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하온이: 저 이제 이연휘 씨 만나요]
[나: 어..?]
반사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정이한은 그대로 굳은 채 딱딱한 얼굴로 멤버들을 봤다. 이서호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고, 백강현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인상을 썼다.
“……이거 이상하잖아.”
심각한 얼굴로 톡을 보고 있던 박유찬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 왜? 뭐, 뭐가 이상한데?”
당황한 이서호가 말을 더듬었다. 정이한은 더 올라오지 않는 대화방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우리 약속! 빨리! 다들 평소처럼 해요!”
“헐……. 미친.”
뒤늦게 알아차린 이서호가 다급히 손을 놀렸다.
[서호: 진하온 조심해라 진짜]
[나: 하온아... 그냥 담에 하자]
[유찬 형: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다 알지?]
[강현이: 대화 끝나면 바로 이야기해. 정곤 형이 금방 데리러 갈 거야.]
[서호: (손을 물어뜯으며 벌벌 떠는 토끼 이모티콘)]
“왜? 뭐가 이상한데?”
엉덩이를 반쯤 든 박정곤 매니저의 안색이 대번에 굳어졌다. 박유찬이 그에게 휴대폰을 내밀어 대화 내용을 보여줬다.
“하온이가 이연휘 씨 만난다고 했어요.”
박유찬에 이어 정이한이 말했다.
“폰 해킹 위험 때문에 저희 이름 언급 안 하기로 했거든요.”
평소에는 얌전히 있었을 백강현도 한 마디를 보탰다.
“하온이가 그걸 잊었을 리 없어요.”
마지막으로 이서호는 울상이 된 채 열정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맞아요. 나랑 달리 진하온은 이런 거 철저하단 말이에요!”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박정곤 매니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진하온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자.”
순식간에 혈색이 빠져나간 듯 창백해진 박유찬이 두 손을 꽉 움켜쥐면서 중얼거렸다. 손등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가득 들어간 박유찬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런 박유찬을 보는 정이한은 잇몸이 아플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위치 추적 어플 속 진하온의 위치는 여전히 방송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내 지켜봤으나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었다. 하지만 이 넓은 방송국 중 어디에 진하온이 있는지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별관으로 간다는 것까진 하온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럼 도대체 언제 휴대폰을 빼앗긴 거지? 게다가 톡을 보냈다면 잠금까지 풀려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잡힌…… 건가.’
정이한은 으드득 소리가 날 만큼 이를 악물었다. 침착해. 침착하자. 정이한은 날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려고 했으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뿐 잠잠해질 기미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머리가 팽팽하게 굴러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생각해. 계속 생각해.’
분명 아침에 호신용 스프레이까지 챙기는 걸 확인했다. 몇 번이고 체크했으니 진하온이 가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아무리 스토커가 불시에 기습했다 하더라도 스프레이를 뿌리면 한시적으로 도망칠 여유가 있었을 거다.
게다가 지금 진하온이 있는 장소는 사람이 많은 방송국이다. 곳곳에 CCTV까지 있으니 무언가 행동을 했다면 사각지대에서 일을 벌였을 터였다. 그건 방송국 직원인 이연휘가 더 잘 알 테니까.
‘그러고 보니 텀이 짧지 않나?’
본관에서 별관으로 이동한다는 메시지. 그리고 이연휘를 만나러 간다는 메시지의 텀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별관으로 이동한다는 메시지를 진하온이 남긴 게 맞다고 본다면 두 가지 가설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는 메시지를 쓰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진하온은 아직 별관이 아닌 본관에 있다. 스토커는 별관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본관에 있으면서 거짓말을 했다.
두 번째는 별관으로 이동한 뒤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진하온은 별관에 있다. 메시지의 텀이 15분 정도니 별관에 도착한 직후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정이한은 범인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하온이: 저 이제 이연휘 씨 만나요]
‘이제 만난다.’
그것도 ‘이연휘’를. 그렇다면 이연휘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만약 범인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당당하게 쓸까? 납치에 성공한다면 대화 내용은 나중에 범인을 찾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행방불명된 진하온이 마지막에 만난 사람.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게 뻔한데 제 이름을 남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연휘……씨는 스토커가 아니라고 봐야 하는 건가?’
연쇄되며 이어진 사고를 통해 정이한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연휘를 범인으로 몰고 싶은 사람. 그를 범인이라고 오해하게끔 조작할 수 있는 사람. 스프레이가 있는 진하온을 제압할 수 있는. 즉, 갖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 마지막으로 진하온이 경계하지 않을 사람,
가리키는 건 한 명뿐이었다.
“……박현철.”
