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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해가 뜨기 전에 (6) >

1940년 4월 14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끼얏, 호우!”

레더의 전문을 받아든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점프했다.

영국 해군 전함 1척, 순양전함 1척, 항공모함 1척, 구축함 4척 격침.

이에 반해 아군의 피해는 함재기 16대가 격추당하고 구축함 2척 중파, 비스마르크의 레이더 피탄이 끝.

그야말로 대대대승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완승이다.

이번 승리가 더욱 값진 이유는 아군의 피해가 경미하다는 것은 물론이고 영국 해군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겨졌던 크릭스마리네가 영국 해군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점이다.

아군이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이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라.

독일 해군은 북대서양 전초기지 마련 겸 영국 해군 견제를 위해 노르웨이를 침공했지만 오히려 궤멸당해버리지 않았던가.

종전까지 밥값을 한 유보트와 달리 크릭스마리네의 대형함들은 연합군 해군을 상대로 간만 보다가 바렌츠해 해전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고, 이에 분노한 히틀러는 대형함들을 모조리 해체해 대서양 방벽에 사용할 것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사임한 레더를 대신해 해군 원수가 된 되니츠의 간곡한 설득으로 대형함 해체 명령은 취소되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크릭스마리네는 영국 해군에게 눌려 지냈다.

그랬던 놈들이 여기선 정반대의 결과를 냈으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특히 이번에 격침당한 HMS 워스파이트와 HMS 리나운은 2차대전 내내 활약하며 종전까지 살아남은 네임드 군함들이다.

워스파이트는 노르웨이 전역에서 크릭스마리네 수상함대의 절반에 가까운 군함을 격침시키는 대활약을 펼쳤고, 이후에는 지중해 전선으로 보내져 이탈리아 해군을 박살 내고 다니다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리나운의 경우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외형 덕에 영국 왕실의 해외순방에 동원되다가 노르웨이 전역,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굵직굵직한 전투에 참여하여 명성을 떨쳤다.

두 함 모두 영국 해군의 전설로 남은 군함들인데 이 세계에서는 제대로 활약해보지도 못하고 고철더미가 되어 해저로 가라앉는 신세가 되었다. 영국인들이 피눈물을 흘리겠군.

나는 뤼첸스와 린데만에게 기사십자장을 수여하고 둘을 각각 대장, 준장으로 진급시킬 것을 레더에게 알렸다.

또한 이 정도 전과면 충분하니 한동안 날뛰지 말고 노르웨이 연안에 착 달라붙어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자만해선 안 된다.

꼭 잘 나가다가 자만해서 일을 그르친 사례가 역사에 얼마나 많은데.

훗날 역사책이나 위키백과에 ‘크릭스마리네의 승리, 하지만 뒤이은 실수’라는 이름의 항목이 생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고.

“총통 각하, 리벤트로프 장관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게.”

크라우제가 나가고 잠시 후 리벤트로프가 방에 들어왔다.

“총통 각하, 덴마크 정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덴마크 국왕이 총통 각하를 직접 만나 회담을 가지길 원한답니다.”

***

독일 해군이 상상 이상의 대승리를 거둔 날, 덴마크인들에겐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덴마크령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가 영국군과 캐나다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덴마크 본토가 영국의 공습을 받은 뒤부터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주둔 덴마크군은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했지만, 원체 수가 적은데다 보유한 무기도 겨우 경비정 몇 척에 소총 따위가 전부인 그들에게 승산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린란드의 수도 역할을 해오던 고트호프는 캐나다군이 상륙하자 무방비도시로 선포되었다.

덴마크군은 도시를 버리고 내륙으로 퇴각, 게릴라전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슬란드 주둔 덴마크군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소총과 수류탄 따위로 구축함을 끌고 온 영국군과 캐나다군에게 정면승부를 거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빈약한 무장과 소수의 인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는 게릴라전으로 적에게 대항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을 적으로 돌린 일로 악화된 여론을 만회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점령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정부의 지침을 받은 언론사들이 일제히 그린란드가 얼마나 큰 섬인지, 아이슬란드의 전략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하는 기사를 내보냈고 정부에서 강조하는 ‘무혈점령’의 크기를 키워 신문에 인쇄했다.

세계의 비난으로 잠시 위축되었던 주전파는 정부가 모처럼 대승을 거뒀다며 기뻐했지만, 뒤이어 전해진 자국 해군의 참패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세계 제일이라 자부하던 영국 해군이 독일 해군과의 교전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전멸했다는 소식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던 강경파들조차 충격에 빠뜨렸다.

“전쟁광 체임벌린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더 이상 국민을 전쟁에 끌어들이지 마라!”

“침략전쟁 결사반대!”

이때다 싶어 튀어나온 BUF 당원들도 반전시위대에 섞여 전쟁 반대 구호를 외쳤다.

시위가 열릴 때마다 경찰들이 투입되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지만, 반전 여론은 사그라들기는커녕 갈수록 활활 타올랐다.

***

1940년 4월 15일

영국 런던 다우닝 가 10번지

“반전 시위에 합류하는 국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오. BUF 같은 파시스트 떨거지 놈들도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고.”

