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94화 (94/150)

< Achtung Panzer! (1) >

93화 Achtung Panzer! (1)

이탈리아와의 전쟁이 끝나면서 유럽에는 완전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어도, 무기에 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기술자들은 실전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존 전차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어디를 개량해야 할지 논의했다.

실전에서 아군의 4호 전차와 헷처가 연합군 전차들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의 우위에 계속될 것이란 보장이 없었기에 기술자들이 무기 개량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4호 전차의 질적 우위는 T-34/85의 등장으로 1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T-34/85가 등장하려면 아직 3년이나 더 남았지만, 역사가 달라졌으니 적들도 새로운 무기를 개발 중일지 모른다.

훗날 큰코다치기 싫으면 시간이 남아돌 때 일해야 하는 법.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고 그 결과물이 꼭 만족스러운 법은 아니었다.

헨셸, 포르쉐, 크루프 등 전차의 양산 및 개발을 담당하는 회사 중역들 및 병기국 기술자들과의 회의로 열흘을 야근으로 보낸 구데리안과 루츠는 나를 찾아와 아군의 주력전차인 4호 전차의 개량 안에 관해 설명했다.

“서부 원정에서 격파, 혹은 손상을 입은 4호 전차의 32%가 대전차소총에 의한 피격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나도 보고 받았소. 이름이 킹스 대전차소총이었지, 아마?”

내가 알기로 영국, 프랑스군이 사용한 대전차소총은 보이즈 대전차소총 하나뿐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여기 세계에선 킹스 대전차소총이란 녀석이 튀어나왔다.

아군이 노획하여 조사한 결과 무게는 22kg에 14×120mm 철갑탄을 사용하며 200m에서 수직장갑 35mm 관통 가능. 보이즈 대전차소총은 16kg에 90m에서 수직장갑 23mm 관통.

무게가 6kg이나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만큼 위력도 상승한데다 실제로 적지 않은 아군 전차들이 이놈에게 당했으니 무시할 수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원래 전차는 측면이 약점이라 4호 전차만의 약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구데리안과 루츠는 중형전차가 대전차소총에게 쉽게 관통당하는 게 문제라 보고, 이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는 바로 4호 전차의 측면과 후면에 추가 장갑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저희는 이것을 쉬르첸(Schürzen)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2차대전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3호와 4호, 그리고 돌격포들이 달고 다니는 요상한 철판 떼기를 본 적이 있을 거다.

그게 바로 쉬르첸인데, 소련군의 대전차소총에 의한 피해가 늘자 이에 대한 방책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쉬르첸의 두께는 5~8mm로 1차로 피탄되어 대전차소총의 총탄 관통력을 감쇄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인데, 실제로도 대전차소총과 유탄을 막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쉬르첸 자체가 단순한 철판 떼기에 불과하니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다만, 원래대로라면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2년 가까이 지나서 나온 놈인데 벌써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설마 기술자 중에 나처럼 빙의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

“노획한 킹스 대전차소총으로 실험해본 결과, 쉬르첸 자체는 모두 관통당했지만 10발의 총알 중 단 한 발도 주장갑을 관통하지 못했습니다.”

구데리안이 내민 서류에 첨부된 사진에는 관통당해 벌집이 된 쉬르첸과 별개로 표면이 살짝 패이는 수준에서 그친 측면장갑이 찍혀 있었다.

“쉬르첸만 있으면 대전차소총에 의한 피해를 최대 90% 이상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기존에 생산된 4호 전차들과 이후 생산되는 차량에도 쉬르첸을 장착할 것을 건의드리는 바입니다, 총통 각하.”

여기까지만 보면 이 쉬르첸이란 녀석이 만능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대전차소총 및 유탄으로 인한 피해를 격감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고.

문제는 그 대가로 잃는 게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군, 쉬르첸을 장착할 경우 중량이 늘어나 신뢰성과 주행에 악영향을 주지 않겠소?”

