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49화 (149/150)

< 천왕성 작전 (10) >

1942년 5월 27일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 관저

“허어, 하늘도 참 무심하시군.”

사망한 퀴외스티 칼리오를 대신해 핀란드 대통령이 된 리스토 뤼티의 넋두리에 배이뇌 탄네르 외무장관과 요한 빌헬름 랑겔 총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소련이 독일을 공격하고, 노르웨이가 독일을 도와 참전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조만간 핀란드에도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노르웨이 공군이 무르만스크를 폭격하는 데 이어 보복 폭격에 나섰던 소련 폭격기들이 핀란드 상공에 격추되어 추락하거나, 핀란드군의 대공포에 맞아 격추되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기 싫었던 핀란드는 전쟁이 터졌을 때부터 중립을 선언한 상태였고, 자국 영토에 떨어진 소련군 조종사들을 지체없이 소련에 송환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전쟁을 피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핀란드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소련은 핀란드에 협박에 가까운 전보를 보내왔다.

핀란드에 머무는 독일인 교관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붉은 군대가 노르웨이를 응징할 수 있게끔 국경을 개방해 영토 진입을 허가하라.

이를 거부할 시 소련은 핀란드가 소련에 적대 의사가 있다고 판단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다.

“역겨운 빨갱이 새끼들. 이건 사실상 선전포고가 아니오!?”

뤼티는 소련의 전보를 구기며 울분을 토했다. 그의 분노가 어린 고함에 탄네르와 랑겔 역시 공감했다.

하지만 핀란드엔 소련에 맞설 힘이 없다.

비록 독일을 통해 무기를 수입하고 교관들을 초빙해 군사력 강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소련 붉은 군대와 맞서기에는 핀란드군의 규모는 너무 작았고, 지켜야 할 국경은 너무 넓었다.

“방금 스웨덴 정부도 소련에 선전포고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스웨덴까지 독소전쟁에 끼어들었다는 탄네르의 말에 뤼티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아이고, 머리야.

노르웨이를 칠 예정이니 길을 내놓으라고 소련이 성화인데, 이제는 스웨덴까지 끼어들었으니 소련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터.

아예 핀란드 북부뿐만 아니라 핀란드 중부지역의 철도와 도로까지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 욕심 많은 스탈린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그렇다고 소련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전쟁이 터질 게 뻔한 노릇.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만네르하임 원수.”

결론이 서지 않았던 뤼티는 손에 깍지를 끼고 앉아있는 만네르하임을 쳐다봤다.

비록 서열상으론 대통령보다 아래인 만네르하임이었지만, 핀란드군 총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직함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뤼티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뤼티의 부름에 만네르하임은 고개를 슬쩍 돌려 22살이나 어린, 자신의 아들뻘 되는 대통령의 눈을 응시했다.

만네르하임의 시선에 뤼티는 기가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말씀하시지요, 각하?”

“우리 군의 전력으로 소련군에 맞설 수 있겠소?”

뤼티의 질문에 만네르하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각하께서 소련군과 싸우라고 지시하신다면, 우리 군은 마땅히 그 지시에 따라 사력을 다해 싸울 겁니다. 2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요.”

“흐음....”

만네르하임의 말에 뤼티는 약간이나마 용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때 랑겔이 발언했다.

“각하, 소련은 독일과 전쟁 중인 관계로, 소련군의 주력도 모두 독일에 가 있을 겁니다. 저들이 핀란드를 공격하더라도 이미 주력이 독일 일대에 가 있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병력과 물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소련은 전보다 사정이 더 나빠진 반면, 우리 군은 2년 전보다 전력이 크게 강화된 상태입니다. 거기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소련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한 관계로 이전처럼 지원에 소극적이지 않을 겁니다. 2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란 말입니다. 고로 소련군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확신에 찬 랑겔의 말에 뤼티는 기대가 섞인 눈으로 만네르하임을 쳐다봤다. 그도 총리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핀란드 단독으로 소련과 붙는다면 승산이 없지만, 확실히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다를 것입니다.”

