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그럼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4)
"으……."
물.
물……. 목이 타는 것 같…….
"엇?"
벌떡!
몸을 일으킨 그는 눈이 찢어져라 부릅뜨고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여긴?'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아니, 이게 아니고!
혜연이 기겁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 여태 사람이 없는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그제야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혜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크으으으으! 이 스님 술 잘하시네.
- 오옳지. 오옳지! 한 잔 더! 한 잔 더!
- 와! 이제 나발까지 부는데? 낄낄낄낄!
"아,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간밤에 자신이 벌인 추태를 생생하게 떠올린 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마구니야! 마구니가 낀 게야!'
아니. 아니지.
마구니가 낀 게 아니라 마구니랑 술을 마신 게지.
반쯤 의식을 놓았을 때부터 그의 앞에서 낄낄대며 술을 퍼먹이던 청명의 모습이 기억났다.
그 사악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이건 청명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계율을 어긴 것도 모자라서 완전히 나를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불자로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계율을 어긴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배움을 위해 행한 일에 자신을 잊다니!
혜연은 재빨리 의관을 정제했다.
'시간은?'
어스름히 빛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이제 겨우 해가 뜨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면 다른 이들이 눈을 뜨기 전에 몸을 씻고 몸가짐을 바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그는 재빨리 문 쪽으로 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하지만 이내 놀라 입을 쩍 벌린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다리가 놀지?"
"똑바로 휘두르라고! 똑바로!"
"검을 잡고 쓰러질 수는 있어도 검을 놓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어디 검을 놓쳐! 검수가 검을 놓치는 건 죽을 때뿐이야!"
"……."
혜연은 연무장의 광경을 보며 넋을 놓고 말았다.
어제 그와 함께 죽어라고 술을 푸던 화산의 제자들이 전부 땀을 비처럼 흘리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 시간부터 모두가?'
분명 어제 새벽이 되도록 술을 먹었는데, 이 이른 아침부터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수련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저리 과격하게?
아니, 과격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열심히 혹은 열정적으로라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곳은 화영문인데.'
하지만 이 의문 또한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화산의 제자들이 구르고 있는 옆쪽에서 화영문의 문도들 역시 구슬땀을 흘리며 수련에 한창이었다.
"……아미타불."
혜연이 자신도 모르게 불호를 외었다.
'부끄럽구나.'
아무리 술을 마신 것이 처음이라고 하나, 그를 제외한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련을 하는 모습은 혜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화산이 괜히 화산이 아니구나.'
이번 비무대회에서도 화산파의 실력에 감탄하지 않았던가?
그 실력이 공짜로 얻어졌을 리가 없다. 하루하루 자신을 일신해 가며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강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속세의 이들은 산속에서 불법을 걷는 자신들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제 저들이 보인 모습도 그저 다르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본질은 같은 것.
그는 불자이지만, 또한 무의 길을 걷는 이. 무학을 익힘에 있어서 지름길은 없는 법이었다.
"아미타불."
혜연은 잠깐 나태해졌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가장 앞에서 잔소리를 해 대던 청명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낄낄낄낄. 스님 나오셨네."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혜연에게로 쏠린다. 그 시선을 받은 혜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시, 시주. 어제는 제가 추태를……."
"이야, 스님. 술 잘 드시던데?"
"와. 걷는 것 봐. 역시 혜연 스님이다. 내가 그만큼 술을 먹었으면 지금쯤 기어 다녔을 텐데."
"너랑 혜연 스님이 같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관심에 혜연은 어쩔 줄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제 벌인 추태를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청명은 그저 낄낄대며 웃었다.
"저건 어제 민둥머리가 빨개지도록 놀더니, 이제 와 쪽팔려 하네."
"어허. 스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럼…… 이제 와 창피해하시네?"
"민둥머리다! 민둥머리가 문제라고! 스님한테 민둥머리가 어디 할 말이냐! 듣는 민둥머리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냐!"
"……그만 강조해, 사숙."
가끔 보면 백천이 더 나쁜 놈이다.
어쨌든 청명은 다시 낄낄대며 혜연에게로 다가섰다.
"잘 잤어?"
"자, 잘 잤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 방에 들어갔는지가 잘……."
"뭘 어떻게 들어가. 술 먹고 뻗어서 사람들이 옮겼지."
아미타불.
혜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제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술을 푸고 있는 자신에게 달려가 나한각을 갈겨 버릴 것이라고. 어쩌자고 그리 대책 없이 술을 마셔 댔단 말인가?
"어때?"
"……예?"
"재밌었지?"
"……."
혜연이 조금 멍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재미?
