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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미다스의 손 (2) (168/341)

미다스의 손 (2)

“스트레이트!! 으하하! 이번엔 제가 따 가겠습니다!”

나는 패를 툭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쌓아 놓은 동전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안타깝군요, 총감님! 이 저비스의 손 패는 쓰리 오브 카인드입니다.”

“이런 제기랄! 젠장할! 제독님 지금 사기 치시는 거 아닙니까?! 5연승이 말이 되냐구요! 에퉤퉤! 이런 좆망겜 같으니!”

“껄껄, 다재다능하신 총감님께서도 카드 치는 재능은 없으신가봅니다?”

세상에. 지금 나한테 게임 못한다고 놀리는 거야? 우리 프랑스에서는 포커를 치지 그랙인지 뭔지 이런 똥망 영국 카드겜 안한다고!

“어허, 카드 치다 중간에 나가면 운수가 안 좋습니다?”

“운수고 나발이고 전 몇 판 쉬렵니다. 옆에서 관전이나 하죠.”

나는 카드가 오가는 테이블에서 멀찍한 거리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그리 얘기했다.

“큼큼. 그러고 보니 런던 구경은 잘 하셨습니까? 제가 태워다 드릴 때 많이 조언을 해드렸는데.”

“왜요. 이제야 초보자를 피도 눈물도 없이 관광 태웠다는 게 양심에 찔리십니까?”

“크흠. 관광이라니요, 각하.”

존 저비스 제독은 자기도 조금 부끄러웠는지 몇 번 헛기침을 하곤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 그러고 보니 런던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하던데 장사는 어떻게 잘 되가십니까?”

“장사야 이제 정상궤도에 올라왔으니 순탄하지요.”

“허허, 그것 참 좋은 소식이군요.”

“다만.”

“다만?”

“뭐랄까 요새 시장이 조금 불안한 게 작은 흠이라고 해야 할까요.”

“시장, 말이십니까.”

탁.

카드 패 하나가 테이블 위에 달라붙는 소리가 지금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시장이 크게 흔들립니까?”

“아, 그렇게 정색하실 문제는 아닙니다. 그저 몇 가지 회사가 꽤나 과대평가 되어 있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과대평가요?”

“그렇죠. 적정가보다 훨씬 위에 있는 거 같으니, 그게 과대평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곧 정상 수순으로 내려오겠지요.”

“으음. 그렇군요. 본관은 주식 쪽에 완전히 문외한이다 보니. 혹시라도 큰일인가 싶어 여쭤보았습니다. 허허.”

존 저비스 제독은 다시 즐거운 얼굴로 카드 패를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려서. 나와 저비스 제독, 그리고 해군의 높으신 분들이 있는 이 방을 지키고 있는 몇몇 장교의 얼굴을 살폈다.

저 불안한 눈빛과 거친 생각 때문에 찌푸려진 이마를 보라.

아마 지금쯤 머릿속이 내가 말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을 걸.

“자, 한 판 쉬었으니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허허, 물주께서 오셨구만!”

나는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저비스 제독이 건네 준 카드 패를 손에 쥐었다.

***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비스 제독님. 다음에는 안 봐드립니다.”

“허허, 카드 치는 실력을 보통 기르는 걸로는 제게 안 될 겁니다!”

시간이 늦어지고 모두 파하는 분위기가 되자, 나 또한 초청장을 써준 저비스 제독과 악수를 하고 파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웨이터에게 외투를 받고 연회장을 나가려고 하는 그때, 제복을 차려입은 한 장교가 내게 다가왔다.

“음? 누구십니까?”

“해군 대위, 토마스 하디라고 합니다. 각하. 잠시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물론이죠.”

“정말 감사합니다, 각하.”

고개를 숙여 내게 감사함을 표한 하디 대위는 연회장 어딘가에 있는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하디 대위의 동료로 보이는 젊은 청년 장교들과 몇몇 영관급 장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날 보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 뒤, 군모를 벗어 인사하기 시작했다.

“어유 뭘 일어나고 그러십니까. 앉으세요. 하하.”

