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8 >
결국 인기 드라마인 뷔는 카메룬 감독의 조언을 받아들여 제작편수를 줄이고 더 자극적인 장면을 넣기로 했다.
스토리가 빈약하다면 충격요법으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한 것이다.
실험용 쥐를 먹는 장면을 더 추가 했고, 파충류 외계인의 징그러운 장면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리고 죽은 한국인 조수의 쌍둥이 동생이 나타나 김치를 먹는 장면이 추가 되었다.
“이러다가 내가 알던 드라마랑 너무 달라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하긴 원작도 마지막에 워낙 대충 만들었으니 좋아졌을 거라 믿어야겠네.”
그렇게 85년의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고, 미국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동민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가지고 싶은 거 없니?”
“글쎄요. 딱히 생각나는 건 없네요. 삼촌이 적당한 거로 선물해 주세요.”
평소에도 10살짜리가 돼지 국밥을 좋아하고 곱창을 구워 먹는 등 애늙은이 모습을 자주 보였기에 이러한 동민의 반응에 익숙한 삼촌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해 주마. 기대해도 좋을 거다.”
2020년대를 살다 1980년대로 돌아온 동민은 지금 나오는 물건 중 딱히 욕심나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삼촌이 기대하라고 하자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며칠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삼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크리스마스트리에 있는 선물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가벼운 데요?”
“내용물은 무거우니 어서 포장을 뜯어 보거라.”
포장을 벗기고 박스를 열어 보니 편지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고, 봉투 안에는 동민과 부모님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들어 있었다.
과거로 돌아오긴 했지만, 달라질 미래를 위해 부모님을 한국에 남겨 두고 혼자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며 문득 보모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이 왜 동민의 가족사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는지 궁금해 하며 물어보려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런. 손님이 오셨나 보구나. 동민아 네가 문을 열어 주겠니?”
설마 하는 생각이든 동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으로 다가갔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자 문 밖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웃으며 서 계셨다.
“엄마, 아빠!”
동민이 달려가 부모님께 안겨 들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그 사이에 훌쩍 자랐구나.”
“형님이 잘 먹였나 보네요.”
부모님은 휴가를 내고 동민을 보러 미국에 오셨다고 하셨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님을 받은 동민은 해변과 할리우드, 로데오 스트리트를 돌아다니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형이 우리 아들이 벌었다며 10만 달러를 보내준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어릴 적부터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할리우드 유명인과 많이 친해졌다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삼촌 가게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걱정 많이 했는데 적응 잘 하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구나.”
“무리하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야한다.”
부모님은 동민이 건네준 10만 달러를 받지 않으려고 하셨지만, 삼촌에게도 똑 같은 금액은 줬다며 꼭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럼 이 돈은 나중에 동민이를 위해 은행에 넣어두마.”
“안돼요. 이 돈으로 이사 가시면 될 것 같아요.”
부모님은 아버지 직장인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가까운 영등포에 살고 계셨는데 동민은 압구정에 새로 생긴 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라고 했다.
부모님은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지금 가격으로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 들어갈 기회는 앞으로 오지 않기에 계속해서 설득을 했다.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도 다 압구정에 산다고 했단 말이에요. 거기로 이사 가야 앞으로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어쩔 수 없구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알아보도록 하마.”
일주일 정도 미국에서 휴가를 보낸 부모님은 86년의 새해를 함께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 가셨다.
“올 여름 방학에는 한국에서 보자구나.”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엄마, 아빠도 건강히 지내셔야해요.”
비록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기는 했지만, 전생보다 부모님과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86년이 되자 톱건 영화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고, 카메룬 제임스 감독도 에일리언즈를 찍느라 바빠졌다.
동민은 학교를 다니며 세탁소에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안녕? 잘 지냈지? 잠깐 못 봤는데 그동안 많이 자랐구나.”
“오랜만이에요. 아놀드 아저씨 요즘 많이 바쁘시죠?”
“확실히 털미네이터에 나온 후로는 바빠졌구나.”
털미에니터로 확실하게 자신을 알린 슈워츠 아놀드제네거는 코만도 시리즈를 찍으며 인지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 몸은 여러 번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빨리 자라는 걸 보니 성장 호르몬이 나오고 2차 성징이 시작될 것 같구나. 아직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이르니 줄넘기를 자주 하도록 해라. 무릎에 자극을 주면 키가 더 자라날 거다.”
전생에서 부터 운동과는 거리가 먼 동민이었지만, 미국에서 상류층이 다니는 학교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스포츠를 접하게 되었다.
거기다 영양 섭취가 좋아서 그런지 전생보다 확실히 더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생에는 170이였지만, 이번에는 꼭 180을 찍고 만다.’
아놀드의 조언을 노트에 적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키가 더 클 수 있는지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어요? 당분간은 별일 없으실 것 같았는데.”
“하하. 역시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영화 말고 사생활은 별로 관심이 없나보구나. 여기 전해주게 있다.”
화려한 봉투에 들어있는 편지를 꺼내 보니 결혼식 초대장이 들어있었다.
슈워츠 아놀드제네거와 마리아 슈라이버의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장가가시는 거예요? 축하드려요.”
순간 동민은 아놀드의 결혼생활에 관생 기억을 떠올렸다.
