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
별 기대 없이 본 84년의 NBA 드래프트는 어마어마 했다.
드래프트 1순위로 휴스턴 로케츠로 간 하킴 올라주원과 3순위 마이클 조던, 필라델피아 76으로 간 찰스 바클리와 유타 재즈의 존 스탁턴까지 NBA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만 4명이었다.
이외에도 쟁쟁한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고 훗날 KBL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되는 제이 험프리스도 1라운드 13순위에 있었다.
“이정도면 역대급 드래프트인걸? 아직은 미국에서도 농구가 덜 인기 있는것 같은데 앞으로 뜨거워 지겠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야구인 MLB와 미식축구 NFL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 사촌누나인 미쉘이 말을 걸었다.
“남자라 그런지 벌써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네. 하긴 3학년 올라가면 아이들이 조금 변하긴 하지.”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미쉘이 3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조금씩 그룹을 만들기 시작할 거라며 조심하라고 경고 했다.
동민이 보기에는 미쉘도 어렸지만, 자신을 신경써주는 사촌누나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미쉘 누나가 미국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전생에서는 만난 적이 없으니 기억이 안나네.’
미쉘과 이야기를 하며 드래프트를 보고 있자 이번에는 삼촌이 다가와 쇼파에 앉았다.
“시합도 아니고 드래프트를 보다니 동민이가 농구를 좋아했구나. 좋아하는 팀은 있니?”
“저는 시카고 불스라는 팀이 좋아요.”
“거기는 순위도 바닥이고 인기도 없는데 왜 LA 가 아니고 시카고를 선택한거니?”
“새로 뽑힌 선수가 잘 할 것 같이 생겼어요.”
마이클 조던이 첫 시즌부터 포텐을 터트리면서 인기와 순위가 수직 상승하게 되고 리그 7위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후 마이클 조던이 한 계단씩 순위를 멱살 잡고 올려 결국 91년에 첫 우승을 거머지며 전설을 써 나간다.
‘마이클 조던은 머머리 인줄 알았는데 이때 부터 그냥 머리를 밀고 다녔구나.’
젊다 못해 어린 조던의 모습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삼촌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 자라고 하셨다.
“내일 카메룬 제임스 감독님 촬영 현장에 가기로 했잖니. 방학이 끝나기 전 어렵게 스케줄을 맞췄으니 더 늦기 전에 어서 자거라.”
카메룬 제임스 감독의 실질적 데뷔작인 털미네이터 촬영장에 간다고 생각하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밤 학생처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밤새도록 뒤척이며 영화 생각을 하다 어린 몸이 자동적으로 잠에 빠졌고, 다음날 드디어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견학을 갔다.
“후배님이 드디어 오셨군. 저의 근무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메룬 제임스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직원의 절반 이상이 세탁소 손님이기에 동준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가 덜 발달되어서 소품을 정말 많이 쓰는구나.’
스튜디오에는 수많은 촬영 소품과 미니어처 건물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다니엘 지금은 스테프와 논의할 것이 있어서 분장실에 가 있겠니? 거기에 가면 배우들이 분장을 받고 있을 거다.”
분장실로 가자 슈워츠 아놀드제네거와 린다 해밀턴, 마이클 빈이 분장을 받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린다 해밀턴이랑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결혼하게 되지?’
린다 해밀턴과 카메룬 감독은 털미네이터 2를 찍으면서 본격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해 1997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만, 2년만에 5천만 달러의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혼하게 된다.
카메룬 제임스 감독의 결혼 생활이 정말로 대단한게 5번이나 결혼하게 되고, 4번의 이혼 모두 새로운 결혼을 위해 하게 된다.
첫 번째 부인인 샤론 윌리엄스와 1984년 이혼하고 내년에 털미네이터와 에어리언의 제작자인 게일 앤 허드와 결혼하고 1989년에는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과 결혼하기 위해 또 다시 이혼을 한다.
네번째 결혼이 눈 앞에 있는 린다 해밀턴과의 결혼이고, 마지막으로 타이타닉에서 단역으로 나오는 수지 에이미스와 결혼한 다음 20년 넘게 함께 살게된다.
