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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1) (15/150)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1)

장검의 밤이 마무리된 직후, 이 사건을 두고독일 국내를 비롯한 유럽 일대가 시끄러웠다.

영국과 프랑스는 법치국가에선 일어날 수 없는 폭거라고 나를 격렬하게 비난해댔지만, 국내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물론 법적인 절차 없이 돌격대 간부들을 무단으로 참살한 것에 대한 충격과 성토가 있긴 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잘했다’였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고.

어째서 국민들이 이토록 야만적인 사건에 대해 비난 대신 지지와 환호를 보냈느냐? 그건 간단하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도 돌격대가 하는 짓이 같잖았거든.

군부는 물론이고 시민들조차 돌격대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자신들의 마음에 조금만 안 들면 다짜고짜 거리에서 두들겨 패는 게 예삿일이었고 심지어 지도부라는 작자는 남자나 밝히는 게이였다.

PC가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21세기에도 동성애자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아주 곱다곤 할 수 없는데, 20세기에는 오죽할까?

이 시기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유색인종을 향한 혐오보다 훨씬 더 강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 모두가 돌격대를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게이와 깡패들의 집합소인 돌격대 지도부가 반역-사실은 조작된 거지만-까지 꿈꾸다가 처형되었으니, 국민들은 정부가 잘했다며 열성적인 지지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힌덴부르크조차 직접 연설을 통해 훌륭하고 과감한 선택이었다며 나를 칭찬하자, 그나마 남아있던 비난의 목소리는 쏙 들어가 버렸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에 국한된 일이었지, 외국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유럽 민주주의와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영국은 물론이고, 난데없이 쿠데타 배후로 몰린 프랑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 대한 비난과 성토를 쏟아냈다.

이탈리아도 주류에 편성하여 미개인들이나 할법한 짓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오히려 소련은 형식적인 비판 성명만 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스탈린이 히틀러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실제 역사에서도 장검의 밤 소식을 전해듣곤 측근인 아나스타스 미코얀에게 “대단한 친구야! 정말 멋지게 해냈군!”이라고 말하며 히틀러를 칭찬했다고 한다.

사상은 달라도, 같은 독재자들끼리 서로 통하는 그런 게 있었나 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난 여론도 점점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독일을 보는 세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이러한 인식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사건이 발생했다.

***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 중 단연 최악은 무엇일까?

민주주의 훼손과 독재? 침략전쟁?

뭐니 뭐니 해도 단연 1등은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나라는 길거리의 돌멩이들만큼이나 흔하다. 오히려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없었던 나라를 찾기 힘들 정도다.

한 번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종차별과 학살을 저지른 나라는 수없이 많은데, 어째서 나치 독일만 그런 행위의 대명사처럼 표현되는 걸까?

학살당한 사람들의 숫자만 따지면 중국이 1등이고, 2등이 소련인데?

당장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작은 소국 벨기에조차 콩고에서 300만이 넘는 콩고인들을 살육했는데?

하지만 그런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나치 독일은 남달랐다.

타 인종을 전멸시키려고 한 것을 넘어, 학살 자체가 국가 주도적 사업이었을 정도의 나라니까 말이다.

나치는 보다 효율적인 학살을 위해 당시의 과학기술과 행정체계를 총동원하였고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등 절멸수용소라는 이름의 인간 살육 공장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물자가 부족한 전시 상황에서도 학살을 포기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전방에는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다고 난리 치는데, 지도부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후방에서 학살 공장을 돌린다. 이게 정상인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일까?

당연하지만 학살에 필요한 인력과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행정, 유대인들을 수용할 막사를 지을 자재, 당장 수용된 유대인들을 먹여야 할 식량을 전방에 보냈다면 물자 부족이 크게 해소되었을 것이다. 지도부도 그 간단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테고.

하지만 나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학살에 진심이었던 나라는 나치 독일이 유일하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는 병적이어서, 암만 독일에 충성하고 쓸모가 있으며 과거에 공을 세웠다 할지라도,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죽이려고 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일반 국민들조차 정부의 유대인 탄압에 적극 찬성했다는 점이다.

전쟁이 끝나고 학살 사실이 밝혀지자 경악하기는 했지만, 학살이 아닌 탄압에 대해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히틀러의 몸을 하고 있고, 히틀러가 걸어갔던 길을 비슷하게 따라가고는 있지만 나는 그가 저질렀던 학살을 그대로 답습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 전에도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 각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독일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

“지금 뭐라고 했나, 힘러?”

“말 그대로입니다, 각하.”

힘러는 당당한 태도로 내게 유대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실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아침부터 집무실로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또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각하, 유대인들은 독일 사회의 암 덩어리 같은 존재들입니다. 놈들은 우리의 경제를 망치고, 국가의 부를 외국으로 유출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종적 우수성까지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역겨운 종자들은 가만히 놔뒀다간 독일 민족의 순수성은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힘러, 시간 없으니 최대한 짧게 말하겠네. 내 말 잘 듣도록.”

나는 서서히 빡침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쏘아붙였다.

“자네는 왜 그렇게 쓸데없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나? 지금 자네가 말하는 유대인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더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리고 내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나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고.”

“그러니 각하,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내가 강한 어조로 나오자, 힘러는 당황한 듯 몸을 움츠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각하께서 말씀하신, 독일의 암 덩어리인 공산주의자들 상당수가 유대인들입니다. 공산주의를 독일에서 완전히 박멸하겠다고 공언하신 분께서, 어째서 공산주의자들을 양산하는 유대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신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만 같아선 저 미간에 총탄을 박아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또 무슨 난리가 날지 몰랐기에 겨우 참았다.

무슨 말을 해야 저놈의 주둥이를 다물게 할 수 있지?

생각해보자, 생각······.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기발한 발상’이 떠올랐다.

