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의 시대 (4)
“예? 아니, 어째서입니까?”
라베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열심히 자기 얘길 들어주다가 갑자기 무리라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지금 일본에서 보낸 기술자들이 우리 해군의 재건을 돕고 있소. 그런데 그런 우리가 마구 비난을 퍼붓는다면, 틀림없이 일본은 기술자들을 철수시키겠지. 해군의 재건 또한 늦춰질 것이고.
독일의 총통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있는 법이오. 따라서 독일 정부의 입장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일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라베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틀림없이 내가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리라고 믿었는데, 배신을 당한 기분이겠지.
“실망했습니까?”
“예? 아, 아니··· 저, 그게······.”
“선생 기분 다 압니다. 실망했겠지.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건 좀 힘들 것 같다니.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오. 나 역시 쪽발이들이 저지른 짓을 조용히 역사에 묻어둘 생각 따윈 추호도 없으니까.”
“······네?!”
“머리를 굴러야지. 한번 생각해볼까요? 독일 정부는 이번 사건에 별 관심을 표하지 않을 예정이오. 하지만, 독일 국민 개인의 ‘사소한 일탈’을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그 말씀은?”
나는 라베를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다~ 계획이 있소이다.”
***
1938년 3월의 첫날,
세계 각국의 신문 일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일본, 난징을 강간하다!’
‘난징에서 일본군이 벌인 피의 축제’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강간하라······ 일본군의 공식 명령’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강간 후 학살! 가면이 벗겨진 일본의 야만성!’
중립국 스위스로 간 라베는 자신이 난징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난징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대학살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소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신문사들은 즉시 욘 라베의 사진과 증언을 신문 일면에 실었다.
스위스의 신문들이 최초로 전한 난징 학살 소식은 곧 국경을 넘어 세계 각국에 전해졌다.
뉴욕타임스, 더 타임스 같은 저명한 언론사들부터, 존재 자체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방 소도시의 작은 언론사들까지 모두 난징 소식을 신문에 담기 바빴다.
난징에서 일본군이 벌인 대규모 살육 소식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여태까지 일본의 철저한 은폐로 난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난징에서 학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황인종인 일본의 고속성장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인종주의 성향의 신문사들도 이번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런던과 파리, 바르샤바, 워싱턴 D.C. 같은 세계 각국의 수도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이 습격당하고,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시위가 줄을 이었으며 일본 상품을 불매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본 정부는 즉시 성명을 발표하여 모든 게 날조라고 반박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욘 라베 뿐만 아니라 난징에서 살아 돌아온 외국인들도 속속 증언을 내놓으면서 일본의 주장은 완전히 파묻혀 버렸다.
“‘문명국이라 자부하던 일본의 역겹고 추악한 민낯’이라······ 제목 한 번 예술적으로 지었군.”
자극적인 제목답게 기사 내용 자체도 자극적이었다.
어째 일본군에 대한 비판보다는 황인종에 대한 멸시가 더 강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938년의 유럽에서 황인종에 대한 인식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에 걸친 무언가 수준이었으니까.
아무튼 일본 정부에게 개망신을 준다는 본래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이걸로 아주 곤란해졌겠지, 쪽발이 녀석들.
“총통 각하, 일본의 도고 대사가 도착했습니다.”
“벌써? 참 빨리도 왔구만.”
예상대로 일본은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해왔다.
그나마 도고 시게노리 이 양반이 원래 전쟁에 반대하던 사람이라 말은 매우 점잖았지만, 어디까지나 외교관의 신분에 있는 만큼 자신의 조국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에 대해선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되어 참으로 유감이지만, 지금 대본영 일각에선 독일이 일본을 배신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허어, 그거 참 너무한 말이군요. 우리라고 이런 일을 어디 예상이나 했소이까?”
나는 일부러 도고의 말에 크게 실망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욘 라베라는 자가 독일 국내가 아닌 스위스로 가서 그런 일을 할지 내 어떻게 알았겠소? 그리고 설령 알았다고 해도 스위스 안에서 벌인 일인데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이오? 스위스를 침공하라는 말이오?”
내가 강하게 나오자 노련한 외교관인 도고도 당황했다.
“아, 어디까지나 그런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참에 말해볼까요? 나는 귀국의 요청에 따라 중국에서 우리 측 군사고문단도 철수시켰습니다. 중국이 그 일로 얼마나 항의해왔는지 압니까? 더 이상 독일에 광물을 수출하지 않겠다는 말부터 단교까지 불사하겠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얼마나 바빴는지 일본은 압니까?
