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htung Panzer! (2) >
94화 Achtung Panzer! (2)
T-34.
2차대전 소련이 만든 걸작 중형전차.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체코제 경전차와 50mm 주포를 탑재한 3호 전차를 제1선에서 굴리던 독일군에게 T-34의 출현은 ‘T-34 쇼크’라 불릴 정도로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T-34에 장착된 76mm 주포는 표준 교전 거리 내의 독일 전차들을 일격에 관통할 수 있는 반면, 독일군이 보유한 통상적인 대전차화기로는 T-34의 45mm 경사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고 근거리에서 측면과 후면을 향해 사격해야만 겨우 T-34를 격파할 수 있었다.
전선에 나타난 T-34 1대를 격파하기 위해 후방에서 대구경 야포나 88mm 대공포를 급히 끌고 오는 일이 허다했다.
비록 T-34의 질적 우위는 1942년 후반 장포신 75mm 주포를 탑재한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 대전차 자주포가 등장하면서 깨지고 말았지만, 종전까지 T-34는 소련 기갑부대의 명실상부한 주력으로 활약했고, 2차대전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나고도 세계 각지의 전쟁터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독일군의 전차가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탈린은 막 양산에 들어간 T-34와 KV에 주목했다. 이제 붉은 군대가 기댈 구석은 두 전차뿐이었다.
“하지만 서기장 동지, T-34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전차입니다만.”
스탈린이 T-34를 언급하자, 쿨리크는 곧바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쿨리크의 심중을 알아채지 못한 스탈린이 물었다.
“T-34에 문제가 많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우선 T-34는 BT 고속전차보다 크고 무거워서 기동성도 느린 데다 고장이 빈발합니다. 차라리 T-34의 양산을 중단하고 새 전차를 설계하심이-"
“그야 BT 고속전차는 경전차고, T-34는 중형전차이니 당연한 거 아니오. 고장이 빈발한다고 해도 고치면 그만이오.”
스탈린은 쿨리크의 말을 자르고 그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리고 T-34의 양산을 중단했다가 그 사이에 독일 놈들이 쳐들어오면 그땐 어떻게 할 거요? 신형 전차의 개발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알고?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소?”
“크흠, 죄송합니다, 서기장 동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오.”
스탈린의 시선에 담긴 뜻을 읽은 쿨리크는 잽싸게 물러나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선택했다.
사실 쿨리크가 T-34의 생산에 반대하는 이유는 T-34가 가진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T-34를 설계한 미하일 코시킨의 상관 리하초프가 자신의 라이벌이어서였다.
단순한 자존심 문제로 쿨리크는 T-34의 개발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고, 쿨리크의 지나친 간섭과 시비로 인해 지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오던 코시킨은 4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리크는 죄책감은커녕 T-34가 생산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쿨리크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든 간에, 스탈린이 한 번 마음을 굳힌 이상 그걸로 끝이었다. 소련에서 스탈린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그가 지시를 내리면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간에 무조건 따라야 했다.
다음날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되고 싶지 않다면.
“뭐.... 그래도 T-34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한 것도 사실이지. 신형 중형전차의 개발은 쿨리크 동무에게 맡기겠소.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보시구려.”
“가,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반드시 서기장 동지의 기대에 부흥할 최고의 전차를 만들어내겠습니다!”
쿨리크는 천은이라도 입은 것마냥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스탈린은 그런 쿨리크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하르코프 공장 설계국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찬찬히 살폈다.
T-34의 차체 전면은 45mm 경사장갑으로 이루어져 실질적인 방어력이 수직장갑 90mm에 달하며, 측면 40mm 경사장갑은 수직장갑 50mm에 달하는 방어력을 가졌다.
전체적인 방어력만 보면 T-34가 4호 전차보다 우위에 있었고, 최고 속도 53km/h에 항속거리 250km로 기동성도 준수한 축에 속했다.
“문제는 화력인데....”
방어력과 기동성은 흠잡을 구석이 없지만, 화력이 마음에 걸렸다.
T-34에 탑재된 76mm L-11 전차포의 관통력은 500m에서 70mm, 100m에서 76mm가 최대로, 45mm 전차포보다 뛰어난 위력이지만 4호 전차를 상대로는 많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T-34의 뛰어난 기동성을 활용해 적의 측면으로 돌입하여 사격한다면 못 싸울 것도 없지만, 이 방법 역시 스탈린의 성에 차지 않았다.
