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81화 (181/320)

181.

안내 방송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선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도망치십시오! 반복합니다! 전부 도망치세요!

긴박함이 묻어나는 처절한 방송이었다. 동시에 어디선가 콰앙, 하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악!”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주저앉았다. 뭐, 뭐지? 연출 아니야? 진짜 실제 상황이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생각난 카메라 감독님께 연출이 맞냐고 물어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감독님도 놀라신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연출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멤버들이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몸이 덜덜 떨렸다. 멤버들, 멤버. 우리 형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잖아.

정신 차려, 진하온!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두 손으로 내 뺨을 철썩 내리쳤다. 뺨이 얼얼해지자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감독님!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나는 다짜고짜 달리면서 감독님께 외쳤다.

“하온 씨! 위험해요! 어디 가십니까!”

감독님이 나를 쫓아오며 소리쳤다.

“형들 찾아야죠!”

유찬 형이랑 강현 형 위치는 알아. 일단 그쪽으로 가야겠어. 그리고 이서호랑 정이한을 찾…….

“아…….”

달리는 내 앞에 다리를 질질 끌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 같이 절뚝거리면서 ‘으어어…….’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목소리를 높이며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 악! 아아악! 도, 도망쳐……. 다들, 좀, 좀비가아아우으에으에으웨엑!

“……아, 진짜! 속았잖아요!”

나는 카메라 감독님을 향해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날리면서 좀비들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름 특집이니까 예상했어야 했는데, 멍청했어. 완전히 속았다고!

그래도 연출된 상황이라 진짜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날 쫓아오는 좀비를 피해 도망쳤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비를 피해서 메모를 찾고, 힌트를 추리해서 백신을 찾아야 한다는 거네.

그렇다면 좀비를 피해 수색할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간간이 뒤를 돌아 좀비의 동태를 살피면서 계속 뛰어다녔다. 나를 쫓아오는 좀비의 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 정면에 좀비 한 명이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좀비는 급하게 방향을 튼 나를 인식하지 못한 듯 계속 등만 보이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인식 못 하는 건가?

그 순간 사이렌이 한 번 울린 뒤 안내 방송이 시작됐다.

- 네버랜드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나는 재빠르게 나를 쫓아오는 좀비들을 살폈다. 그들은 스피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나만 보고 있었다.

- 좀비에게 붙잡히면 바이러스에 감염됩니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백신뿐입니다.

스피커가 시끄럽게 구는데도 날 쫓아오는 좀비들은 흔들림 없었다. 역시 소리는 듣지 못한다는 건가? 아니면 생존자 목소리는 인식할 수도 있으려나.

- 생존자 여러분의 어드밴티지 카드는 좀비에게 잡힌 순간 자동으로 발동되어 감염을 막아줍니다. 명심하세요. 어드밴티지 카드가 모두 소멸하면 여러분도 좀비가 된다는 것을. 생존자 여러분! 인류를 구원할 백신을 찾아주세요!

어드밴티지 카드 한 장은 생명력 하나라고 보면 되겠네. 이제 좀비 특성만 파악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속도를 높여 쪽지를 찾았던 화장실 쪽으로 냅다 뛰었다.

좀비들과 거리를 벌린 뒤 화단을 향한 출입구를 지나쳐, 화장실 뒤쪽에 숨었다. 배회하는 좀비들의 신음과 다리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만일 일이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곧장 반응할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꽉 조인 채 소리에 집중했다. 조금 기다리자 좀비들이 내는 소음이 점차 사라져갔다.

여기까지 따라오진 않네. 직관적으로 보여야만 쫓아온다는 건 엄폐물을 잘 이용해서 좀비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면 된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리만 테스트 해 보자. 나는 벽에 찰싹 붙어 고개만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일단 내 눈에 띄는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비들이 어디로 갔는지 살피기 위해 살금살금 움직였다.

어, 돌아가고 있어?

왔던 길을 돌아가는 좀비 무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조심스럽게 뒤를 쫓았다. 좀비들은 처음 마주친 곳으로 돌아가 서로 부딪혀가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그로가 풀리면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건가?

나는 우선 벤치 등받이 뒤에 숨어 눈만 빼꼼 내놓고 주변 경계부터 했다. 날 보고 달려드는 좀비가 없는 걸 마지막으로 체크한 뒤, 도망칠 각오를 하면서 벤치 등받이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몸을 숨기고, 성량만 높여서 허공에 “안녕하세요!”하고 외쳤다. 예상대로 주위는 잠잠했다. 그럼 쉽지. 나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당겨 올렸다.

일단 메모부터 다 모으자.

좀비들을 피해 메모 수색을 시작했다. 적당히 숨고, 걸리면 따돌리길 반복하면서 수색한 끝에 나는 두 종류의 메모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괜찮은’, ‘흑백’.

여전히 이 두 장 만을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새로운 메모를 찾아다니던 와중, 귀신의 집 입구에 도달했다. 거기엔 유달리 좀비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못해도 열 명은 넘을 것 같았다.