나는 일독관계 진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귀국의 요청은 뭐든지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 한 명이 저지른 개인의 일탈로 이런 무례를 보이다니! 이게 진정으로 우호국끼리 할 짓이란 말이오?”
도고는 내가 이토록 화를 내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기 바빴다.
“불쾌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이 없군요. 저 역시 이번 일이 독일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제 임무는 일본의 의견을 총통께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
“본국에 전하시오.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일본도 무책임한 추측과 비난은 자제하라고. 독일을 우호국으로 여긴다면 말이오.”
“그리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하나 물어봅시다. 일본의 요청대로 군사고문단을 철수시켰는데, 약속한 기술자들의 추가 파견과 함선 설계도는 언제쯤 도착합니까? 설마 받기만 하고 입을 싹 씻으실 생각은 아니겠지요?”
“무, 무슨 그런 말씀을! 일본은 상대방과의 신의를 함부로 저버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으래? 그럼 진주만 공습은 뭐냐? 설명 좀 해보쇼.
“다만 독일의 팔켄하우젠 장군이 여전히 중국에 있다는 보고가 있어서 말이지요. 그 말이 사실입니까?”
몇 초 전까지 변명하기 바빴던 도고의 표정이 달라졌다. 반격 시작이다, 이건가.
필시 팔켄하우젠을 이유로 들면서 군사고문단을 철수시켰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속이 빤히 보이는 수작이다.
가소롭기는. 내가 이런 것도 다 예상 못했을까봐?
“사실이오.”
“어째서입니까? 고문단을 철수시켰다고 하셨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중국에 그대로 남아있지 않습니까?”
“본인이 갑자기 병에 걸려 독일로 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이오? 재차 팔켄하우젠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지만, 그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소. 지금 그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곧 알게 되겠지.
그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이제 만족했소이까?”
“크흐흠, 잘 알겠습니다.”
도고는 소득은커녕 되려 땀만 한 바가지 흘리고 돌아갔다.
대사관으로 돌아가는 도고의 뒷모습이 어느 때보다 작고 초라해 보였다.
다음날 아침, 도고가 일본에 보낸 무전이 우리 암호팀에 의해 해독되어 내 책상으로 배달되었다.
일본이 사용하는 암호체계인 퍼플(PURPLE)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안체계로 유명했다.
-히틀러 총통과의 회담 결과, 총통은 정말로 이번 사태에 대해 모르고 있는 눈치였음. 또한 팔켄하우젠 건도 이른 시일 안으로 해결할 것을 약속하였음.
멍청한 녀석들.
이러고도 대동아공영권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나 늘어놓다니. 꿈도 야무지셔.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더라?”
“오전에는 선전부 관료들과 회의가 잡혀 있고, 오후에는 신형 기관단총 시연회에 참석하셔서 관계자들과 면담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랬지, 참. 벌써 기대되는구만.”
***
1938년에 나치 독일이 개발한 MP38 기관단총은 외형, 성능 모두 우수한 명품 기관단총이다.
하지만 통쇠를 깎아서 만드는 절삭가공으로 제작되는 탓에 공정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단가도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때문에 나치는 이놈을 보다 싸고,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개량에 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놈이 MP40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놈을 절삭가공보다 싸고 빠른 프레스 가공으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즉, 지금 나온 MP38은 원 역사의 MP40이란 말씀.
MP38도 나온 김에 독일군의 편제도 뜯어고쳤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각 분대마다 한 정의 기관총이 분대 화력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Kar98k 같은 볼트액션 소총들이 곁다리를 맡는 방식이었는데, 분대원 다수가 볼트액션 소총보다 연사력이 좋은 M1 개런드와 PPSh-41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미군과 소련군에게 화력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전쟁 말기가 되어서야 독일군은 기존의 편제 방식이 문제임을 깨닫고 볼트액션 소총보다 화력이 강한 MP40, StG44 같은 자동화기를 대거 지급해 분대 화력의 강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전황이 기운지라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나는 이 MP38을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찍어내 전군에 보급할 계획이었다.
기존의 Kar98k, Gew98을 단기간에 모두 대체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훗날의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형 소총의 개발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소?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총통 각하. 예정대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최초의 기관단총인 MP18을 개발한 휴고 슈마이저가 대답했다.
현재 그가 개발 중인 신형 소총은 역사에서 최초의 돌격소총으로 기록된 StG44로, 기존의 Kar98k를 대신할 독일군 제식소총이 될 예정이었다.