마리아 슈라이버는 케네디 집안의 여자로 작가이자 언론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집안 출신답게 미래에 아놀드를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만들어 버린다.
‘아놀드 아저씨도 은근 사고 많이 치고 다니지.’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아주 행복하게 살지만, 아놀드가 주지사를 끝냄과 동시에 사이가 멀어진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마리아는 신념상 아놀드와 이혼을 하지는 않지만, 별거하며 지내게 된다.
워낙 잘나고 능력있는 여자와 결혼해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아서 그런지 아놀드는 평범하거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여자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중 나이도 많고 예쁘지도 않은 가정부와의 불륜이 유명했다.
아니라고 하기엔 가정부의 아들이 아놀드와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뉴스를 접했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할리우드에 있으며 별의 별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경지에 다다라 버렸다.
“축하 드려요. 마리아 슈라이버면 케네디 집안 출신의 여작가 아닌가요?”
“대단 하구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니?”
“기자로 활동하는걸 봤는데 똑똑해 보이셔서 조금 알아 봤어요. 좋은 사람과 결혼 하시는 거 축하 드려요. 앞으로 대통령에 나가는 건 아니지요?”
“하하. 이민자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단다.”
농담 삼아 말했지만, 지금 대통령인 레이건도 배우 출신이었고, 얼마 전 클린튼 이스트우드가 작은 마을의 시장이 되었다는 뉴스도 나왔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권력이 엄청나긴 하겠네.’
며칠 뒤 동민은 삼촌이 직접 만들어 준 턱시도를 입고 아놀드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다니엘, 내가 여기 같이 와도 괜찮을까?”
“형도 할리우드 배우잖아요. 아직은 어리지만 언제 스타가 될지 모르니 자신감을 가져요.”
동민은 혼자 결혼식에 찾아가기엔 너무 어려 보호자로 조니 데브를 불러 함께 참석했다.
아직 조연이나 엑스트라만 하고 있는 조니 데브는 아놀드의 결혼식에 참석한 유명인사를 보고 기가 죽어 있었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조화라, 조금 어색하긴 하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딸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아놀드의 결혼식에는 수많은 정치계 인물과 할리우드 인물이 참석해 있었다.
‘우와 저 아저씨도 있네.’
미국 정치인을 잘 알지 못하는 동민의 눈에도 낯이 익은 남자가 있었는데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결혼식에 참석해 있었다.
‘저 아저씨가 텍사스 주지사를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아직은 아닌가?’
자세히 보니 옆에 닮아 보이는 중년 신사가 있었는데 아빠 조지 부시 같았다.
처음으로 미국 정치인을 보자 신기했고, 정장을 입고 보수적으로 보이는 그들과 달리 할리우드 사람들의 복장은 조금 더 자유로워 보였다.
처음 참석해 보는 미국 결혼식장에서 어디로 갈지 헷갈려 하고 있는데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동민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다니엘도 왔구나. 혼자 왔으면 나와 함께 다니자구나.”
“조니 형이랑 오긴 했는데 형도 어리바리 하니 같이 다녀도 괜찮죠?”
결국 그들은 카메룬 감독과 함께 다니며 할리우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네가 그 유명한 할리우드 세탁소의 꼬마구나. 만나서 반갑다.”
할리우드 안에서 동민은 나름 유명인사였고, 그를 알아보는 이가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네가 나보다 훨씬 더 유명하네.”
“형은 아직 무명이니까 그렇죠. 오늘 결혼하는 아놀드 아저씨도 30대 중반에 가서야 유명해졌어요. 너무 초조해 하지 말아요.”
보호자로 데리고 온 조니 데브가 오히려 더 주눅이 들어 있었고, 그를 달래며 사람들과 인사를 하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를 만나러 갔다.
“카메룬 감독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니엘도 같이 왔구나.”
아놀드가 반갑게 인사하더니 신부 마리아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을 아내로 맞이하다니 아놀드 아저씨는 행운아네요.”
“어머. 꼬마 신사께서 좋은 말을 하는구나.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단다.”
마리아는 신부답게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두 눈에는 총명함이 들어 있었다.
‘아놀드 아저씨는 벌써부터 잡혀 사는 게 보이네.”
착해 보이는 아놀드와는 반대로 정치가 집안에서 성장한 마리아는 척 봐도 똑똑해 보였고,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분간이 되었다.
워낙 많은 하객이 있기에 짧게 인사를 마쳤고, 동민은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전생에 혼자 살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결혼 할 수 있겠지? 미국에서 성공한 영화감독이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전생과 다르게 지금은 어린 나이이지만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아저씨의 정신이 들어있기에 아직은 그런 아이들이 귀엽게만 보였다.
하지만, 존이나 다른 아이들은 벌써 부터 아이들과 교제를 시작했다.
10살인 동민이 벌써부터 진지하게 자신의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여자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너 혹시 구리스에 나온 그 동양인 꼬마 아니니?”
“응. 나 맞아.”
머릿속으로 결혼하고 아이까지 놓다 못해 손자손녀 계획까지 세우고 있던 동민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여자아이를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너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난 다니엘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다니엘, 만나서 반가워 난 앤젤리나라고 해.”
< 01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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