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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김치 재벌-36화 (21/265)

< 036 >

주세페 감독이 베르나르도 감독과 이탈리아어로 대화했고, 동민에게 영어로 번역해 주었다.

“이 아이가 이번 영화의 주인공 인데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꼬마로 캐스팅 했다는 구나.”

동민은 전생에 시네마 파라다이스를 항상 최고의 영화로 손꼽았기에 시칠리아에 있는 아드리아노 마을에 여행온 적이 있었다.

세트로 만들었던 영화관 시네마 파라다이스만 제외한 모든 건물은 영화 속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주인공 토토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실바토레 카시오는 40년 이후에도 이 마을에 살며 작은 슈퍼마켓을 경영하며 살게 된다.

잠시 후 순박하게 생긴 콧수염 중년 아저씨 알프레도까지 나타나자 동민의 귓가에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주제곡이 들리는 기분이 들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떤가 영화에 들어갈 음악은 괜찮은 것 같은가? 응? 그런데 자네 지금 우는 건가?”

“아니에요. 잠깐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요.”

동민은 마음속으로 음악이 들린다고 생각했는데 실재로 엔리코 마리오네가 옆에서 흥얼거리며 주제곡을 부르고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애잔하면서 감동적이네요.”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 동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토토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와! 동양인 처음 봐요. 이소룡 할 줄 알아요?”

아직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88년의 이탈리아 시골마을이다 보니 외부 관광객이 거의 방문하지 않았고,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는 토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양인을 본 것이다.

동민은 토토에게 할리우드에서 직접 가지고 온 할리우드 특산품 깍두기 김치를 선물해 주었고, 아직 순수하고 정직한 꼬마 토토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거 엄청 귀한 거니까 부모님이랑 같이 먹고, 다 먹으면 좋은 선물 줄게.”

동민은 미국에서 사온 정말로 남자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보여 주었고, 토토가 깍두기를 내일 까지 다 먹겠다고 약속했다.

이탈리아까지 와서도 김치의 흔적을 남긴 동민은 토토와 알프레도, 주세페 감독과 함께 시네마 파라다이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사실 확인은 못 했지만, 토토가 깍두기를 다 먹었다며 동민에게 달려와 빈 통을 건넸고, 동민은 새로운 깍두기 한 통 과 약속한 선물을 주었다.

동민은 일주인간 아드리아노에 머무르기로 스케줄을 잡았고, 토토가 영화관에서 전쟁에 나간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장면과 어머니가 나가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를 보며 아른한 표정을 짓는 장면 촬영을 직접 보았다.

다음날 알프레도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마을 외벽에 영화를 틀어주는 장면과 잠시 방심한 사이 필름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하는 씬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민이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 청년이 된 토토가 알프레도에게 사랑 고민 상담을 받는 장면이 촬영 되었다.

“옛날 공주를 사랑하는 병사가 있었단다. 병사는 공주와의 신분 차이가 걱정이었지만,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공주에게 고백 했지. 공주는 정말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했고, 자신의 방에서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100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기다려 준다면, 병사의 사랑을 받아 주겠다고 약속했단다. 병사는 그 날 부터 공주의 방 창가 앞에서 100일을 세기 시작했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나요?”

“99일이 되던 날 밤, 병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병사는 왜, 어디로 사라진 거죠?”

“나도 모른다. 이유를 알게 되면 나에게 알려다오.”

두 사람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했지만, 영화를 열번 이상 본 동민은 이미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공주와 병사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감독판에 나오긴 하지만, 한동안 여러 해석과 소문이 여기저기 퍼지게 된다.

전생에 싱글이었던 동민은 짝 사랑했던 수많은 여배우를 떠올렸고, 아른한 추억에 빠져 들었다.

이어서 아름다운 장면 촬영이 이어졌고, 동민이 내일 돌아간다고 하자 그를 위한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이건 우리 마을에서 만든 시칠리아산 와인인데 자네가 아직 어리니 선물로만 주겠네. 나중에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마시게나.”

마을 사람들은 베르나르도 감독과 함께 온 신기한 동양인 소년에게 여러 특산물을 선물로 주었고, 신선한 재료로 직접 만든 여러 음식을 배풀었다.

바닷마을이라 그런지 살짝 비리면서 간이 완벽한 황새치 파스타가 아주 맛있었고, 이상하게 여기 사람들은 내장 음식을 많이 먹었다.

덕분에 미국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곱창구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디저트로 나온 카놀리는 달지 않고 고소한 게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이탈리아 영화 촬영 현장 견학은 만족하셨나?”

“네. 감독님 덕분에 정말 좋은 경험을 했네요. 이탈리아 시골의 매력을 온 몸으로 느낀 것 같아요.”

“나도 오랜만에 이탈리아 시골 바다마을에서 따뜻한 경험을 하게 되어 좋군.”

베르나르도 감독 역시 도시에만 있었지 이런 시골 마을은 오랜만에 방문했다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웬일로 할리우드의 투자 귀신이 이 영화에는 투자를 안 하는 거지?”

“이미 촬영 막바지라 투자를 더 받지도 않을 거고, 이탈리아 현지 영화라서 미국에서 투자하기도 어렵고 복잡해요. 그냥 와서 보고 가는 거로 만족 해야죠.”

동민은 혹시나 하고 베르나르도 감독에게 주세페 감독이 해외 판권을 판매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아직 생각 안 해 봤다는데? 해외 판권 사려고?”

“네. 꼭 사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금액은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맞춰 주겠다고 하고요.”

