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얘들아!”
박정곤이 급히 멤버들을 불렀지만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박정곤은 아랫배에 힘을 빡 주곤 다시금 큰 목소리로 멤버들을 불러 세웠다.
“다들 멈춰!”
그제야 멤버들이 우뚝 멈춰 서서는 박정곤을 돌아봤다.
“너희 다급한 거 아는데 그렇게 우루루 가서 어쩌려고? 내내 침착하게 있더니 갑자기 왜들 그러냐. 진정들 해.”
“형, 저는 여기서 가만히 기다릴 수 없어요. 절대로…….”
항상 얌전하기만 한 정이한이 제일 먼저 목소리를 냈다. 이럴 때 대표로 이야기하는 건 주로 유찬이었는데. 정이한의 강한 표현에 멤버들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 멤버들이었다. 하지만 진하온과 관련되면 늘 사정이 달라졌다.
“하온이 일이니깐 내가 여기서 너희한테 얌전히 있으라고 해도 너희는 그러지 않겠지. 그런데 생각해 봐. 박현철이 지금 이 상황에서 너희를 발견하면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순순히 하온이가 있는 곳으로 갈까? 너희를 따돌리려고 계속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건.”
“생각할 것도 없지.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은밀하게 미행하는 거 아니야? 박현철이 눈치챌 수 없도록.”
“……맞아요.”
박유찬이 어깨를 떨구며 동의했다. 정이한은 여전히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벌렸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박유찬과 마찬가지로 몸을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떨궜다.
“그럼 형 생각은요?”
백강현이 물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는 듯한 기세였다. 박정곤은 제 휴대폰을 톡톡 건드렸다.
“내 후배한테 미행 부탁하면 돼.”
잠시 기다리는 말과 함께 박현철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형님 안녕하십니까.
“어, 상주야. 지금 근처에 있는 거 맞지?”
- 네, 본관 로비에서 대기 중입니다.
“별관 A스튜디오 자판기 앞에 박현철이란 사람이 나타날 거야. 그 사람 미행 좀 해 줘. 들키지 않게. 할 수 있지?”
- 조금 전에 보내주신 사진, 그 사람입니까?
“맞아.”
- 맡겨 두십시오.
박정곤은 통화를 끊은 뒤 멤버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놀라고 있었다.
“그, 외부인한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조심스러운 박유찬의 물음에 박정곤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 대학 후배야. 너희 로드 매니저 할 사람. 내가 진짜 오래 꼬셨다. 박현철이 얼굴을 모르는 우리 측 사람이야. 혹시 몰라서 대기 시켜 놨거든.”
“허얼! 그럼 우리는요? 여기서 기다리란 말은 진짜 하지 마세요! 숨 막혀서 가만히 못 있겠단 말이에요!”
박정곤은 진저리치는 이서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가자. 우리가 대기할 곳으로. 나한테 다 계획이 있어.”
“어디로요?”
“별관 2층.”
계획이 있다는 말에 멤버들은 군말 없이 박정곤을 따랐다.
“엥? 정곤 형 뭐 하는 거예요?”
“연예인이 제일 자연스러울 때가 언제인지 알아?”
박정곤은 트렁크를 열며 멤버들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서 뭔 소리를 하는 거냐는 멤버들의 표정이 그의 눈에 훤히 읽혔다. 씩씩하게 트렁크를 닫은 그의 손에는 카메라 한 대가 들려 있었다.
“바로 카메라 앞에 있을 때지. 가자.”
***
박정곤은 멤버들을 별관 2층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힐끔거리는 멤버들을 집중시킨 뒤 박유찬에게 카메라를 넘겨줬다.
“셀프캠 찍는 척하고 있어. 너희는 눈에 띄니까 내 말 꼭 들어야 한다. 하온이를 위해서.”
불만족스러워 보였던 이들은 ‘하온이를 위해서’라는 말에 제각각 얼굴에 힘을 줬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불안했던 박정곤은 뒤를 돌아 멤버들을 확인했다. 그들은 계속 위층을 올려다보기는 했지만, 당장 따라올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박정곤은 중간까지 올라간 뒤 계단의 기둥 사이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주위의 동태를 살폈다. 이연휘와 대화를 나누는 박현철이 보였다. 그다음으로 보이는 건 제일 중요한 사람. 다행히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주 녀석 자연스럽게 잘 있네.’
정상주는 자판기에서 캔을 뽑은 건지, 음료수를 마시면서 통화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 모습이 누가 봐도 자연스럽게 목을 축이며 통화하는 사람 같았다. 박정곤은 3층 탐색을 마치고 서둘러 2층으로 내려갔다.
