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48화 (148/150)

< 천왕성 작전 (9) >

1942년 5월 26일

독일 폴란드 보호령

비트만은 지금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됐을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본 비트만은 시간이 이미 다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했다.

물의 온도로 추정하건대, 조금 더 기다려야지 싶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낼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했다.

3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났다. 비트만의 옆에 자리 잡은 볼은 초조한 얼굴로 비크만을 곁눈질했다.

“지금일까요?”

“......좋아, 열어!”

지이익.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무럭무럭 솟구치며 알맞게 익은 면발이 보였다.

포크로 면발을 감아서 들어 올리자 면발이 끊김 없이 주욱 올라왔다.

“잘 익은 것 같군.”

“아주 맛있게 익었습니다.”

“얼른 먹자고.”

전쟁이 터지고 처음으로 맛보는 식사였다.

퓌러누델 자체만으론 칼로리 소모가 많은 군인의 한 끼 허기를 달래기엔 양이 조금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병사들은 퓌러누델에 완두콩 통조림이나 소시지를 잘라서 첨가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양을 보충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뜨거운 물이 필요하며 외부의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간편하고 빠르게 식사를 끝낼 수 있다는 장점과 보통의 독일 요리에선 맛보지 못한 맛과 식감 덕에 퓌러누델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기름에 튀겨서 만든다는 특성상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경고가 따라붙지만, 몸에 지방이 축적될 시간조차 없는 전장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경고였다.

퓌러누델의 밑바닥에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입에 털어 넣은 후 비트만은 담배를 꺼냈다.

베를린은 유노를 피운다-그가 애용하는 유노의 담뱃갑에 늘 새겨진 문구였다.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34분. 보통은 꿈나라에 있을 시각이지만 비트만의 소대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깨어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원칙상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깨어있어야 하지만, 이미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비트만은 유도리 있게 군 생활하는 법을 잘 알았다.

“1시간 단위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눈 좀 붙이자고. 하셀, 너 먼저 자라.”

가뜩이나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스트레스와 긴장, 피로가 쌓였는데 여기에 잠까지 못 자면 싸워야 할 때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었다.

무조건 깨어있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비트만은 실전을 통해 알고 있었다.

“전쟁이 얼마나 오래갈까요? 폴란드에서 이탈리아까지 1년도 안 걸렸는데.”

볼의 질문에 비트만은 담배를 피우다 말고 대답했다.

“소련 놈들은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그보다는 더 걸리지 않겠어? 1년, 아니 2년은 잡아야 할지도.”

그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면 전쟁이 끝나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 전쟁은 좀처럼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소련이 먼저 불가침조약을 깼으니, 소련이 독일에 휴전을 제안하더라도 독일이 과연 소련의 요청을 받아들일까?

어중간한 조건으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적어도 이쪽이 만족할만한 조건을 내걸어야 할 텐데.

어찌어찌 일이 잘 풀려 겨우 강화를 맺었다고 해도, 한 번 배신했으니 두 번 배신하지 말란 법은 없다.

결국에는 두 나라는 계속해서 대립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시 전쟁이 일어날 테고, 그때는 강화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진정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망할 볼셰비키 놈들 때문에, 전 유럽이 전쟁이라는 굴레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그렇게 생각하니 비트만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전쟁 일으킨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가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지....

-콰아앙!!

별안간 전방에서 들려온 폭음에 비트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150m 앞에 포탄이 착탄하면서 생긴 화염이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수십, 수백 발이 넘는 포탄의 비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포격이다! 모두 주의!”

비트만은 해치를 걸어 잠근 뒤 자세를 낮췄다. 소련군의 152mm 포탄이 착탄하면서 생기는 진동이 땅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지면에 착탄한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흙과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보병들도 참호에 몸을 숨기곤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포탄이 날아오면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윽고 포탄이 땅에 처박혀 폭발하는 굉음과 진동이 느껴질 때면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20분 가까이 이어지던 포격은 후방에 위치한 독일군 포병들이 대포병사격을 시작한 후에야 끝을 맺었다.

소련군 포병의 위치를 파악한 독일군의 호르니세 자주포 12대가 불을 뿜자, 소련군의 포격은 칼로 잘라낸 것처럼 뚝 끊어졌다.

포격이 그치자 비트만은 해치를 열었다.

포격의 영향으로 전차 포탑 위에는 흙이 두텁게 쌓여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흙이 쌓였는지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면 작물이 자랄 수 있으리라 여겨질 정도였다.

