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불확실성 6>
“회귀를 했던 나조차···.”
“회귀를 했다고 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대오각성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 가지는 오욕칠정 안에서 고뇌하고 선택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네. 그리고 회귀가 만능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회귀가 만능이 아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건 정상적인 생명체의 반응이네. 그렇지만 두렵다는 이유로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한다면 그 생명체는 도태되고 결국 생명체의 피라미드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지.”
“생명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건가요?”
“두렵다고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일세.”
“자네가 아끼는 김 씨라는 자네의 지인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회귀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라네.”
”그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라고요?”
“하늘에서 짓는 그물은 성긴 것 같아도 촘촘해서 벗어날 수 없지.”
“···?”
“김씨가 죽인 어르신이라는 자는 저주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자라네.”
“저주의 화신이요?”
“이 땅이 만들어낸 저주이니 이 땅이 받아야 하는 저주이기도 한 것이지.”
“네?”
“저주의 화신이 된 이도 참 슬픈 운명을 타고나서 힘겹게 살았던 자라네.”
“···?”
“자네로서는 생소하겠지만 전쟁으로 황폐한 곳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네.”
대백공의 말과 함께 나는 한순간 어디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생소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 사이로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기와집 담벼락이 있는 외진 곳이었다.
넘어진 어린 남자아이로 보이는 아이의 뒤로 창고 문이 활짝 열린 상태였다. 열린 문 사이로 사나운 사냥개 특유의 카랑카랑한 짓는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누구도 찾지 않는 그늘진 장소였다.
컹컹―.
“춘삼이가 며칠 밥도 안 주고 묶어놓고 때리기만 했다고 하더라.”
창고 문 안에서 들려오는 거친 사냥개의 울음소리가 배경처럼 들려왔다.
넘어져 있는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이가 이들의 대장인 듯 크게 외치자 그 뒤에서 얼굴이 새까맣게 탄 키가 큰 아이가 허리를 구부정하고 숙이고 그저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서 있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사냥 대회 준비 때문에 공격성을 높이는 거라고 하던데···.”
무리의 대장처럼 보이는 하얀 얼굴에 볼살이 올라온 귀여운 아이가 귀여운 얼굴과 다른 무서운 말을 장난스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흉악했다.
“그전에 야들야들한 고기 맛 좀 봐야지 저놈도 내일 사냥에서 열일 하지 않겠냐?”
넘어져 있던 아이는 하얀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질린 표정이 되어서 큰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몸이 떨리고 있어서 그런지 큰 소리가 아닌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의 소리가 허망하게 허공으로 퍼졌다.
“나···나도 여기 천씨 가문 아들이야. 나한테 이러고도 너희가 혼나지 않을 것 같아?”
“뭐 너 같은 놈이 좀 다친다고 아버지가 신경이라도 쓸 것 같아?”
“어···어머니는···.”
“흥.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우는 것 밖에 없는 너희 어미가 네 상태에 대해서 입이라도 벙긋할 수 있을 것 같아?”
“순철아 당장 춘삼이가 매질한 놈 중에 가장 덩치 큰 놈으로 하나 데려와.”
“너희는 반쪽짜리 주제에 자기가 잘난 줄 아는 놈 꽉 잡고 있고.”
“악···놔···노라고···.”
커커―컹―.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으르렁거리는 덩치 큰 사냥개들이 창고에 줄지어 묶여 있는 모습에 아이들은 바짝 긴장했지만 그런 아이들의 머리를 자처하는 아이는 그 모습에 어깨를 펴면서 더 크게 외쳤다.
“시끄럽게 짖는 놈 말고 으르렁거리는 놈으로 데려와.”
까만 털은 뻣뻣하고 주둥이 주변은 으르렁거리느라 날카로운 송곳니가 다 보이는 사냥개가 순철이라는 아이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아니···순철이라는 아이가 끌려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목줄을 잡고 있어야 하는 아이는 겁을 잔뜩 먹어서 목줄을 놓쳤다.
그 순간.
으직―.
“아악!!”
어린 남자아이의 비명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기괴한 소리와 함께 어른들이 뒤늦게 뛰어왔지만 아이는 더 이상 사내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사냥개에게 물리고 실신한 뒤였다.
“으···.”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앳된 여성이 아이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고 있지만 동시에 혼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아이와 어미의 얼굴을 보면서 가주라고 불린 남자가 들어와서 냉정하게 말했다.
“가문을 이어받기 힘들겠군. 자네도 이런 불량품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후사를 보려면 울지만 말고 더 노력해야 할 거야.”
냉정한 말을 내뱉고 가주가 나가고 난 이후 바로 가주의 직속 심복이나 다름없는 노복이 들어와 조심스럽지만 나직하게 일본어로 말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기 때문에 가주의 심복이 된 자였다.
“주인어른께서 창씨개명까지 한 이후로 유키코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있으니 작은 도련님 상태는 아쉽지만···.”
그런 노복의 충심 어린 말을 들으면서도 아이의 어머니는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다음날.
노복이 들어선 방안에는 대들보에 목을 맨 아이의 어머니가 신고 있던 하얀 버선이 허공에서 흔들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오래된 필름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의 공포나 절망감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나는 오랜 시간 숨을 멈춘 것처럼 호흡곤란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대백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무것도 없이 안개만 낀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허억···.”
“이런 끔찍한 사건을 왜···.”
“이게 김씨가 죽인 어르신이라는 자의 어린 시절이네.”
