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희미한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깜박깜박.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던 암흑 속에서 오래된 백열전구의 빛이 들어오자 보이는 공간의 모습은 사람의 깊은 어둠 속에 잠긴 어두운 부분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흐릿한 백열전등 빛 아래에서 흔들리는 사람의 형체는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간접 등으로 만들어진 백열전구의 빛을 고깃덩이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직사하자 눈이 부신 것 같았다. 아니 어둠 속으로 도망가고 싶어 하는 벌레 같았다.
그런 남자의 얼굴은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지고 부어서 살아있는 고깃덩이처럼 보였다.
“흐··윽···사···살려줘···.”
꿈틀거리는 고깃덩이로 보이는 형체의 뒤로 그림자가 지면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에 낀 반지가 불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용감하게 뒤통수 때리더니···이제 와서 살려달라고 하면 너무 식상하잖아?”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뭐가 아니야. 이렇게 돈까지 들고 튀었으면서.”
“이걸 계획한 건 내가 아니라고. 다 이 실장이 시켜서 한 일이야.”
“하이구···. 시체가 걸어 다닌다고 말하지?”
“정말 난···난 모르는 일이었다고···.”
“죽은 놈은 말이 없고···네놈 말을 믿기에는 이 실장이 총상으로 죽었던데···.”
“총···총이야···내가 개조한 게 맞는데···그거 다 이 실장이 준비해 달라는 데로···.”
“자살하기 좋게 총구에 수작질 한 총을 주문했다고? 그걸 믿으라고 한 소리냐?”
고깃덩이로 보이는 남자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상처를 무자비하게 헤집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지혈이 되었던 상처가 다시 터지면서 신선한 피비린내가 어두운 방 안을 전부 채울 것처럼 넘쳐났다.
“그···으아아악”
“후···그래 이제 말할 정신이 들었나?”
“흐흑···살려줘···아···살려주세요···.”
“그 말은 너무 식상하거든? 좀 참신한 말 없겠니?”
고깃덩이 같은 남자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흐릿한 백열전구 밖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남자라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었다.
계속되는 신선한 피 내음에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고깃덩이와 같은 취급을 받던 남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푸줏간 주인 같은 남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말했다.
“흐···으···이···이 실장 여머그라고···.”
“뭐?”
“이···이 실장 엿 먹으라고 총에 장난질친 건 맞습니다···근데···제가···재··아···재아 도련님 건드리지는 않았어요.”
“죽는 놈한테 다 뒤집어씌운다?”
“아···아닙니다···제발···죽여···죽여주세요···.”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남자는 이제는 거꾸로 살고 싶지 않다고 빌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 나올 때마다 어둠 속으로 끌고 가던 남자는 이제야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백열등 앞으로 고깃덩이가 된 남자를 끌고 와 앉혔다.
“그래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네. 편하게 죽고 싶으면 네가 알고 있는 거 모두 말해야 할 거야.”
“네···네···.”
“너 때문에 내가 이 시간까지 이렇게 너하고 이러고 있어야 겠어? 이 새끼···이미 많이 늦었다?”
“으으··ㅔ··네··죄···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말해봐.”
“네···처음 이 실장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이 실장한테 미쳤나고 말했지만 돈을 많이 챙겨준다는 말에 넘어가서 이 실장이 요청한 물건 몇 개 전해줬습니다.”
“그게 위조여권하고 불법개조 총 그리고 밀항선 말하는 거 맞지?”
“네···네···.”
“그러고?”
“밀항 날로 잡은 전날에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밀항 일을 늦출 수 있겠냐고···.”
“무슨 일이라고 하디?”
“무슨 애새끼 하나가 제가 소개해준 칼잡이를 작살 냈다고 화를 내면서···.”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밀항선은 제가 스케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잘 아시겠지만···.”
“그치. 바닷길 몰래 쓰는 것들이 어디 택시 잡는 것처럼 그럴 수는 없지···.”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알겠다면서 그···골치···아니···재아 도련님 설득해서 일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일이 꼬였다면서···제가 넘겨준 총을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총을 쏠 이유가 없었다?”
“저에게 계획에 대해서 말할 때 총을 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재아 도련님이야 원래 구름과자 좋아하시고 이번에 이 실장이 힘 좀 써서 빼돌린 물건에 취해서 권하지 않아도 찾는다고···.”
“그런데도 총을 따로 구한 이유가 뭐야?”
“혹시라도 도련님 옆에 있던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겁박해서 취하게 만든다고···저는 그저 취하게 만들어서 도망갈 시간을 버는 걸로만 알았습니다. 진짭니다.”
“그런데 왜 총에 장난질을 한 거야?”
“그게···.”
“어···제대로 말 안 해? 앞뒤 안 맞으면 알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거”
“흐···흑···다···다 말하겠습니다···제발···.”
“빨리 말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간이 늦었다고.”