독일과 주변국의 지원으로 핀란드군은 겨울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

제대로 된 기갑장비가 드물어 화염병으로 소련군의 전차에 맞서야 했던 과거와 달리 작금의 핀란드군은 독일로부터 수입한 4호 전차, 헷처, Bf109, 슈투카 등의 우수한 장비들로 무장했으며 국경을 따라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방어선도 있다.

아직 미완성 상태이긴 하나,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

계절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인 게 마음에 걸리지만, 이 정도면 한 번 해볼 만한 전력이었다.

비록 전쟁이 터지면 수많은 사람이 죽고, 국민은 다시 고통을 받게 되겠지만 총 한 발 쏴보지도 않고 무력하게 길을 내주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그래. 독립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러시아 놈들의 노예로 살 순 없는 노릇이지.”

결심을 굳힌 뤼티는 탄네르를 마주 보았다.

“모스크바에 보낼 답장을 작성하시오. 귀국의 요구사항을 우리는 들어줄 수 없다고. 그리고 귀국이 전쟁할 생각이라면, 우린 마땅히 싸울 것이라고.”

“알겠습니다.”

***

“고향에 어느 한 어린 아가씨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에리카라고 하네.

이 소녀는 나의 희망인 작은 보물이자

나의 행복인 에리카라네....”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노래가 잘도 나오십니까?”

프리드리히 바이스만 대위는 부조종사 울리히 회커 중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죽기는 누가 죽어? 죽을 거면 진작 죽었겠지. 날 봐라.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살아 있잖아?”

바이스만의 자신 넘치는 말에 회커 중위는 고개를 휘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이스만의 흥얼거림은 계속됐다. 스페인에서 습득한, 긴장감을 푸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그에게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고향에서 어느 한 아가씨가 너 때문에 울고 있는데,

그녀는 에리카라고 하네.”

노래가 끝나고, 바이스만이 조종하는 Fw 200은 막 이란을 지나 소련 영공에 들어섰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도록.”

“예, 대위님!”

바이스만이 기내의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자 기합에 찬 대답들이 돌아왔다. 승객 전원 사기 이상 무, 시계(視界) 양호.

그야말로 폭격하기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바이스만은 바르샤바 상공을 비행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날이 맑았었지.

폴란드 공군은 진작에 괴멸되어 하늘에는 적기가 한 대도 없었다. 오직 지상의 대공포들만이 폭격을 방해할 뿐.

터키 동부 바트만의 공군 기지에 도착한 루프트바페 제4항공함대 소속 인원들은 소련과의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터키 공군의 조종사들의 지도를 겸하여 맹훈련에 돌입했다.

제4항공함대의 임무는 소련과의 전쟁 발발 시 소련의 바쿠 유전을 폭격하는 것이었다.

텍사스에서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미국보다 많은 양의 석유를 산출했던 바쿠 유전은 지금도 소련 원유의 80%를 홀로 담당하고 있었다.

바쿠 유전을 완전히 불태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몇 달 동안 가동을 중지시키더라도 소련 전체에 거대한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바로 이점을 노린 독일은 바쿠 유전을 폭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면, 기존의 폭탄들과 다른 폭탄이 필요했다. 훨씬 크고, 훨씬 강력한 폭탄.

독일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몇 달 동안 고생한 끝에 완성된 지진폭탄 레제는 이런 류의 임무에 아주 안성맞춤인 무기였다.

문제는 5톤이 훌쩍 넘는 레제를 싣고 비행하려면, 어지간한 폭격기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듯이, 무거운 폭탄에는 그만큼 큰 폭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독일에는 Fw 200과 He 177이라는 걸출한 폭격기들이 있었다.

펭귄 작전에 동원된 Fw 200은 156대, He 177은 140대. 합쳐서 296대에 달하는 폭격기에 현재까지 독일이 생산한 레제 보유량의 95%에 달하는 180발이 단 한 번의 임무를 위해 터키로 보내졌다.

히틀러는 단 한 번의 폭격에 레제를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 폭격 때 소련은 더 철저한 준비로 폭격을 방해할 것이고, 자연스레 임무의 성공확률도 내려간다.

따라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실패 없이 한 번에 성공시켜야 한다. 반드시!

