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데텐란트 문제 (1)
국방장관이자 독일 육군 원수였던 블롬베르크는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괴링, 힘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괴링은 블롬베르크의 국방군 총사령관 자리가 탐이 났고 힘러는 SS의 확대를 반대하는 블롬베르크와 사사건건 충돌하기 일쑤였다.
이해관계가 일치한 둘은 블롬베르크를 몰아내기 위해 기발하고 추잡한 계획을 세웠다.
블롬베르크의 비서이자 그의 새 아내가 된 에르나 그룬이 창녀였다는 소문을 퍼뜨려 블롬베르크의 위신을 추락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명예에 목숨을 거는 독일의 육군 원수가 창녀를 부인으로 맞이하다니! 이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융커들을 혐오하지만, 성 관념에 있어선 그들만큼이나 보수적이었던 원래 역사의 히틀러는 에르나 그룬이 과거에 매춘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노발대발하며 블롬베르크에게 이혼을 명령했다.
하지만 블롬베르크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군에서 물러나야 했다.
육군 총사령관인 베르너 폰 프리치도 블롬베르크처럼 히틀러를 추종했지만 SS를 확대하고자 하는 힘러의 계획에는 결사반대했다.
힘러와 하이드리히는 프리치에게 동성애자라는 누명을 씌워 군에서 사임시켰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던 나는 원래의 역사와 달리 괴링과 힘러, 하이드리히의 끈질긴 요청에도 블롬베르크와 프리치를 사임 시키지 않았다.
가끔씩 반대의견을 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능력도 있고 충성심 하나만큼은 확실한 이들인데 쫓아내서 뭐하려고?
“블롬베르크의 아내가 과거에 창녀였다는 사실은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내겐 둘의 사랑을 방해할 권한이 없네.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야. 과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데 내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총통 각하, 이건 군과 국가의 위신이 걸린 문제입니다. 육군 원수의 아내가 창녀라니! 다른 나라에서 알면 손가락질할 겁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블롬베르크 본인이 괜찮다는데. 당사자가 아닌 자네가 뭐라고 남에게 이혼을 요구한단 말인가? 더 이상 날 화나게 하지 말고 가게.”
“프리치가 호모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프리치가 야밤에 공원에서 남자와 그 짓을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입니다. 같은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하이드리히, 자네가 말한 증거라는 게 겨우 목격자의 증언뿐이잖나. 증언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만약 누군가가 내게 와서 자네가 남자와 붙어먹는 모습을 봤다고 하면 나는 그 말을 믿어야 하나?”
“어······.”
내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괴링과 힘러, 하이드리히도 더는 뭐라고 하지 못했던 것이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그토록 모함하던 블롬베르크와 프리치가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블롬베르크는 왼팔이 빠지고 갈비뼈 서너 대가 부러진 데다 뇌진탕까지 걸려 대수술에 들어갔다.
프리치는 의식불명이고.
설마 괴링과 힘러, 하이드리히 이놈들이 사고로 위장해서 죽이려고 한 게 아닐까?
그놈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나는 즉시 이 셋을 호출했다.
“억울합니다, 총통 각하. 저희는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자네들이 이 둘을 씹고 뜯은 지 겨우 한 달 전 일인데? 자네들이 나라면 그 말을 믿겠나?”
“하, 하지만 총통 각하! 이번 일은 정말로 저희와 무관합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셋 다 필사적으로 결백을 주장했다.
마이페이스로 유명한 하이드리히조차 잘못하다 걸린 초딩처럼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걸 보니 당황하긴 당황했나 보다.
이게 만약 연기라면, 이놈들 모두 남우주연상감이다. 최민식이 와도 이놈들처럼 연기하긴 힘들 것 같다.
반응을 보니 정말로 이놈들이 범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지?
내 의문은 블롬베르크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풀렸다.
블롬베르크의 상태가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선물을 싸 들고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입으로 사건의 전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진실은 내 예상보다 훨씬 황당하고, 어이없는 것이었다.
“······음주운전? 자네가? 그것도 직접?”
“예······.”
“······정말로?”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절친한 사이였던 블롬베르크와 프리치.
최근 꿀꿀한 일도 있고 그래서 간만에 둘이서 술을 마셨단다.
기분이 좋아진 블롬베르크. 프리치와 함께 2차를 가기로 했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운전병이 운전대를 잡으려고 했지만 블롬베르크는 자신이 직접 운전하겠다며 퇴근을 명령했다.
운전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어코 직접 운전석에 앉고 말았다.
마침 도로에는 차도 한 대 없겠다. 속도를 좀 올려볼까?
재밌네? 조금만 더 올려볼까?
커브를 도는데, 갑자기 행인이 나타났다.
행인을 피하려던 블롬베르크는 핸들을 휙,
그 길로 가로수에 쾅.
······이것이 블롬베르크-프리치 교통사고의 진실이었다.
***
일주일 뒤 프리치도 의식을 되찾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업무에 복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의사들 말에 따르면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하단다.
