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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의 시대 (3) (32/150)

대환장의 시대 (3)

식후 디저트로는 티라미수가 나왔다.

티라미수라는 게 부대찌개보다 역사가 짧은 요리라는 것을 알려나 모르겠군.

알려진 바로는 1967년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의 제과업자인 로베르토 린구아노토라는 양반이 팔고 남은 커피와 말라서 딱딱해진 쿠키를 재활용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 원조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넓은 팬 바닥에 딱딱한 비스킷이나 쿠키를 촘촘하게 깔고 에스프레소를 바른 뒤 크림치즈를 얹는다.

크림치즈 위에 쿠키를 깔고, 커피를 바른 뒤 크림치즈를 얹는 것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 생크림을 발라 냉장고에 넣고, 크림이 굳으면 코코아 파우더를 뿌려서 내면 끝.

사실 이는 조리법을 최대한 간략한 것이고, 제대로 만드려면 조리법이 더 복잡하지만 요리강의가 아니므로 넘어가자.

아무튼 맛만 좋으면 되지.

아직 티라미수라는 말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탓에 이놈의 현재 이름은 '총통의 케이크'라는 뜻의 ‘퓌러쿠헨’이다.

마땅한 이름이 없는 데다, 내가 알려준 제조법으로 만들어서 그렇다나?

“그래, 일본이 우리가 주중 군사고문단을 철수시키길 원한다고?”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흐음······.”

내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리벤트로프는 포크로 티라미수를 조각내 입에 넣었다.

배가 고프긴 고팠나 보구만. 전에는 내가 먹으라고 해도 끝까지 안 먹고 버티더니.

원래 역사에서 히틀러는 중국보다 일본과의 관계를 우선시해 일본의 요청대로 주중 군사고문단을 철수시켰고, 이로 인해 독일과 중국의 외교 관계는 사실상 단절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독일은 중국에서 광물을 수입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선 일본의 요청에 좆이나 까라고 쏘아붙여주고 싶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자기네들 요구를 무시했다고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하지는 않으리라. 아무리 전쟁에 미친 전쟁광 놈들이어도 독일과 전쟁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알거든.

대신 독일로 보낸 기술자들을 모두 철수시키겠지. 

함선 건조에는 차질이 빚어질 테고.

아씨, 고민되게 시리.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 어느 한쪽 편만 들 수 없으니, 양쪽 모두가 만족할 방법을 찾아야지.”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 방법이 대체 무엇입니까?”

“간단하네.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예?”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내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나?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말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겠네.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척만 하자는 거야. 군사고문단은 그대로 놔두고.”

“하지만 총통 각하, 일본이 알아채는 날에는 적잖은 파장이 있을 겁니다. 당장은 저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겁니다.”

리벤트로프는 내 말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설명 아직 안 끝났으니까 계속 듣게. 내가 군사고문단에게 소환 명령을 내리되, 그들이 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

“아니, 저들이 항명이라도 하게 부추기라는 말씀입니까?”

괴링이 놀라서 되물었다.

항명, 항명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일본의 눈에 항명으로 보이게끔 입을 맞추자는 거지. 팔켄하우젠에게 미리 언질을 넣어서, 본인의 의사로 내 명령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일세. 그럼 일본도 우리한테 뭐라고 못하겠지. 나는 분명 소환 명령을 내렸는데, 본인이 내 명령을 거부한 것이니까.”

“오오오.”

괴링과 리벤트로프는 진심으로 감탄했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괴벨스의 생각은 달랐다.

“총통 각하,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십니다만 그 경우 뜻밖의 논란을 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짜고 치는 연극이라지만 자국 장성 하나 통제하지 못한다고 세계 각국의 비웃음을 사게 되지 않겠습니까? 국민들도 동요할지 모르고요.”

괴벨스는 남들 눈에 내 지도력이 완전치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했다.

이건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점인데. 과연 천재는 일반인들과 생각 자체가 다르군.

“그것도 그렇군. 그럼 팔켄하우젠에게 조금 더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줘야겠구만.”

내 위신에 최대한 흠집이 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일본에게 빅엿을 선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으려나? 생각해보자 생각······.