정면에서 일격에 적을 격파할 수 있어야지, 측면을 노려야만 격파가 가능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KV 중전차 역시 화력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39년에 양산된 KV-1 중전차는 T-34와 동일하게 L-11 전차포를 탑재했는데, 중전차가 중형전차와 같은 화력이면 어쩌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1940년 중순 생산분부터는 76mm 39구경장 F-32 전차포를 탑재하게 되었다.
화력이 전보다 나아졌지만, 명색이 중전차가 중형전차와 비교해서 화력에 큰 차이가 없다는 건 분명 문제였다.
152mm 야포를 탑재한 KV-2가 있지만, 53톤이나 되는 무게 탓에 속도도 느리고, 교량의 통과도 제한되어 운용에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152mm의 화력 하나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꾸준히 생산 중이다만 T-34와 KV-1의 역할을 KV-2에게 맡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티모셴코 동무.”
“하문하시지요, 서기장 동지.”
“T-34와 KV-1, KV-2 양산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하시오. 그리고 T-34와 KV-1에 탑재할 신형 전차포의 개발도 최대한 서두르라고 지시하시오. 개발이 끝나는 즉시 시험을 거쳐 결과가 나오는대로 탑재하고.”
“알겠습니다. 당장 지시하겠습니다.”
***
1940년 10월 6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소련이 전차 개발에 몰두 중이라.... 우습게 볼 일이 아니군.”
스탈린 녀석, 기술자들을 매일같이 달달달 볶는 걸 보면 어지간히 똥줄이 타는 모양이다. 하긴 우리 전차들의 활약상을 보고 나면 두 다리 쭉 뻗고 자기 힘들겠지.
독일 전차들의 활약상에 대해 전해들은 소련은 비상이 걸렸다.
T-26과 BT-7처럼 장갑이 얇은 경전차들은 양산이나 개발이 중단되었고, 거의 모든 공장들을 T-34와 KV 전차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개조 중이라고 한다.
스탈린이 어째서 이토록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못할 바는 아니었다.
유럽 상공과 지중해에서 영국과 전쟁을 치루면서도 소련을 침공했던 독일인데, 여기선 그 영국이 강화를 맺었으니 언제 우리가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지금부터 전쟁 대비에 열심인 것이고.
정작 나는 소련을 침공할 생각이 전혀 없다만. 진짜 히틀러였다면 지금쯤 바르바로사 준비로 한창이었겠지만, 히틀러의 소련 침공이 어떤 결과로 끝나는지 아는 나로서는 소련을 공격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대로만 가도 성공인데, 내가 미쳤다고 왜 그런 도박을 하겠어?
아, 내가 어떻게 실제 히틀러도 알지 못했던 이런 고급 정보를 알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겠군.
정답은 간단하다. 소련이 독일에 스파이를 잠입시킨 것처럼, 우리도 소련에 스파이들을 잠입시켰거든.
참고로 우리가 소련에 잠입시킨 스파이들 중 일부는 과거에 소련을 위해 일하던 자들이란 걸 알려나 모르겠군.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미래의 지식을 사용하면 제법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 활동 중인 스파이들의 이름이나 정체들 말이다.
리하르트 조르게, 올가 체코바, 요한 벤첼, 하로 슐츠 보이젠, 아담 쿠코프 외 기타 등등.
모두 소련으로 독일 내의 각종 정보를 열심히 퍼 나른 스파이들로, 이들의 활약은 소련이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총리가 되자마자 나는 우선 독일에서 활동 중인 스파이들을 색출해냈다.
1933년, 조르게와 체코바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고 그 외 나머지 스파이들도 1939년 이전까지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거나 뒤를 밟혔다.
한 놈만 잡아 고문하면, 그놈이 다른 협력자들을 명단을 불었고 명단에 적힌 자들을 체포해 고문하면 새로운 이름들이 나왔다.
그렇게 체포된 스파이들은 게슈타포로부터 협력과 충절 둘 둥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받았고, 적지 않은 수가 협력을 택했다.