보고서에 적힌 자료에 따르면, 4호 전차 G형의 무게가 24톤인데 쉬르첸을 장착하면 25톤을 넘는다고 되어있다.

실제로도 쉬르첸은 대전차소총에 대해 안정적인 방호력을 제공했지만, 그 대가로 중량증가라는 악영향을 불러와 4호 전차의 신뢰성 하락과 기동성 저하라는 만만찮은 문제점을 가져왔다.

쉬르첸의 단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차를 정비할 때마다 쉬르첸을 일일이 떼고, 도로 부착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정비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기본이고 진흙이 달라붙어 무게가 증가하거나, 건조한 환경에서 모래와 먼지를 증가시켜 엔진 흡입구가 자주 막히게 되는 원인이 됐다.

이외에도 실전에서 적 보병들이 쉬르첸을 붙잡고 전차에 오르는 일이 왕왕 생긴다거나 대전차수류탄이 쉬르첸과 주장갑 사이에 끼여 전차에 피해를 주는 일이 잦아, 일부 전차병들은 대전차소총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포탑에만 쉬르첸을 달고 다녔다.

즉, 쉬르첸의 존재는 독일군에게 있어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쉬르첸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상당했기에 없는 것보다 낫다며 계속 달고 다닌 전차병들이 훨씬 많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쉬르첸의 필요성에 의문이 들었다.

“물론 총통께서 지적하신 대로, 쉬르첸 장착으로 기동성이 하락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크게 문제 되는 수준이 아닐뿐더러 신뢰성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대전차수류탄이 쉐르첸과 장갑 사이에 끼여 전차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보다 대전차소총에 의한 피탄이 더 크고 실질적인 위협 아니겠습니까?”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구데리안과 루츠의 제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둘은 내 예상보다 훨씬 완강하게 나왔다.

구데리안은 4호 전차가 개발 당시부터 26톤의 중량을 견디게끔 설계되었기에 쉬르첸을 달고도 신뢰성에 큰 저하가 없다며 쉬르첸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고 루츠도 내 말에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쉐르첸의 존재로 인해 전차의 통행이 제한될 수 있지 않겠소?”

“쉬르첸 때문에 통행이 제한된다면, 애초에 전차의 통행 자체가 제한되는 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전차밖에 모르는 바보들답게 둘은 내가 제시한 의문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나를 몰아붙였고, 쉬르첸과 관련하여 논의를 빙자한 다툼이 3시간을 넘어서자 나는 결국 타협을 제시했다.

다른 육군 장성들의 의견도 종합한 뒤 결론을 내리자고.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만슈타인, 브라우히치, 클루게, 클라이스트는 물론이고, 믿었던 카이텔과 라이헤나우조차 구데리안과 루츠의 손을 들어줬다. 이 배신자들.

“총통 각하.”

“......그래, 알겠소. 내가 졌소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둘의 주장대로 쉬르첸의 생산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내 항복을 받아낸 둘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총통께서 저희의 말을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총통 각하께선 방금 그 결단으로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구하신 겁니다.”

할 수 없이 쉬르첸의 생산을 허가했지만, 그래도 쉬르첸으로 인한 중량의 증가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라 나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기존의 쉬르첸과 동일 효과를 내면서도 무게는 덜 나가는 장갑을 개발하라고.

그 결과 나온 것이 철망형 쉬르첸으로, 철판형 쉬르첸보다 무게가 600kg이나 가벼울뿐더러 통풍이 쉬워 엔진 흡입구가 먼지로 막히는 일도 없었다.

탈부착 쉬운 철판형과 달리 별도의 고정 장치가 필요해 탈부착에 시간이 걸린다는 게 단점이긴 하나, 기존 쉬르첸처럼 대전차소총 방호가 가능했기에 나는 철망형 쉬르첸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구데리안과 루츠도 이에 대해선 크게 반대하지 않았지만, 이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

쉬르첸과 관련한 소동이 지나갈 무렵, 세계 각국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했다.

