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8 >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맨해튼 비치에 있는 비디오 가게에는 아주 오래된 고전부터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B급 영화까지 다양한 콜랙션이 구비되어 있었다.
주걱턱에 비쩍 마른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20대 중반의 점원이 동민이 들고 있는 영화를 흥미롭게 보더니 아는 척을 했다.
“마킨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라니 아주 훌륭한 작품을 골랐군. 폴 슈레이더가 각본을 맡았고 로드트 드 니로가 두 번째로 그와 함께한 작품이지. 베트남 전쟁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며 뉴욕 맨해튼 뒷골목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퇴역 군인 트래비스 비클의 혼란과 방황을 그렸는데 칸에서 황금종려상도 받았지.”
“영화 내용의 대부분이 트레비스의 망상으로 해석하는 평론이 있지만, 각본가 폴 슈테이더는 트레비르를 정신병 환자가 아닌,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고옥하고 외로운 사회의 한 개인을 투영했다고 했죠. 190만 달러 저예산으로 2840만 달러를 벌었고,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네요.”
점원의 말에 동민이 받아치자 약간 무서운 인상의 그가 입 꼬리를 올리더니 다른 비디오테이프를 가리키며 더 빠른 말을 쏟아냈다.
“세르조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라니 너무 뻔 한 선택 아닌가? 뭐 그만큼 훌륭하긴 하지만.”
“뻔 하다니요?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는 최고의 서부영화라고요. 정확하게는 스파게티 웨스턴이긴 하지만요. 이 영화는 클래식이지만, 언제 보아도 재미있는 게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에요.”
“기본은 알고 있는 것 같군. 레오나 감독이 영어를 못해 여러 사고가 날 뻔 한 에피소드도 알고 있나? 초반부 교수형 씬에서 일라이 윌릭의 말이 갑자기 전 속력으로 달렸는데, 배우가 양손이 묶여있던 상태로 보호구 없이 달렸지.”
“공동묘지 총격 장면에서는 실재로 사나운 개를 풀어 뛰게 했고, 다리도 진짜로 폭파시켰죠. 참호에 있을 때 다이너마이트 폭파 신에서는 돌덩이 파편이 날아와 인명사고가 날 뻔도 했고요.”
“결국 레오네의 괴팍한 촬영 스타일 때문에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후로 그와 함께 작업을 하지 않게 되지. 이 영화는 총 3부작으로 만들어 졌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겠지?”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제법이군.”
오덕 중의 오덕은 양덕이라더니 비디오 가게 점원은 상당히 많고 구체적인 영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민 역시 영화 리뷰 뮤튜브에서 수많은 댓글 태러를 해쳐온 역전의 용사이기에 양덕 따위에게 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영화 지식 배틀은 한동안 이어졌고, 옆에서 지켜보던 닐은 고개를 흔들며 끝나면 부르라며 옆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흠. 애송이 같은데 영화에 관해 나와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녀석이 있었군.”
“그 쪽도 평범한 비디오 가게 점원은 아닌 것 같네요.”
서로의 사상검증이 끝난 두 사람은 깊은 동질감을 느꼈고, 뜨거운 설전 끝에 전우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나라 출신이지? 일본? 발음은 한국 같기도 하고.”
“오~ 한국 맞아요. 바로 알아보니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알고 있나?”
“72년 작품 말하는 거죠? 그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액션 영화인데.”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고, 카페에서 기다리던 닐이 돌아왔다.
“오늘은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비디오는 다 고르셨나요?”
“흠. 숨겨진 좋은 작품이 많은데 다음에 다시 와야겠네요. 오늘 즐거웠어요. 시간 되면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앞에 있는 할리우드 세탁소에 놀러 오세요. 방과 후에는 대부분 거기 있어요.”
동민은 약간 무섭게 생겼지만, 병적인 영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마음에 들었고 대화를 해 보니 보기보다 여리고 착한 사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 봤네. 다음에 만나면 물어 봐야겠다.”
이틀 뒤 비디오 가게 점원이 휴무일 이라며 예상 보다 빨리 동민을 만나러 세탁소에 찾아 왔다.
그는 세탁소 벽에 붙어 있는 스타와 감독의 사진을 보며 흥분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세탁소가 있다니. 창작욕과 영감이 떠오르는 성스러운 세탁소군.”
“할리우드의 숨은 명소죠. 빨리 찾아 오셨네요.”
“아직 미성년자로 보이긴 하지만, 대화가 통하고 영화 지식이 밀리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라 몸이 근질거리더군.”
몸 보다는 입이 근질 거렸을 것 같다고 생각한 동민은 세탁소를 둘러보고 있는 그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다니엘이라고 해요.”
“난 쿠안틴 이야.”
“특이한 이름이네요 성은요?”
“성은 더 특이하지 티란타노.”
쿠안틴 티란타노라는 이름을 듣자 동민의 머리에 번개가 내려쳤다.
‘이 사람이 그 쿠안틴 티란타노 감독이라니!’
그러고 보니 쿠안틴 티란타노 감독은 할리우드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영화광으로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고, 토론하고, 손님에게 비디오를 추천하며 지내다 할리우드까지 소문이 퍼지면서 영화판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기억이 났다.
동민이 기억하는 그는 덩치가 컸는데 지금은 마른 편이라 바로 못 알아보았다.