딱히 할리우드 진출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주세페 감독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알리고 있는 베르나르도 감독이 해외 배급을 도와주겠다고 하자 기뻐하며 동민에게 해외 판권을 넘겨주었다.

“10만 달러에 판권을 넘기겠다는데?”

“너무 싼 거 아니에요? 더 불러도 괜찮다고 해 주세요.”

결국 20만 달러에 해외 판권을 동민이 확보 했고, 자세한 계약은 파라마운트 투자사에서 진행해 주기로 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파라다이스는 8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아카데미에서도 같은 상을 타고 한국에서도 90년 청룡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개봉후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123분짜리 재편집된 축약판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유명해 지게 된다.

이후 1994년 155분짜리 이탈리아 국내용 오리지널판에 편집된 장면을 더해 173분짜리 감독판이 다시 나오는데 숨겨진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팬들의 호불호과 나뉘게 된다.

상세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감독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여백의 미를 살린 축약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동민은 두 가지 버전 모두 좋아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작은 마을 아드리아노에서의 일주일을 보낸 동민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가 아닌 대한민국 서울로 떠났다.

“엄마! 아빠!”

“동민이가 그동안 몰라보게 자랐구나.”

김포 국제공항에 마중 나오신 부모님을 만났고, 달라진 공항의 모습에 동민이 신기해했다.

“2년 전이랑 공항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올림픽 때문에 공항 확장 공사를 했단다.”

다시 돌아온 서울은 2년 전과 비교해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져 있었다.

냄새나던 한강은 수질개선이 되어 있었고, 뻘이었던 둔치는 한강 공원으로 탈바꿈 되었다.

김포 공항에서 올림픽 경기장까지 이어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올림픽대로를 새로 깔았고, 경기장 주변에는 선수들이 머물 수 있는 아파트 단지까지 만들었다.

창경궁 안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 시켰고, 화장실 위생과 공공의식을 개선시키는 등 온 나라가 올림픽을 앞두고 북적거리고 있었다.

“올림픽이 9월에 시작 되는데 학교는 안 가도 괜찮니?”

“현장 학습 허락 받아 왔어요.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치사량의 국뽕을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학교 가느라 놓칠 수 없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동민은 한국에 오기 전 이미 교장과 합의를 보았기에 원하는 데로 88 서울 올림픽을 모두 관람할 생각이었다.

“표 값이 만만치 않던데 괜찮은 거니?”

“저 돈 많은 거 아시잖아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시합과 미래에도 유명해지는 시합의 특등석 티켓을 모두 구입해 두었고, 올림픽 경기장은 집이 있는 압구정에서 멀지 않기에 편하게 관람할 예정이었다.

동민이 그렇게 88년 서울 여름의 열기를 즐기고 있는데 김포 공항을 통해 특이한 외모의 여성이 서울에 도착했다.

“드디어 왔군. 내가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깨끗한데?”

조니 데브가 방문했을 때는 이보다 더 낙후 되어 있었지만, 필리핀 깡촌에서 죽어라 전쟁영화 찍다 와서 엄청나게 발달된 모습으로 착각했었다.

하지만, 2년 뒤인 지금은 달라졌고, 대한민국 서울에 발을 들인 앤젤리나는 올림픽 준비로 한창 들떠 있는 나라에 좋은 첫인상을 받았다.

“비행기는 괜찮았어?”

“좀 지루하긴 했는데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어.”

앤젤리나는 미국 안에서만 돌아 다녀보았지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기에 상당히 설레었다.

앤젤리나의 어머니는 어린 여자아이 혼자 해외여행을 보내는 게 걱정 되었지만, 동민을 믿고 있기에 흔쾌히 보내주셨고, 한국에 있는 동안은 동민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네가 앤젤리나구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단다. 동민이랑 친한 친구를 한국에서 보니 반갑구나.”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엄마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고, 앤젤리나와는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했다.

오히려 아빠의 영어 실력이 엄마 보다 못해 아빠는 엄마의 놀림을 받았다.

“우리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다 가렴.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묘한 매력을 가진 여자아이가 동민을 만나러 미국에서 한국까지 찾아오자 엄마가 들떠 있었다.

거기다 외동아들인 동민만 키우다 인형같이 생긴 외국인 여자아이를 보자 딸이 생긴 기분에 엄마의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엄마가 앤젤리나를 데리고 백화점을 돌며 옷을 사 입혔는데 88년도의 촌스러운 옷을 입어도 이상하게 스타일이 살아나는 그녀였다.

앤젤리나를 데리고 다닐 때 마다 시선이 집중 되는걸 즐기고 있는 엄마였다.

“오늘은 어디 가는 거야? 지난번 경복궁이랑 명동은 재미있었어.”

“세연대라는 대학교 캠퍼스에 놀러 갈 거야. 신촌이라는 곳 인데 거기도 볼거리가 많데.”

아직 홍대입구역은 활성화 되지 않았기에 신촌으로 가기로 했다.

‘앤젤리나 너는 미래에 세연대 학부모가 될 거니까 미리 가보는 것도 좋을 거야.’

동민은 앤젤리나를 독수리다방으로 데리고 가 자신은 다방 커피를 그녀는 쌍화차를 주문했다.

“이건 냄새가 이상한데?”

“몸에 좋은 오리엔탈 허브티니까 마셔봐.”

“이 노란 건 설마 달걀이야?”

동민은 새로 생긴 2호선과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서울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었고, 앤젤리나가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 얼마 뒤 88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이 열렸다.

< 036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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