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심장이 너무 거세게 뛰어서 갈비뼈를 뚫고 나올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나 너무 매번 긴장하는 것 같은데.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목구멍을 꽉 막아 오는 두려움을 꿀떡꿀떡 삼키면서 굳은 표정을 풀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유찬 형이 무언가에 주문이라도 걸듯이 목소리를 바짝 낮춘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오늘 라이브 방송 순서를 복기하는 중이었다.
뮤비 조회수 2,000만 돌파 감사 인사하기, 팬덤명 공지하기, 멤버 별로 남친 버전 모닝콜 찍기, Q&A 하기, 자컨 예고 같이 보기. 유찬 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시로 건네준 스크립트까지 달달 외웠다.
“후우, 됐다.”
유찬 형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몇 번 크게 심호흡했다. 그사이 예고한 시간이 껑충 다가왔다.
“얘들아, 준비됐어? 5분 뒤에 시작이야!”
매니저 형이 카운트 다운하듯 시간을 알려주자, 유찬 형이 크게 숨을 들이켠 채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리더이자 맏형으로서 오늘 라이브 방송 진행을 맡았는데, 그게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미니 팬미팅 할 때는 그저 좋아서 방방 뛰더니,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가?
“형, 긴장돼요?”
허벅지에 얹어진 유찬 형의 꽉 말린 주먹이 눈에 띄었다. 그 위에 내 손을 살포시 포개곤 고개를 살짝 기울여 형을 올려다봤다.
“어어, 긴장되네…….”
“긴장할 필요 없어요. 우리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 만나는 거잖아요. 실수해도 다들 좋아해 주실 거예요.”
그렇지. 우습게도 유찬 형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말에 내 긴장도 함께 풀리고 있었다. 언제나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시는 팬분들, 따뜻하고 포근한 애정을 쏟아 주시는 분들.
음방 출퇴근할 때는 물론, 사전녹화 무대 할 때도 매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무대를 지켜보며 힘차게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저절로 입꼬리가 스르륵 치켜 올라갔다.
그런 소중한 분들과 함께하는 방송이잖아. 낯설다고 겁먹을 필요 없었다.
“큰 실수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유찬 형은 내 어깨너머를 보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이서호가 있는 쪽이었다. 아, 그건 나도 좀 걱정되긴 해. 디아스 공식 넘버 원 사고뭉치.
“아……. 그, 건. 음.”
차마 괜찮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우물쭈물하자 갑자기 유찬 형이 풉, 하고 야트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네.”
형은 내 손등 위로 반대쪽 손을 포개오더니 토닥토닥 두들기면서 고맙다고 했다. 딱히 한 거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된 거 정신 바짝 차리고, 이서호 경계에 힘써야겠어.
“방송 1분 전!”
우렁찬 매니저 형의 외침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의 눈을 거울삼아 외모를 점검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라이브 무대를 앞둔 것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이 나를 휘감았다. 팬분들을 만난다는 흥분과 설렘이 오히려 내 정신을 바짝 다잡게 했다.
“3! 2! 1! 큐!”
매니저 형의 두툼한 손가락이 휴대폰 액정을 톡 터치했다. 동시에 휴대폰과 연결된 커다란 스크린에 우리 얼굴이 비쳤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디아스입니다!”
라고 다들 반사적으로 인사하기는 했는데…….
“응?”
“형, 방송 켜진 거 맞아요?”
이서호의 물음에 매니저 형이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팬분들이 한 분, 두 분 입장하더니 숫자가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채팅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어, 어? 우리 인사 다시 해야 하나?”
─ 얘두라~ 안녕!
─ 꺄악꺄아규ㅠㅠㅠㅠ!! 울 갓기드류ㅠㅠㅠ 넘 예쁘다ㅠㅠㅠ
─ 오늘 착장뭐야뭐야 머선일이고!!!
─ 남친룩 오졌다;;
─ eng plz
다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유찬 형이 다시금 우리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방송 시작부터 인사만 두 번이라니. 제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첫 라이브 방송인 만큼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었다.
인사를 마친 뒤 유찬 형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의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을 보면서 탄성을 섞어 말했다.
“와아, 정말 많은 분이 와주셨네요!”
이서호의 궁둥이가 들썩거리면서 스크린에 자석처럼 끌려가기라도 하듯이,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흐어, 진짜 많아요! 우와, 우와아아!”
……이서호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우리 그룹의 유일한 분위기 메이커인데 초반부터 괜히 애를 잡았다가 방송이 재미없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너무 흥분해서 사고 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이래저래 문제네.
“오늘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유찬 형이 말을 맺으면서 우리 쪽을 봤다. 다음은 이서호 차례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서호는 흥분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신나게 외쳤다.
“저희 뮤비! 2천만 뷰 돌파했! 습니다!”
양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인 이서호가 허공에 대고 팔을 붕붕 흔들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유찬 형이 빠르게 뒷말을 거둬가면서 꾸벅 인사했다.
“전부 여러분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 멤버들이 함께 인사한 뒤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채팅창으로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더 올려주겠다며 전투력을 다지는 말들도 보였고, 음방 1위 가자고 외치는 분들도 계셨다.
“앞으로도 팬 여러분과 소통하면서 열심히 하는 디아스가 되겠습니다!”
“맞아! 여러분, 그거 아세요? 진하온이 글쎄!”
무슨 말을 하려고? 물개박수까지 치며 기뻐하던 이서호가 뜬금없이 나를 저격했다.
“우리 뮤비 관심 없는 영상으로 등록했다니까요?”