“네···네···갑자기 이 실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총을 쏴서 사람을 죽었다고 계획에서 틀어졌다고. 총상 시체 하나 처리 가능하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런데···사람 시체 처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다가 총상이라니···이 실장이 계획에서 어긋났대도 창고에서 돈을 챙겼으면 시체 처리 건으로 수수료를 좀 더 달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분한 이 실장이 거기다가 사람까지 죽였다니까···저도 살길을 찾아야 해서···.”
“같은 기종으로 개조해놓은 총 중에 하나에 장난질 쳐서 이 실장에게 넘겼다는 거야?”
“네···흥분해서 제가 총을 바꿔치기 한 줄도 모르더군요.”
“그런데 총상으로 죽은 놈은 이 실장 혼자던데. 그것도 네가 장난질 쳐서 총기파열로?”
“저도 창고에 도착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 실장이 너무 흥분했는지 아니면 작업하다 이 실장도 약이라도 한 건지. 총상 시체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래? 이 실장이 치운 게 아니고?”
“총상이나 자상히 있는 시체라는게 시체만 치운다고 치워지지 않습니다. 그···깔린 피바다를 다 치워야 하는데···.”
“뭐···그쪽 전문가라니 잘 알겠지. 그래 시체가 없었다.”
“네···아무래도 이 실장이 너무 과도하게 흥분했거나···아니면 저를 유인해서 입막음하려고 시도한 게 아닐까···하고 의심도 들어서···.”
“그래서 폭발하게 만든 총기를 가져가 바꿔치기를 했다···말이 안 되는 건 아니네.”
“정말···정말입니다.”
“그럼 제3자는 없었다?”
“네. 이 실장이 전부 한 짓입니다.”
“그래···너도 억울할 수 있겠네.”
“네···정말 억울합니다.”
“그렇지만 돈에 손댄 건 정말 어리석은 결정이었어.”
“전···정말 이 실장에게 받기로 한 수수료만···.”
“하나는 네놈 아지트에서 발견했지. 그래서 나머지 가방 어디 있어?”
“전 정말 모릅니다. 제가 갔을 때 이미 없었어요.”
“이 실장이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네가 받기로 한 수수료만큼만 챙겨서 튀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가방이 전부 사라졌다? 믿으라고 하는 소린가?”
“아닙니다. 정말 전 억울합니다.”
“그래. 억울할지는 모르지만, 약속은 지켜야지. 살려는 준다. 하지만 제대로 다 말하지 않았으니. 돼지로 팔려도 불만 없겠지?”
“제발···제발···살려···아니 죽여주십쇼.”
사내가 품에서 무언갈 꺼내 발버둥 치는 사내의 목덜미에 무자비하게 주사를 놓자. 혼절한 듯 움직임이 없다.
어두운 공간 구석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차관님, 정말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
“이 실장이 진짜 내 아들을 죽였다고?”
“아무래도 그 말은 사실 같습니다. 방금 처리한 놈은 불법 총기나 밀항 쪽 브로커지만 마약 관련해서는 연관이 없는 놈입니다.”
“범죄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나?”
“놈은 거짓말쟁이지만 저는 그런 놈들을 진실 된 놈으로 만드는 기술잡니다.”
“자네 능력을 의심한 건 아니네···너무···.”
“아드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없어진 돈은···.”
“그 돈에 대해서 함구하게···더 이상 궁금해하지도 말고 조사도 멈추도록···.”
“그건···.”
“이건 위쪽에서 내려온 지시야. 불복하나?”
“아닙니다. 그럼 이놈을 넘기고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이놈도 처리해.”
“그렇지만···.”
“위쪽 지시라고 했네.”
“알겠습니다. 그럼 적당한 놈 하나 엮어서 보내겠습니다.”
“알겠네. 앞으로 이런 일로 안 만나면 좋겠군.”
차관이라고 불린 남자가 나가자 어두운 공간에서 안광만 빛내던 남자가 사납게 웃더니 화풀이를 하듯 알 수 없는 약물이 주입되어 정신을 잃은 남자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지만 교묘하게 구타하는 모습은 익숙해 보였다.
퍽 퍽 퍽···
차관이 나갔던 문이 다시 한번 열리더니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누군가를 기계적으로 패고 있는 남자를 보고 익숙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만하시죠. 처리하기 전에 흔적이 너무 많이 남으면···.”
“뭐? 이 새까?”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3팀이 한밤중에 출동해 잡아 온 겁니까?”
“서로가 서로의 일에 비밀 엄수 모르나?”
“아···죄송합니다.”
“그런데···그러다 죽겠습니다.”
“무슨 상관이야.”
“네?”
“하···.”
짧게 혀를 찬 흉흉한 눈빛의 남자는 자신을 제지한 남자의 어깨를 툭 치듯 밀치면서 어두운 방에서 나갔다. 피비린내와 오래된 오물 냄새가 뒤섞인 방에서 한참 쓰러진 남자를 보던 남자도 어느새 어둠 속으로 숨듯 문이 닫히면서 사라졌다.
어두운 공간은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것처럼 고요하다.
다음날 신문 하단의 작은 구석에 한 줄의 짧은 뉴스가 올라왔다.
폭력 조직 간의 다툼으로 한 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피의자는 바로 자수를 했다는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