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80화 (180/320)

180.

“각 팀 첫 번째 선수는 외나무다리에 올라가 주세요.”

백 팀을 주시하다 보니 이서호가 봉을 들고 외나무다리 쪽을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얼른 봉재범 선배님을 쫓아가 귓가에 속닥거렸다. 선배님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신 뒤 외나무다리에 올랐다.

양측 선수가 외나무다리 봉 위에 앉아 자리를 잡자 휘슬이 울렸다. 동시에 봉재범 선배님은 젊은 아를 어떻게 이기냐면서 우는소리를 하셨다.

“요즘 안 쑤시는 데가 없어…….”

봉재범 선배님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조언해드린 대로 자연스럽게 연기 잘하시네. 이서호는 내 예상대로 봉재범 선배님을 공격하지 못한 채 어버버거렸다. 그 사이 봉재범 선배님은 연신 낑낑거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서호야! 이건 게임이니까 괜찮아! 노인 공격 해도 돼!”

“누가 노인이야, 누가!”

봉재범 선배님이 울컥한 듯 소리치자 백건 선배님은 모르는 척 휘파람을 불었다. 동시에 이서호가 “죄송합니다, 선배님!”을 외치면서 봉을 휘둘렀다.

맑고 청량한 ‘팡!’소리가 울렸다. 지근거리에서 맞은 봉재범 선배님이 짧은 비명을 질렀고, 봉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엄청나게 아픈 듯한 비명 소리에 놀라서 굳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서호가 제일 놀라서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연신 괜찮은지 물었다.

맞은쪽 팔을 붙잡은 채 고개 숙인 봉재범 선배님이 걱정됐다. 저게 그렇게 아프단 말이야? 하나도 안 아파 보였는데…….

“선배님, 괜찮으세요?”

유찬 형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이서호가 눈에 띄게 굳어 버렸다. 우리를 보면서 어떡하냐고 울상 짓는 이서호에게 시선을 빼앗겼을 때였다.

봉재범 선배님이 갑자기 몸을 날려 이서호를 덥석 끌어안았다. 방심하고 있던 건지 이서호는 피하지 못하고 선배님께 붙잡혔다. 그대로 두 사람은 동시에 물속으로 퐁당 빠졌다.

봉재범 선배님은 크게 웃으면서 이서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백건 선배님이 치사하다면서 야유를 보냈다.

나는 허둥지둥 봉재범 선배님께 다가가서 선배님이 올라오시는 걸 도왔다.

“괜찮으세요? 서호 형 힘센데……. 많이 아파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다친 덴 없는지 확인하는데, 봉재범 선배님이 나를 아주 귀엽다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막둥이는 막둥이야~”

“……네?”

봉재범 선배님은 너도 같이 속으면 어떡하냐면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연기……. 다행이다. 이서호 때문에 다치신 게 아니라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우리 대화를 들은 이서호가 뒤늦게 당했다는 걸 깨닫고는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두 사람이 동시에 떨어졌기에 양 팀의 두 번째 선수가 각각 외나무다리에 올랐다. 이번에는 유찬 형과 정이한이 맞붙었다. 저쪽도 에이스가 마지막 순서구나.

“강현 형, 믿을게요.”

“어.”

한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들으니 아주 든든했다. 외나무다리 위의 두 사람은 펜싱이라도 하는 듯 서로를 향해 가차 없이 공격했다.

“유찬 형! 파이팅!”

“유찬이 이겨라!”

“이한 형! 형은 할 수 있다! 소원을 생각해!”

목청 큰 이서호의 외침에, 정이한의 팔 근육도 움찔거렸다. 곧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유찬 형의 어깨를 크게 친 정이한이 그와 동시에 상체를 숙이는 바람에 유찬 형은 헛스윙을 했다. 정이한은 그걸 놓치지 않고 유찬 형을 향해 매서운 공격을 연달아 퍼부었다.

“악! 이한! 아! 악! 잠깐! 잠!”

“미안, 형. 떨어져!”

유찬 형의 몸이 조금씩 미끄러지더니 결국엔 시원하게 입수해버렸다. 형은 정이한을 한 번 올려본 뒤 둥실둥실 떠다니는 봉을 회수해 나왔다.

“……미안.”

“괜찮아요, 형. 저한테 맡겨 두세요!”

나는 유찬 형에게 봉을 받은 뒤 외나무다리 위로 올라갔다. 다리를 넓게 벌려 앉아 선이 그어진 위치까지 꼬물꼬물 기어갔다. 자리를 잡고 고개를 드니 정이한이 날 보고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들렸다. 정이한은 내게 “미안해…….”하고 사과한 뒤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봉을 집어 던졌다.

뭐, 뭐야?

정이한이 내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 왔다. 나는 정이한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열심히 봉을 휘둘렀다. 팡팡 소리가 나는데도 타격이 없는 건지 정이한은 계속 내 쪽으로 기어 왔다.

봉을 휘두르며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어느새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봉을 휘두르는 게 힘들어져서 당황하는 사이 정이한이 내게 손을 뻗었다. 팔이 먼저 잡히고, 상체가 끌어당겨졌다. 그리고 정이한은 나를 안은 채 동반 입수를 해 버렸다.

“푸하!”

