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화.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 낼 테니까! (5)
청명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꺾였다.
대활불.
그 이름은 단순히 포달랍궁의 궁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장에서 대활불은 살아 있는 부처이자, 왕보다 더한 권위를 가진 존재다. 포달랍궁의 궁주라는 막강한 권력 때문에 존중받는 게 아니라, 드높은 불법으로 서장인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이다.
물론 소림의 방장 역시 중원인들의 존경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서장인들이 대활불을 보는 시선에는 감히 비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 대활불이…….
“그냥 꼬맹인데?”
“인마!”
“입! 입! 이 새끼야! 입!”
화산의 제자들이 황급히 입단속을 시켜 보려 했지만, 청명은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부릅뜨고 달뢰라마라 불린 아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아니, 쟤가 대활불이라잖아!”
“…….”
“사숙은 그게 믿겨? 어? 진짜로?”
“크, 크흐흐흠!”
백천은 크게 헛기침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진심을 말할 수도 없고, 거짓으로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청명은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반선라마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이 꼬맹……. 아니, 얘……. 아니, 그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분이 그 대활불이시라고요?”
반선라마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어, 그 말은…… 얘가 그…… 서장밀교의 총 본산이자, 새외사궁중 하나인 포달랍궁의 궁주라고요? 서장에서 왕보다 더 추앙받는 대활불이라고?”
“그러합니다.”
그 대답을 들은 청명이 빙그레 웃었다.
“허허. 소림 방장도 그러더니, 스님이라는 양반들은 하나같이 사기 치는 데 맛이 들렸나.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인마! 말조심 좀!”
“제발 입 좀 다물어…….”
화산의 제자들 역시 청명을 만류하면서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이게 뭔 소리야.’
차라리 저 아이가 서장의 왕이라고 했다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왕이라는 자리는 본디 혈연으로 이어지니까.
하지만 서장 라마승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불법의 화신(化身)인 대활불이 저런 어린아이라는 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런 어린아이가 불법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생각해 보라.
소림의 방장이 삼척동자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겠는가?
누구도 그 권위를 믿지 않고, 그 말을 따르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반선라마가 직접 하는 말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그때, 반선라마가 가만히 차를 따라 청명을 향해 내밀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지요.”
“…….”
“차 맛이 괜찮습니다.”
청명이 순간 움찔했다. 그러더니 순순히 찻잔을 받아 들고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화산 제자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길들였다.’
‘세상에, 청명이를 다스리네.’
‘불법은 무한하구나.’
어느새 차분하게 좌정하여 차를 마시는 청명을 보며 반선라마가 가볍게 합장을 했다.
백천이 이때를 틈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사실이 성질이 다소 불같은 면이 있어서…….”
“여의치 마십시오. 중원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같은 불도를 걷는 이에게도 말이지요.”
반선라마의 시선이 혜연에게 가 닿았다. 혜연은 불호를 외며 반장을 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반선라마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께서는 혹여 윤회(輪廻)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불가의 이치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윤회가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요. 사람이 죽으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잖아요.”
반선라마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께서는 아주 똑똑하시군요.”
“헤헤. 그렇게 똑똑하지는……. 헤헤헤!”
칭찬이 나오기가 무섭게 헤벌쭉 웃어 대는 청명의 뒤통수를 보며, 화산의 제자들이 모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선라마가 빙긋 웃고는 말을 이어 갔다.
“그렇습니다. 윤회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람은 물론이고, 축생, 한낱 벌레 하나마저도 죽으면 또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살아가기를 반복합니다.”
그 차분한 목소리를 듣던 청명의 눈이 일순 살짝 가라앉았다.
“어째서죠?”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벗어나지 못했다?”
“예.”
반선라마가 손에 든 염주를 천천히 매만졌다.
“생이란 순환하는 거대한 수레바퀴와도 같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안에서 억겁의 세월을 살아가고 또 살아갑니다. 그러며 죄를 짓고, 공덕을 쌓고, 배우고, 또한 깨달아 가는 것이지요.”
