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
빌 머레이야 ‘사랑의 블랙홀’이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등 유명 영화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져 있지만, 덴 에크로이드는 그렇게 까지 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덴 에크로이드는 SNL 창립자로 지금 촬영중인 유령 사냥꾼의 배우이자 각본가이기도 했다.
유령 버스터즈는 3천만 달러라는 저예산(털미네이터가 650만인데···)으로 만들어져 북미에서만 무려 2억 3천만 달러에 달하는 큰돈을 벌어들이고,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흥행을 거둬들인다.
“우와 프로톤 팩이랑 뮤온 트랩이다!”
동민이 그들이 들고 있는 유령 잡는 장비를 보고 감탄하자 빌 머레이가 놀라하며 물어 보았다.
“꼬마야 이 장비들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니?”
“그야 당연히 만화영화로 봤으니까 알고 있죠.”
순간 뜨끔했지만, 나날이 거짓말이 늘어가는 동민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나저나 그 빌어먹을 유령 버스터즈 만화 때문에 머리가 아프네. 상표를 못 샀다고 유령 버스터즈와 유령 브레이커즈 나눠서 두 번씩 촬영하는 게 말이 돼?”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상영해야 한다고 시간이 촉박한데 이러다가는 제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빌 머레이와 덴 에크로이드는 배급사인 컬럼비아에서 상표권 획득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두 가지 버전으로 촬영하라고 했다.
두 사람의 불만 섞인 대화를 듣던 중 떠오르는 것이 있어 동민이 그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건 걱정 말고 유령 버스터즈로 촬영하시면 될 거에요.”
“응? 꼬마야 그게 무슨 말이니?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삼촌이 옷을 가지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동민이 속삭이듯 알려 주었다.
“여기 세탁소에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와서 정보가 돌아요. 배급사가 컬럽비아 픽쳐스죠? 거기 CEO가 모기업인 코카콜라랑 사이가 안 좋아서 그만두고 유니버셜 픽처스로 이직 했는데 상표권을 안 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모기업이 유니버셜이라서 힘을 쓸 수 있데요. 조만간 정식으로 허가가 나올 거예요.”
“정말이니? 그렇게 믿고 싶지만, 만약 허가가 안 나온다면 큰일인데?”
“일단은 유령 버스터즈 버전으로 찍고, 허가가 안 나면 다시 찍자고. 이대로는 미쳐버릴 것 같아.”
덴과 빌이 어떻게 할지 다시 말싸움을 시작하자 동민이 또 설득을 했다.
“한 달만 재촬영이 어렵지 않은 장면 위주로 버스터즈 버젼으로 촬영해 보세요. 생각보다 빨리 결정 날 수도 있어요. 혹시나 브레이커즈로 결정 난다면 제 재량으로 평생 무료 세탁 서비스를 해드릴게요.”
“꼬마야 이건 겨우 세탁비나 아끼려고 내릴 결정이 아니라고.”
“아니야 빌. 일단 우리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지금도 90% 이상을 원테이크로 찍고 있잖아. 선택을 해야 할 타이밍인데 꼬마의 말대로 버스터즈로 밀어 붙이자. 정 안되면 웃돈 주고 상표권 사오겠지.”
결론이 나가 동민이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였다.
“대신 제 말이 맞으면 프로톤 팩이랑 뮤온 트랩 하나만 저 주세요.”
“그래 네 말이 맞는다면 그 정도는 내 재량으로 선물 하도록 하마.”
“그럼 오늘 부터 한 가지 버전으로 촬영하는 거지?”
“고맙다 꼬마야. 큰 걱정을 덜었으니 촬영 속도가 빨라지겠네.”
세탁소에 있는 탈의실에서 삼촌이 수선한 촬영의상으로 갈아입을 그들이 서둘러 돌아갔고, 동민은 유령 버스터즈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고니 위버가 여주인공으로 나왔었지?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십네.”
여배우도 직접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사람을 보내 옷을 받아갔기에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며칠간은 유명한 손님이 오지 않았고, 세탁소에서 학교 숙제와 영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익숙한 덩치의 손님이 들어왔다.
“아놀드 아저씨. 잘지내셨어요?”
“하하. 다니엘. 네 덕에 아주 잘 지내고 있단다.”
슈워츠 아놀드제네거가 찾아와 동민을 쓰다듬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카메룬 제임스 감독님이 여기 와서 너와 영화 이야기를 했었다면서?”
“그런 일이 있긴 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감독님이 직접 이야기 해 주셨지. 네 덕분에 아주 좋은 역할을 받게 되었구나.”
동민의 제안을 듣고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카일 리스 역이 아닌 털미네이터 T-800 역할을 아놀드에게 제안했고, 슈워츠 아놀드제네거도 다시 확인하니 그 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발음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내 악센트가 더 유리하게 되었구나.”
“잘 되었네요. 이번에는 무표정 연습만 하시면 되겠어요.”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아놀드의 캐릭터에 맞춰 대본을 수정하기로 했다며 기뻐했다.
“얼마 전에 코난2를 찍고 반복적인 캐릭터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는데 덕분에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겠어.”
코난 2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내년에 개봉하는 코만도는 그의 액셕작 중 대표작으로 성공하게 되는데 아직 이런 언급은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동민도 어릴 적 코만도와 람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며 친구들과 람보, 코만도 놀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놀드 씨, 이번에도 수선을 맡기러 오셨나요?”
“아닙니다. 미스터 킴. 저의 꼬마 한국인 팬을 만나러 왔습니다.”
“다니엘이 손님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아주 영특하다며 예뻐하더군요.”