“괜찮아? 물 먹었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마자 정이한이 눈썹을 한껏 늘어트린 채 나를 살폈다. 너 설마 날 공격할 수 없어서 동반 입수한 거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질문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나는 그냥 괜찮아요, 하고 웃으면서 정이한을 안심시켰다.

물 밖으로 나와서 강현 형에게 봉을 건네줬다. 제대로 못 하고 정이한한테 휘말린 게 왠지 좀 미안해서 형을 올려다봤다.

“강현 형…….”

“나 믿어?”

“그럼요!”

“안심하고 있어.”

강현 형이 큰 손으로 내 머리를 한 번 덮은 뒤 외나무다리에 올랐다. 각 팀 에이스전의 막이 올랐다. 앞서 한 게임은 어린애 싸움이었다는 듯, 이번에는 바람 소리의 차원이 달랐다. 두 사람은 격투기라도 하는 것처럼 봉을 휘두르고, 막아내기도 하면서 격전을 이어갔다.

목이 터져라 강현 형을 외치면서 응원했다. 아슬아슬하게 대치 중이었던 경기는 결국 강현 형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 형이 이겼다!

“와! 강현 형!”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강현 형에게 와다다 달려갔다. 형이 내 허리를 잡길래 뛰어올라서 형을 꽉 끌어안았다.

“나 잘했어?”

“네! 멋져요! 역시 강현 형!”

나는 강현 형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채 코알라처럼 매달려 봉팀으로 배달되었다.

***

저녁을 먹고 재단장한 우리는 본 게임 촬영을 위해 워터파크 옆에 있는 네버랜드로 장소를 옮겼다. 봉팀의 어드밴티지 카드는 세 장. 백팀은 두 장으로, 우리가 조금 앞서나가고 있었다.

“여러분은 어떤 물건을 찾기 위해 여기 네버랜드에 와 있습니다. 네버랜드 곳곳에 그 물건이 숨겨진 장소까지 인도하는 힌트가 숨겨져 있는데요. 힌트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온전한 형태의 ‘메모’를 찾으셔야 합니다.”

피디님은 힌트를 따라 물건이 있는 위치를 찾고, 그 물건을 먼저 가져오는 팀이 승리한다고 했다.

“어드밴티지 카드는 어떻게 씁니까?”

백건 선배님이 묻자, 그건 게임을 시작한 뒤에 방송을 통해 알려주신다고 했다.

“그럼 시이자악!”

피디님의 시작 신호는 호기로웠지만 아무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작전 회의가 먼저였으니까. 나는 조금 막막한 심정으로 드넓은 네버랜드 지도를 들여다봤다. 흩어져서 메모를 먼저 찾은 다음 첫 번째 힌트를 구한 뒤에 같이 움직이면 좋을 것 같은데.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라 그런지 봉재범 선배님이 수색 구역을 나누자면서 지도를 펼쳤다. 선배님은 매직을 가지고 와서 지도에 슥슥 거침없이 선을 그었다. 꽤 균등하게 분배된 네 개의 구역에는 각각 A부터 D까지의 이름이 붙었다.

“구역별로 흩어져서 메모를 찾고, 여기 중앙 회전목마 앞에서 모이는 걸로 하자.”

선배님의 의견은 정석적이어서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놀이공원에 꼭 있는……. 아, 찾았다. 귀신의 집.

“제가 B 수색할게요.”

두 형들은 귀신에 약하고, 봉재범 선배님도 겁이 많기로 유명해서 여길 제대로 수색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막둥이가 우리를 위해 희생을…….”

봉재범 선배님은 내 의도를 알아차리신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요. 제가 귀신은 무서워하지 않거든요.”

민망함에 뺨을 긁으면서 헤실헤실 웃었더니 유찬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우리 막내처럼 예쁘고, 착하고, 멋진 거 혼자 다 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또 주접을 떨기 시작한다.

“……형, 저 부끄러워요.”

“하온이는 부끄러워하는 것도 귀여워!”

……아, 유찬 형 요즘 왜 이러지? 요새 유난히 주접이 심해진 것 같은데…….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악, 형! 하지 말라니까요!”

내가 몸부림치면서 유찬 형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자, 형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깔깔거렸다. 결국 체력을 아껴야 하는 내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찬 형은 뒤에서 날 끌어안은 뒤 싱글벙글 웃었다. 내 허리에 감긴 형의 손등을 두어 번 두들겨 준 뒤 구역 나누기를 관전했다. 사실 특이 사항이랄 건 딱히 없어서 구역 정하기는 순식간에 끝났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각자 맡은 구역으로 흩어졌다. 백 팀은 우리보다 조금 앞서서 출발했는데, 어차피 이런 보물찾기는 운빨 아니겠어?

나는 적당히 걸음을 서두르면서 나무 밑동, 풀숲 사이, 꽃밭, 벤치 밑을 살폈다. 어트랙션 놀이기구는 입구에 줄이 쳐져 있어서 다행히 수색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었다. 주위를 살피던 나는 벤치 다리에 붙어 있는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괜찮은]

……이게 뭐지?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메모 하나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메모 하나가 또 눈에 띄었다.

[괜찮은]

똑같은 글자의 메모였다. 아, 이거 알겠다. 다르게 쓰인 메모를 찾아서 조합하면 문장이 만들어지는 형태구나. 이거 좀 재밌는데?

메모 찾기에 의욕이 붙어서 걸음이 조금씩 빨라질 무렵이었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 비상사태! 비상사태! 여러분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반복합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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