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마지막으로 생방송 투표 점수를 합산한 영광의 1위는!”
우리는 모두 점수 집계 현황을 표시하는 스크린에 시선을 빼앗겼다. 빠르게 올라가던 점수가 동점이 되는 구간에서 잠깐 멈췄다. 고작 1~2초의 시간이었는데 내게는 그 짧은 순간이 영겁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디아스, 축하합니다~”
무대 위쪽 천장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동시에 디어리들의 함성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진짜……? 이거 실화야? 아니, 진짜로? 펑펑 터지는 종이 꽃가루의 주인공이 정말…… 우리야?
“어……. 그러니까, 1위, 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해서…….”
마이크와 1위 트로피를 넘겨받은 유찬 형이 더듬거리면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오늘 방송에 출연한 선배님들이 우리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주시곤 하나둘 무대에서 내려갔다.
어느덧 무대 위에 남은 건 우리 디아스 멤버들과 MC뿐이었다. 아, 이제 이 무대가 온전히 우리 거구나. 디어리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우리에게도 찾아왔어.
분명히 땅을 딛고 서 있는데도, 둥실둥실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꿈을 꾸는 게 아닐까. 현실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저 환하게 웃으면서 기뻐하는 디어리들과 우리처럼 감격해서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외치는 디어리들만 보였다. 지금 당장 디어리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방송이니까 참아야지. 나는 무대 아래 팬 석으로 뛰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 형들의 수상 소감에 귀 기울였다.
유찬 형은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멤버들, 디어리, 거기에 기획사 식구분들까지 한 명, 한 명 다 호명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서야 정이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어떻게 우리 앨범 제작에 참여한 분들 성함까지 다 외우고 있지?
평소에 달달 외워두고 있었던 건가? 1위 하면 언제라도 소감에 넣어 발표할 수 있도록? 연말 시상식도 아닌데 유찬 형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두 손으로 가만히 마이크를 받아든 정이한은 잠깐 감정을 다스리려는 듯, 고개를 치켜든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면을 바라보면서 주변을 환하게 밝힐 것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쪽 뺨을 타고 또르륵, 굴러 내리는 눈물이 조명을 받아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어… 감히 바라지도 못, 했던 1위인데요……. 감사, 합니다. 부족한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사랑하는 우리 멤버들, 그리고 디어리.”
강현 형에게 마이크를 넘긴 뒤 정이한은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리곤 고개를 돌렸다. 강현 형은 굵고 짧게, 선거에 당선된 사람처럼 담백한 소감을 전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는 정중한 인사가 신인치고는 조금 퍽퍽해 보였지만, 괜찮다. 정말 기뻐하고 있을 때,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강현 형의 매력적인 미소가 전파를 타고 흘렀을 테니까.
다음은 이서호 차례였는데, 어찌어찌 잘 버틴다 싶더니 마이크를 쥔 순간부터 대성통곡을 했다. 조금 진정하면 다시 시키고 나 먼저 할까, 싶어서 눈치를 살피는데 이서호가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쥔 채 입을 열었다.
“흑, 흐끕, 디, 흐윽, 디어리, 고마, 흐으흑, 고마워요……!”
흐느끼는 이서호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 주자, 기다렸다는 듯 나를 폭 끌어안고 내 머리 위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나 소감 발표해야 하는데…….
“서호야.”
강현 형이 이서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내게서 떼어내 줬다. 이서호는 대신 강현 형에게 매달려서 형의 무대 의상에 눈물 콧물을 마구마구 흘려댔다. 강현 형은 난감한지 고개를 뒤로 쭉 빼더니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어쨌거나 강현 형의 배려 덕분에 마이크는 내 손으로 무사히 넘어왔고, 나는 무대 아래에 있는 디어리들을 내 눈에 새겨 넣을 듯 바라보면서 운을 뗐다.
“어, 디어리…….”
담담하게 인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입을 여는 순간 갑자기 코끝이 찌릿하고 눈가가 시큰거려서 당혹스러웠다. 눈물을 삼키려고 크게 숨을 들이켰는데…….
“하온아! 축하해! 내 새끼! 예쁘다아아악!”
목청 큰 디어리의 말이 귀에 콕 들어와 박혔다. 아, 타이밍 진짜……. 지금 그러시면 어떡해요. 눈물……, 못 참잖아요.
결국, 가까스로 참아내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을 참아내기에는 ‘내 새끼’라고 칭하며 나를 축하해주는 디어리의 애정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 엄청 많은데, 지금 울면 안 되는데……. 디어리한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고마운지 전하고 싶은데. 울면 제대로 전할 수가 없잖아.
“읏, 디, 어리, 사랑해요……. 정말, 너무, 흑, 고맙고, 사랑하고, 디어리가, 제 전부예요. 사랑해줘서, 감사, 합니다…….”
울음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가까스로 꺼낸 말은 듬성듬성하고 얼기설기 엮인 누더기 같았다. 더 잘하고 싶었는데……. 전해졌을까. 내 마음. 꾸벅 숙였던 허리를 펴자마자 등 뒤에서 형들이 나를 덮치듯 안아 왔다.
