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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24화 (124/205)

<124화 철든 아이들>

대백공과의 유쾌하지 못했던 대화에 머리를 짚으면서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자 아침부터 온 면회자에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너 어떻게 여기에···.”

“병원에 또 입원했다고 해서 왔지.”

“거리도 먼데···.”

“방학이라서 온 거야. 거기다가 태연 형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재활까지 하고 오는 건 아니었어?”

“재활과정이 좋아서 빨리 들어오게 됐다고 연락 왔거든.”

“다행이네.”

송태연의 치료를 위해서는 고가의 의료기구 설치가 필요했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에 외삼촌의 판단으로 아는 미국에서 재활로 유명한 곳으로 보냈다고 들었다.

“재활 못해도 1년은 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태연 형이 우리 보육원에서 알아주는 독종이었다고. 이 정도야. 기회만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낼 사람이야.”

독종이라고 말하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재민이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그래도 경과가 좋아서 빨리 한국 온다니 좋네. 그런데 미국에서 생활하면 그곳에서 지원한다고 재단에서 언급 안 한 건가?”

“재단에서 좋은 조건으로 일자리도 알아봐 준다고 했는데 그래도 형은 한국으로 오고 싶다고 했나 봐. 형이 오는 편이 나도 좋고.”

“···?”

“저번에도 말했지만···이왕이면 태연 형하고 같이 하고 싶으니까···정비소.”

“태연 형도 너처럼 정비기술 배운데?”

“그건 아니고 오토바이 쪽에 관심 많으니까. 정비소하고 오토바이 상점하고 같이 붙어서 하는 거지.”

“어지간히 좋아하네. 그 태연 형이라는 사람.”

“저번부터 생각했는데 넌 왜 그렇게 태연 형 챙겨주면서도 말을 막하는 거야?”

“그거야···.”

“그거야?”

“내가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뭐 사 온 건 없어?”

“너 아픈 거 맞냐?”

“보여줘? 나 칼 맞았어.”

‘아 거의 나아서 보여줄 게 없나?’

빠르게 낫게 할 수도 있지만 너무 빠른 회복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자제하고 답답한 병실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툴툴거리면서 나에게 넘기는 음료수를 받아서 마시면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말해. 언제 외삼촌이 쳐들어와서 절대안정을 외치면서 쫓아낼지 모른다?”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면회 온 사람들을 쫓아내? 왜?”

“나도 물어보고 싶다.”

“태연 형말 들어보니까. 네가 재단에 아는 사람 있는 것 같다고···”

“뭐···그렇지?”

‘재단 설립자 중 한 명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지훈이 아버지···.”

“지훈이? 설마 이지훈?”

“응···.”

“지훈이 아버지 뵙고 왔는데···. 많이 안 좋은 상태인 것 같아. 나한테 말씀은 안 하는데···. 난···”

“네가 사과하러 갈 때마다 자리 피했다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만나서 사과한 거야?”

“그게···. 내가 누군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 같아. 이번에 회사가 힘들어지면서 명예퇴직도 당하신 것 같아서···.”

“뭐? 외국어도 3개국어나 하고 회사에서 알아주는 능력자라고 네가 나한테 말했잖아?”

“나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상대도 안 해줄 것 같고 염치없지만···재단에 도움 요청하고 싶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 지훈이 아버지 성함이···?”

“이정만 아저씨야.”

“그래. 이정만 아저씨. 그 아저씨가 도움을 받을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으니까.”

“아···.”

“그래도 우선 바로 연락해 둘게.”

“다행이다. 어디 가서 이야기할 때도 없고 걱정만 하고 있었거든.”

“그런 일 있으면 엄한 곳에 가서 이상하게 일벌이지 말고 바로바로 오라고.”

“정말···정말···고마워.”

“갑자기 나를 닭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데? 야, 꺼져 소름 돋은 거 보이냐?”

“이 자식이 고맙다는데 왜 그딴 식으로”

나한테 딱 붙어서 장난스럽게 손을 휘두르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재민의 모습에 장난스럽게 웃던 나도 딱 굳어버렸다.

“아픈 사람이 있는 병실에서 이게 도대체···.”

나는 외삼촌의 음산한 목소리에 돌이 되어버린 몸을 삐거덕 움직여서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 누워있었던 것처럼 누워버리고 애처로운 재민이의 눈빛을 외면했다.

‘미안하다. 재민아···그 대신에 이정만 아저씨일 빨리 처리해주면 되잖아. 암···그러면 될 거야.’

재민이가 당혹성 담긴 인사말과 함께 병실에서 뛰쳐나가는 소리와 그 모습에 더 언성이 높아진 외삼촌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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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의 성화에 밀려서 입원을 하기는 했지만 상세가 좋았기 때문에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

‘후···. 드디어 병원에서 벗어났다.’

병원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건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주인아 진짜 햄버거 먹어도 되겠어?”

“정말 먹고 싶었다고요. 오랜만에 집밥도 좋지만···오늘은 들릴 곳이 있으니까. 간단하게 먹고 들어가요.”

“그래···.”

어머니는 내가 패스트푸드를 먹는 게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내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하는 말에 져주시고는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여기까지 태워다 주면 돼?”