아!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

“총통께서 보내셨다고요?”

“그렇소이다, 장군.”

크리벨은 팔켄하우젠에게 갈색 봉투 한 개를 건넸다. 봉투 겉면에는 1급 기밀을 뜻한 붉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봉투를 뜯자, 문서 한 장이 나왔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문서를 읽던 팔켄하우젠은 이내 감탄했다는 듯이 이마를 쳤다.

그리곤 호탕하게 웃었다.

“허어!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뭐라고 적혀있소?”

크리벨은 문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팔켄하우젠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일본이 중국에서 고문단을 철수시킬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함선 건조에 필요한 기술과 자재들을 독일에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는군요.”

“아니, 그래서요?”

“일단 총통은 중국에서 고문단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답니다.”

“허어! 이럴 수가······.”

크리벨은 히틀러의 결정에 충격을 먹은 얼굴이었다. 크리벨의 얼굴에 드러난 당혹감을 본 팔켄하우젠이 씩 웃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말이죠.”

“······공식적으로? 그건 무슨 의미요?”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해군 관련한 문제로 일본의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우니 놈들의 말을 듣는 척 쇼만 하자는 겁니다.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내고, 저는 여기에 남을 겁니다. 베를린에는 내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토병에 걸려 드러누웠다’고 전해질 것이고요.”

팔켄하우젠이 항명하는 방식으로 중국에 남을 경우 지도력이 의심받을 수 있으니, 꾀병을 핑계로 중국에 남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왜 아직도 팔켄하우젠이 중국에 있느냐고 항의하면 오늘 내일하는 사람을 억지로 독일에 끌고 올 수 없지 않느냐라고 응수할 계획이라.

팔켄하우젠은 다시금 총통의 발상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켄하우젠과 절친한 사이인 비츨레벤은 히틀러를 가리켜 군사학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무식한 하사 나부랭이라고 비웃었지만, 이런 편법을 생각해내는 것을 보면 결코 머리가 나쁜 인물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극비이므로 최소한의 인원들만 알고 있어야 한답니다. 장 총통에게는 내가 직접 전하지요.”

“알겠소, 장군.”

***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은 중국의 수도 난징을 함락시켰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도시에 남아있던 민간인들과 중국군 패잔병,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여자들은 강간당했고 일본군의 강요와 협박으로 아들이 모친을, 친부가 친딸을 강간했으며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들은 총검에 꿰이거나 난로에 산 채로 집어 던져졌다.

토막이 나거나 혹은 살아있는 채로 군견의 먹이로 던져진 아기들만 수천 명이었다.

난징에 남아있던 독일 지멘스 사 간부이자 나치당원이었던 욘 라베는 일본군의 학살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난징에 남아있던 외국인들과 함께 국제안전지대를 만들어 그곳으로 중국인들을 대피시켰다.

그는 25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을 구해냈지만, 일본 정부에서 독일에 항의하는 바람에 독일로 송환될 수밖에 없었다.

난징을 떠나는 날, 욘 라베는 다짐했다. 반드시 독일에 가서 난징의 참상을 알리겠노라고. 그리고 반드시 이곳에 돌아오겠노라고.

독일로 돌아온 라베는 즉시 히틀러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했다.

그는 자신이 난징에서 본 모든 것을 편지에 적었다. 산 채로 분살당한 포로들과 강간당한 여자들, 트럭 바퀴에 깔려 으스러진 아이들, 생매장당한 노인들까지 모두.

총통께 난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고통받는 중국인들을 구해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학살당한 무고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목이 마르군.”

편지 작성을 끝내자, 그동안 참아왔던 갈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주방으로 가서 컵에 물을 따르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욘 라베씨? 욘 라베씨 계십니까?”

누구지? 손님인가?

본사에서 보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라베는 선뜻 문을 열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지멘스의 직원들이 아니었다.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눌러쓴 건장한 남자들 서너 명이 욘 라베를 내려다봤다.

남자들에게서 풍기는 서슬 퍼런 분위기에 라베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욘 라베씨? 당신이 욘 라베씨가 맞습니까?”

“네. 제가 욘 라베이오만······?”

“게슈타포에서 나왔습니다.”

“예에?”

