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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1화 (11/205)

<011화 훈육이 가지는 의미3

주신이를 데리고 우리의 아지트나 다름없어진 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래 있을 수 없었지만, 우리의 목적은 도서관보다는 파출소에 있었다. 파출소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러니깐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고 그런 우리가 소장을 깨울까 봐 허 순경이 벤치로 우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온 게 똑같았다는 소리다.

“무슨 일이니? 미래의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하려고 온 거야?”

“그게 아니라요. 그 은영 누나 엄마 말이에요.”

“응?”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니?”

“전부요. 전부 다 이상해요.”

붉은 벽돌집에서 은수가 구급차에 실려 나갈 때 은영 누나의 영상에 시선을 사로잡혀서 보지 못했지만 사실 그 영상이···.

도저히 당시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두려움. 공포.

퍽.

쿠당당탕.

찌익.

평소와 다른 강도의 생살이 찢기는 공포감이 스민 사진이 움직이는 듯한 영상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에 대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저 계속해서 울리는 강타음과 소름 끼치는 소음뿐.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은수를 통해서 봤던 영상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느껴지는 고통과 공포함은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벽에 기대서 과호흡을 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오열하게 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공포감을 느끼는 피해자들을 만나야 하는 경찰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런 내 모습을 보게 될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공포감에 질린 내 표정을 의아하다는 듯 다들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잠깐씩 끊어지는 사고에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뭐가 이상한지 제대로 말해줘야···.”

“그러니깐. 자기 딸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데 아무렇지 않았어요.”

“사실 그 아줌마 딸이 아닌 거 아냐? 거기 붉은 벽돌집 은행장네가 재혼이라고 들었는데?”

“그런가···.”

“사건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되는데 너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 낼까 봐 말하는데.”

“최재인 씨 부인 조춘희 씨가 재혼한 건 맞아. 그렇지만 은수는 그 조춘희 씨 친자야. 출생기록부를 통해서 확인했지. 하지만 최재인 씨 친자는 아니야. 미혼모인 조춘희 씨와 재혼한 거지.”

“그럼 은수가 그 아저씨 친딸이 아니라는 거네요?”

“자기 친딸이 아니면 최재인 아저씨가 폭행했을 수 있는 거 아네요?”

“우리도 의심이 갔지만, 조춘희 씨 증언 때문에···.”

“네?”

“만약에 최재인 씨의 진술만 있었다면 최은영 씨의 진술에 더 무게가 실렸을 거야. 그런데 조춘희 씨가 큰딸이 작은딸을 폭행했다는 진술을 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최은영 씨를 입건할 수밖에 없는 거지. 가정폭력사건의 경우에는 증거가 거의 없어서 당사자 진술이 중요하거든.”

“DNA 검사는 아직이에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하지.”

“범인으로 은영 누나를 계속 의심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특정 거주지도 없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풀어주고 수사하겠다고 말했는데도 차라리 구속당한 상태로 수사를 받겠다고 하니깐 경찰로서도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지.”

“집에 안 간다고요?”

“그래. 구속 수사라는 게 피의자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거든. 그런데 집에는 한 발짝도 안가겠다는 거야. 그런데 주소가 특정되지 않으면 풀어주고 싶어도 풀어줄 수가 없거든.”

“아···.”

실망감에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두 어깨가 무거워졌다.

‘무거워?’

내 양팔 가득 들린 교재를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허 순경을 보고 있으려니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내가 공부할 때 봤던 시험과목 교재들이야. 다른 건 몰라도 형법, 형사소송법, 경찰학은 그대로 봐도 될 거야. 이건 내가 시험 볼 때 정리한 요약본. 그리고 선택과목에서 수학을 뺄 수 있어서 수포자도 할만해.”

“이건···.”

“어차피 버려야 하는데 아직 버릴 곳을 찾지 못해서 말이야. 기출문제집 같은 건 새로 사야 하겠지만···대신 버려줄래?”

허 순경은 자신이 공부했던 교재를 양팔 가득 나에게 전해주고는 음료수를 나눠 들고 있는 종혁이와 경수와도 인사하더니 파출소로 들어갔다.

“이야. 정리 제대로다. 이것만 보면 형법 기본 틀은 금방 익히겠는데?”

경수가 형법 요약본을 보더니 놀라면서 말했다.

“네가 형법은 왜?”

“사법고시 보려고.”

“검사되게?”

“판사가 목표지만 안되면 검사나 변호사 되려고.”

“경수라면야.”

나와 종혁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 표정이 웃긴지 경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의사가 되라고 하는데 나 사실 수학 안 좋아하거든.”

“뭐? 너 수학 항상 만점이나 하나 틀리잖아.”

“점수가 잘 나오는 것하고 좋아하는 것하고 다른 거야.”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전교 1등이 다르다니 다르겠지.”

수긍하는 태도에 뭐가 웃긴지 모르겠지만 경수가 배를 잡고 웃더니 말했다.

“그런데 주인이는 경찰 정말 생각 없어?”

“위험할 것 같아서.”

“주인이 어머니하고 주신이 생각하면 아무래도.”

