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91화 (191/205)

<191화 심판자 3>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온다.

“웬일이냐? 사장 자리 주고는 연락이 없더니?”

“내가 연락하면 괜히 압박 주는 것 같잖아.”

“그럼 오늘은 왜 연락한 건데?”

“이번에 NBS에서 MC 수첩 방영되는 방송 알아?”

“그거 심판자 특집 아닌가? 그것은 알고 있다 특집방송 덮으려고 크게 준비한다는 소문은 들었지.”

“국영방송에서 이런 도시 전설에 대해서 매달린다는 게 별로 보기 좋은 건 아니잖아.”

“거기 사장이 정치권하고 같이 발맞춰서 가는 곳이잖아. 아마 이번에 수사되는 사건 덮으려고 이슈가 되는 방송이라면 톱스타 열애설이라도 만들어서 취재할 놈들인데?”

“거기도 갈 때까지 갔네···.”

“NBS 같은 경우에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노조 밀어주면서 완전히 언론으로서 중심을 잃은 거지.”

“그 정도야?”

“방송 쪽 일 안 하는 사람들이야 관심 없으면 모르는 일이지만···방송가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었지. 거기에서 생각 있는 PD들은 전부 외부업체로 이직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 거고···.”

“한동안 파업하고 그랬을 때 이야기 말하는 건가?”

“그래···. 노조라고는 하지만 사실 거기서 일하던 근로자들도 서로 생각이 달라서 방송 자체가 펑크도 많이 났잖아.”

“결국···사장 바뀌면서 정리된 것 아니었어?”

“정리된 거지. 특정 정치권하고 친한 방송으로 바뀐 거지만···그런데 나는 방송국이 중립을 잃어버리면 너튜브에서 콘텐츠 만드는 채널하고 차이가 없다고 본다.”

“사실상 방송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는 말이네?”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고.”

“그럼 이번에 심판자에 대한 특집 잡은 이유는 뭔데?”

“정치권 기사 덮으려고 이슈가 될 만한 것에 불이 붙은 거지 뭐. 물타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 이번에 검찰 출두 요청받은 정치인 한 명 있잖아.”

“···.”

“뭐 우리나라만 아니라 어디서나 언론이 선전 선동에 이용되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니까. NBS가 좀 심하게 편파적으로 이긴 하지만···.”

“현진이 너는 심판자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았잖아?”

“나야 심판자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지. 개인적 사적 복수가 인정되는 사회가 된다면 정말 망했다고 봐야 하니까. 하긴 요즘 판결 나오는 걸 보면 피해자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너도나도 사적으로 심판하겠다고 나서면 과거 십자군 전쟁 시절로 돌아가는 것하고 다름없지 않겠어?”

“갑자기 십자가 전쟁 시절?”

“말이 그렇다는 거고 중세 시절 아니면···그 이전의 말 그대로 사법적 판단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인 아주 단순한 법률이던 시절 말이야. 잔인하고 힘 있는 자들만 지킬 수 있는 법만 있던 시절을 말하는 거지.”

“힘 있는 자들만 지킬 수 있는 법?”

“그래. 심판자도 어쨌든 그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진실이라면···그 전설을 이어갈 정도의 힘이 있는 거지. 하지만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힘이 있다면 피해자의 입장에 섰을까? 결국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가 되고 힘 있는 이들은 서로에게 힘을 원시적으로 과시하며 서로 복수하는 과거로 돌아가는 거지.”

“···그럼.”

“물론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방송을 방해할 마음은 없어. 내 마음에 들지 않은 방송국에서 하는 방송이라고 방해하고 그럼 내가 싫어하는 언론의 힘을 휘두르는 자들하고 다를 바 없어지니까.”

“그럼 그대로 두고 보게?”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

“뭘 계획하고 있는 건데?”

“그런데 너 이런 주제에 관심 없지 않았어? 심판자 이야기할 때도 시큰둥하더니?”

“그저 공영 방송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그렇기는 하지 흥미본위의 방송이니까.”

“···.”

“내가 알기로는 이슈만 된다면 뭐든지 한다는 분위기로 타 방송사에서 녹화한 영상까지 입수해서 한다고 하더라.”

“뭐? 자기네가 취재한 내용도 아닌 거야?”

“내가 알기로는 SNN에서 확보한 영상일걸?”

“그런데 SNN에서는 그 영상을 NBS에 넘긴건데?”

“영상확보 루트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더라고.”

“불법 촬영인 건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최소한 수항원 원장 김 씨에게 제보받은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동의받지 않고 영상을 찍는 경우는 왕왕 있지 않아?”

“그거야 나중에 추인받거나 아니면 범죄현장이었으니까.”

“그게 차이가 있는 건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법무팀에서는 차이를 느끼는지 상대의 촬영 동의를 받지 않은 영상을 아주 싫어하지.”

“명확한 범죄 영상이 아닌 이상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범죄 영상이라도 모자이크처리는 해야지? 초상권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럼 얼굴이 안 나오거나 하면?”

“그때부터는 좀 복잡해지는 거지. 그래서 SNN에서는 잠재적인 자료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 같아. 심판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포착된 것도 없고 말 그대로 소문뿐인 거니까. 친절하고 세금 낭비 안 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이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말 그대로 소문뿐인 존재 말이야.”

“그런데 NBS에서는 소문만 무성한 존재에 대해서 심층취재를 한다는 거고?”

“이슈 몰이용으로 나쁠 게 없으니까.”

“정치권하고 야합하게 되면 정말 끝모르게 추락하는구나···.”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서 거짓말 그러니깐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선거운동을 해도 정치인의 특수성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무죄 취지로 결정이 났잖아.”

