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미다스의 손 (3) (169/341)

미다스의 손 (3)

땅, 땅, 땅.

판사봉이 나무판을 둔탁하게 세 번 내려찧는 소리가 웨스터민스터 의회를 가득 메우고, 왕을 대신해 붉은 벨벳을 두르고 참석한 국새관(國璽官, Lord privy seal)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1793년 6월 23일. 동인도 회사의 비리 및 횡령, 배임에 관한 본 회의를 시작하겠소. 이 자리에 온 모든 이는 대영제국 신민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는 폐하의 충신이니, 모두 예를 지키며 품격 있는 회의를 진행해주길 바라오.”

국새관이 자리에 앉고 모든 의식이 끝나자, 웨스터민스터 의회 의장석의 우측에 자리한 집권당, 토리당 측에서 선공을 가했다.

“존경하는 귀족원, 서민원 여러분. 며칠 전 우리 토리당은 경악할만한 제보를 받고 말았습니다.

동인도 회사.

저 멀리 아시아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우리 제국을 부유하게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회사가, 지금껏 거짓된 장부와 더러운 세치 혀를 이용해 1800만 영국인의 눈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알고 있는 우리 영국인들의 근면함과 성실함을 앗아가려하고 있습니다!

바로 십여 년 전,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에게서 젖과 꿀이 가득한 저 대서양 건너 신대륙을 앗아간 간악하기 그지없는 자들이! 이번에는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의 신뢰와 평판마저 앗아가려하고 있습니다!

오! 주님! 오! 국왕 폐하! 부디 이 통탄스러운 자들을 어서 빨리 벌하소서!! 그들의 겉에 달라붙어 신민의 고혈을 같이 빠는 자들에게도 벌을 내려주소서!!”

“““와아아!!!”””

토리당 의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웨스터민스터 의회 안에서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당연하게도, 박수소리는 딱 의장석 오른편에서만 들렸다.

마지막에 가서는 청중으로 하여금 울부짖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울분을 토한 토리당 의원은 박수 소리가 끝내자,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야당, 의장석 왼편에 자리한 휘그당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북북 갈 뿐이었다.

“그들의 곁에 달라붙어 신민의 고혈을 빠는 이들이라니! 토리당은 지금 신성한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악의 섞인 비방을 하는 거요?!”

“비방이라니!? 혹시 귀측에서는 간신을 욕하는 것도 ‘악의’로 취급한단 말입니까? 이야 이것 참,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에 대단한 성인군자들이 나셨군요!! 나중에는 사탄도 변호해주시겠습니다 그려?”

땅, 땅, 땅.

“어허, 정숙하시오! 정숙! 폐하를 대신한 국새관이 앞에 있는데 양측 모두 지금 이게 무슨 망발이오!”

“흠흠, 죄송합니다.”

“큼, 죄송합니다.”

한 차례 판사봉을 쥔 국새관의 말에 다시 사그라든 분위기였지만, 양측 의원들의 마음속에는 투쟁심이 타오르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당수, 토리당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예 오늘 싸워서 죽을 작정을 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초반부터 이렇게 세게 나오는 걸 보아하니 피트 그 자가 꽤 큰 떡밥을 물어온 듯 싶군.”

“어쩌시겠습니까, 당수?”

“음.”

휘그당 당수, 에드먼드 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발언은 내가 직접 하겠네.”

“당, 당수께서 직접 말이십니까?”

버크는 자신을 쳐다보는 휘그당 의원을 향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이 의회가 뭐하는 곳인가. 기세가 밀리면 증거 몇 개를 수집하던지, 그 증거가 얼마나 확정적이던지 간에 유야무야 사라져버리는 곳이다.

비록 지금은 토리당 쪽으로 살며시 기운 기세지만, 당수인 버크 자신이 나간다면 피트가 직접 나오는 게 아닌 이상 기세에서 밀릴 이유는 없었다.

“이번에는 휘그당, 발언하시오.”

“휘그당에서는 본인, 에드먼드 버크 의원이 발언하겠소.”

상대당의 거물 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방금 전까지 킥킥 대던 토리당 소속 젊은 의원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긴장으로 물들었다.

“우리 그레이트브리튼, 대영제국이 이렇게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국왕폐하의 은혜와 덕성의 우수함을 전파하고, 미개한 야만인들에게 이성과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는 사명을 부여받은 이유가 다들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본인,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생각하오. 우리 대영제국의 신하와 백성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부를 쌓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소.

예의 애덤 스미스 교수가 말했듯이 그 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 어두운 신대륙을 탐험하고, 개척하고, 또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그 어떤 나라도 쌓아올리지 못했던 부를 쌓아올리고 있소.

그렇소! 부를 쌓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이 세상 곳곳으로 뻗어갈 수 있게 해준 이유요!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의 자랑, 레드코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기꺼이 총과 군복을 입었고.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의 자랑, HMS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가진 왕립 해군은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기꺼이 대포와 닻을 손질하고.

우리 그레이트브리튼의 자랑, 1800만의 신민은 더 부유한 삶을 꿈꾸며 오늘도 일터와 가게로 향하고 있소.

모두가 자유롭게 상업과 무역에 종사하며 애덤 스미스 교수의 [국부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이런 지금 동인도 회사를 단속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무역에 대한 국가의 전복이며 신께서 내려주신 상업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거나 마찬가지요.

물론, 동인도 회사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오. 그들의 과거에는 차마 성모께서도 눈감아 주시지 못할 비도덕적인 일이 가득하오. 그러나 겨우 법을 한두 개 어겼다는 점으로 회사를 속박하고 단속한다면!