“네 잠깐 만나서 이 서류철만 넘기고 오려고요.”

“무슨 일인데?”

“친구 부탁이에요. 재민이 알죠? 그 친구가 아는 아저씨인데 이번에 실직하고 힘들어하신다고 해서 잠깐 살펴보고 오려는 거예요. 피해자지원재단 통해서 어떻게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해서요."

“그래? 아무래도 불안한데 엄마하고 같이 갈까?”

이미 어머니 키는 넘어섰지만 어머니 눈에는 항상 어려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극구 거부하기보다는 긍정하고 어머니하고 같이 이정만 씨 집으로 향했다. 단독주택으로 보이는 집 앞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물론 봉투에 제대로 담아서 둔 거지만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외환위기 때문에 힘든 회사가 많았지···명예퇴직도 남의 일이 아니었고.’

퇴직한다는 사실보다 회사에서 필요한 인원과 불필요한 인원을 구분해서 순번표를 뽑아서 나가게 했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픈 게 아닐까?

‘자신이 이 회사에 불필요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은 채 내보낸 거니까···.’

나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어서 차로 돌아가려는데 어머니가 내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집에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혹시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으니까. 신고라도 할까?”

나는 못 봤는데 어머니가 창문 틈으로 사람 그림자를 봤는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나는 잠깐 고심하다가 이대로 집에 가면 계속 마음에 남을 것 같아서 대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끼익.

‘안 잠겼어?’

“실례합니다. 혹시 위급한 상황일까 봐 들어가는 겁니다. 자택에 들어가는 게 불편하시면 대답해주세요.”

내가 크게 소리쳤는데도 대답 없는 집안은 적막하기까지 했다.

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밀고 현관문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이런 일 일수록 시간만 끌면 좋을 게 없지.’

철커덩.

‘현관문은 잠겨 있나?’

내가 현관문에 막혀서 문을 흔드는 사이에 어머니가 창문 사이로 사람 그림자가 보였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는지 어머니 목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렸다.

“이정만 씨 계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피해자지원재단에서 나온 사람이에요. 이번에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사에서 명예퇴직으로 나오셨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어요. 계속 전화했는데 연락을 안 받으셔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소음과 함께 조심스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절망에 빠진 시선과 마주하자 나는 익숙해지지 않는 이명과 함께 깊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깊고···

깊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여기는 어디일까?

사방이 막혀있다.

답답하다.

아니 막막하다.

한 조각의 빛이 없어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빛을 잃어버렸다.

“아빠. 이번 출장은 어디로 가요?”

“아빠, 오실 때 초콜릿 사 와요. 친구들하고 나눠 먹게요.”

“아빠···.”

나를 부르던 빛이 사라졌다.

갑자기 큰 돈이 생겼다.

하지만···

이 돈이 무슨 의미지?

내가 가진 유일한 빛을 앗아가는 대신에 받은 돈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빛무리가 힘들다고 지켜달라고 할 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 부장 정신 안 차려? 자네 아들이 죽었다고 봐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몇 년째야? 정신 놓고 다니는 게?”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내 아들.

내 하나뿐인 빛.

그저 아들이 죽었다고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

답답함.

그리고 빛 한점 없는 어둠 속에서 헤매는 이 타는 목마름.

“이 부장 자꾸 이러면 요즘같이 힘들 때 명예퇴직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이전의 우리 무역회사 에이스의 모습은 어디 가고 다 죽어가는 눈으로 말이야.”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나를 향해 말하는 모든 말이 날 통과해 저편으로 넘어가는 같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말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이 부장님···박 팀장님 이번에 둘째가 고등학생 되는 거 아시죠? 거긴 아직 대학 보내야 할 애들이 둘이나 있고···김 과장은 이번에 노모까지 모시고 같이 산다고 하는데 저도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다들 힘들 때 이 부장 정신 차리기만 내가 애타게 기다렸던 직원들 생각해서 이번 기회에 명예퇴직 하는 게 어떠십니까?”

‘내가 뭐라고 했더라···.’

나에게 남은 건 작은 서류박스 하나뿐이다.

빛이 사라졌다.

빛이 없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작은 서류박스도 갑자기 생긴 목돈도 그저 그렇게 생겨났을 뿐.

그저 멍하니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 생전 아내와 같은 밝은 목소리가 나를 일깨운다.

“이정만 씨 계세요?”

누굴까? 빛이 사라진 나에게 의미란 없어진 세계에서 누가 나를 찾는 걸까?

“안녕하세요. 저는 피해자지원재단에서 나온 사람이에요. 이번에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사에서 명예퇴직으로 나오셨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어요. 계속 전화했는데 연락을 안 받으셔서···.”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 나의 앞에 나타난 생전 아내를 닮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말한다.

‘만약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지훈이···우리 지훈이···옆에 있었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냈다.

아내가 죽었을 때는 혼자 아들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아들이 죽었을 때는 혼나 남았다는 막막 감에 토로하지 못했던 쌓여있던 눈물이 터진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울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절박감을 가지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인다. 나를 찾는 목소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이정만 씨와 마주한 나는 멍하니 이정만 씨의 눈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옆에서 이정만 씨가 진정하길 기다린 어머니는 내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이정만 씨에게 넘기면서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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