“…….”
“불법이란 너무도 깊어 한 생의 깨달음만으로 깨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깨달음을 이뤄 갑니다. 석가께서도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의 윤회를 반복하신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지요.”
가만 듣던 청명이 획 뒤를 돌아보았다.
“야. 삼아승지겁이 뭐냐?”
“……도저히 셀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시주.”
혜연의 설명을 들은 청명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다시 반선라마를 보았다.
“아니, 석가께서도요? 석가면 불교에서는 완전 끝내주는 부처님 아닌가요?”
“……예.”
처음으로 반선라마의 대답이 살짝 늦게 나왔다. 이를 느낀 화산의 제자들은 일제히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면목이 없습니다.’
‘창피해.’
눈앞에 있는 이가 반선라마든 소림 방장이든, 청명은 청명이었다.
다행히 나지막이 게송을 왼 반선라마는 빠르게 다시 평정을 찾고 말을 이었다.
“사람이 불도를 걷는 것은 그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번뇌와 업을 끊어 내면 마침내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어…….”
청명의 시선이 어린아이……. 아니, 대활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그 말을 하시는 건, 이 아이가 전대의 대활불이 윤회해 태어난 것이다? 뭐 그런 뜻이에요?”
“그렇지요. 시주께서는 정말 똑똑하십니다.”
“헤헤. 에이, 누구라도 알아맞히겠구먼. 헤헤헤.”
그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쑥스러운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를 본 화산의 제자들은 정말이지 벌떡 일어나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반선라마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가는 접어 두고라도, 일단 저 사람의 인성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저, 그런데…….”
가만 대화를 듣고 있던 백천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말씀하시지요.”
“이건 조금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 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평온하고 자비로운 반선라마의 얼굴에 용기를 얻은 백천이 물었다.
“조금 전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부처가 되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면…… 대활불께서는…….”
반선라마가 빙그레 웃었다.
“아, 그게 궁금하셨구려. 달뢰라마께서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시자, 살아 있는 부처십니다. 그러니 언제든 윤회의 굴레를 벗으실 수 있지만, 중생을 구제하고 그들을 불법으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 윤회를 자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
“그 증거로 달뢰라마께서는 입적에 드실 때, 다음 자신이 태어나실 곳을 미리 말씀하시어, 제자들로 하여금 찾게 하십니다.”
“그, 그게…….”
백천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마터면 그게 말이 되느냐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이 천막에 들어온 이후로 들은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희는 달뢰라마의 가르침대로 그분을 찾아 포달랍궁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중앙에 앉은 아이에게로 꽂혔다.
‘진짜로 저 아이가…….’
‘대활불의 환생?’
눈앞에 있는 어린 대활불에게서는 딱히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난히 깊고 반짝이는 두 눈이 인상적일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백천은 청명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조금도 참지 못하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따져 묻거나, 어린 대활불에게 말을 걸어 슬슬 떠보았을 놈이,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말이 없었다.
게다가…….
‘왜 등이 무거워 보이지?’
혹 이 대화에서 청명이 심각하게 여길 만한 것이 있었나?
그런 백천의 의문을 알았는지, 청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의 시선은 오롯하게 어린 대활불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대활불은 전생의 자신을 완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옴 마니 반메 훔.”
반선라마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달뢰라마께서는 전생은 물론이고 그 이전의 삶도 기억하십니다. 하지만 윤회의 굴레를 겪은 이는 전생을 잊어야 하다 보니 그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렀던 이가 스스로를 불완전한 상태에 던지고 다시 불법을 완성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일입니다. 달뢰라마께서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시밭길에 던지셨습니다. 그렇기에 라마들을 달뢰라마를 살아 있는 부처라 여기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청명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군요.”
이해가 가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청명은 여기서 더 이치를 따져 물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종교란 그 길에서 벗어나 있는 이에게는 황당하기도 하고, 불합리하기도 한 것이다.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이들에게만 온전한 길이 보이는 것이 종교다.
