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화. 화산을 대표하는 검이 될 테니까. (3)
사람은 한 번에 두 가지 무학을 동시에 펼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무학을 펼치는 이들은 으레 심공을 운용하는 동시에, 권장지각을 휘두르거나 보법을 밟는다. 그러니 동시에 두 가지 무학을 펼칠 수 없다는 건 틀린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같은 계열의 무학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가 맞다.
오른손으로 매화검법을 펼치면서 왼손으로 칠매검을 펼칠 수 있는가? 오른손으로 매화검법을 펼치면서 왼손으로는 죽엽수를 펼쳐 낼 수 있는가?
두 무학을 번갈아 펼치는 거라면 얼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이마저도 두 가지 무학을 완벽하게 따로 쓰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학에 따라 쓰는 내력의 운용 방식이 다르고, 그리는 투로가 다르니까.
투로가 겹치지 않도록 정교하게 짜 맞추어 무학을 전개한다면 그건 이미 두 개의 무학이 아니라 하나의 초식이 되어 버린다.
때문에 한 번에 두 가지 무학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머릿속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존재해야 하니까.
하나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 문파가 있으니, 그게 바로 무당이었다.
원래 무당산에 자리한 여러 도관에는 괴인(怪人)이라 불려야 마땅할 이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도를 깨닫기 위해 온갖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 중, 마음을 둘로 나누려는 시도를 한 이가 있었다.
인간은 자신을 제외한 타인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타인은 그 인간의 내면을 완전히 들여다볼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둘이 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도를 깨달을 수 있다.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시작한 일이 의외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진 전승 끝에 마침내 의식을 둘로 나누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창안자의 바람처럼 도를 깨닫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학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했다.
보라.
콰아아아아아
급류처럼 쏟아지는 검기 속에서 부드러운 장력이 넘실대고 있었다.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검기와 장력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어우러졌다가 다시 멀어지며 자신만의 초식을 펼쳐 냈다.
‘뭐, 뭐 이런…….’
윤종이 기겁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검기와 장력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넘실거리며 물러난 그를 향해 끊임없이 밀려왔다.
“큭!”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윤종이 새파란 검기를 뿜으며 내리긋고, 가로로 베었다.
파아아아앗!
그러자 순식간에 검기로 이루어진 커다란 벽이 그의 앞에 생겨났다.
쿠르르르릉!
밀려오는 검기와 맞닿자 벽이 크게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났지만 어찌어찌 부서지지는 않고 버텨 내는 데 성공했다.
‘돼, 됐…….’
하나 그 순간.
윤종이 놀라 눈을 한껏 부릅떴다.
검기와 함께 밀려오던 장력이 순식간에 방향을 꺾더니 검벽을 우회하여 그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든 것이다.
새하얀 장벽이 방향을 트는 모습은 흡사 살아 있는 무언가, 혹은 유령과도 같아 보였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여유롭게 생각을 할 시간 따윈 없었다.
뻗었던 검을 빠르게 회수한 윤종은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그의 바로 아래로 밀려온 검기와 장력이 아슬아슬하게 공간을 휩쓸고 지나갔다.
우우우우우웅!
미처 빼내지 못한 신 밑창이 검기에 휩쓸려 뜯겨 나갔다. 허공에서 몇 번이고 몸을 뒤집은 윤종은 비어 있는 비무대로 내려서자마자 몸을 굴렸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그가 잠깐 내려섰던 자리로 새하얀 장력이 연거푸 날아들어 청석을 부수고 짓이겼다.
비무대 거의 끝까지 몰리며 몸을 빼낸 윤종은 날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무연을 경계했다. 흡사 독 오른 고양이 같은 모양새였다.
“…….”
주르르륵.
그런 그의 턱 끝을 타고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폭풍에 견주지 않고서는 표현할 길이 없는 맹공격이었다. 윤종은 앓는 듯 입을 열었다.
“……양의심공.”
“그렇네.”
무연이 빙그레 웃었다.
“아직 원숙하지는 못하네만, 흉내는 낼 수 있는 정도지. 어떤가? 꽤 쓸 만해 보이는가?”
쓸 만하냐고?
윤종은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헛웃음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양의심공.
두 가지 무학을 동시에 사용하게 해 주는 무당파의 절학 중의 절학이다.
윤종도 당연히 들어 보기야 했었지만, 이때까지는 두 가지 무학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 봐야 무학일 뿐인데, 그냥 동시에 상대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겪어 본 양의심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두 명의 절대고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 같아.’
두 고수를 상대한다는 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지 윤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둘이서 합을 맞춰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가장 특화되어 있는 이가 바로 윤종이기 때문이다. 조걸과 함께 어울릴 때는 그들보다 훨씬 강한 적을 상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서로 다른 성질의 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을 때, 그들은 두 배가 아닌 세 배, 네 배의 힘까지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무연은 조걸과 윤종이 함께 해야 했던 일을 홀로 해 내고 있는 셈이었다.
‘이게 양의심공…….’
이는 실로 말도 안 되는 신공절학이다.
윤종은 마른침을 삼켰다. 왜 천하가 무당의 무학을 칭송하는지 뼛속 깊이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저걸 상대할 수 있나?”
비무를 지켜보던 백천의 입에서도 신음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양의심공,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절학이다. 태극혜검, 면장, 십단금과 함께 무당을 상징하는 무학이 바로 양의심공이 아니던가?
