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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2화 (122/1,567)

122화. 화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지! (2)

산문을 나서는 일행들을 보는 현종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이 드러나 있었다.

"괜찮을까?"

"백천과 윤종을 딸려 보냈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누굴 더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여력이 없습니다, 장문인."

현종이 운암을 바라본다. 운암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현종의 시선을 피했다.

"따라가기 싫은 건 아니고?"

"어른이 낄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다가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쟤들만 보내면 일이 안 커지고?"

……그건 제가 답변드리기가 힘들지요.

솔직히 청명이 꼈는데 일이 안 커지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걱정일세. 걱정이야."

현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상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현종이 뚱한 얼굴로 현상을 바라보았다.

"사제는 이 상황이 우스운가 보군."

"죄송합니다. 장문사형. 하지만 어찌 우습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뭐가 그리 우스운가?"

현상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불과 이 년 전만 하더라도 제자들이 종남에게 망신당할 걸 걱정하던 우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저 아이들이 무당의 제자들을 과하게 팰까 봐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

생각해 보니 그렇다.

화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 상황을 보면, 운 좋게 종남을 한 번 잡았다고 겁대가리를 상실했다고 욕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이 년 동안 백자 배와 청자 배들이 어떤 수련을 해 왔는지 아는 이들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걱정이었다.

"믿고 기다리시지요. 그리 생각 없는 아이들은 아닙니다. 분명 화산의 명성을 천하에 떨치고 돌아올 겁니다."

"명성이야 떨치겠지."

"예?"

"악명도 명성이니까 말일세."

"……."

현종이 멀어지는 제자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쪼록 무탈하게 돌아와야 할 텐데 말일세."

차마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 * *

처음에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 소협.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남영에 당도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는 문제가 없지만, 소협의 체력이 문제지. 그러니 어설프게 뛰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때?

위소행으로서는 찬성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우선 그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남영에서부터 화음까지 전력을 다해 주파하느라 원기가 많이 상한 상태였다.

그리고 설령 원기가 상하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위소행은 무재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라 해도 화산의 진신제자들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 큰 사내가 업혀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괜찮아.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해 내가. 걱정 안 해도 돼.

이때까지는 의외로 믿음직스러웠다.

화음에 내려오자 마자 수완 좋게 말 두 마리와 수레를 구해 왔을 때는 사람의 성격적인 면만 보고 너무 무시하지 않았는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을 정도다.

- 에헤이. 에헤이!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수레 하나 가득 여정 간 먹을 식량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쯤에는 청명이라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아니.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말귀를 못 알아먹어?

그 식량 옆에 정체불명의 병들이 쌓이고, 그 병의 정체가 술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쯤에야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늦어 있었다.

덕분에 이 꼴이다.

"조오오쿠나!"

수레에 드러누운 청명이 꼴꼴대며 술을 퍼마신다.

"……."

위소행은 그 광경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슬쩍 돌려 백천을 향해 말했다.

"도사가 술을……."

"화산은 술을 금지하지 않소."

아, 그거야 알죠. 저도 화산의 속가니까.

그런데 사숙들이 있는데 수레에 드러누워서 술을 먹는 건 좀 아니잖아요?

어쭈? 저건 또 뭐야?

청명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유이설이 그의 입에 육포 조각을 던져 넣는다. 그러자 그는 입 안에 들어온 육포를 아주 자연스레 우물거리며 씹어 젖혔다.

"……."

참 괴이한 광경이다.

육포를 챙겨 주는 모습만 본다면 사형제간……. 아니, 사숙질간의 우애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술을 마시는 사질의 입에 육포를 '던져' 넣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무슨 강아지 간식 던져 주는 것도 아니고.

그걸 던지는 사람이나, 좋다고 받아먹는 인간이나.

위소행이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청명을 바라보고 있자 백천이 넌지시 말했다.

"위 소협."

"예? 아, 예!"

"신경 쓰지 마시오. 어차피 본다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니까."

위소행이 슬쩍 유이설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 드러누워 있는 분이야 그렇다 치고, 저 여자 분은 또 대체 뭐냐는 의미였다.

"마찬가지요."

"……."

이미 남영으로 출발해 버린 상황이지만, 과연 이들을 데리고 남영으로 가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위소행이었다.

"남영까지라면 이틀 정도면 도착할 거요."

위소행의 시선이 앞쪽으로 살짝 돌아간다.

수레를 끌고 있는 준마 두 마리와 마부석에 앉아 있는 윤종과 조걸이 보였다.

'저 말 엄청 비싸 보이는데.'

이런 수레에는 어울리지 않는 준마다.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레는 굉장한 속도로 쭉쭉 나아가고 있다. 확실히 그가 전력으로 달리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중간중간 쉴 필요도 없으니, 선택 자체는 분명 현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꼴꼴꼴꼴.

"크으으으으. 살맛이 난다!"

이상하게 속이 뒤틀린다. 이상하게.

위소행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이 타인의 즐거움을 나쁜 눈으로 보는 소인배라 생각해 본 적이 없건만, 저 청명이라는 사람은 주변 사람의 심기를 뒤틀리게 하는 이상한 면이 있었다.

"위 소협."

"예. 백천 도장."

"화영문은 어떤 곳이오?"

갑작스러운 질문에 위소행이 살짝 대답을 망설이자, 백천이 부연했다.