이들의 눈에는 청명이 따르는 도가의 가르침 역시 황당하고 어이없지 않겠는가.
그때, 청명의 표정을 살피던 반선라마가 조용히 웃었다.
“이제 궁금증은 좀 풀리셨습니까?”
“네. 만나자마자 꼬치꼬치 캐물어서 죄송해요. 제가 머리에 피가 몰리면 앞뒤를 잘 못 가려서.”
“궁구하는 이는 결국 얻는 법이지요. 불자란 대답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나 다름없으니 개의치 마십시오.”
“소림 땡중이랑은 진짜 다르시네요.”
“커허허허험!”
“왜? 차가 목에 걸렸어?”
“끄으응……. 시주.”
혜연이 울상을 지으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청명은 그런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반선라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지만, 어느새 밤이 너무 깊었군요. 오늘은 이만 쉬시고, 내일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시지요.”
“예. 늦은 시간에 무례를 저질렀네요.”
“시주는 참으로 예의가 바르시군요.”
“헤헤헤. 감사합니다.”
저기…….
반선라마님.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신 것 같은데……. 저 아이가 대활불은 맞는 거죠?
백천의 마음속에 숨길 수 없는 의구심이 피어났다.
라마승들은 화산 일행에게 커다란 천막 하나를 통째로 내어 주었다. 자신들의 천막을 치면 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그들은 그저 빙그레 웃고는 제 천막으로 가 버렸다.
다들 조금쯤 불편한 마음으로 그 천막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껄끄러움도 잠시, 삽시간에 밀려드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모두 죽은 듯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깊은 새벽.
타닥. 타다닥.
조용히 천막 밖으로 나와 있던 청명이 연못 앞 불가에 앉아 장작을 던져 넣었다. 불티가 어두운 허공에 살짝 날렸다.
청명의 머릿속은 반선라마와 나누었던 대화로 내내 복잡했다.
‘윤회라…….’
나뭇가지로 불을 뒤적이다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야기야.’
도가에서는 죽으면 모든 것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도와 하나가 된 선인들만이 선계에 올라 세상의 흐름을 돕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 나는 뭐냐고.’
도가의 가르침으로는 청명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반선라마가 말한 윤회도 그의 상황과는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부처라는 대활불조차 윤회를 겪으면 제 기억을 잃어버리는데, 부처는커녕 불법의 불자도 모르는 청명이 온전한 기억을 가진 채 윤회했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럼 대체 나는 뭐냐고.’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장문사형.’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 왔지만, 천마의 부활을 짐작하게 되고, 대활불의 존재를 보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그때였다.
그의 고개가 획 옆으로 돌아갔다.
움찔.
그리고 자신의 옆을 보자마자 답지 않게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뭐…….”
어린 대활불이 기척도 없이 나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한 걸음이나 떨어졌을까 싶은 거리에서 말이다.
놀란 청명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윤회라는 것을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이 아이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청명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그쪽이 진짜 대활불이세…….”
“어이하여…….”
“……응?”
그 순간.
양손을 모아 합장한 대활불의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얼굴이 너무도 숭고하고 슬퍼서 청명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감히 입을 떼기도 힘들 만큼 무거운 분위기가 청명을 내리눌렀다.
“어쩌다 그리되었느냐. 대체 어이하여…….”
“…….”
지독한 비통함이 아이의 눈 속에서 넘실거렸다. 대활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낮게 게송을 외었다.
“가련한 중생아. 험하고 험한 길을 어이 걸으려 하느냐. 아비지옥과도 다를 바 없는 그 삼아승지겁을 어이 걸으려 하느냐. 어이하여…….”
뭐…….
뭐라고……?
“벗어나서는 안 되는 길이다. 어찌하여 벗어났느냐. 가련하고 또 가련한 중생아. 어찌하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대활불의 목소리가 넋을 잃은 청명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대체…….
이자가 뭐라 지껄이는 건가?
대체…….
멍하니 바라보던 청명의 얼굴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청명의 영혼이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더없이 처절하고 슬픈 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