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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검의 밤 (3) (14/150)

장검의 밤 (3)

“이봐, 아돌프! 장난이 너무 지나친 것 같네!”

룀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룀의 말에 내 옆에 있던 디트리히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당신 눈에는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디트리히는 수중의 루거로 룀의 머리를 겨냥했다. 여차하면 바로 사살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여간 호모 아니랄까 봐 뻔뻔하기 짝이 없군. 역겨운 돼지 새끼 같으니라고.”

힘러도 거들었다.

“이, 이보게.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건지 설명이라도-”

“끌고 가.”

나는 룀의 절박한 애원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렸다.

SS 대원들이 달려들어 룀을 포박했고, 룀은 거칠게 저항하며 울부짖었지만 SS 대원들의 화만 돋을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 이 새꺄!”

“돼지 같은 놈!”

개머리판이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돈까스 망치로 고기를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5분 뒤, SS 대원들에게 끌려나온 룀의 얼굴은 피멍으로 가득했다.

코는 부러졌는지 코피가 줄줄 흘렀고, 눈은 퉁퉁 부어서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이 개새끼······.”

내 옆을 지나갈 때, 그가 목소리를 쥐어짜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SS 대원이 개머리판을 휘둘러 그의 등을 타격했다.

“이 씹새끼가 진짜!”

“더 처맞아야 정신 차리지!”

“잠깐.”

“?”

“그래도 우리 동지였던 사람일세. 그러니 그냥 넘어가게.”

“예? 아, 알겠습니다······.”

룀은 짐짝처럼 트럭 뒤 칸에 내동댕이쳐졌다.

룀과 함께 바트비제에 머물고 있던 SA 참모들도 모두 SS 대원들에게 포박되어 끌려 나왔다.

룀처럼 잠옷 차림이었던 자가 있는 반면, 알몸인 경우도 많았다. 무슨 짓을 하다가 잡혀 왔는지 알만했다.

그들도 룀처럼 자신들이 어째서 체포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몇 명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SS 대원들이 달려들어 묵사발로 만들어버렸지만.

“반역자들을 모두 체포했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각하.”

디트리히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눈치채고 도망친 놈들이 있을지 모르니, 이 일대를 수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이드리히의 말. 그도 도망친 자가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철두철미함을 강조해 내 눈에 들기 위해서겠지.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눈치 빠른 자들이었다면,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바트비제 일대를 둘러봤다. 한밤중 소동에 놀란 주민들 몇 명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러 밖에 나왔다가, SS 대원들의 제지를 받고 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소란을 피운 것 같네. 이만 철수하지.”

“알겠습니다.”

***

나는 뮌헨의 나치 당사로 가,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미리 언질을 받은 당 간부들은 이미 당사에서 대기 중이었고, 나머지도 소집 명령을 받곤 부리나케 뛰어왔다.

간부들이 모두 모이자, 나는 그들 앞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네.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룀이 쿠데타를 벌이려고 했기 때문이야.”

룀이 쿠데타를 벌이려고 했다는 말이 나오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걱정하지 말게. 이미 룀과 그 일당은 모두 체포되었으니까.”

나는 간부들에게 사건의 개요와 과정, 결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던 간부들도 이내 눈치를 채곤 열렬한 박수와 함성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역시 각하십니다!”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뒤로한 채 나는 당사를 나왔다.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들이 알아서 잘 설명해줄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지으러 가야지.

***

뮌헨에서 룀이 체포될 무렵,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주요 도시들에서도 SS와 군, 경찰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다 끌어내!”

“이 좆같은 빨갱이 새끼들아!”

룀의 측근들은 물론 관련자들과 SS의 살생부 명단에 오른 자들이 일제히 체포되거나, 혹은 사살되었다.

SA 상층부 중에 빅토르 루체와 친한 일부를 제외한 전원이 숙청되었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소동에 휘말려 살해되었다.

숙청의 피바람이 불 때, 슐라이허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

“히틀러, 그놈이 결국에는 본색을 드러냈구만.”

슐라이허는 혀를 차며, 일개 하사 나부랭이 출신 얼뜨기 정치인이 실제론 속에 칼을 감춘 괴물이었다는 사실에 몸서리쳤다.

가정부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재빨리 자신의 측근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히틀러가 SS를 동원해 룀과 SA를 숙청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슐라이허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히틀러도 조금만 눈치가 있다면, 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다는 사실쯤은 금방 알아채겠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불길한 상상을 하던 슐라이허는 식은땀을 흘렸다. 어쩌면 놈이 벌써부터 나를 해코지하기 위해 준비 중일지도 몰라.