“그래도 엄연히 한 나라의 대표이신데 소관들이 그래도 될런지요...?”

“우리 혁명 프랑스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평등하답니다. 편하게 있으십쇼. 편하게. 하하하.”

이렇게 깍듯한 대접을 받으면 아무래도 내 입을 털 때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낀단 말이지.

“그런데 귀관들이 절 부른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 사실 아까 제독님들과 총감님께서 나누시는 말씀을 우연히 들었는데, 개중에 마음에 걸리는 내용이 있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총감님의 고견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흠? 고견이라니요?”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말투로 얘기했다.

그러자 하디 대위는 쭈뼛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주식 시장 말입니다.”

“아, 그 말씀이셨군요.”

“아까 몇몇 회사가 폭락할거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혹시 폭락이라면 설마 과거 남해회사 거품 사건 때처럼 되는 겁니까?”

남해회사 거품 사건.

그 말이 하디 대위의 입 밖으로 나오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장교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모두가 속을 바싹바싹 졸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하, 시장 자체가 폭삭 주저앉을 일은 없습니다.”

“휴우. 그렇군요.”

“다만.”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시 마른 침을 삼켰다.

“제가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몇 있기는 하지요.”

“““!!!”””

“왜요, 궁금하십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외투 안에 넣어둔 수첩을 꺼냈다.

“그게 무엇인지요?”

“제가 런던 증권거래소를 보고, 뭔가 이상하거나 유의해야할 종목들을 적어놓은 겁니다.”

“““오오오!”””

청중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전직 재무총감, 현직 사업가의 시크릿 주식 노트라니.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매물 이었다.

“뭐, 제 장사 밑천이니 다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웨일즈 대구 어업소, 요크셔 데일 벌목소, 또오...”

내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놓을 때 마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두들의 눈이, 단 한 음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활활 타올랐다.

“뭐, 제 소스를 믿으시던 안 믿으시던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니.”

나는 수첩을 안주머니에 넣고, 궐련을 하나 입에 물며 그렇게 끝맺었다.

***

“이봐,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뭐 말인가.”

“주식.”

대영제국 해군 대위, 토마스 하디는 동기의 물음에 그저 파이프만을 뻑뻑 피우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군.”

“난 결정했어.”

“뭘.”

“그 프랑스인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으음.”

“돈을 갈퀴로 쓸어먹는 사람이 해준 말을 그냥 무시하기엔 후폭풍이 너무 두려워. 심지어 늙은 독수리가 젊은 까마귀보다 낫다는 말도 있는데 그 프랑스인은 늙기는커녕 우리보다도 팔팔하잖나.”

“···하기야 잠깐 뺐다가 별 일 없으면 다시 넣으면 되는 거지.”

그 프랑스인 말이 맞다면 손해를 안 봐서 좋고, 말이 틀리다고 해도 잠깐 손해를 보는 거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살기 참 팍팍하구만! 전쟁이라도 나면 진급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전쟁이라니, 위스키를 또 얼마나 쳐마셨길래 그런 망발인가?”

집안에 돈이 없어 계급을 사지 못하는 장교들에게, 주식은 적은 장교 임금을 받고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제독님들은 돈이든 뭐든 빠방하게 나오니까 이런 걱정 안 해서 좋겠어! 낄낄.”

“정 꼬우면 자네도 돈 내고 대령 계급 달지 그러나. 하하.”

***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잡주 몇 개 지금 던집시다.”

“뭐부터 풀까요, 사장님.”

런던거래소에 디도스 공격을 날리고자, 우리가 몇 달 동안 모은 개잡주는 꾸준한 구매로 인해 ‘과대평가’된 종목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이걸 싸그리 던진다면? 글쎄. 꽤 재미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웨일즈 대구 어업장, 요크셔 데일 벌목소. 그 둘이 지금 제일 높게 평가되어있죠? 그것부터 던집시다.”

“예, 사장님.”

“으아아악! 판매물량이 쏟아진다!”

“날 죽...여...줘...”

“요크셔 데일 벌목소 30주, 3실링! 구매자 없습니까! 구매자 없습니까?! 2실링 9펜스! 2실링 9펜스! 구매자 없습니까?!”