중얼거리는 정이한의 목소리를 다른 멤버들도 똑똑히 들었다. 정이한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박현철이 스토커라면?”
정이한은 멤버들에게 설명하면서도 제 가설이 아니길 간절하게 바랐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해주길 바랐다. 스토커를 코앞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해 그런 음습한 사람과 진하온을 단둘이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따지면 박현철만 남아. 그리고 여기 보면 ‘만나요.’라고 쓰여 있잖아. 어쩌면 시간을 벌고 싶은 게 아닐까? 이렇게 써두면 우리가 얌전히 기다릴 거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잖아. 그렇다면 아직 하온이는 방송국에 있을 확률이 커. 어떤 수를 쓰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리고 나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거야.”
“맞는 것 같아…….”
“아…….”
정이한은 탄식과 함께 이마를 찌푸렸다. 당장 찾으러 가고 싶었어도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찾을 수도 없었다.
“……사진. 그러고 보니 사진이 이상했어. 술 취해서 화장실과 착각했다고 했는데 이상하잖아. 만약 진짜로 이연휘가 스토커고 그게 하온이를 감금할 목적으로 준비한 방이라면, 평소에 잠가두지 않았을까?”
“그, 그럼 그 방이 박현철, 그 사람 방인 거야?”
이서호의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 고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굴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서호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멤버는 없었다. 박유찬은 머리를 흔들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거까진 모르겠지만 이상한 건 사실이야.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진하온이 미끼를 자처하는 바람에 온통 그쪽으로만 생각이 쏠려 있었다. 게다가 그 뒤에 제대로 먹지 못해 기운 없는 하온이의 모습이 안타까워 사진에 대해 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잘못이야. 내가 하온이를 위험에 밀어 넣은 거야. 왜 이런 것도 생각을 못 해서…….’
자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박유찬은 숨이 꽉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제 목이 졸리는 듯한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두들겼다.
“유찬 형 잘못 아니야. 생각 못 한 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니까.”
백강현이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 또한 속이 끓고 있었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 숨겼다. 지금 중요한 건 진하온의 위치였다.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찾아서 무사히 데리고 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하온이가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 보자.”
백강현은 박유찬의 허벅지 위에 제 손을 얹어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랫입술을 쥐어뜯던 박유찬이 눈을 질끈 감고는 길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래……. 자책하는 건 뒤로 미룰게. 우선은 하온이부터 찾아야지. 박현철,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해. 그 사람을 찾으면 하온이도 찾을 수 있어. 정곤 형, AD님께 물어봐 주실 수 있어요?”
박유찬은 간절한 얼굴로 제 매니저를 향해 도움을 청했다. 박정곤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PD님께 연락해볼게.”
박정곤이 PD와 통화하는 사이, 멤버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박정곤을 응시했다.
“네. 혹시 오늘 보신 적 있는지…….”
- 그 녀석 퇴사 연차라 오늘 안 나왔을 텐데요? 아, 사원증 반납하러 온다고 했던가?
“……퇴사요?”
- 네. 요즘 애들은 그게 문젭니다. 갑자기 퇴사한다고 하면 뭐 끝나는 줄 아나? 후임도 안 정해졌는데 이렇게 책임감 없이 제 몸 하나 덜렁 나가겠다 하면 어쩌라는 건지.
잔뜩 화가 난 PD는 저도 모르게 투덜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어쨌든 내부 사정이니 외부인에게 불만을 토로해 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 그런데 박현철은 왜요? 그 새끼 뭐 사고 쳤습니까?
PD는 혹시 사고치고 그걸 숨긴 채 도망치듯 퇴사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정말 중요한 문제라.”
- 흐음. 잠시만요. 한 번 물어볼게요. 이 새끼 진짜 사고 친 거 아니야?
중얼거리는 PD의 말이 휴대폰 너머로 똑똑하게 들려왔다. 박정곤은 하나같이 불안한 얼굴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멤버들을 봤다. 매니저 실격이었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네. 박정곤은 자괴감에 울고 싶은 걸 꿋꿋하게 참아가며 PD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들려온 소식은 단비 같은 이야기였다.
- 연휘가 박현철 만나러 간다는데요?
“장소가 어딥니까?”
- 어, 잠시만요. 연휘야!
- 넵!
- 박현철이랑 어디서 만난다고?
- 별관 A스튜디오 근처 자판기 앞에서요.
- 별관 A스튜디오 근처 자판기 앞이랍니다. 지금 가는 거지?
- 네, 당연히. 퇴근하기 전에 잠깐 보기로 했어요.
- 지금 간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곤이 통화를 끊는 잠깐 사이 멤버들 전원이 허둥거리며 밴에서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