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심판자 2>
‘내 판단은···.’
“전문 CEO를 따로 붙일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내 말대로면 이대로 유통망을 전부 접수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텐데?”
“문제는 우리가 이게 돈이 된다는 걸 안다면 결국 천억을 제시한 쪽에서 우리를 통해 진입하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거라는 거지.”
“결국은 따라잡힌다는 건가?”
“선점했다는 걸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투자하고 전문인력을 투입해야 할 거야. 우리가 유통업에 제대로 뛰어들 거라면 모르겠지만···.”
“투자로서는 메리트가 적어진다는 거네?”
“아무래도.”
“음···.”
“자국 대기업이 자국의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게 되면 결국 1위 자리는 지키겠지만 시장 점유율은 일정 부분 나누게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성장 중반에 자본 논리로 우리와 경쟁 중인 2위 업체를 사서 밀어붙일 수도 있고···.”
“2위 업체라고 해도 거의 이름뿐이고 시장 점유율은 형편없잖아?”
“지금 상태에서 변화가 없다면 모르지만···대기업의 자본과 인력이면···.”
”경쟁업체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네?”
“그래. 그렇게 되더라도 수익은 충분히 날 수 있는 구조지만 지금처럼 독점적 지위는 아닐거야. 우리는 크게 봐야지.”
“그 정도 시간과 노력이면 더 나은 조건에서 투자할 수 있다는 거고···.”
“다만 온전히 업체를 넘기는 조건으로 진행했으면 하는데 회사 전부를 즉, 인력 감축 없이 인수하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쪽에서는 자신의 입맛대로 사람을 쓰고 싶어 하지 않을까?”
“최초나 다름없는 온라인 유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었어? 전부 지혜가 발굴해내고 시작한거지. 결국 대기업 입장에서도 오픈마켓에 대해 천억을 주든 이천억을 주든 전문인력은 가져다 쓸 수밖에 없을 거야. 다만 처음 시작할 때 지혜에게 약속했던 지분만큼 수익은 약속해야지.”
“처음 지혜 씨가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결국 우리 투자금이 아니었다면 시작할 수 없는 사업···.”
“안나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앞을 보자고 천억을 고스란히 우리가 꿀꺽한다고 해도 아무도 우리가 운용하는 투자회사에 법적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다른 투자대상을 발굴할 때 이런 우리의 이력이 과연 좋게 평가될까?”
“눈앞의 이익에 현혹된 머저리가 되지 말자는 거지?”
“그래. 천억은 작은 돈이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름에 흠집을 낼 정도의 돈도 아니야. 처음 회사를 시작했을 때 고생했던 이들에게 성과급과 지혜에게 지분을 약속한 만큼의 돈을 지급한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다른 투자대상을 찾더라도 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것도 한국의 비대면 유통망에 큰 자리를 차지한 친구를 말이야.”
“···지혜라는 친구한테···마음이라도 있는 건 아니고?”
“안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결코 손해를 나는 투자를 하자는 게 아니야. 단순히 나와 같은 동창이었다는 이유로 지혜에게 보장했던 이득을 나누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건 투자회사이지만 투자를 받아도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성공적일 수 있다는 이미지를 손도 안 쓰고 광고하는 게 되는 거라고···.”
“···.”
“회사를 구조 조정을 통해 다른 외국 기업에게 팔아 투자금과 수익을 남기는 그런 투자업체와 다르다?”
“그래.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로 가자고···서로가 칼끝을 겨누는 적이 아니라.”
“알겠어. 암호 화폐 거래소도 최초라는 타이틀은 뺏겼지만 결국 해킹에서 안전하는 모토로 대부분의 거래를 선점하고 있으니까···.”
“거기다가 돈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
“돈은 항상 부족해.”
“도대체 어디가?”
“네가 투자 배당금을 전부 돌려달라고 하면 회사가 휘청일 정도로?”
“내 배당금이 그 정도라고?”
“1억 달러가 넘어···.”
“투자금을 더 넣으면 넣었지 단번에 뺄 일은 없어.”
“방금도 투자금이 묶였다고 했잖아?”
“그거야···.”
‘금고가 갑자기 막힐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안나가 말했다.
“투자에서 확신은 없으니까. 신뢰가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 99%···1%의 여지는 둬야 한다고 말한 건 너야.”
“안나도 이제 지분을 많이 얻지 않았나?”
“그래도 대부분 투자금의 대부분을 통해서 늘어난 자본이니까. 네가 투자금과 배당금을 한순간에 흔든다면 회사가 위험할 정도라고.”
“···.”