재미라.
"……저는……."
청명이 씨익 웃었다. 지금은 그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있으려면 마음을 편히 먹어. 소림에서와 같은 걸 경험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것 아니야?"
"아미타불."
혜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의 말이 맞습니다."
조금 밝아진 혜연의 얼굴에, 청명이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일단 밥부터 든든하게 먹고. 오늘도 밥값을 해야지?"
"예!"
혜연이 더없이 밝게 대답했다.
"……."
밥상 앞에 앉은 혜연의 입가가 움찔움찔했다.
모두 신나게 밥을 먹고 있었지만, 그는 숟가락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고기.
그리고 고기.
또 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로 구성되어 있는, 호랑이나 먹을 것 같은 식단이 그의 눈앞에 잔뜩 펼쳐져 있었다.
'이, 이걸 뭐 어찌……?'
육식을 할 수 없는 그의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과 같은 것들이었다.
'아니, 보통 사람이 이런 걸 먹나?'
육식을 금하는 소림처럼 완전한 채식을 하지야 않겠지만, 그렇다고 밥으로 고기를 종류별로 먹는다는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어 봤다.
대체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그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그때였다.
"아이고, 시원하다."
목욕간에 다녀온 청명이 터덜터덜 그 앞을 지나다가 움찔하며 고개를 획 돌렸다.
이윽고 그의 눈이 혜연과 그 앞에 놓인 식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
청명이 황당하다는 듯 잠깐 굳어 있다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사혀어어어어어엉!"
"뭐, 뭐냐?"
윤종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왜?"
"아니! 어느 미친놈이 중 앞에다가 고기를 깔아 놨어!"
"……응?"
윤종 역시 혜연 앞에 놓인 그릇들을 보더니 기겁을 했다.
"아, 아니……. 이게……."
"풀떼기가 없잖아! 풀떼기가! 염소 키운다 생각하고 풀을 먹여야지! 어디 중한테 고기를 들이밀어?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죄, 죄송합니다, 스님. 저희가 미처 생각을 못 해서."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청명과 윤종의 반응이 너무 격하자 혜연은 되레 화들짝 놀라선 송구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얻어먹는 놈이 음식을 가려 죄송합니다. 남는 밥이라도 있으면 한 덩이……."
"풀떼기를 가져다주라고! 풀떼기를!"
"좀 조용히 좀 해라! 정신 사납다!"
혜연이 연신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 죄송하게 됐습니다. 웬만하면 제가 불편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래?"
내내 난리를 치던 청명이 그 말을 듣더니 살짝 반색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한번 먹어 볼래?"
"아니, 이 미친놈아! 좀!"
"저건 뭐 걸리는 것만 있으면 해 볼래야!"
"스님한테 고기를 먹이는 게 말이나 되냐! 생각을 좀 하라고, 인마!"
어느새 달려온 백천과 다른 제자들이 청명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발끈한 청명이 소리쳤다.
"어제 술은 잘도 처먹던데 고기는 왜 안 돼!"
푸욱!
청명의 말이 비수가 되어 혜연을 찔렀다.
"그거랑 이거랑 같냐?"
"뭐가 달라? 술이나 고기나 어차피 뭘 처먹어도 땡중인 건 매한가지지!"
푸욱!
이번 비수는 조금 더 날카로웠다.
"윤종아."
"예, 사숙."
"저거 치워라."
"예!"
백천의 명에 윤종과 조걸이 청명의 좌우로 달라붙어 그를 멀리까지 끌고 갔다.
"놔! 이거 안 놔?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끌려가는 와중에도 입은 쉬지 않는 청명을 보며 백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스님. 지금 바로 식사를 새로 준비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시주."
혜연이 살짝 힘겨운 한숨을 내쉬었다.
청명에게 적응하는 길은 아직 너무도 멀고 험난한 것 같았다.
"서안을 돈다고 하셨습니까?"
"어. 왜? 하기 싫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사람들 많은 데로 나가기가 민망하다고?"
"……."
혜연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침묵으로 긍정하자 청명이 혀를 찼다.
"내가 알기로 소림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
"그렇습니다. 스스로 불법을 닦아 부처가 되는 것도 더없이 훌륭한 일이지만, 다른 이들을 극락정토로 이끄는 것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안 만나고 무슨 수로 구제를 할 건데?"
"……."
청명의 말에 혜연이 아픈 곳을 찔린 듯 움찔했다.
"어차피 소림에 돌아가면 그 깊은 숭산에 박혀서 향화객이나 만나겠지. 하지만 네가 구제해야 할 사람들은 이런 곳에 있다. 그렇지 않아?"
