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작지만···작아서 더 소중한 행복 Ⅱ 1>'
“너 괜찮아?”
“여긴 웬일이야?"
"네가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좀비 행세한다고 해서 왔지.”
“뭐?”
“너네 어머니가 너 걱정된다고 불렀다고.”
“아······.”
하루 이틀도 아닌 일주일이 넘게 방에서 나오지 않자 어머니가 걱정돼서 내 친구들을 부른 것 같았다.
“짠. 종혁이도 왔지.”
“아니 넌 한국에 언제 온 거야?”
“엄마가 한국 피해자지원재단에 일이 있어서 들어온다길래 같이 왔지.”
나는 먼 길도 마다않고 와준 친구들의 면면을 보면서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누르기 위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종혁이 오랜만에 왔는데 너 방에만 있을 거야? 학원가 오락실에 새로운 게임 들어왔다던데 한번 다 같이 가보자.”
내 무던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들끼리 시끄럽게 결정하더니 내 등을 밀면서 재촉했다. 그런 우리 모습을 웃으면서 배웅하는 어머니는 내 손에 용돈을 쥐여주면서 맛있는 거 사 먹고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친구들의 부산스러움과 내 손에 쥐여진 용돈을 내려다보면서 대백공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자네는 불확실성이 싫고 버리고 싶고 없어졌으면 좋겠나?”
“아무래도 불안하고···.”
“그렇다면 인간 세상의 피라미드가 그대로 변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시간의 흐름만 흐를 텐데?”
“네?”
“인간사회는 계층이 형성되어 있지. 왜 같은 종끼리 분류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철저하게 아니면 느슨하게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다면 그런 계층별 이동이 가능할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배경이 될 수도 있다네.”
“···.”
“즉, 미래라는 것이 불확정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모두에게 공평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향상될 수도 후퇴할 수도 있는 것이라네.”
“···.”
“자신의 선택으로 뒷걸음칠까 두려워하지.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으로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네.”
“···.”
“미래는 두려울 수 있다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동시에 기회도 돼지.”
“그렇다는 건···.”
“다만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이 옳든 그르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
“저는···.”
“어린 친구 자네가 이제까지 했던 선택이 모두 그르다고 할 참인가?”
“···.”
“회귀 후 했던 모든 행동에 후회를 하나?”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한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김 씨 아저씨는···.”
“모든 선택이 자네가 원하는 결과로만 나올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용사조차 자신의 파티원을 전부 지켜주지는 못한다네.”
“···.”
“자신의 선택을 실수이든 올바르다고 생각하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게 자신임을 아는 것. 나는 그게 인간이 삶을 사는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네.”
“네?”
“만약에 정말 모든 선택에 정답이 있어서 모든 일을 선택한다고 한다면 AI와 인간이 다른 게 무엇일까?”
“감정이···.”
“발달하는 기술 덕분에 AI는 프로그램으로 학습하고 흉내 낼 수 있는 부분이지.”
“···.”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받아들이고 그게 자신임을 인정하고 그런 부족한 모습이라도 스스로 자기애를 가지는 것.”
“···?”
“심장 약을 개발하다가 비아그라를 발견한 것처럼 인간의 실수 또한 하나의 선택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되네.”
“실수도 선택이다···.”
“그걸 후회하고 돌리고 싶다면요?”
“인생을 두 번 사는 자네조차 다시 선택하길 원하는데 모든 이들이 그런 돌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한다면 이 세상이 온존하겠나?”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불가능하다기보다는 의미가 없는 것이지.”
“왜 의미가 없다는 거죠?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허허···재미있구만···자네는 내가 완벽해 보이나?”
나는 대백공의 말에 담긴 의미보다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놀란 상태였다.
“완벽하다라···인간은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단어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참 모순적인 존재야. 흥미로워.”
“그 말씀은···.”
“완벽이라···. 인간은 이미 태생이 세상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완벽이라···.”
“태생이 세상에 악영향을 미친다고요?”
“인간은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헤쳐야 하는 존재지.”
“그건···다른 동물들도 생태계의 흐름에 따라서···.”
“생태계의 흐름에 따라서 사는 존재들이지. 하지만 인간이 그런 생태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존재인가?”
“···.”
“어린 친구라면 알 텐데···타락자가 깨어나고 세상이 멸망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서 생태계가 교란되고 결국 가뭄과 호우로 인한 피해를 입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고 꺼지지 않는 산불과 주먹만 한 우박으로 인해 세상이 인간을 배척하게 되는 상황을 말이야.”
“그게 전부···.”
“인간이 생태계의 흐름이 아닌 종이 조각과 숫자에 홀려서 생긴 일이지.”
“종이 조각과 숫자요?”
“돈과 발전율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숫자에 연연하면서 눈을 감으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본다네.”