나와 마이어 씨의 판단처럼, 런던거래소 직원들은 또 다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내 돈! 내 돈!!”

“왜 오르다가 갑자기 물량이 풀리는 건데!!”

“내, 내, 500퍼센트의 꿈이...”

제대로 된 분석조차 없이 무턱대고 몇 달 간 우상향을 찍는 주식에 돈을 몰아넣었던 사람들도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디! 자네 오늘 증권거래소 봤나!?”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 프랑스인이 말한 게 사실이었어! 정말 떨어졌다고! 폭락도 이런 폭락이 없어!”

“이, 이런 썅. 정말 거리에 나앉을 뻔 했구만.”

단 한 부류. 나에게서 조언을 얻어갔던 해군 장교들만이 무사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다음 날부터 내 사무실은 어마어마한 수의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했다.

“큼큼. 프리깃함 시리우스의 함장이오. 총감님을 뵈러왔소.”

“소관은 전열함 리벤지의 갑판장인데, 혹시 총감님을 뵐 수 있을지요? 헤헤...”

“전 해군성 서기보좌관인데···.”

마음씨 착한 기욤은 그 모두를 어미새 마냥 친절하게 품어주었고.

“진, 진짜 땄어! 진짜로 땄다고! 맨날 꼴아만 박던 내가 진짜로 땄다!!”

“템즈 강변에 집 마련 가즈아아아!!”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거기에 몇 번의 기적을 더 보여주십사, 모두가 주식계의 재림 예수 기욤 드 툴롱을 따르게 되었나니. 잘됐다 잘됐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이어 씨?”

“이 정도면 사장님께서 목장에 늑대가 나타났다고 세 번 넘게 거짓말을 한다 해도 다들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겠군요.”

“좋아요. 슬슬 동인도 회사에 대한 찌라시를 풀죠.”

“알겠습니다, 사장님.”

***

“총감님,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던데. 혹시 아십니까?”

“소문이라니요?”

나는 푸른색 해군 정복을 입은 장교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동인도 회사가 곧 의회로 소환된다는 둥, 뱅골 윌리엄 요새 총독(인도총독)을 소환한다는 둥···. 낭설이겠지요?”

“왜요. 동인도 회사에 투자라도 하셨습니까?”

“조, 조금했습니다만.”

“으음.”

“사람 불안하게 왜 그러십니까? 이유라도 알려주시지요!”

“혹시 그 소문을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증권거래소 근처 구두닦이 소년이 귀뜸 해주더군요.”

음, 이름이 필립이었나? 애가 일을 참 잘해.

“구두닦이 소년이라! 조언하나 해드리자면 그 돈 빨리 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

“제가 격언으로 여기는 말이 하나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나는 궐련을 하나 꼬나물고 불을 붙인 뒤, 안절부절하는 장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정주부들이 장바구니 들고 객장에 오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주식을 입에 담기 시작하면 곧 큰 일이 닥치기 마련이니, 주식에 넣은 돈을 빼고 현물을 쌓아둬라.”

“설, 설마 동인도 회사가 폭삭 주저앉겠습니까?”

“뭔 소리이십니까? 동인도 회사가 왜 주저앉아요?”

“예?”

“회사는 그깟 걸로 안 망합니다. 망하는 건 여러분 같은 개미들이지.”

난 유치하게 칼 들고 협박 같은 거 안 해. 불투명하고 위험한 미래를 제시할 뿐이지.

***

1793년 6월.

런던 첼시 항.

“하디 대위님! 대위님!”

“왜 그러나 수병.”

“오늘, 오늘 <타임즈>보셨습니까?!”

“<타임즈>가 왜?”

“이것 좀 보십쇼!”

수병에게 신문을 받아든 하디 대위의 얼굴은 잠시 찌푸려들었다가 점차 파랗게 질렸다.

[윌리엄 피트 수상, 동인도 회사 기소!!]

“···십년감수했군.”

불과 며칠 전, 손에 들고 있던 동인도 회사 150주를 객장에 던져버린 자신의 판단에 너무나도 큰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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