유럽 전장에서 독일 전차들이 보여준 활약상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림과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국가가 앞다퉈 우리 전차들을 사고자 했다.

이전에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내게 4호 전차 50대를 요청했지만, 프랑스 침공을 앞둔 터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이 끝났으니, 덴마크의 판매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덴마크는 4호 전차 60대와 헷처 40대, Bf109와 슈투카, Ju52 수송기 도합 100여 대를 주문했다.

덴마크군 규모를 생각하면 이것들을 다 굴릴 수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려면 좋았다. 사겠다는 사람 지갑 사정은 내 알 바 아니니까.

영국에게 크게 데였던 노르웨이는 4호 전차와 헷처 도합 70대와 항공기 100대를 주문했다.

스웨덴과 헝가리는 한술 더 떠 아예 자국에서 생산하겠다고 라이센스 생산을 요청해왔다.

특히 올해 봄까지 소련과 전쟁을 치렀던 핀란드는 독일제 무기 도입에 더더욱 열심이었다.

나는 에르코와의 약속대로 핀란드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4호 전차 10대와 Bf109 10대를 무상으로 증여했다.

허나 이것만으론 드넓은 국경을 모두 방어하기란 불가능했기에 핀란드는 추가로 4호 전차와 헷처, 장갑차 300대와 200대의 항공기를 사겠다고 나섰다.

이외에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터키, 이란, 심지어 바다 건너에 있는 아르헨티나까지 전차를 사겠다고 요청해왔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주문 탓에 독일의 공장들은 밤낮으로 굴러갔고, 전차들은 출고되는 즉시 열차에 실려 주문한 국가로 배송될 준비를 했다.

마, 이게 독일이다!

***

1940년 10월 1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때아닌 호황으로 독일 군수산업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면, 소련 군부와 기술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뜩이나 독일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던 폴란드가 사라짐으로써-이건 소련이 자초한 일이지만-독일과 국경을 맞대게 된 데다 독일을 막을 유일한 보루였던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당했고, 영국은 간신히 숨만 붙은 상황.

이제 유럽에서 독일에 맞설 나라는 소련밖에 없었다.

독일과 영프가 오래도록 전쟁을 하면서 국력을 소진하길 바랐던 스탈린은 국제정세가 자신의 예상과 180도 다르게 흘러가자 밤잠을 설쳤다.

비록 불가침조약을 맺은 상태이긴 하나, 프랑스가 무너지고 영국이 손 털고 나간 마당에 독일이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히틀러는 다른 마음을 먹고, 은밀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스탈린이 생각하기에 히틀러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스탈린을 더더욱 충격에 빠뜨린 것은 독일 기갑부대였다.

기동성도 기동성이거니와, 압도적인 성능으로 프랑스군과 영국군을 유린하고 다닌 독일 기갑부대는 소련군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이었다.

“....전차의 장갑을 종잇장처럼 뚫어버리는구만.”

독일의 뉴스영화에 나온, 4호 전차가 프랑스군의 소뮤아 S35의 장갑을 일격에 관통해버리는 장면을 본 스탈린이 내뱉은 말이었다.

전면을 관통당한 소뮤아 S35는 폭발하며 포탑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4호 전차가 발포할 때마다 프랑스 전차들은 하나같이 불길에 휩싸였다.

스탈린 옆에서 묵묵히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는 티모셴코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독일 측이 촬영한 선전용 필름임을 감안해도, 작중 등장하는 4호 전차의 활약상은 소련 군부를 두려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소련과 전쟁을 치렀던 핀란드가 독일로부터 4호 전차를 수입하는 중이라는 소식도 소련 군부의 불안을 자극했다.