“눈을 감는다고요?”
“석유가 생성되는 기간을 얼마라고 보나? 그 석유의 양이 얼마인지 가늠하고 있고 석유가 만들어지는데 오랜 시간만이 답이라는 걸 인간은 이미 알고 있다네. 하지만 그런 자원을 효율적으로 생산해서 사용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원을 무기로 활용하기 까지 하지.”
“아···.”
“그저 일례일 뿐이네. 이익에 눈이 멀어서 멸망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야.”
“···.”
“세계 각국의 정상과 부유한 국가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모를까? 아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보다 더 내밀하게 알고 있겠지. 하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서 미래를 위해서 아니 멸망을 늦추기 위해서 나서는 이들이 없다네.”
“···.”
“일반인이 봤을 때의 각국 정상은 완벽하고 항상 옳은 선택만 할 것 같지만 과연 그들이 그럴까? 큰 권한을 가지고 그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해서 어린 친구 자네처럼 스스로 자괴감을 가지고 자기 파괴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힐까?”
“···.”
“아니···오히려 자기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임기했던 기간 동안 해왔던 행동의 결과인 통계를 일일이 손봐서 아름답게 치장하려고 하겠지. 실제로 그게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이 세계의 흐름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보이기에 좋아 보이게끔 말일세.”
“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자네가 회귀를 하기 전의 대통령도 자신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서 사정기관을 엉망진창으로 망가트리지 않았나?”
“···.”
“사정기관이 망가지면 범죄자들만 좋아지는 것이지. 물론 사정기관이 높은 권한 만큼 높은 도덕률을 지키지 못한 잘못은 책임자 처벌을 통해서 변화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기관을 망가트려서 범죄율을 높이고 자신의 잘못을 덮는데 사용한다는 발상은 다시 돌아봐도 멋진 한방이었지.”
“···.”
“막장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로 말일세.”
“그건···.”
“그렇듯 높은 자리에 있는 완벽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택이 잘못되었어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그건 대의에 의한 선택이라고 포장한다네. 나는 자네가 자신의 선택을 억지로 포장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다만 그런 선택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를 긍정하기를 바랄 뿐이지.”
“···?”
“어린 친구···자네는 회귀 전 삶을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날선 기준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네.”
“제가요?”
“인생의 주인공···인간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본다네. 자신이 주인공이라면 그런 중요한 배역의 자신에게 스스로 애정 할 수 있는 틈을 주게나. 김 씨의 일은 안타깝지만···김 씨의 희생이 아니었다면···이 땅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움···.”
“설마···김 씨 아저씨가 이런 선택을 할 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요?”
“···.”
“알고 있었냐고!!!”
나의 상념은 종혁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깨졌다.
“너 괜찮은 거야? 몸 상태 안 좋으면 집으로 다시 갈래?”
“식은땀 장난 아닌데?”
“병원도 안 가고 집에서 일주일째 누워만 있었으니까. 걷기 힘든 거 아니야? 내가 부축해줄까?”
차례로 종혁이 경수 현진이의 말에 나는 식은땀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아니···괜찮아. 네 말대로 집에 너무 오래 있었나 봐.”
“그런데 집에만 박혀있고 너 그런 성격 아니잖아?”
“내가?”
“그래. 공부하러 도서관 아니면 공원 가서 간단하게 운동하던 녀석이 일주일이나 집 그것도 자기 방에서 꼼짝 안 하니까 아주머니가 놀라서 연락하지.”
“맞아 도서관에서 안 보이길래 난 운동에 꽂혔나 했지.”
“하루도 뭔갈 열심히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지내더니···.”
“아···번 아웃 증상인가?”
“번 아웃?”
“너무 짧은 시간에 몰아쳐서 지친 거지.”
“주인이가 지친다니 상상이 잘 안 가기는 하는데.”
“이 녀석도 사람이었던 거지.”
“그런가?”
“앗. 오락실에 사람 장난 아닌데?”
“방학 기간에 새로운 기계 설치한다고 광고지를 학교 앞에서 그렇게 돌리더니 완전 주변에 있는 학교 학생은 전부 온 것 같네.”
“기다려야 하나···.”
“학원 수업시간 되면 싹 사라질걸? 그 사이에 우리는 햄버거 가게나 가자고.”
“무슨 너는 매일 햄버거 가게냐? 유학 가면 한국 음식 그립다고 하던데···.”
“음? 거기는 여기서 파는 햄버거하고 비교가 안돼 훨씬 크다고 그러니까 한국 햄버거를 먹어야지.”
“무슨 헛소리야 그건?”
“햄버거는 진리라는 말이지.”
“종혁이한테 메뉴선택권 따위 주지 말라고···.”
투닥거리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차가워졌던 심장에 따뜻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