슐라이허에게 유일하게 기댈 곳이라곤 힌덴부르크 밖에 없었다.

비록 총리직 임명 문제로 관계가 조금 소원해지긴 했지만,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의 친분은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겠어.”

슐라이허는 측근을 보내 힌덴부르크와 면담 약속을 잡기로 했다.

룀과 달리 자신에게 아직 아무런 해코지도 가하지 않을 것을 보면 히틀러는 틀림없이 나와 대통령이 친한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놈의 생각이 달라지기 전에 대통령과 만나 친분을 확인한다면 히틀러도 건드릴 수 없겠지.

“식사 시간입니다. 주인님.”

마침 가정부가 아침 식사를 내왔다. 갓 구운 빵과 삶은 계란, 치즈, 베이컨, 커피로 구성된 간소하면서도 든든한 메뉴였다.

슐라이허는 습관대로 커피부터 먼저 마셨다. 그런데 오늘따라 커피 맛이 조금 이상했다.

어째 평소보다 더 쓴 거 같은데? 커피가 상했나?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리지? 뭔가 이상······.

쿵.

“주, 주인님!?”

커피를 마시다 말고 바닥에 쓰러진 슐라이허를 본 가정부가 황급히 뛰어갔지만, 이미 슐라이허는 의식불명이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국방차관이자 예비역 육군 중장이었던 쿠르트 폰 슐라이허의 죽음이 짤막하게 실렸다.

현직 총리 아돌프 히틀러가 애도를 표했다는 소식과 함께.

***

룀과 함께 체포된 SA 간부들은 뮌헨 슈타델하임 교도소 지하감방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당일, 체포된 모든 간부들의 총살이 집행되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룀뿐이었다.

룀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앞에 두 남자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히틀러가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고개를 올렸지만 생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정신을 차렸군.”

테오도어 아이케 SS 중령은 피투성이인 룀을 무덤덤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히, 히틀러를 만나게 해 주게······.”

“총리 각하시다. 그분은 이미 뮌헨을 떠나셨소.”

아이케가 손짓하자 그의 옆에 있던 미하엘 리페르트 SS 소령은 그에게 오늘 자 신문 한 부와 루거 P08을 건넸다.

그리고 총알 한 발도.

“원래대로라면 당신도 총살감이지만, 각하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소. 알아서 잘 판단하시오. 10분 후에 다시 오겠소.”

아이케와 리페르트가 떠난 후, 룀은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에는 그가 돌격대를 선동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이런······.

신문에는 룀이 어린 소년들과 성교하는 것을 광적으로 밝히는 호색한이자 난봉꾼이며, 현 정권을 뒤집기 위해 프랑스로부터 뇌물을 받기까지 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돌격대 지도자의 추잡한 민낯!’

‘남자 없이는 잠을 못 잔다?’

‘미수로 끝난 쿠데타······. 관련자 전원 체포’

‘프랑스 대사 긴급 성명문 발표, 프랑스는 이번 사태와 아무 관계 없어······.’

“허허허······.”

상황파악이 끝난 룀은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처음 히틀러와 만났을 때, 이 자라면 틀림없이 자신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놓으리라 여겼다.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 룀은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이제 진정한 혁명의 날이 머지않았다고 굳게 믿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융커들과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경비원들에 불과한 낡은 군은 사라지고, 진정한 인민들의 군대를 자신의 손으로 창설할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생각은 달랐다.

히틀러는 인민들의 군대를 만들 생각도, 혁명에 동참할 생각도 없었다.

그에게 자신은 그저 이용해 먹기 좋은 버림패였을 뿐.

그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

약속한 10분이 지나자, 아이케와 리페르트는 다시 독방에 나타났다.

룀은 아직 살아있었다. 총알도 권총에 장전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지막 기회까지 발로 차버렸구만.”

아이케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케와 눈을 마주친 룀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겐 아직 할 말이 있네. 그러니···.”

“쏴라.”

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페르트가 루거를 뽑아 룀의 심장을 겨냥했다.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총탄을 맞은 룀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를 향해 2발이 발사되었다. 두 번째 총탄도 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피가 역류하며 의식이 흐려졌다.

“총리 각하······.”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해내던 룀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뱉은 말이었다.

“당신은 그걸 더 빨리 말했어야 했소.”

룀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그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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