“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잃고 버려야 했지. 그러면서도 삶을 버리지 않았어. 버티는 원동력은 원망과 복수심···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저주로 승화된 것이지.”
“··이건···.”
“물론 그 아이가 당한 일에 대한 복수는 온당한 것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하늘도 인정할걸세. 하지만 그 아이는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자신에게 피해를 준 아이를 자라게 한 이 나라와 이 땅까지 원망하고 복수하고 싶어 했지. 그조차도 온당한 부분까지는 하늘의 그물에 걸릴 이유가 없지만 그를 넘어서면 성긴 그물이 목을 죄어오는 것이지.”
“그물 역할이 김 씨 아저씨였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그럼 김 씨 아저씨는···.”
“그런 삶은 많이 보지 않았나?”
“네?”
“보이지 않는 영웅 사회를 지키는 버팀목.”
“···?”
“좋게 표현했을 때 그런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삶을 빼앗긴 인간.”
“삶을 빼앗겼다고요?”
“앞에서 인간의 선택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했지? 인간 개개인의 시야에서 판단하고 선택하기 때문이지.”
“···?”
“그런 인간의 시야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
“내가 오랜 시간 지켜본 바로는 인간의 주변의 환경이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지.”
“그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그 환경의 영향으로 자신이 경험해 본 경험칙에 의해서 판단하고 사고하고 선택을 하지. 그럼 경험칙들이 오염되거나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걸 감안하지 못하는 거야.”
“경험칙이라면···.”
“쉽게 말하자면 편견일세.”
“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이 있지. 이 속담은 어떻게 생겼을까?”
“여자가 기승하여 떠들고 간섭하다가 집안 꼴이 말이 아닌 집을 보면서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다가 생긴 속담이겠지. 하지만 이게 진실이냐고 묻는다면···속담에서 나오는 상황의 집도 있지만···오히려 여자가 기승해서 잘된 집도 있고···남자가 집안을 풍비박산 낸 집도 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경험담은 한정되어 있는데 살면서 겪는 모든 풍파가 전부 동일한 조건의 동일한 사건을 겪었던 일일 수 없는데···그걸 감안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만이 진실이라고 보기 때문에 편견이 무서운 것이지.”
“김 씨 아저씨가 편견에 빠져 있었다는 건가요?”
“편견에 사로잡힌 조직에서 살던 사람이 그 혼자만 스스로 온존할 수 있을까?”
“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뜬 자가 매도당하고 눈뜬 자도 눈먼 자처럼 행동하게 되는 법이지. 그러다가 진짜 눈을 떠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면 그대로 눈을 감는 게 익숙해지고 그런 삶에 순응하게 되는 법이지.”
“하지만···김 씨 아저씨는···.”
“그럼에도 신념이 있는 자들이 있는 법이지.”
“신념···.”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도 자신이 손쓸 길이 없다면 스스로에게만이라도 기준을 세우고 지키려고 하는 자들···.”
“···.”
”손에 피를 묻힌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것이겠지.”
“···.”
“인간은 합리적인 인간에 대해서 꿈꾸지만···결코 합리적이지 못하지. 신을 동경하지만 신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일세. 하지만 그런 존재들 사이에서도 질서가 유지되는 건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이들이 이 땅에 묻혀있기 때문이라고 본다네.”
“···.”
“김 씨처럼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들 말일세.”
“···몰랐어요.”
“몰랐다고?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는 것이지. 그저 사회가 유지가 되니까. 내일이 아니니까.”
“···.”
“만약 김 씨에 대해서 자네가 이전 삶처럼 접점이 없었다면 자네는 김씨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걸 알고 가슴 아파할 수 있을까?”
“저는···.”
“불확실성 때문에 인간이 회귀를 바란다고 했지? 회귀를 통해 미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면···자네는 회귀를 하지 못했을 거라네.”
“···!”
“순리가 어긋나고 흐름이 어그러질 테니까 말일세.”
“그 말씀은···.”
“나와 자네가 계약을 통해서 회귀를 경험한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세계의 흐름에 문제를 일으킬 만큼은 아니라는 걸세. 물론 회귀가 온당한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가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그건 회귀가 아니라도 당연한 것이니까.”
“회귀를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전부 다 파악할 수는 없다···라는 건가요?”
“회귀를 하게 되면 자네는 자네가 했던 선택에 대한 결과에 대한 정보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
“···.”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선택 외의 결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고.”
“그건···.”
“그래서 회귀를 해도 물론 대단한 특권이기는 하지만 회귀를 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거군요.”
“저번 삶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구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인연도 생겼지.”
종혁이와 경수 그리고 현진이···심지여 이전 삶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고 가라앉았다.
“김 씨에 대한 자네의 상실감. 이전 삶에서는 몰랐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약이 된 것이고 지금은···.”
“그래서 김 씨 아저씨는 저와 가까워지기보다는 한 발자국 멀리서 지켜본 걸까요?”
김 씨 아저씨는 운산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사무적으로 나를 대하고는 했다. 내가 그의 기억과 과거에 대한 걸 술법을 통해서 보지 못했다면 나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나에게 재민이 사건의 위험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가족을 생각하라고 했던 김 씨 아저씨의 조언도···.’
“그럼 김 씨 아저씨가 일부러 저와 그리고 위험한 사건에서 거리를 두게 만들려고 했다는 건가요?”
“이미 죽은 사람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