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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25화 (125/205)

<125화 철든 아이들 2>

“연락 없이 찾아온 건 실례겠지만···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재민 학생이 이지훈 아버님이 요즘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고···이건 피해자지원재단 연락처에요.”

“재민이···.”

“이지훈 정말 용감하고 멋진 친구라고···그리고 정말 죄송하다고···.”

“나는···.”

“···.”

“나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네?”

“아들이 가장 나를 필요할 때 이 나라에 없었던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이 너무 밉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죠. 당연한 거예요.”

“전부 고소해서 감옥에 보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재민이···.”

“···?”

“지훈이가 재민이라는 친구를 좋아했어요. 보육원 출신인데도 밝고 자기가 하고 싶은 꿈도 확실하고···그런데 힘들어하니까. 자기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난다고 저한테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

“그런데 전 ‘친구라면 도와줘’라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는 회의중이라고 전화를 끊었어요. 전···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제 아들은 죽었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데 제가 소송을 생각하면 재민이라는 친구가 가장 먼저 다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큰 돈을 주면서 조용히 넘어가라고요.”

“···.”

“웃긴 건 뭔지 아십니까? 억울하고 화가 나는데 그래도 내 아들이 좋아한다는 친구에게 나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정말 어이없는 감정이었습니다.”

“그건 마음이 따뜻했던 이지훈 학생의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듯 주저앉는 이정만 아저씨의 모습에서 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이밀 때마다 보이던 어머니의 아픈 표정이 이정만 아저씨의 무너진 어깨와 다를 게 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을 꺼낸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어도 누군가 어머니를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나의 선의는 이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지훈이 아버지.”

말을 걸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애타게 바라보는 이정만 아저씨의 얼굴에 나는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다.

“우리 지훈이를 아니?”

“네. 재민이가 말해줬어요. 정말 멋진 친구라고요. 재민이는 이번에 초등학생 그러니까 기주 납치 때 도와줘서 친해진 친구예요.”

“정···정말···재민이가 아이를 구하는데···도움이 된 거냐?”

이정만 아저씨는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잡으면서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럼요. 재민이 아니었으면 기주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을 거예요.”

‘처음 기주 납치 때 재민이를 통해서 기주 위치를 알아낸 건 거짓말이 아니니까.’

이정만 아저씨는 손을 들어 눈을 덮고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가장 귀할 걸 잃어버렸지만 손안에 아무것도 없는 가치 없이 잃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된 떨림으로 느껴졌다.

“난···.”

“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고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꼭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

“미워하고 사랑하고 또 미워하고 드라마에서 그러잖아요.”

“그건 드라마잖아.”

어머니가 심상치 않은 듯한 이정만 씨의 모습에 목소리를 죽이고 있다가 내가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자 입을 열어서 의아하다는 표시를 했다.

“드라마도 세상의 한 부분이잖아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미워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죠. 상태가 나한테 밉게 행동했으면 미워하고 화나고 울고 싶고 그런 건 당연하잖아요. 너무 참는 것도 병날 수 있어요.”

“내가···. 어른인 내가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미워하면···.”

“잘못에 어른, 아이가 어디 있어요. 잘못했으면 잘못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고 나이가 어리다면 더 크게 혼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리면 오히려 계도 해야 한다고 처벌이 약하지 않니?”

“전 반대로 살아갈 날이 더 기니까 처음에 잘못은 저지르면 안 된다고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지훈이 아버지 미워하고 싶으면 마음껏 미워하고 화내고 그러세요. 아저씨 아들 친구라는 것도 그리고 아직 어리다는 것도 아저씨가 미워할 이유에 비하면 너무 작은 것일 뿐이잖아요.”

“넌···.”

“전 재민이 친구예요. 그래도 재민이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처벌받는 것에 화를 내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재민이 친구라서 알아요. 재민이가 아저씨가 생각하는 그런 처벌을 받을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게 무슨···.”

“아저씨는 재민이가 지훈이가 죽은 사고와 관련 있다고 생각해서 참고 계신 거잖아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는 이정만 씨의 모습에서 나는 재민이의 기억 속에 있던 이지훈이라는 친구를 찾는다.

친구를 위해서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끼어든 이지훈.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정당한 처벌마저도 아들 친구에게 위협이 될까 봐 주저한 아버지.

이런 사람들이 참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

‘좋은 사람이 빨리 죽는 사회는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아픔을 이겨내려면 가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온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에게만 용서와 감내를 요구하는 건 너무 부당하잖아요.”

