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 >
다음날 학교에 가자 존과 남자아이들이 동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다니엘. 코난 바바리안이랑 친한 거야? 그 분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어울리지 않게 존이 초롱초롱한 눈방울로 물어 보았다.
“김치를 함께 먹는 사이지. 김치로 인해 다져진 우정이라고나 할까?”
“김치? 그게 뭐야? 나도 먹을 수 있어?”
“진짜 남자만 먹을 수 있는 몸에 좋은 한국 음식이야. 먹기 쉽지 않을걸?”
“아니야. 나도 잘 먹을 수 있어. 어디서 먹을 수 있는 거야?”
“다음에 아놀드한테 가져다 달라고 할게. 넌 진짜 남자 같으니까 특별히 주는 거야.”
존과 아이들이 김치를 주겠다는 말에 기뻐하며 앞으로 동민을 자신의 친구로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누구 부모님이 더 영향력이 있고, 집이 잘 사는 것 보다 눈으로 보이는 피지컬이 중요했는데 아놀드의 몸은 아이들의 마음을 압도하고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다니엘. 카롤리나가 너 쳐다본다. 너 학교에서 엄청 유명해 졌어.”
“후훗! 이게 진정한 인싸의 삶인가?”
브라이언이 동민을 부러워했고, 동민도 처음 격어 보는 호감 넘치는 관심에 학교 다닐 맛이 났다.
‘그래. 미래에는 외국 여자들이 한국 아이돌 덕질하는 세상이 펼쳐지는데 지금이라고 기죽을 필요는 없지.”
인기도 최하위에 자리한 동양인 남자였지만, 미래에는 위상이 달라지는 것을 알기에 자신 있게 행동하는 동민이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아이들이 동민에게 점점 호감을 같기 시작했고, 명문 할리우드 초등학교에서 인싸의 삶은 만끽했다.
“아놀드 고마워요. 덕분에 학교생활이 아주 편해졌어요.”
“그럼. 내 1호 팬의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지. 도움이 필요하면 또 연락 하라고.”
슈워츠 아놀드제네거에게 고맙다며 전화를 걸었고,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가 털미네이터의 촬영은 이미 마무리 되었고, 편집과 특수효과 촬영만 남았다고 알려 주었다.
“시사회에 부르고 싶지만, 19세 관람 불가라서 못 오겠네. 대신 미스터 킴을 초청하면 되겠다.”
“삼촌이랑 숙모한테 물어 볼게요.”
삼촌에게 시사회 이야기를 하자 세탁소를 닫을 수 없다며 가기 힘들겠다고 하셨다.
큰 삼촌과 숙모는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일요일 하루만 쉬고 단 한 번도 가게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초대해 주어서 고맙지만 우리가 거기 가봤자 어색하기만 할 것 같구나.”
“얼마 전에 촬영장 가니까 삼촌이랑 숙모가 할리우드에서 유명하던데요?”
“그거야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세탁소를 해서 그런 거지.”
이번 시사회는 아쉽지만, 언젠가 동민이 영화를 만들면 그때 삼촌과 숙모를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과 세탁소 생활에 적응을 마치자 동민은 조금씩 외부로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육체적 나이가 8살이다 보니 혼자 LA를 돌아다니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동민아 삼촌은 의뢰받은 의상 스튜디오에 가져다주고 올테니 가게 잘 보고 있거라.”
“삼촌. 이번에는 옷이 무거워 보이지 않은데 제가 배달하러 가면 안 될까요?”
“스튜디오가 꽤 크고 복잡해서 힘들 건데?”
“길이야 물어보면 되죠.”
스튜디오는 세탁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직접 다녀오겠다고 때를 썼다.
“그래 스튜디오 안이 위험하지는 않으니 다녀 오거라. 혹시 길을 일거나 문제가 생기면 세탁소로 전화 하고.”
“네. 걱정 마세요. 세탁소 번호는 외우고 있어요.”