체임벌린은 말을 멈추고 처칠을 응시했다.

처칠은 체임벌린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말을 돌렸다.

“여전히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더 많으니 그리 신경쓸 필요까진 없습니다.”

“우리 말은 똑바로 합시다. 당신이 주장한 노르웨이 공격으로 전 세계가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오. 심지어 국민들조차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소. 따로 할 말은 없소?”

“노르웨이 공격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독일의 철광석 수급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목표 자체는 달성한 것이라고 봐야죠.”

노련한 정치인인 처칠은 여기서 자신이 잘못을 인정했다간 상황이 더 나빠지리라고 판단했다.

실책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자신을 공격할 명분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래 정치란 외나무다리에서의 싸움과 같아서, 어느 한쪽이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실책을 인정하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상대방에게 칼자루를 내주지 않으려면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뻔뻔하게 나가는 수밖에.

“어차피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약소국이 날뛰어 봤자 대영제국의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해군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을 가진 프랑스와 동맹관계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허!”

뻔뻔하게 구는 처칠에게 체임벌린은 전보다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세계 최강이라는 해군이 몇 수 아래로 보던 독일 해군에게 대참패를 당한 일은 모르시오? 내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요.”

“그, 그것은······.”

허를 찌르는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 처칠이었지만, 이내 그는 평소처럼 뻔뻔하게 나왔다.

“그 일은 어디까지나 우연히 벌어진 재난 같은 겁니다! 우리 해군은 용맹하게 싸웠고, 적에게 피해를 줬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 장병들의 분투와 희생을 폄하하시는 말로 들리는군요.”

이번에는 체임벌린이 말문이 막혔다.

나르비크 완전 장악을 위해 전력을 분산한 처칠의 잘못도 크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총리인 체임벌린도 책임소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곤 할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지, 후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처칠은 기세를 몰아 자신의 주특기인 일장연설을 꺼냈다.

방금 전까지 처칠은 차디찬 눈으로 바라보던 각료들조차 처칠의 연설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비록 예상 밖의 피해가 있었지만, 전황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나르비크와 베르겐을 점령하여 목표였던 독일의 철광석 수급을 성공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우리에게 협력해 곧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겠노라고 약속해왔습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독일군이라 해도,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싸우기는 힘들겠지요. 적들의 전력이 분산된 틈을 타 우리 군과 프랑스군이 국경을 넘어 베를린을 향해 진군한다면, 히틀러도 꼼짝없이 백기를 들고 말 것입니다!”

승리를 자신하는 처칠을 보며 체임벌린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처칠의 말대로 전황이 썩 나쁜 것은 아니긴 하다.

조만간에 무솔리니도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기로 약속했고 프랑스의 100만 대군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번에 망신을 당하긴 했어도, 영국 해군이 독일 해군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예감이 드는 거지?

대체 왜?

***

1940년 4월 19일

덴마크 코펜하겐 아말리엔보르 궁전

무식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신 총통관저에서 지내면서 눈이 너무 높아진 탓일까, 아말리엔보르 궁전에 들어서자 작고 아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덴마크 왕실 구성원들의 거처답게 내부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국왕이나 또는 왕비의 취향인지 중세시대 기사가 입었던 갑옷이 복도 구석에 떡하니 전시되어 있어서 다소 놀랐다.

“반갑소이다, 히틀러 총통. 덴마크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옅은 웃음을 띠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

실제 역사에서 크리스티안 10세의 행보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사흘 전에 손녀가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허허, 고맙소이다.”

3일 전인 4월 16일, 훗날 덴마크의 여왕이 되는 마르그레테 2세가 태어났다.

손녀 얘기가 나오자 크리스티안 10세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이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손주 얘기만큼 즐거운 얘기도 없지.

“소식을 듣고 급히 선물을 하나 챙겨오긴 했는데, 마음에 드실련지 모르겠군요.”

내가 준비한 선물은 40년 동안 아기 옷만 전문적으로 만든 장인이 직접 만든 수제 옷과 손수건, 그리고 아이를 낳은 산모를 위한 고급 초콜릿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덴마크 왕실에도 널린 것들이겠지만, 중요한 건 선물보다 선물을 준다는 행위 그 자체다.

한 나라의 총통이 자국 왕실의 손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 이 정도 그림이면 누구나 뻑 가지.

역시나 국왕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굳이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는데······ 정말로 고맙소. 아들과 며느리도 분명 기뻐할 거요.”

“그랬으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크리스티안 10세와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그가 나를 초청한 이유는 독일-덴마크 군사동맹 체결 및 각종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영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둔 입장이었기에 군사동맹 체결 안건은 5분 만에 처리되었지만, 그다음은 조금 복잡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덴마크군을 무장시킬 독일의 신형 무기, 그중에서도 특히 전차와 항공기를 가장 원했다.

“이 나라의 국왕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 군의 무장상태는 지극히 엉망이오. 독일과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들의 군대와 비교하면 장난감 병정 수준이지.”