협력을 거부한 스파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이중스파이가 된 자들은 소련 당국과 연락을 이어가며 우리에게 알토란 같은 정보들을 가져다 바쳤고, 소련이 의심하지 않도록 스파이 중 덜떨어진 몇 놈에겐 감시만 붙여서 역정보를 흘리는 역할을 맡겼다.
덕분에 현재까지 소련은 자신들이 독일에 깔아둔 첩보망이 진작에 게슈타포에게 넘어간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 히틀러와 나치를 속이는 데 성공했겠지만, 미래에서 온 내 눈만큼은 속일 수 없다, 이거야.
“총통 각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차차. 너무 티 나게 웃은 모양이군. 명색이 총통인데 근엄한 모습을 보여야지.
“우리에게 속고 있을 소련 놈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서 그러네. 어쨌든 소련이 전차 개발에 열중이라니, 우리도 마냥 안심하고만 있을 순 없겠어.”
당장은 4호 전차가 소련의 T-34, KV-1보다 성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여기서 안주하다간 언제 추월당할 줄 모른다.
6년의 전쟁 동안 이뤄졌던 기술의 발전이 전간기 20여 년의 기간보다 빨랐던 게 2차대전이다.
세상 어느 나라도 전쟁 준비를 게을리해놓고 결과가 좋았던 나라가 없었다.
전쟁은 시험과 같아서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미리미리 대비를 해둬야지.
“구데리안 장군. 판터와 티거의 개발은 언제쯤 마무리됩니까?”
“지금 시제품의 테스트가 진행 중이니, 아마 겨울 즈음에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좋아, 아주 좋아.”
판터와 티거가 양산이 궤도에 오르면 4호 전차는 순차적으로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아직은 주문량에 맞춰야 하기에 공장이 풀로 돌아가고 있지만, 1년 안에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없다는 가정하에 중단이지만.
전차 개발에 열을 올리는 나라는 소련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뜨거운 맛을 본 영국, 그리고 대서양 건너의 미국도 전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아프베어의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영국은 자기네가 자랑하던 마틸다 전차가 손도 못 쓰고 고철 더미가 된 것에 충격을 받아 마틸다를 대체할 신형 전차 개발에 들어갔고, 미국도 전차 개발에 돈을 쏟아부으며 공돌이들을 갈궈댔다.
그 결과 1941년 3월에 등장했을 M3 리 중형전차가 1940년 10월에 등장했다. 이 속도대로면 내년 여름에 M4 셔먼도 나오겠군.
그리고, 저 멀리 극동에서도 새 전차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1940년 10월 7일
중국 허난성
“배고프다.”
“방금 밥 먹었잖아?”
43살의 상등병 왕페이는 참호 구석에 쪼그려 앉아 중얼거리는 소년병 루얼에게 딴지를 걸었다. 루얼이 대답했다.
“밥이라고 해봤자 삶은 감자 2개가 전부였잖아요. 아저씨는 그걸로 배가 차요?”
“자꾸 배고프다, 배고프다고 하니까 배가 더 고픈 법이야. 정 배고프면 나뭇가지라도 씹던가. 먹을 수 없지만 허기를 달래줄게다.”
상병 계급치고 나이가 많은 편인 왕페이는 어렸을 적부터 배고픔을 잊기 위해 나뭇가지나 풀뿌리를 씹곤 했다.
맛도 없고, 턱이 얼얼해지지만, 나뭇가지를 씹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게 되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그는 종종 배고픔을 잊기 위해, 혹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뭇가지를 씹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씹어서 너덜너덜해진 나뭇가지와 풀뿌리가 즐비했다.
“만두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루얼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만두. 돼지고기와 부추가 잔뜩 들어간 만두는 루얼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루얼의 생일 때마다 그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한솥 가득 만두를 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떠올리니 입에 침이 고였다.
“아저씨는 뭐가 가장 먹고 싶어요?”
“그건 또 왜 물어?”
배고픔을 자제하려고 음식 얘기를 자제하던 왕페이는 루얼이 계속 음식 얘기를 하자 살짝 짜증이 났다. 하지만 왕페이가 짜증이 난 사실을 모르는 루얼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궁금하니까?”
루얼의 대답에 왕페이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했다.
“마파두부.”
“마파두부? 그게 뭔데요?”
“아니, 마파두부를 몰라? 너 몇 살이냐?”