아니, 게슈타포가 나를 왜 찾아온 거지? 무슨 이유로?

“저희랑 동행해주셔야 겠습니다.”

엇 하는 사이에 라베는 게슈타포 요원들과 함께 그들이 모는 검은색 폭스바겐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갑작스런 게슈타포의 방문으로 라베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인가요······?”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도착하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운전대를 잡은 게슈타포 요원이 대답했다. 격식있는 말투였지만, 동시에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라베는 최소한 자신이 무슨 이유로 그들에게 끌려가는지 알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풍겨오는 서슬퍼런 분위기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전에 뭐 잘못한 게 있나? 암만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트집잡힐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럼 대체 뭐지?

폭스바겐이 도착한 곳은 총통관저였다.

***

“초, 총통 각하!”

느닷없이 게슈타포가 저택을 방문해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차에 태우더니, 도착한 곳이 총통관저라는 사실에 라베는 1차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히틀러 총통이 자신을 마중나왔다는 것에 2차 충격.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게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이지?

라베를 더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아직 편지를 부치지도 않았는데 총통이 이미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선생이 난징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들었습니다. 아주 의로운 일을 하셨더군요.”

“그저 사,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베는 어째서 총통이 난징에서의 행적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곳으로 불렀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너무 위험해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보통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그런데 선생께서는 그것을 앞장서서 해내셨고. 당신이야말로 게르만 민족의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총통한테서 칭찬을 듣다니. 이거 꿈인가? 꿈치고는 너무 생생한데.

이게 만약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싶었다.

***

“난징에서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식사도 제때 못한 것으로 아는데, 식기 전에 드시지요.”

나는 욘 라베를 위해 성대한 만찬을 대접했다. 지멘스 사 간부라 나름 넉넉하게 살아왔던 그조차 이렇게 화려한 만찬은 처음인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베를린 올림픽 때가 생각나는구만. 손기정 선생도 같은 반응을 보였지. 남승룡과 제시 오언스도.

“아니,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어째서요?”

“어째서긴요. 선생 같은 의인을 대접하는데 이 정도는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욘 라베.

나치당원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멀었던 데다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의 우호국인 독일 국민이라는 점을 활용해 중국인 25만 명을 구한 세기의 의인.

전후에는 중국에서 ‘난징의 부처’로 칭송받은 인물.

그러나 이토록 빛나는 행적과 달리 난징 대학살 이후 그의 인생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독일로 돌아간 라베는 히틀러에게 편지를 써 난징의 참상을 전하려고 했지만,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힘러가 편지를 빼돌렸고 라베는 게슈타포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반체제 행위를 한 게 아닌지라 게슈타포로부터 ‘난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는 가벼운 주의만 받고 금방 풀려났지만, 독일이 패망한 후에는 나치당원이었던 전적이 문제가 되어 연합군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전쟁범죄와 무관함이 입증되어 풀려났으나 재판 과정에서 재산을 모두 날려 가난에 허덕거려야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국민정부에서 성금을 모아 라베에게 보냈지만, 그의 생활고는 여전했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팔켄하우젠처럼 국민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과 대우를 받으며 넉넉하게 살았겠지만, 라베는 전쟁이 끝나고 5년 뒤인 1950년에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아닌가.

사람 한 명의 인생 정도는 충분히 케어해줄 수 있는 위치다.

“입맛에 맞으신지요?”

“이렇게 훌륭한 요리는 처음 먹어봅니다.”

송아지 스테이크를 써는 라베의 손이 바빴다. 틈틈이 샴페인도 마시고, 캐비어도 맛봤다.

디저트로 자허토르테와 파인애플까지 먹인 후에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

“총통 각하, 총통께서도 아시다시피 난징은 지옥입니다.”

라베의 첫 마디는 일본군의 야만성에 대한 토로였다. 이것 역시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잠자코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일본군은 문명국의 군대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야만적인 놈들입니다. 어찌나 사람을 마구 죽여댔는지, 나중에는 신발 밑바닥이 피에 잠길 정도였습니다. 지금 당장 국제사회에 이 사실을 폭로해 일본이 전쟁을 멈추도록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하지만 선생,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일은 힘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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