큰 삼촌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이난 동민이 옷을 들고 스튜디오로 달려갔다.
스튜디오 경비도 세탁소를 알고 있기에 동민을 들여 보내주었다.
“이번에는 미스터 킴이 아니고 다니엘이 왔구나.”
“앞으로는 제가 직접 올 거예요.”
“그래. 길 해매지 않도록 조심하고 나갈 때 임시 패스증 꼭 돌려 주어야한다.”
경비가 자세히 길을 알려 주었고, 무사히 의상 배달을 마칠 수 있었다.
급한 일을 마쳤으니 천천히 스튜디오를 구경하며 돌아가고 있는데 아주 유명한 감독을 발견했다.
“우와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이다. E.T.는 2년 전에 찍었는데 올해 무슨 영화를 만들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디아나 존슨 시리즈 2편인 마궁의 사원이 올해 촬영된다는 것이 생각났다.
인디아나 존슨은 해외 촬영이 많긴 하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도 몇 장면이 만들어 지는 것 같아 장면을 놓칠 수 없어 동민이 몰래 스튜디오로 숨어 들어갔다.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아무래도 인디아나 존슨 촬영장은 아닌 것 같아.”
동민이 구경 온 스튜디오는 모험물이라기 보다는 분위기가 어두운 것이 호러 영화 촬영장 같았다.
“어? 저 배우는 피비 케이츠네! 그럼 설마 그렙린 촬영장인가?”
전생에 책받침을 수집한 적이 있는 동민은 피비 케이츠를 바로 알아 봤다.
소피 마르소, 브룩 실즈, 왕조형과 함께 4대 여신으로 유명했던 피비 케이츠는 지금이 리즈 시절로 상큼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스티브 스필버그를 보러 따라왔지만, 피비 케이츠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배우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역배우가 못 온다고? 오늘 촬영하기로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조연도 아니고 엑스트라인데 아무나 쓰면 되잖아.”
“그게 차이나타운 골동품 가게 점원이라 아시안 아역을 써야합니다.”
“단 두 컷만 나오는데 아무나 최대한 빨리 구해봐!”
대기실로 다가가자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과 죠 단테 감독의 대화가 들렸다.
그렙린은 스티블 스필버그가 실행 프로듀서를 맡고, 로버트 제메키스와 함께 스필버그 사단으로 불리는 죠 단테 감독이 촬영을 하는 작품이었다.
그들 옆을 보니 여러 대히트작의 각본을 쓰고, 핸리포터 시리즈의 1,2편을 감독하는 크리스 콜럼버스도 있었다.
전생에 크리스 콜럼버스를 좋아했기에 그의 젊은 모습도 바로 알아보았다.
그렇게 세 사람을 훔쳐보고 있는데 스테프에게 숨어 있던 것을 들켜 버렸다.
“꼬마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된단다.”
“심부름 때문에 왔어요. 정식 출입증도 받았으니 몰래 들어온 거 아니에요.”
스테프에게 임시 출입증을 보여주며 관계자라고 거짓말을 했다.
다른 스튜디오에 심부름을 하러 오긴 했으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기 무슨 일이지?”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에게 보여 그가 동민을 불렀다.
“꼬마야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니?”
스필버그 감독이 인자한 표정으로 동민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앞에 있는 세탁소에서 의상을 가져다주라는 심부름 때문에 왔어요. 돌아가는 길에 스튜디오가 신기해서 잠시 보고 있었던 거예요.”
“흠. 원래는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단다. 그래도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혹시 영화 출연해 볼 생각은 없니? 아주 쉬운 장면이란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초반 주인공의 아버지가 차이나타운 골동품 가게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장면인데 골동품 가게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 역할이었다.
무섭게 생긴 가게 주인이 기즈모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자 동민이 몰래 주인공 아버지에게 기즈모를 팔아 버리는 장면이었다.
“연기는 어렵지 않은데 그냥 바로 출연해도 괜찮은가요? 계약 같은 거 써야 하지 않아요?”