카메라는 다시 박정곤에게 넘어갔다. 지금 그는 누가 봐도 멤버들을 촬영하는 스태프처럼 보였다. 그 덕에 별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디아스 멤버들을 보고 반응하기는커녕,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대화 상대와 헤어져 이동 중입니다.]
박정곤의 휴대폰 메시지를 본 이서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비장한 얼굴은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인 병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제일 먼저 휴대폰 진동을 알아차리고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확인한 건 이서호였다.
[내 동생: 3ㅗ오ㅑ쥬ㅓ요]
“……어! 혀, 형! 형들! 이거!”
이서호가 멤버들에게 톡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황해했다. 그걸 본 순간 박유찬이 곧바로 진하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는가 하더니 곧장 끊어졌다.
“이럴 줄 알았지.”
박유찬은 심호흡을 한 뒤 박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 떼는 박현철의 목소리를 들으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 별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베예요! 제가 쫓아가 보겠습니다!
저를 속이려고 하니 맞춰줘야겠지. 박유찬은 심각한 얼굴로 다급한 척하며 허둥거렸다.
“저희도 움직일게요! 정곤 형! 별관 지하 주차장이요! 가드분들도 전부 그쪽으로 보내주세요!”
그러면서 박정곤을 향해 휴대폰을 기울였다. 박정곤이 고개를 숙여 “어, 알았어!”하고 외치기 무섭게 통화가 끊겼다. 멤버들은 서로와 눈을 마주친 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위층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
필사적으로 기어서 어깨로 카트를 민 덕분에 선반 근처까지 카트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나는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를 놓칠까 봐 문에 기대어 앉은 채 숨을 골랐다.
“흐으, 흐…….”
호흡이 힘들어서 자꾸만 기분 나쁜 소리가 물린 천 사이로 새어 나왔다. 머리는 어느 때보다 명료한데, 몸이 나를 따라주지 않아 답답했다. 애써 코로 숨을 쉬고 있는데 점점 목까지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목 상하면 안 되는데…….
다음 주에 가면가왕 2회차 촬영을 해야 한다. 그걸 위해선 당연히 연습도 해야 하고. 여기서 나가면 따듯한 물부터 마셔야겠어.
나는 발을 움직여 카트를 선반 쪽으로 밀어 봤다. 손잡이 기둥과 선반의 쇠기둥이 부딪치며 ‘캉’하는 소리를 냈다. 부딪힌 반동에 다시 돌아온 카트를 한 번 더 밀자 똑같은 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하면 돼.
나는 굳게 닫힌 문에 귀를 댄 채 눈을 감았다. 박현철이 돌아오기 전에 누군가가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한심했다. 조금만 더 경계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모두에게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며 얻어낸 기회였다. 실장님도, 매니저 형도, 멤버들도 모두 내가 정신적으로 몰리면 그 여파가 몸으로 온다고 알고 있으니까.
전부 날 위해서였다. 모두가 말리는 데 고집부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이런 상황에 처해도 원망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형들이 보고 싶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박현철이 먼저 오면 어떡하지? 이대로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는 형들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흡, 으윽…….”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가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하게 옥죄어 오고 있었다. 안 돼. 불안해하지 마. 난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런 상태로 혼자 있어서 그런 것뿐이야. 숨 쉴 수 있어. 전부 기분 탓이야. 착각이야. 제대로 쉬어.
나는 몇 번이고 나를 달래며 심호흡했다. 이대로 패닉에 빠지면 상태 이상만 촉발할 뿐이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긍정적으로 있어야만 체력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숨이 막혔다. 갑갑한 숨통을 어떻게든 트여 보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박현철일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직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구든지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었다.
캉, 캉, 캉!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불쾌한 얼굴로 날 내려보는 박현철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예절 교육이 필요하네.”
문이 닫혔다. 박현철은 비품실로 들어오자마자 카트를 치워 버리고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뺨을 툭툭 건드렸다.
“이딴 식으로 굴 거면 날 꼬시지도 말았어야지.”
내가 언제 꼬셨다는 거야! 억울한 마음에 박현철을 쏘아봤다. 그는 내 시선을 받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렇게 나만 보라고. 너는 나만 보면 되는 거야. 평생 내 품에서.”
소름이 확 끼쳤다. 평생 이런 변태 자식이랑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길 빠져나가기만 하면 너는 끝이야.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고. 교육은 집에 가서 해도 충분하니까.”
박현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선반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작은 박스에서 약병 하나와 천을 꺼내 들었다. 그다음, 뚜껑을 따서 천에 알 수 없는 액체를 잔뜩 묻히기 시작했다.
“좀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아. 집에 도착하면 깨워줄게.”
쿵. 쿵. 쿵.
심장이 박현철에게 저항하려는 듯 거칠어졌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그를 피해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꿈틀거리는 게 전부였다.
“자아, 하온아.”
“하온아!”
그때 밖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