“모두 기기 점검해. 이상 있으면 나한테 보고하고.”

“예!”

격렬한 포격이었지만, 다행히 전차에 이상은 없었다. 조종계통, 포탑, 무전기, 안테나 모두 멀쩡했고 라디에이터도 이상이 없었다.

소대의 다른 전차들도 모두 이상 무. 전차 밖 참호에 있던 보병들도 대체로 무사한 편이었다.

“여기는 케사르. 전 차량 이상 없음. 전투 가능, 이상.”

-여기는 오렌지, 알았다. 곧 손님들의 방문이 있을 예정이니 접대에 주의를 기울이길 바란다, 이상.

“수신.”

중대장과 무전을 끝내기 무섭게 T-34의 엔진음이 들렸다. 쌍안경을 눈에 갖다 대자 줄지어 몰려오는 T-34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오는구만.”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적들의 수는 많았다. 아니, 전보다 더 는 것 같았다.

적 전차들의 수를 세던 비트만은 숫자가 30을 넘어가자 세는 것을 포기했다.

“씨발. 존나게 몰려오는군.”

비트만은 포탑에 쌓인 흙 위로 침을 뱉은 뒤 포탑 안으로 들어갔다.

비트만의 지시가 따로 없어도 리히터는 가대에서 철갑탄 한 발을 빼내 약실에 밀어 넣었다.

“장전 완료.”

“전 차량에게 알린다. 이번 손님들의 수가 앞의 손님들보다 많은 관계로 1800에서 시작한다. 반복한다. 1800에서 시작한다.”

각 전차로부터 수신 신호가 들어오자 비트만은 다시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적은 T-34만 있는 게 아니었다. T-34 사이로, T-34보다 전고가 높은 전차들이 몇 대 섞여 있었다.

“저기 모아이 석상처럼 생긴 놈은 뭐죠?”

조종수용 관측창으로 적진을 주시하던 하셀이 물었다.

저놈 이름이 뭐더라? KV 뭐시기였던 것 같은데.....

“KV-2였나? 그래, KV-2가 맞을 거야. 포탑에 152mm 포 달았다는 놈.”

포탑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전고가 높은 전차의 정체는 KV-2였다. 그리고 KV-2와 전고가 비슷한데 생김새가 조금 다른 놈도 있었다.

주포는 T-34의 76mm, KV-2의 152mm 주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 길었다.

비트만은 저놈의 정체가 KV-3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피아식별표를 집중해서 본 보람이 있었다.

“T-34는 뒤로 미루고, KV부터 노려라. 저놈들의 주포는 76mm 전차포보다 훨씬 위협적이니까.”

KV-2와 KV-3는 76mm 주포로 무장한 T-34, KV-1보다도 위험한 놈들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것을 기억해낸 비트만은 무전으로 다른 전차들에도 KV 중전차를 우선적으로 노리라고 지시했다.

KV-2와 KV-3는 T-34보다 전고가 높아 조준하기도 한결 더 쉬웠다.

“T-34만으론 여길 뚫는 게 힘들다고 여긴 걸까요?”

탄약수용 관측창에서 눈을 뗀 리히터가 말했다.

“그렇겠지? T-34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으면 저 괴물들을 끌고 올 이유가 없지.”

거리 2,000m. 비트만이 예고한 1,800m까지 이제 200m를 남겨두고 있었다.

볼은 심호흡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적과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1,860. 1,850. 1,840. 1,830....

“거리 1,800, 쏴!”

4문의 88이 포구에서 불을 내뿜고, 돌격하는 소련군 진영에서 각기 다른 4개의 폭발이 일었다.

“격파!”

볼이 노린 KV-2는 유폭이 일어나 포탑이 날아가 버렸다.

차내에 적재된 152mm 포탄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생긴 에너지는 무게 십수 톤에 달하는 KV-2의 포탑조차 축구공마냥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전차의 몇 배 크기에 달하는 폭발에 휘말린 T-34가 옆으로 전복되고 전차에 탄 보병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포탑이 날아가고 차체만 덩그러니 남은 KV-2의 모습은 마치 목 잘린 닭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장전 완료!”

“이다음은 11시와 12시 방향 사이에 있는 놈이다.”

비트만의 다음 목표물은 KV-3였다. 곧 볼의 입에서 조준 완료 소리가 나왔다.