국방장관과 육군 총사령관이 갑자기 공석이 되었으니, 후속 조치가 시급했다.
국방장관직에는 빌헬름 카이텔을, 육군 총사령관직에는 발터 폰 브라우히치를 임명시켰다.
본래 히틀러는 군부의 친나치 장성들 중에서도 열렬한 나치빠였던 발터 폰 라이헤나우를 국방장관이나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하려고 했지만 군부의 결사반대로 무산되었다.
나 역시 라이헤나우를 생각해봤지만, 굳이 그를 임명해서 군부의 반발을 살 필요가 없었다.
라이헤나우와 달리 카이텔과 브라우히치는 육군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인망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히틀러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러므로 낙찰.
국방장관직을 탐내던 괴링은 내가 후임 국방장관으로 카이텔을 임명하겠다고 말하자 대놓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SS 문제로 브라우히치와도 마찰을 빚었던 힘러 역시 브라우히치가 육군 총사령관직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혹스러워했다.
방해꾼이었던 블롬베르크와 프리치가 나가리되었으니, 자기들 세상이 왔다고 판단했겠지.
틀림없이 이놈들끼리 모여 샴페인을 땄다는 것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표정들이 뭔가? 내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인데?”
“엇. 아, 아닙니다, 총통 각하.”
아니긴 뭘 아냐, 이놈들아. 얼굴에 다 드러나 있구만.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이라면 군말 없이 따르던 놈들이기에 이대로 계속 물만 먹이기에도 뭣했다.
채찍을 썼으면, 당근도 줘야 하는 법.
카이텔과 브라우히치를 국방장관과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한 다음 날, 나는 괴링에게 제국원수 칭호를 부여했다.
감투 수집에 환장하던 괴링이라면, 이 방법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제 인생에 이보다 더 큰 영광을 없을 겁니다!”
“알면 됐네. 앞으로도 열심히 업무에 매진하도록.”
역시나 괴링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단순한 녀석.
제국원수라는 칭호가 그리도 좋은 걸까. 이름만 거창하지, 대우는 일반 원수들과 다를 바 없는데.
뭐,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걸로 됐지.
힘러에게도 선물을 챙겨주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카이텔, 브라우히치를 설득하여 SS 전투부대인 무장친위대의 규모를 3개 여단으로 확대하고, 각 여단마다 전차중대를 새로 창설할 수 있도록 했다.
“반드시 무장친위대를 육군을 뛰어넘는 독일 최고의 부대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총통 각하!”
힘러 역시 이러한 조치에 큰 만족감을 표했다.
집안 정리도 이쯤 하면 되겠지.
그런데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드는데 왤까?
어딘가 마음이 허전해진 나는 자연스레 책상 위 지구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럽 한복판에 독일이 있고 그 독일 옆에 폴란드가 있으며 폴란드 밑에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있다.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남남인 두 민족을 하나로 합쳐서 만든 샴쌍둥이 국가.
원본 히틀러의 말에 따르면 민족자결주의의 부산물 같은 국가.
독일의 옆구리를 찌르는 듯한 저 가증스러운 국경을 보라.
슬슬 손 좀 봐야겠군.
***
독일과 맞닿아 있는 체코슬로비카아의 주데텐란트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독일계.
1차대전이 끝나고 미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재창하자 주데텐란트의 독일계 주민들도 독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민족자결주의를 재창하긴 했지만, 패배자인 독일인들에겐 해당사항이 없음이 탄압의 이유였다.
연합국도 독일의 영토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계 주민 탄압을 지지했다. 그렇게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게 굴종하며 조용히 살아야 했다.
하지만 나,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하자 그간 숨죽여 살던 주데텐란트 독일계 주민들도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5월부터 주데텐란트 문제를 언급했다.
처음에는 대국민 연설에서 지나가듯이, 그다음에는 제법 중요한 문제라는 말투로, 그그다음 연설에선 본격적으로.
“친애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인접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에 사는 동포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 동포들이,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들이!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탄압 속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민족자결주의 덕분에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주데텐란트에 살던 독일인들에게는 독립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열등한 패배자인 독일인들이라는 이유로! 주데텐란트의 동포들에겐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노예의 서약과 굴욕스러운 삶뿐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독일인들의 소망을 가차없이 짓밟으며,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바쁩니다. 어제 독일의 깃발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한 노인이 체코슬로바키아 경찰에 의해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갈비뼈가 부러졌고, 두개골에 금이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에서조차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의사가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 노인은 그날 저녁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어째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어째서 우리는 그 비극을 막을 수 없단 말입니까?
저는 이 자리에서 말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지금 즉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만행을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독일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대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말입니다!”
“우아아아아아아!!!!!”
“하일 히틀러!”