아주 재미있는 일이라도 되는 것마냥 굴었지만, 나는 화들짝 놀라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연기 스탯의 도움을 받은 덕인지 표정만큼은 생글생글 잘 관리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와, 연기 올리길 잘했다. 하마터면 정색할 뻔했어.
이제 뭐라고 수습할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머리야 빨리빨리 굴러라……!
“아, 맞아. 그랬지. 우리 하온이가 워낙 멘탈이 약하거든요. 뮤비 못 보겠다면서 너튜브 추천에 뜬 걸 아예 숨겨 버리더라고요.”
유찬 형이 수습해준답시고 나를 더 나락으로 보내버렸다. 뭐냐고, 멤버 피셜 유리멘탈 됐잖아!
“맞아, 맞아. 진하온 진짜 멘탈 약하거든요? 데뷔하기 전에 녹음실에서…….”
얘가 설마? 데뷔하기 전 녹음실, 까지 들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이서호의 말을 끊으면서 치고 들어갔다. 나 멱살 잡았다는 말이라도 하려는 거야? 지금? 라이브 방송에서?
“서호 형.”
“응?”
“……그거 말하지 마.”
“어? 왜?”
왜겠어. 분명히 두고두고 문제 될 수 있을 만한, 오해 소지 다분한 말을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음, 그런가. 하긴. 네가 좀 부끄럽겠다. 보컬 샘한테 혼났다고 널브러져 있었던 게 팬분들한테 알려지면! 와핫!”
“……아.”
그……거였어? 그땐 체력 떨어져서 회복하느라 그런 건데……. 남이 보면 멘탈 터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구나…….
그래, 이서호도 생각이 있는데 방송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진 않겠지. 내가 이서호를 너무 생각 없는 사람 취급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나는 얼른 이서호의 말을 받았다.
“아, 형. 말했잖아!”
“앗차……!”
이서호는 한 손으로 제 주둥이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미안해했다.
─ 진하온 멘탈 절대 지켜 지금부터 진하온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 우리 하온이 누가 혼냈어어ㅠㅠㅠㅠ
─ 강얼쥨ㅋㅋㅋㅋ 다 말했엌ㅋㅋㅋ
─ 잘했어! 하온아!
힐끔 채팅창을 보니 내 예상과 달리, 팬분들의 열띤 반응이 빽빽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일 아닌 건가 봐. 나는 우리 그룹 뮤비 숨겼다고 욕먹을 줄 알았는데…….
“그, 그런데.”
정이한이 대뜸 입을 열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긴 했지만, 정이한 차례는 맞았다. 그래서 고개를 반쯤 올려서 정이한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정이한은 거의 국어책 읽는 듯한 딱딱한 어조로 멘트를 읊기 시작했다.
“우리. 언제까지. 여러분, 이라고. 불러야. 해?”
나는 다급히 정이한에게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양손을 허벅지 위에 올린 채 팔을 쭉 뻗었다. 그런데도 씰룩거리는 입술을 제어할 수 없어서 곤란했다. 결국 웃음이 터지면서 자세가 무너졌다.
“아하하!”
한참을 웃다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슥 훔치며 옆을 보니, 유찬 형과 이서호도 아직 배꼽 잡고 웃고 있었다. 스크린 속의 정이한이 얼굴을 붉힌 채 말아쥔 주먹을 입가에 대고는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한이는ㅋㅋㅋㅋㅋ 연기하지말잨ㅋㅋㅋㅋ
─ 맞아. 우리도. 이름이. 필요해. 이렇게. 하면. 돼? 이한아. 할미한테. 가르쳐다오, ^^~
“푸흡!”
상냥한 팬분이 채팅으로 정이한의 국어책 연기 톤에 맞춰주는 걸 보자마자 다시 웃음이 터져서 곤란했다. 아, 솔직히 이건 연기 스탯으로도 못 막아. 너무 웃긴데 어떻게 참아!
“후우, 후우, 아, 조금만 진정할게요.”
유찬 형은 심호흡하면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가라앉힌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맞아요! 사실은 팬덤명이 확정되었습니다!”
다들 예능 한 번 촬영하고 왔다고 그사이 리액션이 조금 늘었는지, 열심히 박수치면서 호들갑 떨었다.
“와아! 팬덤명! 와아아아!”
특히 이서호가 혼자 10인분은 하는 것 같은 독보적인 리액션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잘한다! 잘하고 있어!
“팬분들께서 저희 공카를 통해 공모해주신 팬덤명 중에,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인 게 있었는데요!”
유찬 형의 발랄한 멘트를 내가 이어받았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도 아실 것 같아요! 투표 1위 한 이름은 바로!”
─ 디어리?
─ 디어리!
─ 디어리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 디! 어! 리!
채팅창이 온통 ‘디어리’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강현 형이 조금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맞습니다. 디어리.”
“디어리 여러분! 우와! 이제 우리도 이름 불러줄 수 있어요!”
오늘 손바닥에 불나겠네. 무슨 말만 하면 박수 칠 일밖에 없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멤버들의 에너지에 뒤지지 않으려 열성적으로 짝짝 소리를 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디어리는 Dear와 Fairy를 합쳐서 탄생한 팬덤명입니다. 언제나 저희 디아스 곁에서 지켜주는 요정들이 바로 여러분이니까요!”
“저희도 언제나 디어리 옆에 있을게요!”
이서호가 벌떡 일어나서 마구잡이로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윙크했다. 디어리, 디어리. 처음 들었을 때부터 계속 곱씹어 봤는데, 솔직히…….
너무 예뻐! 우리 팬분들이랑 찰떡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