“박사만 믿겠소이다. 빨리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구만.”
“맡겨만 주십시오.”
군수부 장관 프리츠 토트와 건설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노력으로 독일의 군수체계 또한 이전보다 상당히 효율적으로 개편되었다.
아직 손봐야 할 곳이 많긴 하나, 이들의 노력 덕분에 독일 군수체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비효율적인 운영과 생산이 크게 개선되어 군수품 생산량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만한 성과였다.
“내 두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큽니다. 전쟁에서 공장은 심장과 같소. 심장이 멈추면 살 수 없듯이 공장이 멈추면 전쟁을 할 수 없지. 그대들의 어깨에 독일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라오.”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각하께서 전권을 위임해주신 덕분에 기업들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슈페어 장관도 제게 큰 도움을 줬지요.”
“허허허, 아닙니다. 다 토트 장관께서 기획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지시만 내렸을 뿐입니다.”
토트와 슈페어는 서로에게 공을 양보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맨날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쁜 괴링, 괴벨스, 힘러만 보다가 이 둘을 보니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군.
토트가 1942년 2월 8일 동프로이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건설부 장관이었던 슈페어는 히틀러의 권유로 군수장관이 되어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던 독일 산업체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쳤다.
슈페어의 노력 덕분에 독일은 전세가 악화일로로 치닫던 와중에도 군수품 생산이 증가했으며, 1944년에는 절정을 찍었다.
오죽하면 슈페어 덕분에 독일의 패망이 1년 미뤄졌다는 소리까지 있을까.
반대로 말하자면 그전까지는 군수품 생산이 개판으로 이뤄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토트가 무능한 친구라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슈페어가 실행한 계획 상당수가 전임자인 토트가 직접 기획한 것이었고, 토트는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열정적으로 업무에 매진했다.
토트가 없었다면 슈페어의 개혁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쉽게 말해서 토트가 뼈대를 세우고, 슈페어가 살을 붙였다고 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총통 각하께서 강조하셨던 중포 생산량이 상승세에 접어들었습니다. 15cm 평사포의 개발 또한 거의 끝나가고 있답니다.”
“훌륭하군. 나는 호모가 아니지만 장관에게 프로포즈하고 싶은 기분이오.”
“사양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독일군의 문제는 포병 화력이 소련군에 비해 약세라는 것이다.
소련이 워낙 사기적인 것도 있지만, 독일군에겐 전차와 트럭만큼이나 중포가 부족해 노획한 프랑스제와 소련제 중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그러고도 수량이 부족했기에, 중포 생산량을 늘리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또 곡사포보다 사거리가 긴 평사포가 극소수였던 탓에 소련군이 평사포로 포격해오면 독일군 포병들은 사거리가 짧은 곡사포로 대포병사격을 하느라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고 지난번에 총통께서 말씀하셨던, 2호 전차의 차체를 개조해 자주포로 만드는 작업도 차질없이 진행 중입니다. 이미 차체 설계는 끝났고, 전투실 설계만 끝나면 된다고 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오늘도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겠구려.”
4호 전차가 등장함에 따라 퇴역이 예정된 2호 전차를 이대로 퇴역시키기엔 아깝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2호 전차의 차체를 토대로 자주포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병기국에 내렸다.
새로 개발 중인 자주포에는 10,5cm leFH 18 경곡사포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15cm 중포를 올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차체에 무리가 갈 게 뻔했기에 기각되었다.
이외에도 4호 전차를 개조한 자주포와 구난, 대공, 교량전차의 개발도 차차 진행 중이다.
대전차포의 경우 PaK 38의 시제품이 막 출고를 앞두고 있었고.
아, 너무 좋다.
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보낸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누군가 침실 문을 두들겼다.
“총통 각하? 저 크라우제입니다.”
“크라우제? 자네가 이 시간에 왠일인가?”
노크의 주인은 내 개인 경호원인 카를 빌헬름 크라우제였다.
크라우제는 본래 해군 사관생도였지만, 내 경호원으로 발탁되어 지금은 SS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키 크고, 힘 세고, 와꾸도 반반한데다 눈치도 빨라서 경호원으로 제격인 친구다.
어지간한 일이면 다음날 아침에 보고하라고 말하려는데, 크라우제가 먼저 선수를 쳤다.
“급한 일입니다. 지금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
“말하게. 대체 무슨 일인가?”
“블롬베르크 장관과 프리치 장군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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