“발포!”

포구에서 섬광이 이는 순간 88mm 주포가 후퇴했다가 곧장 전진했다.

“튕겼습니다!”

포탑 정면에 명중한 철갑탄이 노란 꼬리를 물며 위로 튕기는 광경을 본 비트만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포탑 정면이 곡선 형태로 되어있다보니 주포 부근을 정확하게 조준해서 쏘지 않는 이상, 관통이 힘들지 싶었다.

“볼, 포탑 말고 차체를 노려. 차체는 포탑보다 장갑이 얇을 거야.”

“알겠습니다!”

비트만의 충고대로 볼은 KV-3의 포탑 대신 차체를 조준했다.

“조준했냐?”

“예, 조준했습니다!”

“그럼, 발사!”

“쏴!”

KV-3의 전면장갑은 티거보다 두꺼운 120mm로 붉은 군대가 보유한 전차 중에 가장 뛰어난 방어력을 가졌지만, 간발의 차이로 88mm 철갑탄을 방호해내지 못했다.

100m만 더 뒤에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뒤로 되돌릴 수 없는 법.

겨우 방호에 성공했더라도 KV-3의 전차병들은 포탄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결과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발의 압력에 못 이겨 날아간 해치 밖으로 불길이 솟구치는 모습을 본 비트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격파!”

***

동프로이센과 폴란드 보호령 북부 방어를 맡은 북부집단군의 사령부는 쾨니히스베르크 한복판에 위치한 모차르트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벽지가 발라진 벽에는 가격이 최소 몇백 라이히스마르크일 법한 비싼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 깔린 카펫은 이란에서 직수입한 물건으로 역시나 보통의 임금을 받는 서민들은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비싼 몸값을 가졌다.

평소에는 돈 좀 벌었다고 자부하는 부자들이나 돈 많은 사업가, 관광객들이 주로 드나들던 호텔에, 지금은 칙칙한 회녹색 군복을 차려입은 군인들이 드나들었다.

“SS 친구들이 열심히 싸워주고 있군. 분하지만 순수 전투력에선 어지간한 육군 사단들보다 위에 있다는 힘러 말이 사실인 것 같네.”

최전선에 배치된 4개 무장친위대 사단-LSSAH, 다스 라이히, 토텐코프, 비킹-은 흠잡을 구석이 하나도 없는 뛰어난 전투력을 보이며 소련군이 공격해오는 족족 격퇴하고 있었다.

무장 SS 사단들의 뛰어난 전투력에는 육군 사단들보다 우선적으로 지급되는 최신식 장비들의 존재도 한몫하지만, 육군보다 훨씬 혹독한 훈련과 규율, 그리고 총통의 친위대라는 자부심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레프의 칭찬에 육군 소속 장군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SS의 전투력은 수준급이었으니까.

육군 내에선 GD 사단이나 힌덴부르크 기갑사단, 총통척탄병사단, SA까지 포함한다면 펠트헤른할레 기갑사단 정도는 되어야 상기한 무장 SS 사단들과 비교가 될 것이다.

“각하, 방금 메멜에서의 철수가 완료되었다고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소장 계급의 참모장의 보고에 레프는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멜의 방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주민들의 철수가 끝나는 즉시 후퇴해야 한다고 만슈타인에게 건의한 이도 레프였고, 만슈타인도 레프의 의견에 동의하여 메멜의 조기 함락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짰다.

계획대로 민간인들의 철수가 끝났으니 소련군의 진격을 가로막고 있는 사단들도 후퇴시켜야 했다.

“90경보병사단에 철수해도 좋다고 전하게. 그리고 90경보병사단의 후위를 맡을 부대로 폴란드인 보조부대와 존더코만도를 투입하게.”

“예, 각하.”

레프는 폴란드인 보조부대와 존더코만도를 예비대로 후방에 배치했다가 이들을 제때 전선에 투입했다.

적의 진격을 늦추고 아군의 퇴각을 엄호할 용도로 쓰기에 보통의 사단들을 동원하기에는 아까운 감이 없잖았지만, 폴란드인들로 구성된 부대라면 얘기가 달랐다.

어차피 3선급 부대로 분류되는 전력들이라 소모되어도 전혀 아쉬울 게 없는 데다 다른 사단들을 아낄 수 있어 레프는 보조부대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물론 보조부대들에도 적절한 지원을 해줄 예정이었다.

