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작지만···작아서 더 소중한 행복 3>
“야 너 같으면 갑자기 지나가다가 큰돈이 발견하면 어쩔 거야?”
내 질문에 종혁이가 경수가 동시에 대답했다.
“주인 찾아줘야지.”
“경찰에 신고해야지.”
“음···그런데 경찰에 신고할 상황이 아닌 거야. 그런데 주인은 누군지 모르겠어. 그럴 때는?”
“나 같으면 그냥 쓸 것 같은데···그런데 경찰에 신고할 상황이 아니면 범죄수익 같은 거 아니야?”
‘정상적인 방법으로 벌어드린 돈은 아니겠지?’
“야, 미쳤냐?”
“응?”
“범죄 수익으로 번 돈이면···그런 돈하고 엮이면 범죄단체가 자기네 돈 잃어버리고 다른 놈이 쓰는데 참 가만히 있겠다. 바로 보복하지.”
“돈에 이름표가 붙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우리 엄마가 재단 일하는 거 보니깐 눈먼 돈은 없는 것 같아.”
“뭐?”
“금융실명제 하면서 차명 거래 그런 거 안된다고.”
“그런데 재단 일하는 거하고 그···차명 거래? 그런 건 갑자기 왜? 연관되는데?”
“피해자지원재단이니까. 처음에 주인이가 기부금으로 출연한 것처럼 운용이 기부금으로 재단을 운영하는 거잖아.”
“기부금으로 운영된다고?”
“수익구조를 만들면 모르겠는데···비영리단체다 보니까 아무래도 초기이기도 하고.”
“그럼 다른 사람 도와주라고 기부하고 그걸로 재단이 돌아간다는 거야?”
“빨간 열매도 그렇고 아이들 재단도 그렇고 기부 활동만 하는 단체지.”
“그런데 기부금이 왜?”
“그냥 말없이 기부금 계좌로 입금하는 경우도 있고 돈만 놓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걸 전부 회계처리가 돼?”
“기부금이니까. 익명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서 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럼 내 말은···.”
“경찰에 신고도 못 해 주인도 없어. 그럼 괜히 자기가 쓰다가 덤터기 쓰느니 기부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지.”
“그런 생각은 못 해봤네.”
“나도 엄마가 재단일 안 했으면 몰랐지.”
“재단일 너한테 물려주시려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아.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내 직업 찾아가라던데?”
“아니 재단 직원들은 그래도 월급 받지 않아?”
“아직 초반이기도 하고 일 처리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외에는 별다르게 받을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아.”
“그래도 나중에 재단 커지고 그러면 재단 대표가 월급 안 받는다고 다른 도움 주는 사람들 월급도 안 챙기고 그러면 어떻게 나중에는 너네 어머니도 월급 정도는 챙기셔야지 놀면서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말한다고 통할 것 같지 않으니까 네가 대신 말해주라. 그런데 어쩌다 이야기가 이쪽으로 왔지?”
“눈먼 범죄 수익 처분에 관한 내용이었지.”
“뭔가 전문적인데···.”
“나도 몰랐으면 그냥 갔다 버리던가 묻어두라고 했겠지.”
“묻어둬?”
“왜 영화에서 은행 털고 잡히지 않으려고 20년간 땅속에 돈 묻어두잖아.”
“아···20년 기다릴 시간에 열심히 돈을 벌겠다.”
“영화에서도 은행 턴 범인이 열심히 직장 생활하는 걸로 나와.”
“뭐야? 그럼 은행을 왜 털어?”
“거기다가 결말이 허무한 게···그렇게 평온한 생활을 유지하다가 20년 후에 돈 찾아서 나누기로 한날 만나서 서로 욕심부리다가 배신을 해. 배신 때문에 수배당하고 추격당하다가 죽는 걸로 끝나던데?”
“뭐야. 권선징악 그런 건가?”
“그냥 은행 털지 말라고 은행에서 투자해서 만든 영화 아니야?”
“크크큭.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든 돈이란 게 그냥 써도 될 것 같지만 의외로 꼬리표가 있다는 사실이지.”
“외국돈도 그럴까?”
“글쎄···금액이 적다면 모를까 크면 바로 티 나지 않겠냐? 막말로 우리가 밥값을 달러로 계산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외국인도 아닌데?”
“그런가···.”