"캐묻는 건 아니오. 다만, 급히 출발하느라 자세한 것들은 듣지 못했소. 화산의 속가 중 화영문이라는 곳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곳에 직접 일을 처리하러 가는 만큼 조금 더 많이 알고 가면 좋을 듯싶소이다."

"아,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생각하느라……."

위소행이 머쓱하게 말끝을 흐리며 뒷머리를 긁었다.

"딱히 특별할 건 없는 곳입니다."

"충분히 특별합니다."

백천이 살짝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화산의 속가라는 건 최근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화영문은 스스로 화산의 속가임을 당당히 밝혀 왔습니다. 천하를 다 뒤져도 화영문 말고는 그런 곳이 없었을 겁니다."

백천의 말에 드러누워 있던 청명마저도 살짝 시선을 돌려 위소행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아버님께서 스스로가 화산의 제자임을 자랑스러워하셨을 뿐이지요."

그 말을 하는 위소행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고생했겠네.'

드러누워 귀만 기울이던 청명이 살짝 혀를 찼다.

아마 위소행은 화산을 그만 포기하자고 수도 없이 말했을 것이다. 애초에 세상이 그렇다. 사람들은 약한 무학은 익히려 들지언정, 망해 가는 문파의 무학을 익히려 하지는 않는다.

화산을 아는 이들은 화산을 알기에 배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화산을 모르는 이들은 화산을 모르기에 배우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화산의 속가라는 현판을 내려 버렸다면 운영이 더 쉬웠을 수도 있다.

"마지막 화종지회 이야기를 듣고 아버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화산이 이제야 다시금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며 드시지 않던 술을 두 동이나 비우셨지요."

"음."

백천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서 화산의 제자임을 자랑스레 생각하셨다 했습니까?"

"예. 정확하게는 화산의 제자라기보다는 증조부가 화산의 속가제자인 것이지만……. 여하튼 당신은 그리 생각하셨습니다. 평생의 한이 화산의 진신제자로 입문하지 못한 것이라 종종 말씀하셨지요."

백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아버님께서는 화영문을 운영하시며 무척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게다가 운이 따라 주어 배곯지는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저 종도관 놈들이 패악질만 부리지 않았더라도……."

"문주님께서 종도관주와의 비무에서 패하셨다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도 솔직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위소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님께서는 평생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웬만한 젊은이들에게 패할 정도는 아닙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다.

무학을 익히는 이들은 시간과 함께 강해진다. 평범한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육체가 노쇠하고 근력이 약해지지만, 무인들은 육체의 노화가 늦고 내력이 쌓이기 때문에 점차로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노약자가 아니라 노강자가 득실대는 곳이 바로 무림이었다.

"하지만 종도관주는 지나치게 젊었습니다. 그 젊은 사람에게 아버님이 패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음."

백천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이상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군.'

처음에는 단순히 속가문파들끼리 시비가 붙은 걸로만 생각했는데, 듣자 하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장문인이 그를 따로 불러 언질을 준 것도 있고 말이다.

위소행은 살짝 백천의 눈치를 보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합니다."

"뭘 말이오?"

"아버님께서는 화산에 도움을 청하라 하셨지만, 저는 솔직히 화산이 이리 흔쾌히 도와줄 줄은 몰랐습니다."

"아."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무당을 상대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저희도 그래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뜻 도와주실 줄은……."

위소행이 목이 멘다는 듯이 잠시 말을 멈췄다. 백천은 그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입을 가리고 두어 번 헛기침을 한 위소행은 살짝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아버님께서 그리 화산을 입에 달고 사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저는 평생 본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훈훈한 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수레에는 훈훈한 말을 들으면 닭살이 돋는 병증을 가진 놈이 타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청명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유이설이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꾹 누르자 올라오던 몸이 다시 천천히 내려간다.

하지만 주둥아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이라니! 결과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 새끼들 대가리를 다 쪼개 버려야지!"

"장문인이 하지 말라 하지 않으셨더냐."

"은근히 바라고 계실걸? 장문인도 앞으로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으셨는데 내가 그 전에 무당 놈들 대가리 깨는 걸 보여 드려야지! 그래야 등선하실 때 웃으면서 가실 거 아냐?"

어떻게 겨우 몇 마디 안에 장문인에 대한 공경과 패륜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도가에서 제일 바라는 게 무당 놈들 때려잡는 거 아냐?"

어?

어……. 그게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 기회에 보여 드려야지!"

청명의 눈이 불타올랐다.

"웬만하면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에이, 그건 아니겠지. 내가 너를 아는데.

"저 새끼들이 먼저 건드린 거야. 그럼 벌을 받아야지. 대사형! 뭐 해! 속도 높여!"

"지금도 빨리 달리고 있다. 너무 급하면 말들이 지쳐."

"걔들이 돈이 얼마짜린데! 괜찮아, 괜찮아! 다른 말들보다 두 배는 더 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속도 높여!"

"끄응."

윤종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 엉덩이를 두드렸다.

수레 속도가 높아지자 청명의 몸이 들썩였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화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지!"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백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은 지금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

화산도 감당 못 하는 전대미문의 망나니가 남영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순진하게, 희망에 부푼 채 남영에 도착할 무당의 제자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보내는 백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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