쿠안틴 티란타노는 영화에 대한 날카롭고 뛰어난 안목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인지도가 쌓이더니 트루 로맨스의 각본을 팔면서 처음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많은 영화를 섭렵하지만, 그 중에서도 서부 영화와 홍콩 액션을 좋아했는데 홍콩 느와르를 오마주한 저예산 독립 영화인 저수지의 개들로 대성공을 거두며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 차기작으로 만든 싸구려 범죄소설에 대한 오마주인 펄프픽션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흥행과 평 모두 잡으며 세계적인 명감독 반열에 오르게 된다.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본 수많은 싸구려 B급 영화를 인용해 독특하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그는 미국에서 덕질로 가장 성공한 영화 오타쿠, B급인 척 하는 S급 영화 감독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식사 하셨어요?”
“여기 바로 오느라 아직 안 먹었는데. 왜?”
“저랑 같이 밥 먹으면서 영화 이야기해요.”
동민은 아직 젊고 덩치가 크지 않은 쿠안틴 티란타노를 휴게실로 데리고 가 밥과 김치, 깻잎장아찌, 달걀말이와 김, 기본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려 주었다.
“흠. 처음 보는 음식인데 인상적이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있었던 서울 올림픽에서 김치라는 음식 이름을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네.”
“젓가락은 쓸 줄 알아요? 제가 먹는 법 알려드릴게요.”
동민의 예상대로 쿠안틴은 한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고, 처음 보는 음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김치도 처음 먹는 것 같지 않게 아주 잘 먹었다.
그는 미래에도 한식당에서 먹었던 한식을 잊지 못해 뉴욕에 직접 한식당을 차릴 정도로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
한국과도 인연이 꽤 깊은 감독이 되는데 펄프픽션을 홍보하기 위해 방한을 하게 되는데 사랑해요 연예가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한다.
이때 데뷔작을 말아먹고 백수로 놀고 있던 모 감독이 그를 인터뷰 하게 되는데 10년 후 쿠안틴은 칸 영화제에서 이 감독의 작품을 후보에 직접 올리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꽤 친한 사이가 되고, 비영어권 영화에 관심이 많은 그 이기에 한국 영화를 미국에 알려주는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펄프픽션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 하게 되어 직접 한국까지 가 혼자 영화관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때 온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서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그래서 저번에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지.”
“석양의 무법자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 어떤 주제를 이야기 해 볼까요. 지금 밥을 먹고 있으니 음식 장면을 토론 해 봐요.”
티란타노는 먹방에도 상당한 포커스를 두는데 펄프픽션만 해도 초반부에 햄버거에 대한 잡담과 버거를 맛깔나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 역시 먹방의 종주국으로서 먹방이라는 단어를 수출하는 만큼 동민 역시 음식 장면은 자신 있었다.
“저는 식당이 대화 장면을 찍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라고 생각해요.”
“나와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거지.”
“음식을 영화에 보여줌으로서 많은 내용을 내포할 수 있기도 하죠.”
동민은 쿠안틴과 밥을 먹으면서 즐겁게 영화 이야기를 하다 주제가 홍콩영화로 넘어갔고, 신기하게도 그는 미국에 상영되지 않은 영화도 많이 알고 있었다.
“지금 홍콩영화는 그동안의 많은 경험을 토대로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요.”
“올해만 그 작은 홍콩에서 100여 편의 영화가 만들어 진다고 하더군.”
홍콩영화계는 1980년 커다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정확하게 198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매년 100여 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 정도로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전성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60~70년대부터 쌓여온 노하우와 인력, 인프라가 1970년 해외 영화학교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감독들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이소룡의 사후 무협영화가 주춤 하지만, 골든 하베스트가 성룡을 내세운 코믹 쿵푸를 성공 시키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고, 영화에서 돈 냄새를 맡은 홍콩과 대만의 부호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게 된다.
“지금은 홍콩 영화의 황금기 이지만, 오래 가지는 못 할 거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1997년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는데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라질 거고, 수많은 자본과 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겠죠.”
정확하게는 89년 천안문 사태로 불안감을 느낀 홍콩인들이 대거 해외 이민을 떠나게 된다.
“홍콩 액션도 좋지만 나는 홍콩 특유의 느와르가 너무 좋아. 최근에 본 영화 중에 A Better Tomorrow라는 작품은 정말이지 최고였어. 강호의 도의를 느꼈지.”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 최고였죠. 지금 한국에서도 마크는 엄청난 스타에요.”
쿠안틴이 말한 영화는 작년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웅본색의 영어제목이었다.
동민은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선글라스를 쓴 채 세탁소에 있는 바바리 코트를 걸쳐 입고 주윤발 흉내를 내었다.
동민은 백인 남자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홍콩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웠고, 홍콩이 망가지기 전에 방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미래에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위해 쿠안틴을 직접 키워야겠다고 다짐 했다.
지금도 쿠안틴은 영화 지식이 자신 못지않은 동민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조금 더 그를 낚기로 마음먹었다.
“저도 이렇게 잘 통하는 쿠안틴을 만나서 기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요즘 고민이 하나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못했지만, 쿠안틴이라면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 그래? 나는 강호의 도의를 지키는 남자니 믿고 말하라고. 아우는 내가 보살펴 주겠어.”
동민은 쑥스러운 척 연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03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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