당연하게도, 체코슬로바키아는 내가 주데텐란트 문제를 언급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내가 전쟁이라도 일으킬 생각이냐며 격렬한 비난을 퍼부어댔고, 독일계 주민들에게 직접 폭동을 일으킬 경우 주데텐란트 일대에 특별 계엄령을 선포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계 주민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를 대상으로 사보타주를 자행하거나 자위단을 조직해 군의 무기고를 털고 경찰서를 습격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예비군 소집령을 내리고 독일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는 한편, 동맹국 프랑스와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두 국가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9월이 되자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의 대립은 더욱 극심해졌다.
나는 국방군에 지시해, 병력을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 배치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에도 군부는 내 결정에 비명을 질렀다.
“총통 각하, 전쟁은 무리입니다! 아직 재무장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전쟁을 벌였다간 우리는 필패할 겁니다!”
내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베크가 한 말이었다.
그는 내가 총통이 아니었으면 바로 죽빵 한 대 갈기고도 남았다는 표정을 대놓고 드러냈다.
“베크 장군의 말이 맞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전쟁은 무리입니다. 재고해주십시오.”
비츨레벤과 카나리스도 베크를 지원사격했다.
괴링 역시 조심스레 내게 당장의 전쟁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힘러는 말없이 내게 격한 어조로 반대를 표하는 장성들을 흘겨보고 있었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지라 괴벨스도 침묵을 지켰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전쟁을 하자고 했나? 난 그저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 군대를 배치해 놈들에게 위협을 주라고 명령했을 뿐일세.”
“그게 그거지 않습니까. 지금은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베크가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 말투가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에, 괴링과 힘러, 괴벨스 3인방이 그를 노려봤고 다른 장성들도 일제히 내 눈치를 살피며 베크를 쳐다봤다.
나 역시 베크의 말에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연기했다.
실컷 떠들어라. 어차피 살날이 많지 않으니까.
“내 말이 농담으로 들렸다니, 그거참 유감이군. 하지만 난 정말로 전쟁을 할 생각이 없네. 방금 말했듯이 그저 위협만 주려는 생각일 뿐.
나도 지금 전쟁을 벌였다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의외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박을 무척 싫어한다네. 길을 가더라도 최대한 안전한 길로 가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지.”
“도박을 싫어하시는 분이 어째서 체코슬로바키아 문제를 걸고 넘어지신 겁니까? 그게 총통께서 생각하시는 안전한 길입니까?”
“이보시오, 장군! 감히 총통 각하께 그 무슨 무례한 말이오!”
베크가 비아냥거리자 괴링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나는 한 손을 들어 괴링을 제지했다.
“이해를 잘못한 것 같으니 설명해주지. 체코슬로바키아는 물론이고, 영프도 우리가 전쟁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몰라. 지금쯤 놈들은 내가 정말로 전쟁을 벌이려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걸세.
나는 라인란트 때처럼 이번에도 놈들의 허점을 파고들 생각이외다.”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맹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독일과 전쟁을 하는 게 부담이 되었고 영국 역시 독일과의 전쟁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독일의 침략 야욕을 비난하면서도, 뒤로는 정말로 전쟁이 터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두 나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에 동맹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겁박해 주데텐란트를 토해내게 만든 것이다.
믿었던 영프마저 자신들을 버리자 체코슬로바키아는 하는 수 없이 독일에게 주데텐란트를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며 죽을 때까지 아쉬워했지만.
실제 역사와 차이가 있다면 독일을 지지했을 이탈리아가 지금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크게 우려스러운 사항은 아니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와 스페인에서의 과도한 지출로 인해 군대가 개판이 됐는데, 하물며 여기서는 에티오피아에서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원 역사 이상으로 망가진 이탈리아군쯤이야 2개 사단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베크는 끝내 설득되지 않았지만, 카이텔과 브라우히치는 달랐다.
나는 둘을 불러, 체코슬로바키아와 결코 전쟁을 할 생각이 없으며 영프가 강하게 나올 경우 먼저 물러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아직도 국방군 내에선 내가 전쟁을 하고 싶어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자들이 있소. 두 사람이 나서서 그들에게 내 뜻을 잘 전달해주면 고맙겠소이다.”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그 친구들은 저희가 잘 설득시켜 보겠습니다.”
괴링과 힘러야 내 명령에 죽고 사는 녀석들이니 따로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레더 역시 내 뜻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레더의 설득이 마무리된 후, 나는 하이드리히를 호출했다.
호출을 받고 집무실로 온 하이드리히에게, 나는 내가 직접 작성한 서류를 건넸다.
“내 말 잘 듣게, 하이드리히. 지금부터 이 목록에 있는 자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게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내게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머리 회전이 빠른 하이드리히는 내 명령에 일체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건넨 서류를 조심스레 파일에 꽂아 자신의 서류 가방에 넣었다.
“추가적으로 지시하실 일은 없습니까?”
“없네. 아직은. 생기면 부르도록 하지. 그만 가보게.”
‘청소’는 일이 마무리되는 즉시 실행할 예정이다. 놈들이 눈치를 챌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
오래오래 살고 싶으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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