“개인사이긴 하지만 주의를 주긴 해야겠네.”
카메룬 감독의 화려한 결혼 경력이 떠오르자 동방예의지국의 유교보이 동민은 한 번 잔소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오! 다니엘. 촬영장에 온다더니 오늘이었구나. 이쪽으로 오렴.”
“아놀드. 분장이 잘 어울리시네요.”
아놀드가 처음 보는 동양인 꼬마에게 반갑게 인사하자 린다 해밀턴과 마이클 빈이 누구인지 궁그해 했다.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옆에 있는 세탁소 알지? 거기 미스터 킴의 조카야. 어리지만 아주 영특하다고.”
“똑똑하게 생겼구나.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 아이가 놀러 오기엔 조금 위험한데.”
“카메룬 감독님한테 초대 받았어요. 이래뵈도 영화에 투자해서 지분을 가지고 있거든요.”
어린 동민이 영화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다들 신기해 했다.
“호호. 투자자셨구나.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지 시찰 오셨으니 열심히 연기해야겠는걸?”
린다 해밀턴이 동민의 볼을 꼬집으며 귀여워했다.
영화에서는 카리스마 있고 걸크러쉬한 여자로 나오는데 아직 한창 젊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더 여성스러웠다.
“오늘은 어떤 장면을 찍는 거예요? 카메룬 감독님이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못들었어요.”
“항상 똑같이 저기 무서운 아저씨가 누나 잡으러 오면 도망가는 장면이지.”
“하긴 절반이 그런 내용이긴 하구나.”
아놀드가 오늘 촬영하는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는데 동민이 좋아하는 장면이 있었다.
T-800이 경찰서에가 린다 해밀턴의 위치를 물어보는데 알려주지 않자 ‘알비붹’이라고 떠났다가 차로 경찰서를 들이 받는 내용이었다.
‘그래 털미네이터는 알비붹이지.’
시나리오를 읽고 배우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촬영시간이 되었고, 직접 털미네이터 영상이 만들어 지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저예산이라고 하지만, 특수효과에 자신 있는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었다.
“우와~ CG가 없으니까 실제 스튜디오를 박살내는구나.”
무표정으로 로봇연기를 하는 아놀드의 모습도 아주 인상적이었고 즐거운 촬영 견학이 끝났다.
“어때? 볼만했니?”
“대단했어요. 스튜디오에서 액션이랑 특수효과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여러모로 배울게 많았어요.”
미래에 비해 워낙 옛날 방식의 촬영기법이긴 했지만, 대가의 작업 방식은 무언가 달랐다.
전생에 영화감독을 꿈꿔왔던 동민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보통 꼬마아이들은 지루해 하는데 넌 특별하구나.”
“하하. 촬영장에서 가장 힘든게 어린이 연기죠.”
어린 아이의 경우 추격신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달려야 하는데 뛰다 보면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며 즐거운 표정을 지어 항상 재촬영을 해야만 했다.
카메룬 감독은 동민의 의젓한 모습에 배우로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흑인도 아닌 동양이 꼬마가 출연할 영화가 흔하지 않았다.
“촬영 방해도 안하고, 얌전히 있었으니 기회가 되면 또 놀러 오거라. 그리고 네가 가지고 온 라이스 롤도 잘 먹었다. 맛도 있는데 일하면서 먹기 정말 편하더구나.”
“네. 다음에도 김밥 가지고 놀러 올게요.”
숙모에게 부탁해 바쁜 촬영 스텝을 위한 김밥을 싸 왔는데 예상 보다 훨씬 반응이 정말 좋았다.
사람들이 계속 스시롤이라고 했지만, 끝까지 한국의 김밥이라고 알려 주었다.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동민의 첫 할리우드 경험이 끝이 났고,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다니엘~ 잘 지냈어? 이번에도 같은 반이네. 너 키가 조금 큰 것 같다?”
“나야 잘 지냈지. 브라이언 너는 방학에 뭐했어?”