스탈린은 굳은 얼굴로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보고서에는 독일군이 사용 중인 무기들의 명단과 대략적인 재원, 무기의 성능, 실전에서의 기록이 적혀 있었는데, 베리야가 독일로 보낸 NKVD 요원들이 수집한 정보들이었다(이 정보들을 마지막으로 대다수 요원과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은 보고서에 적혀 있지 않았다).

“1km에서 최대 97mm 관통이라.... 현존하는 모든 전차는 전부 다 일격에 격파할 수 있는 위력이군.”

소련군이 사용 중인 T-26, BT-7 같은 경전차들은 2km 거리에서도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데 설상가상으로 장갑도 두꺼웠다.

차체 전면 80mm, 포탑 전면 50mm, 차체 측면 30mm, 차체 후면 20mm. T-26의 전면장갑이 15mm, BT-7의 전면장갑이 최대 20mm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였다.

약점인 측면장갑이 소련 전차들의 전면장갑보다 더 두꺼운 셈이었으니까.

두 경전차에 탑재된 45mm 20-K 전차포로 4호 전차를 격파하려면 정면 500m 거리에서 포탑을 노리거나, 측후면을 노려야 했다.

“상대는 2km 밖에서 뻥뻥 쏴대도 명중만 했다 하면 격파인데, 이쪽은 500m까지 접근해서 포탑만 노려야 겨우 관통 가능이라니, 처참하군.”

딱히 누군가를 책망하기 위해 한 소리가 아니었지만, 스탈린의 푸념에 그의 측근들은 몸을 뒤척였다. 겁쟁이 녀석들 같으니라고.

자신의 말 한마디에도 갈대마냥 벌벌 떠는 부하들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본 스탈린은 다시 보고서에 집중했다.

38(t) 구축전차 헷처의 경우에는 4호 전차보다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웠다.

차체 전면장갑이 60도 각도의 60mm 두께라 실질적인 방호력이 120mm에 달하는데, 45mm 포로는 거리에 상관없이 관통이 불가능하고 76mm F-22 사단포로는 500m 내에서만 겨우 관통이 가능했다.

그나마 측면이 4호의 30mm 장갑보다 얇은 20mm 두께라는 것이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스페인에서 소련이 공화파에 제공한 T-26, BT-5가 국민파의 독일제 전차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보고를 받고 흡족해하던 스탈린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전차들이 독일 놈들의 전차들보다 성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겨우 4년 만에 역전되고 만 것이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스탈린은 사실을 외면한 채 쓸데없는 자존심만 내세우며 정신승리나 하는 작자들과 달랐다.

그는 소련의 전차들이 독일의 전차들보다 모든 면에서 열세라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우리 전차들은 독일의 전차들보다 열세요. 티모셴코 동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스탈린의 질문을 받은 티모셴코는 이것이 자신의 충성심에 대한 시험인지, 아니면 사실 그대로를 묻는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경험으로 유추했을 때 이번 질문은 전자보다 후자에 더 가까웠다.

티모셴코는 단어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하며 상관의 물음에 답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서기장 동지.”

스탈린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티모셴코의 대답에 만족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캐물을 생각이었다.

스탈린은 부하들의 아부와 사탕발림을 즐기면서도 종종 부하들에게서 솔직한 대답을 기대하곤 했다.

티모셴코는 스탈린의 이러한 성격을 잘 알았기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흐흠. 쿨리크 동무는?”

질문의 화살이 자신에게로 날아오자 쿨리크는 당황했지만, 겉으론 침착을 유지했다.

그는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옆에 앉은 티모셴코를 곁눈질하곤 말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솔직해서 좋군. 동무들도 나처럼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서 참으로 다행이오.”

스탈린의 말에 티모셴코와 쿨리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역시 정답이었군.

이로써 그들은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크렘린에선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특히 스탈린 앞에선 더더욱.

“경전차 따위론 어림도 없고, T-34 중형전차와 KV 중전차쯤은 되어야 겨우 상대가 가능하겠군.”

T-34와 KV. 이 두 전차만이 소련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