“하온아아…….”
유찬 형과 정이한, 이서호까지 다들 양쪽에서 내 어깨를 붙잡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손길에 손가락으로 눈물을 찍어내듯 닦으면서 올려다보니 강현 형마저 코끝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아, 우리 앵콜 무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울어서 잘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공약은 지켜야지.
“형들, 우리 공약, 훌쩍.”
“어, 어!”
유찬 형이 먼저 반응했는데, 이서호와 정이한은 여전히 내게 찰싹 붙어 있는 탓에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순발력 좋은 강현 형이 무대 오른쪽 아래에서 화관을 내미는 스태프분들에게서 화관 다섯 개를 한 번에 받아 왔다. 내 몫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머리 위로 화관이 올라왔다.
“자, 너희도. 그만 울고. 우리 이제 앵콜 무대 해야지. 디어리가 기다리잖아.”
겨우 울음을 그쳐가던 이서호가 그 말에 다시 눈물을 터트리면서 두 팔을 벌린 채 무대 끝까지 달려갔다.
“흐으, 흐어엉, 디어리이이이…….”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자, 강현 형이 빠르게 움직여서 이서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위! 험 하잖아.”
“으으, 디어리, 고마워요! 사랑해요!”
목청 큰 이서호가 쩌렁쩌렁하게 외치자 그에 응답하듯 환호성이 돌아왔다. 강현 형은 이서호에게도 화관을 배달해줬다.
우리가 화관을 쓰는 사이 ‘Dear’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대열을 맞춰 서는 대신 자유롭게 무대 위를 거닐면서 디어리들과 눈을 맞췄다. 아직 공식 응원 봉은 없었지만, 초록색 야광봉이나 핸드폰 라이트를 흔들어주신 팬분들 덕에, 팬 석에는 우리를 위한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박유찬! 정이한! 백강현! 이서호! 진하온!”
앵콜 무대인데도 기합을 바짝 넣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디어리의 응원을 들으며, 가슴을 가득 채운 흥분과 기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너무 행복해서 정말 말 그대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하온이한테기댈게♡ @boy_doll
하온이 우는 거 제 눈물 버튼...
분명 우리 애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일텐데...
왜 저렇게 애처롭고 처연한건지 ㅠㅠ
아 그런데 이게 또 너무 예쁘네요...
저 변태였나봐요..
(우래기_눈에서_보석떨어짐_우는것도_예뻐죽겠어.swf)
#디아스_1위_축하해 #디아스_꽃길만걷자
∞ 9,825 ♡ 2.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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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온이한테기댈게♡ @boy_doll
@boy_doll 님에게 보내는 답글
세상에 변태가 이렇게 많았다니^^
울 요뎡님 화관 쓰고 예쁘게 웃는 것도 보고 가세요~
(앵콜_세상에서_가장_아름다운사람이_너야_하온아.swf)
∞ 4,123 ♡ 9,109
데굴데굴 @1004onon
아 진짜 수상 소감..ㅠㅠㅠㅠ 디어리가 제 전부예요. 걍 심장 박박 찢김ㅠㅠㅠ 물론 다른멤이 저말해줬어도 팬서비스 확실하넼ㅋㅋㅋ 하고 좋아서 트월킹췄을거 같긴한데ㅠㅠㅠㅠ
뭔가ㅠㅠㅠ 몰라ssbal이상해ㅠㅠㅠㅠ 유독 하냥이 수상소감이 너무 아파ㅠㅠㅠ
(나도_네가_전부야_사랑해.swf)
#디아스_1위_축하해 #디아스_꽃길만걷자
∞ 2,035 ♡ 3,913
[제목] 디아스 빈집털었넿ㅎㅎ (댓글 278)
빈집털고 실트점령ㅋㅋㅋㅋㅋ
부끄럽지도않낰ㅋㅋㅋㅋ
립싱크만 뻐끔거리는 ㅎㅌㅊ 그룹인뎈ㅋ
운만 오지게 좋았쥬?ㅋㅋㅋㅋ
─ 네 다음 관종
─ 부러우면 부럽다고해~^^
─ 어쩔티비~ 저쩔티비~ 아무도 안물안궁~ 물어본사람? 궁금한사람? 응~ 아무도 없죠~
─ 굳이 디아스 게시판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뭔지... 이런글도 다 악플로 고소 가능한거 알고도 쓰는 건가 싶네ㅎㅎ 쓰알 법무팀은 안참으니까 각도기 잘 재시길
─ 조회수 대비 댓글 적은거봐 ㅋㅋㅋㅋ 병먹금 실천하는 디어리들 넘 사랑스럽쟈나~
┗ 지금 우리애들 얼굴 보기도 바빠죽겠는데 ㅂㅅ 상대해줄 시간 없어요 ㅋㅋㅋㅋ
┗ 킹정ㅋㅋㅋ
─ 내일도 1위 만들어줘야지^^
─ 우래기들 많이크긴 했네 슬슬 정병 붙는거 보니까ㅋㅋㅋㅋㅋㅋ 라이징 인증 ㄱㅅ
[제목] 하기님 짹짹이ㅠㅠㅠ 하냥이 레게노 팬캠 나오뮤ㅠㅠㅠㅠㅠㅠ (댓글 999+)
하기님 방청가셨나보더라ㅠㅠㅠㅠㅠ
짹짹이에 직캠 뜬거 보자마자 승천함 ㅠㅠㅠㅠ
아직 안본 사람 없겠찌?