대부분 투자에 관한 실무를 안나에게 맡겨두고 최종보고만 들어왔기 때문에 안나의 솔직한 반응에 놀라울 뿐이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초기 투자금은 그냥 버린다고 생각하고 한 건데···. 그 인연이 벌써 10년이 가까워간다.’
안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이번 오픈마켓 지분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혜 씨 지분은 우리가 결정할 게 아니니까.”
“그럼 우리가 가진 것만 다시 협상해보고 금액은 최대한···.”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떻게 인터넷상 거래가 이렇게 활발해질 거라고 예상한 거야?”
“쇼핑하는 것도 귀찮은데 눈으로 보고 고르면 집까지 배송해준다니 얼마나 좋아···.”
“이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 덕분에 성공한 건가?”
“뭐?”
“여성복 말고 남성복 위주로 하면 좋겠다고 담당자한테 전하면 사업이 더 활발해질 것 같다.”
안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잊기 전에 메모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럼 투자금은 미국 가기 전까지 줄 수는 있는 거야? 그런데 어디서 그렇게 현금이 불쑥불쑥 생기는 거야? 어디 가서 도박 같은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지?”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건 그렇지만···.”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안나의 반응에 나는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일은 없다는 걸 강조했다.
‘돈 때문에는 아니지만···범죄자를 쫓다가 부수입이 발생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느낀 건지 아니면 은영 누나였던 시절 범죄 피해에 대한 반응인지 안나는 범법행위라면 질색을 하고는 했다.
안나는 미국에서의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절세는 몰라도 탈세는 시도조차 한 적이 없었다.
‘안나가 이렇게 영향을 받았다면 은수는 괜찮은 걸까?’
당시에는 은수와 대화할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안나와의 이야기를 통해서 항상 듣는 은수의 동향을 생각하면 착하고 예쁜 동생으로만 보이지만 오늘 병원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고 미친 것 같은 사람을 상대로 침착하게 상담을 진행했다는 걸 보면 안나의 시선 밖에서 보는 은수는 또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안나의 말처럼 날개 없는 천사는 아닌 것 같은데···오히려···.’
은수를 만나지는 못했지만···자신이 기억하는 여자를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상담을 진행했다면 보통의 담력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붉은 원피스여서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분명 피 냄새였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피를 자주 접할 수밖에 없는 나는 붉은 원피스가 젖어있던 건 그 여자가 흘린 식은땀도 있지만 붉은 원피스를 더 붉게 물들인 피도 묻어있었다는 건 마주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흘린 건지 상대가 흘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상념이 깊어진 사이에 다시 도착한 호텔로 안나가 들어가고 난 집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면 높은 첨탑처럼 보이는 높은 마천루 사이로 나의 공간이 보인다.
‘집이라기보다는 업무 공간 느낌이지만···.’
속으로 쓰게 자조하면서 익숙하게 고속엘리베이터를 타자 순식간에 층수가 올라가더니 부유감과 함께 도착했다는 안내멘트가 들렸다.
‘이 느낌은 익숙해지지 않는군.’
대백공이 걸어준 술법과 내가 어떻게 섞인 건진 모르지만 대백공은 술법을 체화해서 내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줬었다.
‘그 덕분에 땅에서 멀어지면 뭔가 몸이 무거워진다는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고층건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한쪽에 모여있는 운동기구 때문이었다.
‘이렇게 지상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운동을 하게 되면 단련이 되는 느낌인데···지상에서 운동을 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으니···.’
지금도 내가 가진 운동능력 즉 술법을 통해 강해진 육체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제대로 사용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에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훈련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야 했다.
‘덕분에 나 혼자 이 넓은 공간을 사용하게 된 건가?’
넓고 전망도 좋은 집에 이사 가자는 내 제안은 어머니는 아찔한 높이에 어지럽다고 거절했고 동생은 학업 때문에 학교에서 가까운 이전 집 아니 본가에서 생활해야 했었다.
‘좋은 집 좋은 차만 타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넓은 집은 휑하기까지 할 정도였고 청소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아주머니만이 이곳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내가 사용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보기 좋은 집과 차를 몰고 다니면서 기분이 좋아졌던 것도 겨우 일주일 그 이후는 익숙하다 못해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운전기사라도 있으면 모를까 운전하는 것도 귀찮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운전기사 겸 비서로 뽑자니 행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게 비밀이 많은 사람의 삶인 건가?”
쓰게 웃으면서 창문을 바라본다. 거대한 도심지의 야경은 꼭 거대한 괴물의 비늘마다 빛이 나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창가에서 멀어져 어머니가 어지럽다고 말하던 야경이 보이는 거실의 한 편에서 진한 커피를 내리면서 생각한다.
‘금고를 사용하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지 않으려면 방송에 압박을 좀 넣어야 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