힘러,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이건 어떨까.

“힘러.”

“예.”

“내가 자네를 왜 뽑았는지 아나?”

“예?”

생각지 못한 질문에 힘러는 당황했다.

“어······ 그거야 당연히 제 충성심을 각하께서 알아봐 주셨기 때문에-”

내가 란츠베르크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러는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 나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히틀러는 힘러의 편지를 기억하고 석방된 후 그를 기용했다.

“그것도 있지만, 자네가 지적이고 유능하다고 생각해서야. 자네처럼 일 처리가 똑 부러지고 머리 회전이 빠른 친구는 좀처럼 찾기 힘드니 말이지.”

응, 뻥이야.

하지만 힘러는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해맑게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역시 각하는-”

“하지만,”

“?”

“이제 그 생각이 바뀔 것 같군.”

“······네?”

“똑똑하고 유능한 줄 알았던 자네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헛소문에 놀아나다니. 정말 실망일세, 힘러. 정말 실망이야.”

나는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힘러는 당황하여 입만 벌린 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잘······.”

“자네가 유대인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네. 하지만 이따위 헛소문까지 진지하게 믿고 있을 줄은 몰랐어.”

힘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신이 났다. 나는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억누르며 최대한 절제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유대인들은 곧 공산주의자다 이 말은 다 헛소문이야! 그것도 독일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역겨운 쓰레기들이 지어낸 대표적인 거짓말이라고! 왜 그런 줄 아나?”

“모, 모르겠습니다만······?”

“공산주의자들 중에 유대인들이 있는 건 사실이겠지. 하지만 그들 중에는 유대인이 아닌, 자네가 소위 말하는 순혈 아리아인들도 많이 있네.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유대인들이라면, 그렇다면 아리아인도 결국엔 유대인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어?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닙니다! 제 말은-”

닥치고 들어, 인마.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내가 1919년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던 게 뭔지 아나? 바로 단결이야, 단결. 나는 늘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지.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그런데 뭉치기는커녕 서로 유대인이니, 비유대인이니 등으로 나뉘어 싸우기만 한다면, 단결이 될 것 같나? 천만에!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자멸하고 말겠지!

유대인이 공산주의자들이란 말은 모두 헛소리야! 위대한 독일 민족의 발전을 막고 독일의 멸망을 바라는 자들이 지어낸 헛소문이란 말이야!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닌 자네가, 그것도 SS의 수장이란 자가 그따위 헛소리나 믿고 있다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이날 힘러는 생애 처음으로 내게 아주 개같이 털렸다.

힘러는 전 재산을 꼬라박아서 샀던 주식이 대폭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개미처럼 처참한 얼굴을 한 채 집무실을 나갔다. 집무실 문밖으로 나가는 힘러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후우, 이제야 좀 속이 풀리네.

***

그날 이후로 힘러는 내 앞에서 유대인의 유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간에서의 반유대주의는 성행하고 있었다.

힘러뿐만 아니라 괴벨스와 하이드리히도 때때로 내게 유대인들을 손봐줄 필요가 있다고 넌지시 말해 나를 빡치게 만들었다.

징글징글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아니, 괴벨스 박사. 나는 박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나 증오하는 줄 몰랐소만? 뭐 때문에 그리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거요?”

“그거야 당연히 유대인들이 독일 사회에 짐만 되는-”

“가만. 과거에 박사를 가르쳤던 교수들 중에서도 유대인이 많았다고 전에 한 번 말하지 않았소?”

“예? 어? 아니, 그걸 어떻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

나는 괴벨스가 대답할 틈도 없이 하이드리히로 목표를 바꿨다.

“하이드리히, 내가 알기로 과거 자네 부친께서 유대인 지인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들었는데.”

“각하께서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알기는. 이 사람 좀 보게. 지난번 파티에서 자네가 직접 얘기하지 않았나.”

“제가 말입니까? 저는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만?”

“그럼 내가 들은 말은 뭔가?”

“어? 그, 그게······.”

유대인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한 장광설을 들을 시간도, 생각도 없었던 나는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 둘에게 역공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둘 다 시험 중에 컨닝을 하다 선생에게 들킨 학생처럼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당황스러울 만도 하지.

자신들은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세세한 사항 하나까지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쯤 두 명 모두 건망증이 생긴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겠지.

힘러가 내게 개같이 털렸다는 소식을 들은 괴링과 헤스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이들도 반유대주의에 대해선 딱히 거부감을 표하지 않았다.

그만큼 독일에선 반유대주의가 당연한 일이었다.

나 또한 유대인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반유대주의가 문제인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없애려고 시도했다간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어서였다.

현 상황을 유지하는 선에서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게 내 목표다.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나도 건드리지 마라. 선만 지키자고, OK?

하지만, 내 앞으로 온 편지 한 장에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

“편지라고?”

“예, 그렇습니다. 각하께 온 편집니다.”

평소처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데, 편지가 왔다.

편지는 평소에도 자주 왔다. 95%는 내 지지자들이 보낸 팬레터였고 5%는 나를 비난하는 익명의 투서였다.

편지가 하도 많아서 나는 마우리스에게 내게 오는 편지를 알아서 적당히 검열하라고 지시했다. 정말로 중요한 것들만 빼고.

마우리스가 가져온 편지들은 대체로 나치당 고위 간부들과 정치인들이 보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편지는 달랐다.

지금까지 받았던 편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아인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을 창시한 과학자들의 과학자인 그 사람 맞다.

그 아인슈타인이 내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고?

나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아인슈타인이 보낸 편지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읽어봐야 했다.

대체 그가 무슨 이유로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금방 풀렸다.

아인슈타인이 내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단 하나, 독일에 만연한 반유대주의를 내가 해결해주길 바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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