“···.”

“일반 국민은 정말 있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말해도 상대의 명예가 훼손되면 명예훼손으로 유죄판결이 내려지는데. 물론 벌금 정도로 나오겠지만···그런데 정치인은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해도 무죄인 세상이 된 거지.”

“정치인은 벌금 나오면 당선무효가 되니까···로펌을 통째로 고용하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고액의 고문 자리를 약속하고 만들어낸 그 판결 말이야?”

“그런 거지. 일반인이라면 사실이라도 말하게 되면 벌금이고 정치인은 거짓말을 말해도 무죄인 세상···.”

“이런 세상이라면 심판자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서 여론 조사하면 심판자의 존재에 대해서 긍정 답변하고 부정 답변이 반반에 가까운데 나는 그런 여론조사조차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

“···?”

“그만큼 사법 정의가 무너져 내렸다는 말이니까.”

“사법 정의?”

“나쁜 짓을 하면 경찰이 잡아간다.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판사가 판결해 줄 것이다. 그런 믿음이 흔들린다는 거니까.”

“그럼 현진이 너는 심판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사적 보복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심판자에 대해서 좋은 여론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사법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사회가 말하는 거니까. 그런 세상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

“···.”

“우리가 외국에 멕시코나 남미 쪽은 치안이 어지럽다고 여행 갈 때 조심하라고 하잖아.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된다면···.”

“설마···.”

“규칙을 세우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야. 내가 언론사에 있으면서 직속 상관한테 찍히는 경우가 많아서 외국 특파원으로 대부분 나가 있었거든.”

“특파원이 안 좋은 자리야?”

“특파원이 파견되는 나라에 따라서 다르지. 내가 간 곳은 대부분이 못사는 나라였어.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 전쟁 시절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였고.”

“우리나라보다 잘살던 나라였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네?”

“그리스는 파산까지 했어. 유적지로 관광수입도 적지 않은 나라인데도 말이야.”

“···.”

“과도한 행정편의주의와 세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일자리가 없다고 공무원을 찍어내서 사회경기가 전체적으로 둔화시키고···그 영향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줄면서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물가는 급격하게 오르고···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공무원들 월급을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연금 때문에 못 주고 치안이 나빠지니까 경기는 악화되고 이런 악순환 속에서 뼈를 깎는 쇄신은커녕 차관 조건도 지키질 못해서 돈을 더 빌리지 못하니까 결국 망한 거지.”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잘살던 나라가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야. 그런데 외국에서 생활해보지 않는 이상 그걸 못 느끼는 거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그래. 잠깐 여행지로서 느끼는 나라가 살아가면서 세금도 내면서 그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살면서 느끼는 그 나라에 대한 감상이 틀린 것처럼.”

“잘못된 방향이라···.”

“내가 못사는 나라에 특파원으로 많이 가봤다고 했지? 거기에서 머물면서 불편한 건 하나뿐이야 쇼핑하는 것.”

“못사는 나라라면서?”

“못사는 나라일수록 일정이상 돈만 있으면 한국보다 더 편하고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어.”

“···?”

“한국에서보다 넓은 집 그리고 청소해주고 밥해주는 사람까지 사용인으로 둘 수 있지.”

“···.”

“그런데 쇼핑은 힘들어 왜인지 알아? 위험해서.”

“뭐?”

“돈이 좀 있다 싶으면 안전을 위협받거든 빈민들이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범죄자가 된 건 아니지 살기 위해서 범죄에 몸을 담게 되고 계속 악순환인 거지.”

“한국은 총기 사용도 금지고···.”

“말이 금지지 마약이나 총기도 이미 많이 들어왔어.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뿐이지.”

“우리나라가 이제 마약 청정국이 아니란 말이야?”

“안전하지.”

“그나마 다행이네.”

“내가 말하는 안전은 마약을 하는데 안전한 나라라는 거야.”

“뭐?”

“외국에서는 약을 하기 위해서 각종 위험에 거기에다 불법이라는 위험부담까지 있지만 한국은 아직 범죄조직이 돈만 제대로 받는다면 크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고 마약이 불법이라고 정의한 법률 해석도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마약을 접하는데 오히려 안전한 나라가 된 거라고.”

“믿기 힘든걸···.”

“기주한테 물어봐 실상이 어떤지 경찰 시점에서 말해줄 테니까.”

“기주는 순경이지 않아? 아버지 따라서 순경부터 시작한다고···.”

“경찰대 들어갈 실력인데도 순경부터 시작하겠다고 선택했으니까 대단한 아이야. 그리고 이제 경사잖아.”

“벌써?”

“기주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일선 순경으로 근무하기 시작했잖아. 너무 무심한 거 아니냐? 동생하고 대화는 자주 해?”

“경찰대학 가고 나서 연락을 자주 못 하기는 하지. 그리고 기주 이야기를 왜 동생이 나한테 하겠어?”

“허···하여간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것 같으면서 이런 부분은 맹한 건지 무심한 건지.”

“···?”

“주신이가 기주 좋다고 따라다니면서 말은 안 하지만 집안끼리 거의 약혼자 대접이잖아. 이번에 경대 졸업하고 전경 복무기간까지 끝내면···.”

“끝내면?”

“내가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동생한테 듣던지 어쨌든 기주가 여성청소년과에서 일했는데 청소년이라고 말하지만 어른보다 더 큰 애들이 이제는 담배를 안 하고 약을 한다잖아.”

“약을? 청소년이?”

내가 충격을 받았다는 듯 반문하자 현진이 한참 세상 물정 모른다는 잔소리를 하더니 급한 일이 생겼다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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