그 어떤 영국인도 열심히 일하면 부유해질 수 있다는 미래에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외다.

이상이오.”

“““와아아!!! 버크! 버크! 버크!”””

버크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의장석 좌측에서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휘그당. 정숙, 정숙하시오. 그러면 이제 토리당 측, 발언하시오.”

“토리당은 수상, 윌리엄 피트가 발언하겠습니다.”

장군 대 멍군. 이제는 양 당의 당수가 기립하여 서로를 노려보는 그림이 되었다.

“본인, 윌리엄 피트는 시장에게 자유를 줘야한다는 버크 의원의 말에는 십분 공감합니다.”

단.

“버크 의원이나 휘그당 의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 윌리엄 피트는 그 자유가 방종이 되는 건 못 보겠군요.

시장이라는 건, 무조건 국가의 야경 아래 공정하고 공평한 법이라는 체스판 위에서만 가능한 겁니다.

게다가 자신들 외에 그 어떤 기업도 아시아와 인도 무역에 종사할 수 없게 법으로 막아놓고 시장의 자유를 부르짖는 꼴이라니. 정말 모순의 극치 아닙니까.

이 정도면 답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윌리엄 피트는 버크를 향해 예의 그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버크 또한 어깨를 으쓱하며 맞불을 놓았다.

“글쎄. 한 번 자유가 법에 의해 침해당하면 그 이후로 침해되지 않는다는 법이 있소?”

“흠. 버크 의원의 뜻이 정 그렇다면야, 시간 끌지 말고 나머지 행정부서의 의견을 여쭙지요. 재무부?”

“재무부는 피트 수상의 뜻에 적극 찬성합니다.”

“인도감시위원회도 동의합니다.”

각 행정부서를 대표해 나온 장관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란히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먼드 버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재무부 장관은 윌리엄 피트가 겸임하고 있고, 인도감시위원회는 피트가 기른 토리당원인 리처드 웰즐리가 잡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저희 외교부는 낄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립.”

“육군부도 중립.”

이런 내부적인 일에 얽히지 않는 외교부와 육군부 답게 두 부서는 나란히 중립.

“자, 이제는 에드먼드 버크 의원 차례 아닙니까?”

“물론이오. 우리 휘그당은 토리당과 피트 수상의 의견에 결사반대요.”

“저희 내무부는 휘그당에 동의합니다.”

“무역위원회 또한 휘그당 의견에 동조하는 바입니다.”

버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팔 두 개가 나란히 번쩍하고 올라갔다.

“···음?”

“왜요? 뭔가 이상하십니까, 버크 의원?”

에드먼드 버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손을 들지 않는 부서장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우리 해군성은.”

해군성 위원장(Office of the First Lord of the Admiralty), 조지 스펜서(George John Spencer, 2nd Earl Spencer)는 마른 침을 삼키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일단 사법부에서 판결이 나올 때까지 중립을 지키겠소.”

“해군 위원장! 지금 그게 무슨 말이오!!”

“결론이 난 것 같군요. 중립을 제외한 행정부가 2대2이니, 원내 다수의 의견을 따라 동인도 회사 사건을 대법관(Lord Chancellor)에게 송사(訟事)하도록 하겠습니다.”

짝, 짝, 짝.

황당한 얼굴로 쏘아붙이는 버크와 달리, 윌리엄 피트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손바닥을 세 번 부딪혔다. 리듬감이 넘치는 박자로 말이다.

“당수!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해군성이 왜!!”

“기다려보시오. 나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니.”

대체 왜? 휘그당인 해군성 위원장이 왜 휘그당 편을 서주지 않는단 말인가?

***

왜긴 왜야.

“모든 게 총감님 덕입니다!”

“허허허.”

나는 신선마냥 웃으며 내게 달라붙은 토마스 하디 대위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정말 죽을 위기를 겨우 넘겼지 뭡니까!”

“허허허, 대위님과 전우 분들께서 혜안이 탁월한 거지요.”

“왜 이리 젠 체십니까! 정말 총감님 아니었으면 땅바닥에 나앉을 뻔 했다니까요?”

“전 그저 길을 밝혔을 뿐, 그 길을 걸어가고자 마음먹으신 건 여러분 아닙니까. 허허.”

아무리 대장이오, 중장이오, 내가 해군성 위원장이오 하는 높으신 분들이더라도,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분위기가 확 달라지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적어도 동인도 회사 루머가 터지고 주가가 떨어졌으니 내 말을 들은 장교들은 주식을 뺏을 테고, 내 말을 듣지 않았다면 떨어진 주가에 템즈 강변에서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을 거다.

그런데 여기서 동인도 회사를 두둔한다? 뭐, 군사업무만 보는 해군경이라면 막가파로 가도 되겠지만, 정치력을 가져야 하는 해군성 위원장이라면 결코 그럴 수 있을 리가.

결국 앞에서 말한 내 말을 들은 장교들은 나의 든든한 광팬이 되는 거고, 후자는 경영을 개같이 한 동인도회사에 반감을 가질 테니 어느 모로 보나 피트 수상의 계획에 걸릴 점은 없다.

“대위님?”

“예, 총감님.”

“그 돈 얘기는 그만하고, PX나 한 번 안내해주시죠. 오늘 완공됐다는 곳 말입니다.”

“아, 예! 당연하지요! 하하,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봐. 윌리엄 피트, 당신 말대로 다 해줬으니까 이제 내가 뽀찌를 챙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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