크리스티안 10세의 말대로 덴마크군의 상태는 가히 처참했다.

전쟁을 할 일이 없던 국가였음을 감안해도 무장상태가 너무 말이 아니었다.

보유한 기갑차량은 프랑스의 르노 FT-17을 베이스로 만든 이탈리아제 피아트 3000 경전차와 스웨덴제 경장갑차가 전부고 항공기도 철 지난 구식 복엽기가 대다수다.

덴마크 군이 보유한 전투기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놈인 포커 D.21도 Bf109보다 성능이 훨씬 뒤떨어지는 데다 그나마도 수량이 부족했다.

당연히 이런 것들로 그 영국군과 제대로 싸울 수 없으니 실전에서 성능이 입증된 독일제 무기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지사.

“알겠습니다. 일단 기갑차량부터 논의하죠.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합니까?”

“우선 4호 전차를 원하오. 대략 50대 정도.”

이 할배, 처음부터 막나가시네.

4호 전차 50대는 너무한 거 아냐?

독일이 미국처럼 돈도 많고, 우월한 공업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차 50대 정도는 기꺼이 내줬겠지만, 안타깝게도 독일은 미국이 아니다.

실제 역사보다는 사정이 나아졌다고 해도 전차 수량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딱 국방군과 무장친위대만 쓸 정도만큼 있는 정도.

그런데 이제 막 동맹국이 된 타국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차 50대를 준다?

그것도 1호나 2호도 아니고 4호 전차를? 이건 아니지.

그리고 덴마크에게 전차 50대를 줘봐라.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작은 덴마크가 전차를 50대나 받았으니 자기들은 더 많이 받으려고 하겠지.

“물론 공짜로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소. 전부는 아니더라도 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값을 제대로 치를 생각이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인지 크리스티안 10세는 내게 공짜로 무기를 지원해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50대 중 우선 10대분의 값만 지불하겠다고 해서 문제지.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 때문에 좋게 보고 있었는데, 내면의 평가가 조금 바뀔 것 같군.

“그건 좀 힘들 것 같군요. 국왕 폐하도 아시다시피 저희 독일은 영국, 프랑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후방에 있는 전차들까지 박박 긁어모아야 할 판이죠. 그런 마당에 전차 50대를 판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입니다.”

“흐음······.”

여러 핑계를 대면서 에둘러 거절하는 것보단,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거절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

당장 우리도 쓸 전차가 간당간당하고, 장군들이 결사반대할 거다 등등.

그리고 전차는 소총과 달리 있다고 해서 바로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최소 몇 달간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겨우 사용할 수 있지.

무엇보다 덴마크는 위치상 지상전이 벌어질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전차는 더더욱.

영프군이 덴마크에 상륙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종전 때까지 연합군은 덴마크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덴마크에게 귀중한 4호 전차를 50대나 넘겨줄 이유도, 필요도 없단 말씀.

크리스티안 10세는 내 말에 실망한 듯 미간을 좁혔지만, 본인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 반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단 지르고 본 말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군.

“독일의 사정은 알겠소. 하지만, 우리 덴마크군도 변화가 필요하오. 영프군이 언제 덴마크에 상륙할지 모르는데, 그때도 저런 구식 무기들로만 싸우라고 할 수 없지 않소?”

크리스티안 10세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누가 봐도 지금 덴마크군이 굴리고 있는 장비들은 잘 쳐줘봤자 독일의 2, 3선급 부대에서나 쓰일 구식 장비들.

언제까지고 그런 것들만 굴릴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최신형 무기를 들여오고 싶겠지.

1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나는 크리스티안 10세가 만족할만한 타협안을 내놨다.

“국왕 폐하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시니 별수 없군요. 우선 저희 독일군이 쓰고 있는 1호 전차 20대와 2호 전차 20대, 4호 전차 10대, Sd.Kfz 221 경정찰장갑차 20대를 드리겠습니다. 값은 2호 전차와 4호 전차만 받도록 하고, 나머지는 덴마크를 위해 무상으로 드리지요.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아주 좋소. 고맙소이다, 총통.”

그제야 크리스티안 10세는 미소를 되찾았다. 이 정도만 해도 덴마크군 입장에선 차고 넘치는 분량이니 만족할만하지.

1호 전차야 훈련, 경찰, 기지 경비용 쓰고 있는 것들 외에도 창고에 예비용으로 처박힌 것들만 세자릿수나 되니 20대 정도는 꽁으로 넘겨줘도 상관없다. Sd.Kfz 221도 마찬가지.

전차와 장갑차 외에도 군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차량-특히 트럭-문제는 의외로 언급이 없었다.

지금 덴마크군이 쓰고 있는 것들의 성능과 수량이 충분해서일까? 가뜩이나 전차만큼 빠듯한 게 차량인데, 이 문제에 관해선 언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전차 문제는 일단락되었으니, 이제 항공기 안건으로 넘어가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우선 저희 독-”

“급보입니다!”

우리의 대화는 크라우제의 다급한 외침으로 끊겼다.

크라우제의 손에 들린 전보를 받아든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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