8살 꼬마의 몸에 40대 남성의 정신이 들어 있으니 성인과도 대화가 잘 통했고, 다들 동민을 좋아했다.
“저의 1호 한국인 팬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더욱 노력해야겠군요. 다니엘, 고객 카드에 내 전화번호가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정말요? 그래도 괜찮아요?”
동민이 깜짝 놀라하며 물어보자 큰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고객 정보는 공개하면 안 되는데 본인이 허락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거라.”
“고마워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촬영장 구경도 해보고 싶어요.”
“제임스 감독님께 물어 보도록 하마. 아마도 허락 하실 거다.”
아놀드가 선물이라며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코난 포스터를 건네주었다.
미래의 유명 배우에다 캘리포니아의 주지사 까지 되는 아놀드와 친분이 생긴 동민이 신이나 미래에 세계적으로 유행할 말춤을 추었다.
“하하. 꼭 말을 타고 있는 것 같은 춤이구나. 아주 재미있는걸.”
“먼 미래에 유행할 춤이니까 잘 기억해 두세요.”
아놀드가 돌아가고, 며칠 뒤 이번에는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동민을 만나러 세탁소로 찾아왔다.
“하하. 잘있었나 꼬마 은인? 자네 덕분에 계약이 아주 잘 풀렸다네.”
“투자를 잘 받으셨나 보네요?”
“후배님 말대로 T-800의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아놀드를 배역으로 쓴다고 했더니 투자사에서 좋아하더라고. 거기다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알려주자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더군. 덕분에 내가 협상에서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올라가 지분을 더 받아낼 수 있었지.”
원래 투자금이였던 650만 달러에서 1천만 달러로 제작비가 늘어났고, 1달러에 시나리오 판권을 전부 넘겨야 했지만, 50%만 넘기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제 영화를 잘 만들 일만 남았지. 이제 지분을 어느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후배에게 0.1%를 100달러에 팔도록 하지. 서류는 미리 준비해 왔으니 사인만 하면 되.”
1천만 달러의 0.1%면 1만 달러인데 100달러에 100배에 달하는 지분을 준다는 이야기였다.
털미네이터가 20배를 넘기는 수익을 달성하니 한번에 20만 달러라는 거액이 동민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화로 2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지만, 84년의 물가를 계산하면 엄청난 돈이었다.
“제임스 감독님 정말 이렇게 큰 지분을 조카에게 주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법적 보호자이긴 하지만, 조카의 돈을 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미스터 킴이 좋은 분이라는 건 할리우드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지요. 괜찮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본 삼촌이 카메룬 제임스 감독에게 다시 확인을 했고, 동민이 사인을 마치고 100 달러를 건네주었다.
“감독님 저도 구경하고 싶은데 현장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투자자인데 당연히 가능하지. 위험한 촬영이 없는 날에 맞춰 견학을 할 수 있게 해보마.”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떠나자 큰 삼촌이 동민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영특한 녀석인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일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영화 투자라는 게 가끔 대박이 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망해서 투자금을 회수 못 할 수도 있단다.”
“잘 알고 있어요. 이번에는 시나리오도 확인했고 확신이 있어서 그랬어요.”
“영화라는 게 시나리오 하나로 결정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이번 경험이 너에게 큰 교훈이 되겠지. 너의 돈은 내가 아니라 너희 부모님이 관리해야하니 일단 네 아비에게 이번 일을 전달은 해 두마.”
다행히 큰 삼촌은 8살 조카의 코 묻은 돈을 욕심내지 않았고, 다만 동민이 바르게 자라길 원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카메룬 제임스 감독의 털미네이터 영화 투자 사건이 있은 이후로 동민은 얌전히 미국 생활을 했고, 어느덧 5월이 지나 여름 방학이 되었다.
방과 후 활동이나 학원 같은건 없었기에 동민은 대부분의 시간을 큰삼촌의 세탁소에서 보냈고, 영어 작문 실력을 늘리기 위해 독서와 시나리오 작성으로 하루를 보냈다.
“삼촌, 요즘들어 엘에이에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얼마 있으면 엘에이에서 올림픽을 하니 외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구나.”
올림픽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외국과 미국 전역에서 엘에이로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한적했던 출퇴근길이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84년 7월 28일에 열린 제23회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과 공산권 국가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
홈그라운드 이점과 소련, 동유럽의 불참으로 미국이 금메달 83개를 획득하며 압도적인 종합 1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역시 다음 올림픽 개최국으로 6개의 금메달과 6개의 은메달, 7개의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종합 10위라는 첫 국제무대에서의 쾌거를 달성했다.
동민도 한인 타운에 한국인 이민자들과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함께 응원했고, 레슬링의 유인탁과 김원기, 복싱의 신준섭, 유도의 안병근과 하형주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국뽕에 차올랐다.
여자 개인 양궁의 서향순이 금메달을 딸 때도 한국 양궁의 시작이라며 방방 띄며 좋아했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이 끝이 나고 폐막식 때 다음 개최지인 대한민국을 위해 태극기가 계양되며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동민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위원장이 LA 시장으로 부터 올림픽기를 받아 서울시장에게 넘겨주는 장면에서 여러 한인들이 눈물을 흘렸고, 동민도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차올랐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가슴에 뜨거움을 준 올림픽이 끝이 났고, 동민도 방학이 끝나가 3학년으로 진급할 준비를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기 바로 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잘 알고 있는 스포츠 선수가 나왔다.
“어? 저 사람이 이번에 드래프트에 나왔구나. 내년부터 NBA 도 볼만 하겠는걸? 아! 신발 나오면 많이 사 둬야겠다.”
< 005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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