“그렇게 빈틈없이 금융시장이 돌아가면 사기꾼은 어떻게 돈을 버는 거야?”
“그래서 사기꾼이 질이 나쁘잖아. 금융시장에서 형성한 사회안전망을 흔들 정도로 머리가 좋으면서···나쁜 쪽으로 써서 사람들 자살하게 만드는 거지.”
“그거 알아···무슨 다단곈가 뉴스에서 하는 소리 들었는데···.”
“그니까 이게 아는 사람이 와서 하나만 사달라고 하거나 가입해달라고 하면 마음이 약해지잖아. 그런 걸 노린 게 더 악질인 것 같아. 사람 마음 가지고 논 거잖아?”
“그래서 나중에는 사회가 삭막해지는 거지.”
“응? 나중 일을 네가 어떻게 알아?”
“아···뉴스에서 패널이 나와서 말하더라고.”
“그런데 사기죄로 잡히고 몇 년 안 살다가 나오잖아.”
“돈도 잃고 인심도 잃어버린 피해자들만 피 토하는 거지.”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아빠하고 같이 현장에서 만나서 일하던 사람이 현장 근무자들 일당 가져다가 거기에 갖다 박았데. 그래서 아는 거지.”
“허···그럼 그 아저씨는 일도 못 하겠네?”
“기술이 좋아서 원래는 일당도 많이 받고 했는데 그 사건 이후에는 큰 공사현장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상한 현상이야.”
“사기꾼들은 나중에 외국 나가서 잘산다고 하던데.”
“네가 어떻게 알아?”
회귀 전에 ‘그것을 따라가 본다.에서 추적해 주는 거 보고 분통이 터졌거든.’이라고 답을 하지는 못하고 말을 돌렸다.
“다 먹었으면 병원으로 갈까?”
“아직 마취에서 안 깨서 어차피 면회도 안 될 거야. 병문안 왔다 갔었다고 아빠한테 전할게.”
“그래. 너도 집에 가서 좀 쉬고 그래.”
나와 종혁이는 경수와 일별하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 집들이 하냐?”
“해야지. 경수 아버지 퇴원하고 괜찮아졌다고 하면 그때?”
“아···.”
“지금은 경수네가 오기 힘들잖아.”
“동네 아저씨들도 궁금해하던데.”
“전부 부르는 건 무리라고. 아마 떡 해서 돌리고 죄송하다고 인사 정도 할 것 같아.”
“너네···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꼭 몇 년은 옆에 있었던 것 같아.”
“나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회귀 전에는 내가 대학 졸업하고 취업 준비할 때까지 있었으니까.’
“여기서는 방향이 달라지네.”
“어.”
“방향이 다르다고.”
“알아.”
“그런데 왜 이쪽으로??”
“그냥 밥 먹고 소화할 겸 네 집으로 갔다 가려고 경수 아버지 입원하기 전에는 자주 그랬잖아.”
“되게 오래된 일 같다.”
“그러게···.”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잡다한 수다를 떨면서 종혁이네 집으로 향했다.
“이제 가볼게.”
“온 김에 간식 먹고 가지?”
“그러고 싶은데 주신이가 나 기다리고 있을 거야. 엄마가 가게 알아본다고 바쁘시거든.”
“그럼 집에 동생 혼자 있어?”
“그렇지는 않고 내가 집에 도착하면 바로 나가실 것 같아.”
“그럼 여기까지 오느라 시간 버린 거 아니야?”
“내가 경수 보러 병원 들렸다가 간다고 말해놨으니까 괜찮아.”
‘볼일도 있고···.’
“너무 갑작스럽게 이사하긴 했지.”
“그럼 내일 보자.”
“그래 들어간다. 내일 봐.”
나는 한참을 골목 끝에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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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갈 명확하게 결정하자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어제부터 생각해오던 일을 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타닥.
‘어제 한번 왕복했다고 내가 예상한 시간에 도착할 것 같네···.’
어제와 달리 정신이 또렷해서인지 정확하게 예상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숨을 돌리기 전에 나는 골목길이 평소와 같은 적막감을 흘리는 걸 확인했다.
나는 평소 다름없는 골목길이라는 걸 알았지만 신중을 기해서 오감에 집중했다.
‘골목길에 언제 사람이 없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역시 언제나처럼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벅 저벅.
‘마음가짐의 문제인가?’