출격 전, 후고 슈페를레 원수는 바쿠 유전을 폭격하러 가는 조종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짧은 연설을 했다.

그대들이 불셰비키들의 심장부에 투하할 폭탄들은 독일 국민의 피 같은 세금과 땀방울로 만들어졌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겠지만, 자신만큼은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신념으로 투하에 신중을 기해라. 그대들의 손에 조국의 운명이 걸려 있다.....

바이스만은 슈페를레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자신의 손에 조국의 운명이 걸려 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동시에 살 떨리는 말이 어디에 있을까.

바쿠 유전의 중요성이 보통이 아닌 만큼, 유전 일대는 소련군의 대공포와 전투기로 도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작전에 투입된 조종사들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이전에 그들이 경험했던 임무들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임무였지만, 임무가 두렵다고 뒤로 빠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 겁쟁이들은 애초에 조종사가 되지도 못했다.

하늘을 날려는 자는, 추락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를 가진 자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비상! 비사앙!!”

“게르만스키들이 온다!”

“사격 개시!”

유전을 향해 접근해오는 수백 대의 독일기들을 포착한 소련군은 급히 전투기들을 출격시켰다.

그러나 소련 공군의 Yak-1과 MiG-3는 폭격기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Ta152들이 야크기와 미그기가 눈에 띄는 족족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들어 기총소사를 퍼부어댔기 때문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Bf109의 2배를 훌쩍 넘는 2,000km라는 항속거리를 가진 Ta152는 폭격기 호위기로도 안성맞춤이었다.

“9시 방향!”

미그기 한 대가 Ta152들의 호위를 뚫고 바이스만이 조종하는 Fw 200을 향해 돌진해왔다.

동체 상부의 기관총 터렛이 회전하며 미그기를 향해 13mm 총탄을 발사했다.

미그기가 발사한 12.7mm 총탄이 Fw 200의 동체에 명중했지만, 전투기라면 몰라도 폭격기를 격추시키기엔 다소 위력이 부족했다.

반면, 13mm 총알 세례를 정면으로 받은 미그기는 연기를 토해내며 곤두박질쳤다.

“좋았어!”

적기를 격추시킨 카를 한 상병이 만세를 외쳤다. 폭격기에 달린 기총으로 적기를 상대한 적은 전에도 몇 번 있지만, 적기를 직접 격추시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격추라는 것을 해낸 카를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바이스만도 그를 칭찬했다.

“잘했다, 카를. 돌아가면 슈납스 한 잔 사지.”

“쪼잔하게 한 병도 아니고 한 잔이 뭡니까?”

“회커, 자네가 대신 낼 거 아니면 닥치고 있게나.”

전투기 다음은 대공포였다. 지상의 소련군은 화려한 대공포화로 게르만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바쿠 유전이 지니는 가치가 남다른 만큼, 소련군은 유전의 보호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대공포를 긁어모아 배치했다.

청색의 쾌청한 하늘은 어느새 치열한 대공포화로 오염되었다.

“로스케들, 자기들 딴에 열심히 준비 좀 한 모양이야?”

“저놈들도 유전이 중요한 지는 아는 거죠.”

바이스만은 폭탄창을 개방해, 레제를 투하할 준비를 했다. 보다 신중하게 투하해서 유전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게 해야 했다.

“지금입니까?”

“아냐! 아직이야! 조금 더 기다려!”

1초가 1분처럼 느껴지는 억겁의 시간이 지났다. 바이스만은 최적의 위치에서 투하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동승한 회커 중위는 당장 투하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바이스만의 고집을 알기에 잠자코 있었다.

“.....바로 지금!”

드디어 레제가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5.2톤의 초대형 폭탄을 투하하자 기체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졌다.

레제를 탑재하지 않은 116대의 폭격기들은 소이탄을 지상에 투하했다.

죽음의 악마들이 지상으로 내려오자, 바쿠는 지옥으로 변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지옥.

바이스만이 투하한 레제는 유전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와 몇 초의 차이를 두고 180발에 달하는 레제가 낙하해 스스로의 몸을 터뜨려 거대한 불기운을 지상에 쏟아냈다.