저 안에 뭐가 있나? 저렇게까지 입구를 지키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지잖아. 좀비들을 한데 모아 크게 한 바퀴 돈 뒤 귀신의 집으로 들어가서 숨으면 되지 않으려나.

귀신의 집 내부에도 좀비가 있을 수 있지만, 숨을 곳이 많지 않을까?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획을 막 실행에 옮기려던 때였다.

“하온아!”

정이한이 나를 향해 총총거리면서 달려왔다. 무척 반가운 듯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뒤를 줄줄이 쫓아오는 좀비들이었다.

“헉!”

정이한을 쫓던 좀비 중 일부는 나를 발견했는지, 미묘하게 뛰는 각도가 틀어졌다.

“아, 형! 저한테 오면 어떡해요!”

정이한은 말 그대로 방긋 웃은 뒤 곧장 나를 향해 질주했다. 으, 진짜. 어쩔 수 없나. 이대로 계획을 실행한다! 나는 정이한의 팔목을 잡아챈 뒤 내가 생각한 경로대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어디 가려고?”

정이한은 순순히 나를 따라 뛰면서 물었다.

“귀신의 집 들어갈 거예요.”

“아, 따돌리려고?”

“네! 열심히 뛰어요. 잡히기 싫으면.”

“그건 자신 있지.”

나는 정이한을 힐끔 본 뒤 속도를 높였다. 너무 거리가 벌어져서 시야에서 벗어나면 좀비들이 돌아갈지도 모르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크게 돌아서 귀신의 집 앞으로 돌아왔다.

두 명의 좀비가 어슬렁거리다가 우릴 발견하고는 캬아악,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었다. 나는 뻗어 오는 손길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귀신의 집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깜깜한 내부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가려진 느낌이 들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는데, 어둠 속에서 뭔가가 돌아다니는 듯한 인영이 느껴졌다.

설마 여기도 좀비가 있나?

엄폐물을 찾아보려고 벽을 더듬거릴 때였다. 갑자기 정이한이 나를 확 끌어당겼다. 폭 하고 단단한 가슴에 끌어안김과 동시에 좀비가 내가 있던 곳으로 달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와, 잡힐 뻔했다.

“뛰어!”

앞서 나가는 정이한의 뒤를 따라 달리는데, 갑자기 천장의 주홍빛 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 좀비가 아닌데요?”

나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뒤를 돌았다. 나를 습격한 건 좀비가 아니라 귀신 분장을 한 사람이었다.

“그래?”

정이한도 정체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귀신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우리에게 겁을 주듯 다가왔지만 우리 중에 귀신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형.”

“응?”

“우리 같은 팀 아닌 거 알죠?”

“헉! 아, 맞다!”

정이한은 울상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누가 하온이한테 덤비길래……. 나도 모르게.”

나는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앞서 나갔다.

“저 먼저 메모 찾으러 갑니다!”

“같이 가!”

정이한이 그런 내 뒤를 허둥지둥 쫓았다. 귀신의 집 내부를 살펴보니 폐병원 컨셉인 듯 보였다.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니 구역별로 커튼이 주르륵 둘러쳐져 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침대 하나가 보였다.

첫 번째 침대칸에서는 아무것도 못 찾아서 곧장 두 번째 칸의 커튼을 젖혔다. 똑같이 낡은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이번에는 침대 위가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누가 봐도 귀신이 웅크리고 있다가 놀라게 할 것 같이 생겼는걸. 아, 잠깐. 우리 자컨 찍을 때도 귀신이 표식 들고 있었잖아?

사람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곧장 시트를 들춰버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망가진 스프링이 절묘하게 튀어나와 있을 뿐 귀신은 없었다.

“에이. 없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칸을 뒤지려고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차가운 무언가가 발목을 콱 움켜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악!”

아, 깜짝이야! 뭐야? 뭔데? 이 밑에도 뭐가 있었어? 허리를 숙여 침대 밑을 들여다보자 막힌 곳 하나 없는 허공이 보였다. 하지만 분명 발목을 잡혔는데…….

“하온아!”

내 비명을 듣고 놀랐는지 정이한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런 정이한의 손에는 메모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여기서 찾은 것 같은데, 물음표가 있는 걸 봐서는 나한테 없는 메모인 것 같았다.

……갖고 싶네, 저거.

“괜찮아? 왜 소리 질렀어?”

“아, 뭔가가 발목을 잡았어요. 근데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이 없길래 이상해서요.”

나는 의식적으로 정이한의 메모에서 신경을 돌리면서 떠벌떠벌 떠들었다.

“그랬어?”

정이한은 뭔가를 찾는 듯 바닥을 뒤꿈치로 툭툭 두들겼다. 그러다가 텅, 하는 속이 빈 소리가 들리자 웃으면서 아래를 손가락질했다.

아. 바닥 밑에 공간 있구나…….

“이제 안 무서워?”

“……원래도 무섭진 않았어요.”

정이한은 미소 띤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런데 하온아.”

“네?”

“이거 갖고 싶어?”

정이한이 내게 메모를 보이면서 물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8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