하루 전만 해도 적막하고 인기척 없는 골목길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골목길의 적막감마저도 첫눈을 밟고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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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아직 종혁이에게 전해주지 않은 열쇠로 대문을 연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 반지하로 내려가는 현관문 앞과 종혁이 내가 내려오는 계단 사이 공간 속에 숨는 것처럼 몸을 구겨 넣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지만, 잠깐의 불편함을 이겨내고 홀가분한 게 훨씬 이득이라면서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여기는 사각지대여서 누가 지금 골목길로 나왔거나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고 해도 보이지 않겠지.’
나는 허공에 글자를 쓰듯 ‘금고’를 열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사과 박스를 보면서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쌓인 사과 박스가 키 높이로 쌓이는 걸 확인하고는 바닥에 놓인 박스 중 하나 위에 신문지의 글자를 오려 붙인 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눈을 어지럽히듯 글자가 붙어있는 편지를 잘 보이는 곳에 내려놓는다.
‘아니야. 흔들리지 말자. 독이 든 성배야. 보기에는 아주 화려하고 달콤해 보이지만 먹으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극독.’
생각이 깊어지기 전 내가 숨겨진 금고에서 꺼내온 고액권 엔화가 가득 들어있던 가방을 떠올렸다.
그 가방에서 일부러 액수는 세지 않고 사과 박스로 옮겨 담았다.
‘검은 가방을 통해서 엮인다면 그건 그거대로 피곤할 테니까.’
한국에서 고액권 엔화가 갑자기 시중에 돌기 시작한다면 바로 알려질 사실이었지만 피해자지원재단이 공장사건과 바로 연결되는 건 피하고 싶다.
나는 애써 다른 생각에 눈을 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쌓아놓은 사과 박스 안에 있을 엔화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돈은 당장 급하지 않아. 물론 지금도 상속받은 재산이 적은 건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벌 방법이 있어.’
눈앞에 큰돈이 그것도 주인을 알 수 없는 눈먼 돈이 있다고 생각하니 손끝이 저릴 정도로 주먹을 쥐면서도 아쉽다는 듯 다시 손을 펴서 빈손을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듯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으로 향했다.
철컥.
얼마간의 시간 후 종혁이가 대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반긴다.
“어여···.”
나는 인사를 건내는 종혁이 뒤로 시선을 던지면서 말했다.
“저거···뭐지?”
“그런데···저거 사과 박스로 보이는데?”
“어? 언제부터 있었지? 잠깐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는데?”
타다닥.
“엄마, 어제 사과 주문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니?”
종혁이 어머니가 종혁이의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내려오면서 나를 봤는지 웃음을 보이셨다.
“오늘도 종혁이하고 같이 등교하려고?”
“이제 방학도 얼마 안 남았는데···그때까지는 특별한 일 없으면 그러려고요."
“호호···멀리서 온다고 목마를까 봐 음료수 종혁이한테 전해줬는데 학교 가서 같이 먹어봐. 미숫가루인데 이번에 갈아서 맛이 괜찮을 거야.”
“잘 먹겠습니다.”
“엄마, 이쪽에···.”
“어머···이게 뭐지?”
종혁이 어머니가 이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겠다는 생각에 좀 더 다가갔다.
“이건···.”
바닥에 떨어진 한눈에 봐도 괴이한 편지를 집어 든 어머니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학교 늦겠다. 먼저 가렴. 이건 엄마가 처리할게.”
“네? 알겠어요.”
나와 종혁이는 종혁이 어머니에게 일별하고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편지길래 그렇게 정색을 하시지?”
“왜? 뭐라고 쓰여있는지 봤어?”
“자세히는 못 보고···글자를 이것저것 오려 붙여서 읽기 힘들었어. 그런데 대충 기부금이라는 글자는 아주 크게 봤거든.”
“사과 박스가 기부금이면 좋은 거 아냐?”
나는 모르는 척 말했다.
“단순 기부금이면 좋은 일이지만···설마 저기 쌓인 박스 안이 전부 돈은 아니겠지?”
“글쎄···궁금하기는 하네.”
어제 사과 박스를 구하기 위해서 길거리를 뛰어다니던 ×고생하던 내 모습을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흔들고 말았다.
“야, 화장실 급해?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아니거든? 어제 ×고생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 거야.”
“이삿짐 정리한다고 아직 힘든가 보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이삿짐이 아닌 다른 짐이기는 하지만. 짐은 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