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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69화 (970/1,567)

969화. 너희가 시작한 싸움이야. (4)

“마, 막아라! 막아!!”

검은 무복 차림의 검수들이 자세를 낮춘 채 일제히 앞으로 돌진한다.

그 사이로 피어나는 붉디붉은 매화.

화산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들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할 만큼 위압적인 광경이었다. 칼날같이 섬뜩한 기세가 수적들을 뒤덮었다.

“으, 으아아앗!”

선두에 선 이들이 발작처럼 병장기를 찌르고 휘둘렀다. 수로채의 명성이 허명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당황한 와중에도 그들이 내지르는 작살은 과연 쾌속하고 날카로웠다.

하나, 그 공격이 채 다 뻗어지기도 전에 섬전같이 날아든 검이 작살을 후려쳐 올렸다.

채애앵!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작살이 하늘을 향해 획 들렸다.

‘큭!’

수적이 이를 악물며 작살을 재빨리 회수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쇄애애애액!

뒤쪽에서 순간 빛살처럼 검이 날아들었다.

‘뭐?’

눈치를 챈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수적의 눈이 부릅떠졌다.

푸욱! 푸욱! 푸욱!

순식간에 세 개의 검날이 그의 몸에 박혔다.

“끄…….”

수적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 그의 머리를 차지한 건 고통보다는 ‘어떻게?’라는 의문이었다.

물론 동료와 합을 맞춘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 역시 주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격하려 노력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앞선 검수 놈이 그의 작살을 쳐 올리는 순간, 이미 뒤쪽에서 검이 날아들고 있었다. 만약 앞선 이의 동작이 조금만 그들의 생각과 어긋났다면 그 검이 찌른 것은 바로 자신들의 동료였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공격을 할 수 있는가? 대체 무얼 믿고?

‘미친…놈들…….’

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파아아아앗!

휘둘러진 검이 그의 가슴을 깊숙이 베었다. 절명해 버린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화산의 검수들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파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검이 연이어 허공을 갈랐다.

화려한 변초는 없다. 눈부신 검기도 보이지 않는다. 화산의 검수들이 휘두르는 검은 일체 낭비 없이 오직 적의 숨을 끊어 놓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표정 없이 굳은 얼굴로 극히 효율적인 검로를 보이는 화산의 검수들은 수적들을 놀랍도록 압박하고 있었다.

“막아! 막으라고! 적은 소수다! 남은 놈들이 상륙하지 못하게 여기서 막아아아아아아!”

매화도를 점령한 수적들이 희게 질려 주춤주춤 물러나니 수로채의 장로 하나가 피라도 토할 기세로 고함을 쳤다.

“수로 압박해서 물가로 몰아내라! 놈들이 디딜 땅을 내어 주지 마라!”

전략적으로야 훌륭한 판단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략이란 결국 이뤄져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매!”

“네.”

탓. 탓. 탓탓탓탓!

백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이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을 박차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한 줄기 검은 선이 된 그녀는 쾌속하게 화산의 선두로 치고 나갔다.

“이익!”

“죽어랏!”

흡사 유령처럼 날아드는 그녀를 본 수적들은 기겁하며 작살을 내질렀다. 아니, 내지르려 했다.

그 순간.

파앗!

유이설이 처음 달려오던 것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가속하더니 한껏 작살을 뒤로 당긴 수적들의 바로 앞에 당도했다.

아니, 수적의 입장에선 당도했다기보다는 ‘나타났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정도로 극적인 이동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발보다 배는 더 빨랐다.

수적들이 놀라움을 채 표현하기도 전에 공간을 가른 검이 그들을 일거에 베어 냈다.

푸우우우웃!

길게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앞 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덮쳐!”

하지만 수적들 역시 수많은 전장을 버텨 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곧장 쓰러지는 동료의 등을 밟고 뛰며 유이설을 공격했다.

“안 되지.”

하지만 그 순간 유이설의 뒤쪽에서 그녀의 머리 위로 솟구친 한 사내가 허공에서 수십 개의 검영을 만들어 내더니 수적들을 휩쓸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허공에서 난데없는 검기에 얻어맞은 수적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나갔다.