“14살인데요.”
“허, 14살짜리가 마파두부를 모른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군.”
쓰촨성 출신인 왕페이는 일주일에 한 끼는 꼭 마파두부를 먹을 정도로 마파두부를 좋아했다.
그러나 텐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루얼에게 마파두부는 생전 처음 듣는 요리였다.
“깍둑썬 두부를 잘 말린 뒤 기름에 튀겨서 잘게 다진 쇠고기, 채소와 함께 두반장과 고추기름에 볶는 거야. 얼큰한 게 밥반찬으로도 최고지만 고량주와 함께 먹으면 기가 막히지.”
“나는 계란볶음밥을 실컷 퍼먹고 싶은데.”
왕페이 옆에 앉아 졸고 있던 샤오핑이 느닷없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 마누라는 계란볶음밥에 늘 잘게 다진 마늘과 고추씨를 넣었어.
자기 집에선 늘 이렇게 해 먹었다는군. 계란볶음밥은 소금이랑 후추, 계란만 넣어도 충분히 맛있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
“음식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배가 더 고파졌어.”
저녁 배식까지 5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에 벌써 배가 고프면 큰일이었다.
그때까지 잠이나 한숨 자려고 눈을 붙이려는데, 무한궤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일본군의 함성이 들렸다.
“적이다, 적!"
“씨발, 요 며칠 사이 잠잠하다 했더니!”
닷새 전 일본군은 전차 1개 중대를 동원해 공격을 시도했지만, 국민혁명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수많은 사상자를 낸 채 패퇴했다.
전투에서 큰 피해를 본 일본군이 전력 회복에 열흘은 걸릴 것이라고 상부는 예측했지만, 일본군은 닷새 만에 재공격을 가해왔다.
이번 공격에 일본군은 신형 전차를 투입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은 이번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일본군의 전차가 이전에 보던 것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저놈은 뭐야? 전에 봤던 놈들과 모습이 많이 다른데. 크기도 훨씬 크고.”
“쪽발이 새끼들. 악귀 놈들 아니랄까 봐 별 흉악한 걸 다 만드는군.”
일본군이 투입한 신형 전차는 독일에 건함 기술과 어뢰 설계도를 넘기고 받아온 3호 전차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3식 전차’였다.
설계도대로면 차체 전면은 30mm, 측면은 15mm에 불과했지만, 속도를 조금 줄이는 대신 장갑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결과 차체 전면 50mm, 측면 30mm로 방어력이 대폭 보강되었다. 주포는 하고에 탑재된 94식 전차포를 개량한 98식 전차포가 탑재되었다.
전차가 다가오자 PaK 36이 주포에서 섬광을 토했다. 독일제 대전차포와 독일 설계도로 만든 전차의 대결이었다.
닷새 전의 포격으로 조준경이 손상된 탓에 포탄은 전차를 비껴가 엉뚱한 곳에 착탄했다. 일본군 보병들은 땅에 처박힌 철갑탄을 피해 달렸다.
포수가 두 번째 포탄을 발사했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세 번째에서야 겨우 명중에 성공했지만, 입사각 때문에 도탄 되고 말았다.
일본군의 전차도 대전차포의 위치를 파악하고 주포에 불을 당겼다.
대전차포가 당하자 국민혁명군은 소총과 기관총으로 일본군의 전차에 맞서야 했다. 9대의 3식 전차는 기관총 진지를 유탄으로 박살내며 언덕을 올라왔다.
-투타타타타!
“맙소사, 루얼!”
3식 전차의 공축기관총에 루얼이 쓰러지자 왕페이가 다가갔다. 왕페이가 다가갔을 때 루얼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기관총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탓에 얼굴의 반이 날아가고, 부서진 뼈와 찢어진 근육이 곤죽이 되어 흘러내렸다.
루얼은 죽었지만, 왕페이는 쉽사리 루얼을 내려놓지 못했다. 3식 전차의 포탑이 돌아가면서 참호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왕페이를 조준했다.
“왕페이! 너 이 새끼 뭐해!?”
기관총과 탄약을 챙겨 도망치던 샤오핑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소리치기 무섭게 전차의 포구에서 불꽃이 튀어나와, 루얼을 안아든 왕페이의 몸을 산산조각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