혹시 모르니까 링크남긴다 보러가라ㅠㅠㅠㅠㅠ
─ 세상에... 감사합니다 넙죽넙죽x9999999
─ 고맙다야...확실히 IT강국이라 그런가 지옥에서도 인터넷 잘터지내...
┗ 왜 지옥이얔ㅋㅋㅋㅋㅋ
┗ 음란마귀한테 잡혀와서...
┗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일도 무조건 1위 만들어서 또 울려야지 (음흉)
┗ 가보자고[email protected]
[궁른] 다들 궁이한테 달려오는거....
나만 심쿵했나?ㅎㅎㅎ
오늘 숙소가서 막... 물, 하아....
진짜 우리 궁이 언제 성인되냐
미자 좀 벗어났음 좋겠네ㅠㅠㅠㅠ
내 안의 유고걸이 자꾸 막아서서 곤란...
궁이 우는것도 넘 예쁘고...
웃는 것도 예쁘고...
화관 써도 예쁘고....
형아들이 절대 가만 안둘텐데 왜 미자...?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고의 나라에서 태어나 궁른을 잡은 나년 죄가 깊다 ㅡㅡ
─ 앞으로 6개월 남았다
─ 여기 궁 슴살되자마자 빤스내릴 익명 23432989472894명있음
─ 우레기들 평생 다같살했음 좋게따...ㅠㅠ
***
“하온아, 일어나.”
“……네에.”
나를 깨우는 소리에 비척비척 일어났다. 벌써 방송국에 다 왔나 봐…….
어제는 너무 울고, 흥분하는 바람에 도저히 일찍 잘 수가 없었다. 다들 거실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새벽까지 진열장에 소중하게 넣어둔 1위 트로피를 뿌듯하게 감상했다.
오늘 또 열심히 달려야 하니까 2시쯤에 다들 방에 들어가긴 했는데, 도저히 잠이 안 와서 뒤척거리다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상태였다. 멤버들이야 그렇다 쳐도 난 체력 관리하려면 억지로라도 자야 했었는데…….
남은 체력이 고작 30이라서 오늘은 무조건 멤버들한테 찰싹 붙어 있어야 했다. 활동 마지막 날이라서 그나마 다른 스케줄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정이한 손을 꼭 잡고 벤에서 내리자마자 디어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곧장 밝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방송국 건물로 들어오니 또다시 묵직한 피로감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디어리가 내 피로 회복제인가 봐…….
그나마 오늘도 개인 대기실을 배정받은 덕에, 대기 시간에는 조금 편하게 풀어져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리허설 전까지 체력 회복하려고 정이한을 끌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형, 저 좀 기대도 돼요? 너무 피곤해요…….”
“당연하지. 매번 안 물어봐도 돼. 좀 누워서 잘래? 얼굴 창백한 것 같은데.”
정이한이 걱정스럽게 말하면서 나와 거리를 조금 벌려 앉더니, 허벅지 위를 툭툭 두들겼다. 정이한의 허벅지를 베고 모로 눕자 유찬 형이 무릎 담요를 가져오면서 물었다.
“하온이 밤에 많이 못 잤어?”
“조금요…….”
형은 담요로 상체를 꼼꼼하게 덮어줬다. 작은 담요가 무척 포근했다.
“어제 새벽까지 같이 있길래 걱정되긴 했는데…….”
그러더니 형은 아예 소파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안색을 살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안색이 너무 안 좋네. 리허설 시작하면 깨워 줄 테니까 그때까지 자고 있어. 정곤 형한테 피로 회복제 있는지 물어볼게.”
“네에…….”
졸려서 자꾸만 말끝이 늘어졌다. 사륵사륵, 기분 좋게 머리를 쓰다듬는 정이한의 손길 덕에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잠을 좀 청하려는데 기웃거리는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려서 신경 쓰였다. 누군지 확인하려고 한쪽 눈만 게슴츠레 뜨고 보니 이서호가 나를 힐끔거리며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아픈 거 아니지?”
“응. 그냥 졸려서 그래…….”
“어, 그럼 됐어.”
대답을 듣고 한결 안심한 듯한 얼굴이 된 이서호는 뒤꿈치까지 들고 조심조심 멀어졌다. 푸흐, 귀엽기는. 이제 진짜 자야겠다.
하지만, 대기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또다시 잠을 방해해왔다. 우리 식구들은 굳이 노크하지 않고 들어올 테니 방송국 관계자려나? 유찬 형이 대표로 “네.”하고 대답하면서 문을 열어주는 듯했다.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재혁아.”
유찬 형의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