“급해서 그러니 일단 촬영하고, 계약서를 쓰도록 하자구나. 보호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세탁소로 전화하면 되니?”
스티브 스필버그에게 세탁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그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스필버그 감독도 삼촌을 알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냈다.
“어두운 조명으로 촬영할거니 표정연기는 걱정 안 해도 괜찮고, 대사나 연기가 어렵지는 않는데 이것만 잘 이야기 하면 된단다.”
“물을 멀리할 것, 빛을 쏘이지 말 것, 자정 이후에 음식을 주지 말 것. 이죠?”
“어떻게 알았니? 정확하게 외우고 있구나.”
“방금 시나리오 읽으면서 외웠어요.”
그렙린이라면 어릴 적 여러 번 보기도 했고, 리뷰 영상을 따로 만들어 본 적이 있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호러와 블랙 코메디, 특수효과가 잘 믹스된 오락물로, 1,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5,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엄청난 흥행을 달성하게 된다.
영화 이외에 귀여운 주인공 모과이 인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케릭터 판매 수익도 벌어들이고 게임까지 만들어진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영화에 자신이 출연한다는 사실에 동민의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워낙 쉬운 역할이라 NG 없이 한 번에 성공 시켰다.
“컷! 아주 좋아. 처음 연기한다더니 아주 잘하는 구나.”
“시나리오가 워낙 쉽게 쓰여 있어서 바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시나리오 칭찬을 하자 옆에 있던 크리스 콜럼버스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하하. 미스터 킴의 영특한 조카 소문이 돌더니 사실이었나 보군.”
할리우드 바닥이 생각 보다 좁아 소문이 금방 도는데 동민에 대한 이야기도 돌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의외로 입이 가벼운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었지만, 동민이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덕분에 위기를 넘겼구나. 한 컷당 100달러로 해서 200달러가 나갈 거다.”
“계약서랑 체크는 세탁소에 있는 삼촌 명의로 해주세요. 그 편이 더 간단할 거예요.”
“아직 어려 보이는데 전문용어도 잘 알고 있구나. 더 나오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운 걸?”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세탁소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을게요.”
감독들에게 점수를 따고 어필까지 마친 동민이 세탁소로 돌아가기 전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저기 피비 케이츠 배우시죠?”
“아! 방금 촬영한 꼬마구나. 무슨 일이니?”
“제가 팬인데 사인 하나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나이 다 먹고 쑥스럽지만 피비 케이츠와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귀여운 척을 하며 사인을 부탁했다.
“같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당연히 해 줘야지. 어디에 사인해 줄까?”
동민이 종이 없이 매직만 건네자 피비 케이츠가 두리번거렸다.
“여기에다가 해주세요.”
동민이 뒤돌아 등을 내밀자 피비 케이츠가 빵 터졌다.
“호호. 귀여운 꼬마구나. 등에 사인해 보기는 처음이네.”
그녀가 즐거운 듯 입고 있는 흰 티셔츠에 사인을 해 주었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포옹을 해주었다.
“이건 오늘 문제를 해결해 준 서비스.”
쪽~!
피비 케이츠가 동민의 뺨에 키스를 해주었고, 포옹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했던 그의 영혼이 탈출하려 했다.
그 표정을 보고 귀엽다며 피비가 한번 더 안아주었고, 동민은 어쩌면 어린 몸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촬영장에서 나와 세탁소로 돌아가는데 삼촌이 혼내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삼촌 저 돌아 왔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먼저 사과를 하고 가게로 들어가자 세탁소에는 엄청난 덩치의 남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동민이 왔구나. 촬영이야기는 이따가 하고, 자리가 비좁으니 카운터 안으로 들어 오거라.”
슈워츠 아놀드제네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큰 덩치를 가진 남자들 틈을 지나 카운터로 가는데 잘 알고 있는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앗! 당신은?”
< 007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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