하지만 귀로 들은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였다.
“……아니, 저건…… 사기잖아.”
어느새 치료를 받고 돌아온 조걸이 넋을 잃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역시 윤종과 함께 합공을 주로 썼던지라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 절학이 얼마나 굉장한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이게…… 무당.”
심지어 유이설마저도 중얼거리며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저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이다. 왜 무당이 무당인지. 어째서 저들이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중원 도가의 선두에 우뚝 서 있는지 저 광경이 모조리 설명해 주는 듯했다.
백천은 비무대에서 눈도 떼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청명아.”
“응?”
“저게 말이 되는 거냐?”
청명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
“무당의 무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진다고. 그 말의 반쯤은 저 빌어먹을 것 때문이지.”
양의심공은 태극혜검과 더불어 무당에서 가장 난해한 절학이다. 일대제자 중에서도 상위권이 아니면 배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빌어먹을 무학.
“하여튼 저건 볼 때마다 사람 빡치게 만든다니까.”
“……네가 저걸 또 언제 봤다고.”
“아니, 생각을 해 보라고.”
“응?”
청명이 눈을 부라리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뭐? 사람의 마음을 둘로 나눠? 이보다 더 사특하고 괴이한 짓거리가 어디 있어!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게 무슨 정파의 무학이야? 사파 새끼들도 저런 짓은 안 한다고.”
“…….”
백천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이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새끼들이 뭐? 매화검법이 사이해? 에라, 대가리에 소나무를 처박아 버려도 시원찮을 새끼들 같으니! 누가 누구한테!”
“지, 진정해라, 청명아.”
금방이라도 무당의 진영으로 뛰쳐나갈 기세인 청명을 부여잡으며 백천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 새끼는 또 왜 급발진이지…….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으냐. 윤종이한테 저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조언이라도…….”
“조언은 무슨!”
하지만 청명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고생도 안 하지.”
“……응?”
“대처법 같은 건 없어. 저건 편법도, 속임수도 아니야. 말 그대로 무학이지.”
“…….”
“귀찮고 짜증 나는.”
돌아온 대답에 백천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짜증 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해. 양의심공을 펼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무위가 적어도 반 배 이상은 오르니까.”
“……그래 보이는군.”
대체 어떤 원리로 저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백천은 가슴에 무언가가 틀어박히기라도 한 듯 답답함을 느꼈다.
뛰어넘었다 싶으면 그 뒤에 더 큰 산이 있고, 그것마저 넘었다 싶으면 배는 더 큰 산이 앞을 가로막아 오지 않는가.
명문의 저력은 끝이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저게 우리가 끝끝내 뛰어넘어야 할 산이로군.’
산 하나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공존할 수는 없다. 화산이 강호에서 도가로서 우뚝 서려면, 무당은 반드시 넘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윤종의 등에 고정된 백천의 시선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윤종 홀로 짊어지기에 그 짐은 너무도 무거운 듯했다.
“윤종아…….”
결국 참지 못하고 윤종의 이름을 읊조리는 백천의 모습에 청명은 피식 웃었다.
“왜? 윤종 사형에게는 벅차 보여?”
“…….”
“사숙이면 할 수 있고?”
“누, 누가 그렇다고 했느냐?”
백천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청명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이래서 천재라는 것들은……. 쯧쯧.”
“무,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잘 봐 둬.”
“응?”
청명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지자 백천의 두 눈에도 덩달아 이채를 어렸다.
“천재에게 천재의 방식이 있다면, 범재에게는 범재의 방식이 있어. 그리고…….”
청명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윤종의 등을 주시했다.
“윤종 사형은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들썩이던 어깨가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다.호흡을 가다듬은 윤종은 가만히 무연을 응시했다.
‘비무라…….’
만일 이게 실전이었다면,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숨을 고를 시간을 주고 있다. 비무여서 그런 것인지, 여유가 넘쳐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분노보다 안도가 먼저 느껴졌다.
‘강하다.’
확실히 무당삼검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양의심공으로 동시에 덮쳐 오는 검기와 장력은 상대하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였다. 만일 윤종이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채, 바닥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때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아.’
주교와 싸우던 때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마치 지상에 아수라가 현신한 것 같았던, 그 어마어마한 기세를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절망과 혼돈을 빚어 만든 이를 눈앞에서 직면했던 충격에 비한다면 이건 차라리 인간미가 있었다.
‘그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윤종은 그저 악을 쓰며 매달리고 버텼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변하지 않는다.
윤종은 가만히 중단세를 취했다.
모든 검의 기본이 되는 자세.
거기에서 무게 중심을 삼 푼만큼 뒤로 빼낸 그는 낮게 일갈했다.
“오십시오.”
무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를 더 데리고 올 걸 그랬군. 그랬다면 이자에게서 배울 게 퍽 많았을 텐데.’
아니, 사실은 그 역시 배우고 있다.
저 흔들림 없는 자세에서 말이다.
우우우웅.
내력을 잔뜩 머금은 무연의 검이 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최선을 다해 주는 것이 예의일 터!’
무연이 결의를 굳히고 검을 휘둘렀다.
이전보다도 한층 짙어진 검기가 급류로 화해 윤종을 덮치고 들었다. 그 거대한 기운에 노출된 윤종의 몸이 폭풍 속 일엽편주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