“내가···.”

“···.”

“내가 지훈이에 대한 사건 관련자들의 처벌을 요청할 자격이 있을까?”

“아저씨가 아니라면 누가 하겠어요.”

“난···아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옆에 없었어···.”

이정만 아저씨의 말에 어머니가 고심 어린 말을 꺼냈다.

“가장 필요할 때 옆에 없는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예요. 저도 항상 아이들 옆에 있고 싶지만 삶이 그걸 어렵게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정만 아저씨를 보면서 말하던 어머니의 시선은 이곳의 상황과 맞지 않을 만큼 밝고 푸른 하늘을 향해 있었다.

“아이들이 최우선인데 아이들 옆에 있지 못하다니 참 우습죠?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가 그래요. 그건 이정만 씨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난···.”

“전 아이들 옆에 계속 있어주지 못하지만···아이들이 올바르게 크고 있다고 믿어요. 왜냐면 주인이하고 주신이는 제 아이들이니까. 가장 믿고···이런말하면 부끄럽지만 가장 의지하고 있어요.”

“···.”

멍하게 말을 하는 어머니를 보는 이정만 아저씨를 보면서 어머니가 슬픈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지훈이라는 친구도 아버지가 자길 믿어줬다고 생각했으니까. 부당한 일에 용감하게 앞장서서 나선 게 아닐까요?”

“···.”

“부모는 항상 자식의 옆에 있을 수는 없어요. 물론 그런 훌륭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믿자 아이들은 제 믿음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커왔어요. 정말 감사하고 고맙죠.”

“···.”

“이정만 씨가 지훈이라는 아이를 믿었고 그 아이가 훌륭하게 컸다면···그런데도 이런 불행한 사건과 마주했다면 그건 이정만 씨의 잘못이 아닌 다른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불행한 일을 만들어낸 문제라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제를 양성하지 않을까요?”

“나는···.”

“비록 저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지훈이는 정말 좋은 친구라고 들었어요. 아저씨는 지훈이를 그렇게 만든 아이들을 전부 용서하신 건가요?”

“나는···.”

“법 없이도 사실 분이라는 거 짐작이 가요. 속으로만 쌓아두지 말고 그냥 지금 마음이 아프다고 그리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말해도 돼요. 자녀가 비명에 갔는데 사고였단 말 한마디로 묻어두면 아저씨는 괜찮나요?”

‘마음이 아픈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이 쌓여서 타락자가 될지도 몰라요.’

나는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음울하게 흐르는 이정만 씨의 흐름을 정의의 저울을 통해서 보고 있었다.

“내가 지훈이를 이렇게 어이없이 떠나보내면서 힘든 것만큼 내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어쩌면 누군가 내 등을 떠밀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

“지훈이에게 항상 말했거든. 다른 사람에게 받고 싶은 대우만큼 남에게 대해야 한다고 나는 내가 지훈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아직 어린 지훈이하고 같은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

“···.”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지훈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훈이 아버지라는 나라는 사람···나쁜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내 고집이었을 뿐인 것 같구나. 그래···난 원망하고 있었다. 지훈이를 그렇게 만들었을 때 있었던 모든 아이들에게···.”

“···.”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겠지···. 미련하게도···.”

“미련한 게 아니에요. 지훈이처럼 이정만 아저씨도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요.”

“나는···그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참 이기적이지만 그저 내가 아들을 잊지 않고 그 사고로 많이 힘들다는 걸···알리고 싶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당연한 권리에요.”

“···.”

“앞에서 크게 외치는 사람, 윽박지르는 사람,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사람들 때문에 원하지 않는 결정을 하고도 그걸 자신이 원하는지 아닌지 모를 때가 있어요.”

“···.”

“결국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에 주위의 의견에 휩쓸려서 결정을 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자신이 받아야 해요.”

“···.”

“그 선택의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 건 자신이 그 결과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거예요.”

“···.”

“그렇다면···최소한 선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선택을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

‘합의했잖아···.’

‘아들 죽고 아버지가 한탕 하려나 보네···.’

이정만 아저씨의 기억 속에서 외치던 생생한 목소리들 전부 남의 말이었다.

그 어디에도 아저씨가 하고 싶었던 소리는 없었다.

“누구도 지훈이를 잃은 이정만 아저씨 대신에 그 고통을 감내해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최소한 선택은 후회 없이 했으면 해요.”

나의 말에 아무 말 없이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정만 아저씨의 모습에서 아저씨가 선택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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