"……도장의 말씀이 맞습니다."
"소림에서 얻지 못했던 것을 얻으려면 소림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 봐야지."
혜연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의 말이 진실로 올바르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 준비해. 가자."
"예!"
혜연이 마침내 결심이 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분명 툭툭 던지는 말에 불과한데도 그 속에 핵심이 있다. 과히 포장하지 않고, 대단한 말을 하려는 의도도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와닿는다.
'저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는지.'
혜연이 살짝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청명은 그 뒤에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아직 한 오십 명은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도들이 미친 듯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화영문이 감당할 수 있는 인원만큼을 모두 채우지는 못했다.
혜연을 끌고 서안을 좀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홍포를 입은 민둥머리만큼 눈에 잘 띄는 사람도 없으니까.'
청명이 흐뭇하게 웃으며 혜연을 재촉했다.
"자, 얼른 준비해."
"예, 시주!"
하지만 그런 청명의 속내를 모르는 혜연은 그저 밝기만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혜연과 화산의 제자들이 화영문을 나섰다.
"그런데 왜 나가는 겁니까?"
"겸사겸사."
조걸의 물음에 백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간혹 서안의 분위기를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배우지 않았더냐. 서안에 화영문을 세웠다고 해서 그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저 그런 무관 하나가 설 뿐이다. 서안에 화산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 말한 백천은 슬쩍 청명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저놈은 다른 생각이 있는 모양이지만.'
하지만 청명의 속내를 모두 짐작하려는 건 헛수고이거니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백천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안 중심으로 나 있는 커다란 관도를 따라 걷고 있자니, 혜연이 연신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
"……아. 죄송합니다, 도장. 제가 이런 곳은 처음이라."
"응? 소림 옆에도 낙양이 있잖아. 낙양이 여기보다 더 클 텐데?"
"저는 낙양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엥?"
혜연이 해맑게 말했다.
"저는 살면서 소림을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큰 도시를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런. 쯧쯧쯧."
청명이 혀를 찼다.
보통 명문 대파라 불리는 곳들은 수련에 전념하기 위해 사람의 발길이 크게 닿지 않는 깊은 산중에 자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제자의 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그 안에서 나름의 세상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보면 어린 나이에 입문한 제자들이 오로지 문파 안에서만 살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기지.'
어쩌면 고매하게 도를 닦고 불법을 깨우치는 데는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단절된 채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도든 힘이든 제대로 쓰일 곳에 쓰여야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그래. 사람들이 사는 곳을 눈으로 본 느낌이 어떤데?"
"바빠 보입니다."
"……그거 참 좋은 감상이네."
엄청 빤하고 말이야.
하지만 혜연이 말하는 바쁨은 청명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혜연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치열함이란 스스로와 다툴 때나 그 의미를 지닌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잣거리에서 살아가는 이들 역시 자신만의 치열함을 가지고 있음이 보입니다. 부처란 모든 곳에 있고, 불법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군요."
"……으응?"
그는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초롱초롱 빛나는 그 눈빛에 청명이 움찔했다.
"도장께서는 제게 이걸 보여 주고 싶으셨던 거군요!"
"……어. 그, 그렇지. 그럼."
암.
그렇지.
근데 뭐? 부처가 뭐 어쨌다고?
"실로 감사합니다, 도장."
"……어. 그래."
……어쨌든 깨달았으면 된 거지.
청명이 살짝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산에 처박혀 무학이나 익히고, 도나 닦는 건 대단할 것도 없어. 하루하루 밥벌이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건 신선놀음이나 다름없지."
"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산에서는 겪을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지. 예를 들면……."
와장창!
그 순간 뭔가 독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앞쪽에 있는 집에서 사람이 튕기듯 굴러 나왔다.
"엥?"
"……응. 저런 거."
청명이 피식 웃고는 흥미롭다는 듯 앞을 바라보았다.
자, 이건 또 무슨 일인…….
"응?"
순간 청명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사람이 굴러 나온 집에서 누군가가 뒷짐을 진 채 거들먹거리며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딱히 이상하지 않다.
청명이 인상을 쓴 이유는 걸어 나온 이가 그도 몇 번 본 적 있는 서월문의 문주 남자명이었기 때문이다.
"저 아저씨 진짜 자주 보네. 거슬리게."
남자명 역시 화산의 제자들을 발견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주제도 모르는 이들이 자꾸 눈에 보이는군."
"아니, 근데 저 새끼가?"
청명이 발끈하려 하자 화산의 제자들이 재빨리 뒤에서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가 발작하기 전에 얼른 백천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백천과 남자명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