2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한인 교포 브라이언이 이번에도 같은 반이었다.
“난 이번에 올림픽 직접 보고 왔어. 양궁 금매달 따는거 보고 왔는데 엄청 재미 있었어.”
하나둘 아이들이 등교했고, 같은 반의 절반 이상은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미쉘 누나 말대로 아이들 표정이 다르네?’
2학년까지는 순딩한 꼬마 였다면, 3학년 부터는 아이들이 더욱 활동적으로 변하고 장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민만 해도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 성장 호르몬이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으니 다른 아이들은 제어가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다니엘. 저기 카롤리나 예쁘지 않아? 제가 우리 학년에서 가장 인기가 많데.”
“예쁘긴 한데 난 꼬맹이 한테 관심없다.”
“아. 너는 누나 좋아하는구나?”
아이들이 조금씩 이성에 눈을 떠 가고 있었고,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난 여자애들 보다 저기 재내들이 더 신경 쓰이는데?”
“존 패거리? 저쪽이랑 말 걸었다가는 학교 생활 꼬이니까 말 걸지마.”
존이라는 웨인 루니를 닮은 녀석이 백인 남자아이들의 우두머리 같아 보였다.
벌써 부터 뚱뚱한 친구를 괴롭히며 노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싸운다면 8살 짜리한테 지지는 않겠지만, 관상은 과학이라고 건들였다가는 상당히 피곤해 질 것 같아 신경을 끄고 있었다.
“야! 너 집에 갈때 쪽팔리게 세탁소 차 타고 간다면서?”
넓은 어른의 포용력으로 꼬마의 도발을 무시하려 했지만, 도발 솜씨가 상당했다.
“앞으로 스쿨 버스에서 내 옆에 오지마라.”
깊고 넓은 아량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하게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존은 논리가 통하는 성인이 아니었다.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저리가.”
“무서우니까 가라고~?”
‘그냥 한대 칠까? 미국은 애들이 싸우면 어떻게 되는거지? 정학 먹으려나?’
끓어 오르는 분노에 고민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 오셨고, 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진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 갔다.
‘어린 것이 벌써 부터 저러면 피곤해 지는데 좋은 방법이 없나?’
수업시간 동안 고민하는 동민을 브라이언이 불쌍하게 처다 보았고, 갑자기 사악한 미소를 짖자 깜짝 놀라하며 불안해 했다.
“다니엘 안돼. 저놈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데. 4한년도 이겼다고 했어.”
“어허. 군자가 주먹을 쓰면 안 되지. 이 형님에게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수업이 끝나고, 삼촌의 세탁소로 가기위해 세탁 밴을 기다리고 있는데 존과 그의 패거리가 다가왔다.
“오늘도 세탁소 차 타고가냐?”
“그래. 집에 잘 들어가고, 내일 재미있는거 보여줄테니 같은 시간에 보자.”
동민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존이 화를 냈지만, 손가락을 내밀며 오히려 더 큰 도발을 했다.
다음날 하교시간 동민이 같은 자리에서 차를 기다리자 존과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제 허세 잡더니 똑 같은데서 기다리네. 넌 이제 세탁소 보이라고 불릴거다.”
“삼촌이 세탁소를 하긴 하시는데 사업이 잘 되서 잘 살아. 내가 여기 학교 다니는 것 보면 모르겠어?”
아이들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SUV 차량이 가까이 오더니 멈추어 섰다.
“다니엘. 네 친구들이니? 사이 좋게 지내는 걸 보니 좋구나.”
차에서 내려 동민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를 보고는 존과 아이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다니엘. 이분과 아는 사이니?”
“그럼. 우리는 친한 친구 사이야.”
“하하. 그럼 다니엘은 나의 소중한 친구지.”
190의 키에 폭발할 것 같은 근육을 지닌 그는 8살 아이들이 보기에 거인과 같은 존재였다.
슈왈츠 아놀드제네거가 동민을 차에 태우고, 세탁소로 가려고 하자 동민이 그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아놀드가 창문을 천천히 내리더니 넋을 잃고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알비붹.”
< 006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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