일 검으로 유이설을 노리던 수적들을 분쇄한 윤종은 착지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이미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사고를 보좌하기 위해.

유이설은 몸을 곧게 세운 채 수적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치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쇄애애액!

허공에서 유려하게 휘둘러진 검이 수적들의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허벅지를 베인 이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고, 옆 목을 베인 이는 목을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은 일 검에 심장이 갈린 이에 비한다면 훨씬 나으리라.

“죽어라, 이년!”

강력한 기운을 머금은 작살이 폭발하듯 유이설의 명치를 향해 내질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작살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이로운 쾌검!

서걱!

그녀의 검이 작살을 잡은 수적의 손목을 벤다.

서걱!

곧장 뒤틀리듯 역으로 솟구친 검이 연이어 팔꿈치를 끊는다.

그리고.

콰아아앙!

마지막으로 그녀의 검이 작살을 후려친 순간, 강한 기운을 머금었던 작살이 방향을 잃고 유이설을 노리던 다른 수적에게 날아가 박혔다.

콰득! 콰득!

사람의 몸을 가볍게 꿰뚫고도 그 기세를 잃어버리지 않은 작살은 연이어 뒤에 있는 이마저 찌르고 말았다. 마치 꼬치처럼 꿰여 버린 수적들은 경악과 불신을 담은 눈으로 스스륵 무너져 내렸다.

눈 한 번 깜빡할 새에 펼쳐진 세 번의 검격이 상대의 노림수를 완전히 분쇄해 낸 것이다.

그녀의 움직임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작살을 내지른 수적의 목젖에서 붉은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목을 깔끔하게 베어 낸 유이설이 퍽 꺼지듯 아래로 자세를 낮추었다.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인 후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며 달려드는 수적들의 무릎을 연이어 갈라 버렸다.

“아악! 아아아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

촤아아아악!

바닥을 쓸어 내듯 회전한 유이설이 몸을 튕겨 올리며 앞쪽으로 삼 검을 내질렀다. 주춤하던 수적들을 뒤로 밀어 낸 그녀는 무심한 눈으로 앞쪽을 일별하고는 수면을 치고 달리는 제비처럼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이 존재하던 곳으로 검은 인영이 날아들었다.

파아아아앗!

이윽고 섬전이라는 말도 무색한 쾌검이 앞쪽의 수적의 목을 꿰뚫었다.

콰득!

날카로운 금속 날이 연약한 인간의 살을 가르고, 뼈를 끊는 소리. 그 소리가 채 다 울려 퍼지기도 전에 회수된 검이 물러나던 이들을 뒤이어 추격했다.

차게 가라앉은 눈빛. 굳게 다문 입술.

당소소의 표정은 이제 검수라는 말 외에는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검이 순식간에 불어나며 전방을 휩쓸었다.

그 순간 수적들은 역지사지를 느껴야 했다. 수로채를 상대하던 이들이 어떤 광경을 보았었는지 말이다. 그녀의 검 끝에서 발출된 수십의 검영은 마치 수십의 수적이 동시에 작살을 내지르는 광경과도 같았다.

“아아아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은 속절없이 검기에 휩쓸렸다. 몸에 아이 주먹만 한 구멍을 숭숭 뚫린 수적들이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유이설, 윤종, 당소소.

그 세 사람이 울창한 숲처럼 빽빽하던 수로채의 진영에 선명한 균열을 만들어 냈다.

“밀어붙여라!”

그리고 화산의 검수들은 당연하다는 듯 그 셋이 만들어 낸 균열로 돌진했다.

여전히 쏟아지던 검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적들은 밀려든 화산 검수들의 공격에 무참히 당했다.

공포에 질린 처절한 비명이 매화도의 허공을 메웠다.

오직 적의 목숨을 끊어 내기 위해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달려드는 검수들. 그 기세에 완전히 질려 버린 수적들은 본능에 이끌려 자꾸만 뒤로 물러섰다.

“마, 막아라! 이 개 같은 놈들아! 물러서지 말고 막으란 말이다!”

