 방송까지 타기 시작했다.
상부에서 무조건 김치가 맛있다고 대답하라 했기에 모두 김치 칭찬을 했고, 미국 사람들의 김치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역시 한국인은 김치가 최고야.”
김치 전도사로 활동하던 동민 역시 한국 방송에 자주 노출 되면서 알아보는 사람과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한국이라 그런지 스케줄이 살인적으로 너무 많이 잡혀 피곤하긴 했지만, 88년 한국의 유명 스타를 만나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음악 행사에도 불려 나가 변진석, 임무세, 이선휘의 젊은 모습을 직접 보았다.
“네가 요즘 유명한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이구나.”
“안녕하세요. 진짜 팬인데 사인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특히 열심히 활동 중인 가왕 조영필을 만나 인사하고 사인 받는 건 미국 유명 배우를 만나는 것 보다 더 좋았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순식간에 88 서울 올림픽이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수도 아닌데 미국 퍼레이드에 참여하라고요?”
“동민군의 반응이 너무 좋습니다. 한국 측에서도 좋은 이미지가 쌓인 만큼 마지막까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잠시 고민 하던 동민은 미래에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군대 문제로 매장되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가수가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아닌데 폐막식 퍼레이드에 함께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으니 이해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부정적인 여론이 나올 수 도 있겠군요.”
결국 폐막식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그렇게 뜨거웠던 88년 서울 올림픽의 막이 내렸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올림픽은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수많은 스타도 만들었다.
그 중 외국인에게 무자비하게 김치를 먹이는 김치 전도사 동민 역시 포함되었고, 동민이 도망가는 칼 루이스 뒤를 김치를 들고 쫓아가는 장면은 미래에 유명한 짤로 재생산 되게 된다.
“결석을 오래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미국 대사관에서 특별 활동으로 처리해 준다고 했으니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미국은 이미 새학기가 시작 된지 오래였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동민은 서울 올림픽을 직관하기 위해 많은 수업에 빠져야만 했다.
아직 동민을 찾는 방송국이 많았지만, 더는 늦출 수 없기에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 겨울에는 우리가 미국으로 놀러가마.”
부모님은 연말에 휴가를 내어 미국에 오시겠다고 했고, 동민은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 중학생이 되었다.
“다니엘. 너 뉴스에 나오더라.”
“네가 김치를 들고 다녀서 내 주변에서도 김치가 유명해졌어.”
중학교에 올라갔지만, 할리우드 초등학교와 같이 붙어있는 건물이었고, 6학년에서 7학년으로 바뀌어 친구들은 대부분 그대로였다.
올림픽 전이긴 하지만, 서울에 다녀온 앤젤리나가 한국 이야기를 해 주자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확실히 올림픽 전과 후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세탁소로 가자 파라마운트 투자사의 닐이 바로 찾아왔고, 그동안의 투자 현황을 브리핑 했다.
“올림픽 대표 선수들에게도 김치를 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구리스의 데이타로 불리다 이제는 김치 보이라는 별명이 생기셨더군요.”
“그게 미국 정부에서 시켜서 그런 거예요. 미국 선수들의 이미지를 개선시켜 달라고 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김치를 이용했죠.”
평소 열심히 김치를 전도하는 동민을 알고 있기에 닐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투자했던 다이하드가 개봉하면서 큰 수익을 벌고 있다고 보고 했고, 다른 영화의 진행사항을 보고 받은 동민은 닐에게 비디오 매장에 방문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시네마 파라다이스 해외 판권을 구매하면서 한국에 할리우드 영화 수입사를 차릴 생각이든 것이다.
아빠를 사장으로 만들 계획이었고, 시장 조사를 위해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비디오 매장으로 갔다.
“흠. 예술성 있는 영화와 흥행성 있는 영화를 골랐네. 어린데 보는 눈이 있는걸?”
동민이 비디오테이프를 고르고 있자 심술궂게 생긴 점원이 다가와 동민의 안목을 평가했다.
< 037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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