화염의 폭풍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자신의 몸뚱이에 닿는 모든 물체를 불태웠다.

독일 폭격기들에 대공포를 쏘던 대공포병들도, 공습에 방공호로 대피한 노동자들도, 이들을 감독하던 감독관들과 병사들, 간호사까지 모두 다.

“성공이다!!!”

오렌지 색의 화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바이스만은 기쁨에 겨워 주먹을 마구 흔들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는 법이 없던 회커 중위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까지 그는 50번이 넘게 출격하여 매번 임무를 완수해왔다.

이번 임무도 이제까지의 임무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었지만, 그 중요성을 고려하면 어떤 임무도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바이스만이 느끼는 쾌감도 이전의 쾌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듯한 이 기분, 감히 누가 이 쾌감을 알 수 있을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독수리들은 기수를 돌려 곧장 터키로 돌아갔다.

그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유전에 붙은 불길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불은 거대한 연기 기둥을 지상에서 하늘로 쏘아 올리며 자신이 집어삼킨 모든 생명체의 영혼을 올려보냈다.

바쿠에서 수십 km 떨어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사는 주민들도 바쿠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연기 기둥은 대지와 하늘을 잇는 거대한 통로처럼 보였다.

***

빵 소리와 함게 코르크 마개가 허공으로 튕겨 나가고 샴페인 거품이 입구로 쏟아졌다.

전쟁 발발 이틀 만에 나는 샴페인을 터뜨렸다.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오늘 같은 날에 이 정도는 해줘야 예의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 위대한 독일의 자랑스러운 공군을 위해 건배합시다! 지크 하일!”

“지크 하일!”

회의 도중 샴페인을 맛보게 된 장군들의 얼굴은 방금 갈아 끼운 새 전구마냥 밝게 빛났다.

이 중에서도 오늘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공군 소속 장군들의 얼굴은 더더욱 밝았다.

괴링은 벌써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베버 원수, 한 잔 받으세요.”

“아이고, 총통 각하.”

특히 이 순간이 가장 기쁠 이는 공군참모총장 발터 베버 원수였다.

역사에서 홀로 전략폭격의 중요성과 전략폭격기 개발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다니던 그는 1936년의 항공기 추락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인물이지만, 여기서 그는 본인이 재창했던 전략폭격기가 거둔 막대한 전과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이제 만천하가 알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살다 살다 이런 날이 다 올 줄이야....”

“그런 말씀은 마시오. 아직 전쟁이 한창인데, 어딜 간단 말이오? 자, 잔말 말고 한 잔 더 받으세요.”

“허허헛!”

바쿠 유전 공습은 대성공이었다.

여태껏 독일이 생산한 레제의 95%를 이번 임무에 올인하는 도박을 감행한 결과, 그에 맞먹는 결과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좀 흘러 자세한 보고가 들어와 봐야 알겠지만, 이번 공습의 성공으로 바쿠 유전은 최소 5개월 이상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무려 5개월 동안!

미국이나 영국한테서 석유를 수입해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수입하는데 시간도 걸리는 데다 바쿠 유전에서 산출되는 기름이 소련의 민간, 산업, 군사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피해다.

겨우 유전을 다시 운용 가능한 상태로 복구한다고 해도 소련은 유전 보호를 위해 어마어마한 전력을 바쿠 일대에 박아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번 공습을 당했는데, 두 번 공습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오히려 공습이 한 번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바보긴 하다.

바쿠 유전 복구와 보호에 들어가는 인력과 물자만큼 최전선의 국방군이 부담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들 테고, 소련군의 기동에도 제약이 걸릴 것이다.

기름이 없으면 전차도, 트럭도 굴릴 수 없으니까.

가뜩이나 만슈타인이 구축한 방어선에 막혀 번번이 헤딩만 하는 상황인데 여기에 기름까지 다 떨어진다면....?

아무리 스탈린이 전쟁에 미쳤다고 해도 이쯤 되면 강화가 마렵지 않을까?

여기서 포기하고 게임 던질 위인이었다면 애초에 전쟁을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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