지시를 내리던 장로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이미 남궁세가를 상대로 그 실력을 증명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집단으로 밀어붙여 상대를 억누르는 것은 수로채의 장기 중 하나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전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강하기 때문에?

그럴 리가!

그들은 이미 남궁세가의 제왕검과도 싸웠고, 그 장로들마저도 곤죽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 이 어린놈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들만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남궁세가를 상대할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믿을 수가 없을 뿐, 그는 사실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더없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이냐?’

정파 놈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놈들은 전투에 익숙하다. 집단끼리 부딪쳤을 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수없는 전쟁을 치러 온 수로채보다 더.

마치 수십, 수백 번의 전쟁을 치른 닳고 닳은 노장들 같지 않은가?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놈들의 검에는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얼굴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놈들 주제에 검을 날려 사람의 목숨을 끊어 놓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검귀라는 말이 아니고서야 저 미친놈들을 뭐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 병신 같은 놈들아! 죽이려 들지 말고 그 자리를 지켜! 한 번! 저 기세를 한 번만 끊으면 된다!”

소수의 싸움은 실력으로 판가름이 나지만, 다수의 싸움은 그 사기와 기세에서 승부가 갈리는 법이다. 저들의 발을 단 한 번만 멈출 수 있다면 수로 찍어누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전열을 갖춰! 앞에 있는 놈 시체를 방패 삼아서라도 일단 버텨라! 먼저 지치는 건 반드시 저놈들이다!”

저 드높은 기세가 한 번이라도 끊기게 되면 화산 역시 수가 부족하다는 약점을 노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단 한 번만 저들의 발을 묶어 버리면 된다.

장로의 명을 들은 수적들은 이를 악물며 제 어깨를 동료의 어깨와 맞붙였다. 최대한 단단하게 방어해서 우선은 자신이 딛고 선 곳을 사수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들의 불행이라면…… 이 매화도에 발을 디딘 게 화산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쇄애애애애액! 쇄애애애애애액!

“뭐냐?”

“저건……?”

전열과 각오를 단단하게 굳힌 수적들의 머리 위로 녹빛 주머니들이 줄줄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퍼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엉!

그 주머니가 터지며 뿜어져 나온 검은빛 독분이 잔뜩 밀집된 수적들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도, 독!”

“아아아아악! 이 개 같은 놈들!”

“쿨럭! 쿨럭! 수, 숨이……!”

마침내 매화도 땅을 밟은 당군악이 이를 갈고는 커다란 사자후를 터뜨렸다.

“남궁세가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단 한 놈도 이 섬에서 살려 내보내지 마라!”

“충!”

사천당가의 무사들이 화산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들의 소매에서 발출된 주머니들이 방어를 굳힌 수적들의 머리 위에서 연이어 터지며, 독모래와 독분을 뿜어냈다.

물러날 곳도, 나아갈 곳도 없이 밀집해 있던 그들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독에 얻어맞고는 제 목을 움켜잡았다.

“끄르르르륵!”

입에서 피거품이 솟구쳤다. 누군가는 눈을 까뒤집으며 허물어지고, 누군가는 제 목을 피가 나도록 미친 듯이 긁어 댔다.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당가가 적을 뒤흔들어 놓은 순간, 화산의 가장 앞으로 한 사내가 치고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앙!

일 검으로 다섯의 수적을 베고 날려 버린 백천이 수적들 너머에 있던 남궁세가의 생존자들을 정확히 포착했다.

“내가 길을 뚫는다! 죽을 각오로 따라붙어!”

“예!”

이를 악문 백천이 앞으로 짓쳐 달려 나가니, 그 뒤로 화산의 검수, 당가의 무사들이 기세를 드높이며 따라붙었다.

화산과 당가.

천우맹의 양 축을 담당하는 두 문파가 바로 이곳 장강 위에서 처음으로 맹의 위세를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강호를 살아가는 이라면, 협의라는 두 글자를 한 번이라도 가슴에 품어 본 이라면, 응당 가슴이 벅차 전율하며 경탄할 광경이었다.

하지만 강 너머에는, 이 광경에 차마 전율하지 못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찌…….”

소림 방장 법정의 두 눈이 경악과 불신으로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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