그래야 되도록 오랫동안 적의 발목을 잡아끌 수 있을뿐더러 이후에도 여러 번 써먹을 수 있을 게 아닌가.

“틸지트의 44보병사단과 73보병사단도 예비방어선까지 후퇴시키게. 후위는 존더코만도에게 맡기고.”

힘러의 제안으로 유대인 특별부대, 존더코만도를 창설할 때 군에서는 말이 제법 많았다.

아무리 총통이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다, 유대인이든 화성인이든 간에, 독일인이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해도, 기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

총통의 지시를 어기는 것이 두려워 겉으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 유대인들을 혐오하는 자들은 국방군에도 차고 넘쳤다.

그런 역겨운 종자들로만 구성된 부대를 구성하자니,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그나마 파르티잔 토벌에 투입된 존더코만도들이 제법 괜찮은 성과를 내자 반대의 목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존더코만도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시선들이 많았다.

레프는 국방군에 자리한 인종주의자들과 거리가 있는 편이었지만, 그런 그도 고결한 국방군 사단들의 희생을 덜기 위해 존더코만도를 대신 사지로 투입하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애당초 국방군이 흘릴 피를 대신 흘리게 할 용도로 창설한 부대이니 무슨 상관인가? 독일을 위해 싸우겠다고 자원한 이들이니, 독일을 위해서 죽는 것에 불만이 없겠지.

죽은 이들에겐 무덤을 만들어주고, 살아남은 이들은 보통의 병사들처럼 대우하며 개중에 공을 세운 이들에겐 훈장 몇 개를 던져주면 될 일이다.

모두가 만족하고,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완벽한 방법이 아닌가.

***

쿨리크가 크렘린으로 보낸 전보는 스탈린의 들끓는 속을 조금이나 진정시키는 듯했다.

메멜 함락. 예정보다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고, 병력과 물자의 피해도 컸지만, 아무튼 쿨리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나 완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와 비슷하거나 더 큰 피해를 받고도 전진은커녕 제자리걸음만 하는 장군들과 비교하면 쿨리크는 선녀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스탈린에게는.

“쿨리크를 발탁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소. 보시오.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승리라는 단어를 현실화시키지 않았소.”

“그,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서기장 동지의 혜안에 늘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만족감을 느끼며 스탈린은 쿨리크에게 예정대로 쾨니히스베르크로 남하하라고 지시했다.

메멜 함락 소식에 차분함을 되찾은 스탈린은 잠을 자러 침실로 향했다. 자신이 눈을 떴을 때, 비슷한 소식이 여러 개 도착했기만을 바라며.

그러나 눈을 뜬 스탈린을 기다리고 있는 건 그가 간절히 바란 승전보가 아닌 정반대의 소식들뿐이었다.

“허. 이거 참....”

무르만스크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노르웨이를 폭격하러 출격한 Pe-2 20대 중에 8대만 달랑 살아서 복귀했다는 보고에 스탈린은 눈살을 찌푸렸고, 뒤이은 핀란드 소식에 입술을 비틀었다.

노르웨이 공군, 혹은 독일 공군과의 전투에서 추락한 폭격기 중 일부가 핀란드 영토에 불시착했고, 폭격기 몇 대는 적기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핀란드군의 대공포에 격추당했다.

핀란드는 생포한 소련군 조종사들을 소련 측에 인계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스탈린은 자국 폭격기들이 핀란드군의 대공포에 맞아 추락한 사실에 주목했다.

“혹시 핀란드도 독일과 한통속인 거 아니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말 그대로요. 우리 공군의 폭격기들이 핀란드군의 대공포에 격추당했다잖소. 어쩌면 핀란드가 미리 독일, 노르웨이와 짜고 이런 일을 벌였을 수도 있잖소?”

스탈린이 확신에 찬 말투로 말하자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측근들도 스탈린이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눈치를 채곤 한목소리가 되었다.

“확실히 핀란드가 의심스럽긴 합니다.”

“서기장 동지의 말씀대로 핀란드 놈들이 독일 놈들과 손을 잡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미 핀란드는 독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교관을 초청해서 군대를 육성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한통속일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이미 한통속일 겁니다.”

사실 스탈린도 핀란드가 독일과 짜고 소련을 엿 먹이려 했을 가능성은 작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핀란드를 압박해서 노르웨이로 갈 수 있는 길을 얻어낸다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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