“내가 허 순경 아저씨 말 듣고 경찰에 대해서 좀 알아봤거든. 아무래도 고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 아는 형이 있어서 물어봤지.”

“고시? 학원?”

“아직 고등학생도 안됐는데?”

“고등학생 때 고시 준비해서 졸업하자마자 시험 한 번 봐볼까 했거든.”

“뭐?”

경수는 깜짝 놀란 표정의 나와 종혁이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까지나 생각만···쉬운 일이 아니니깐.”

‘경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자신이 할 일에 대해서 계획하고 있었구나···.’

회귀를 하기 전에 살았던 인생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종혁이나 경수를 어리게만 생각했던 내 행동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번에 종혁이 부모님 사건 때 종혁이가 고민 끝에 협박장을 없애 버린 것.

이번에 본 경수의 미래에 대한 세밀한 계획.

이런 모습을 보면 나이가 먹는다고 어른스러워지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각해지는 내 모습에 경수가 어깨를 툭 치더니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저번에 허 순경 아저씨 말을 듣고 알아보니깐 경찰 공무원이 인기가 없기는 하지만 경찰이 된다고 무조건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니래.”

“뭐?”

“교통 경찰은 진짜 힘들고···알아보길···행정직? 그런 쪽은 공무원하고 똑같다고 하더라.”

“그래?”

“경찰이라고 전부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경찰로 승승장구하고 싶으면 경찰공무원시험이 아닌 경찰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좋다고 말하더라고. 내 성적이 아깝다면서.”

결국 경수의 자기 자랑으로 끝난 말이었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정보였다.

‘위험한 게 아니라면 경찰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많이 진 상태로 주신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종혁이와 경수와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기억이 안 날 상태로 집에 도착하자 보이는 어머니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 좋게 웃고 말았다.

‘역시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게 다른 일을 생각해 보는 게···.’

“주인아 경찰이 되고 싶은 거야?”

“네?”

내 손에는 허 순경이 건네준 경찰공무원교재가 한아름 들려있었다. 책가방에 전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종혁이가 대신 가방에 넣어줬던 교재를 집 앞에서 꺼내주었기 때문에 손으로 들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정말이지···요즘 주인이 덕분에 엄마는 힘이 나네···.”

“어···엄마? 내가 경찰 되고 싶다고 하면 걱정되지 않아요?”

“물론 걱정이지. 그렇지만 주인이가 경찰이 아닌 그냥 평범한 회사원을 한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될 거야. 그리고 이번에 보니깐 경찰이라고 막 위험하고 그런 게 아니라고 하더라···.”

“아니 누가요?”

“요번에 은영이라는 아가씨 데려간 경찰이 집에 왔을 때 경찰 공무원이 얼마나 좋은지 계속 말하고 가더라고.”

“네?”

“아니···이 아저씨가 형이라고 불러주니깐.”

“주인아 뭐라고 잘 안 들렸는데?”

저녁준비를 하는 어머니 뒤에서 씻고 나온 주신이의 머리를 털어주고 말했다.

“아니에요. 저녁 먹기 전에 씻을게요.”

나는 나를 말려들게 하는 허 순경의 계략에 어처구니없음을 느껴야 하는데 씻으면서 헛웃음이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다음날 경수가 나에게 빌려 간 형법 요약 노트를 건네면서 말했다.

“너 정말 경찰 할 생각 있어?”

“너도 그 짭새의 계략에 넘어간 거냐?”

“뭐? 그 형이 갑자기 짭새가 된 거냐?”

“몰랐는데 어제 엄마가 경찰 공무원 좋다고 그런 소리 들었데. 은영 누나가 잡혀간 날. 난 밖에 불러내서 사정 설명하는 줄 알았는데 자기 PR이었던 거지.”

“경찰 공무원이 인기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할 정도는 아닌데 그 형 목적이 뭐야?”

“그냥 네가 범인은 잘 잡을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 보통 그런가?”

“뭔가 목적이 있어. 그걸 모르겠다고···.”

“그럼 물어보면 되지 않아?”

“어차피 다른 요약본도 빌리려고 했으니깐 이번 주말에 도서관 갈 때 파출소 가서 물어보면 되지.”

“물어본다고 말해주겠어? 거짓말하면 더 헤깔릴 걸?”

‘내 능력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거짓말하면 그걸 두고 추론해 볼 수도 있지 한번 물어보자.”

나와 종혁이 경수는 주말에 허순경을 탐문 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렇게 급하게 만나지 않았으면 말이다.

삐용삐용.

구급차 특유의 귀를 거슬리는 사이렌 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골목길 어귀에서 울리는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는 나를 안 좋은 상상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나는 종혁이에게 주신이를 떠밀 듯 안기고 미친 듯이 달렸다. 숨이 턱에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내가 본 상황은.

붉은 벽돌 집?

어째서.

다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에 안 좋은 예감을 한 건지 주신이를 데리고 종혁이가 다급하게 골목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과 주신이의 호기심 가득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붉은 벽돌집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이건.

하얀 천에 덮인 시신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급한 상황이 끝났다는 듯 사이렌이 꺼졌지만, 나의 마음속에 붉게 타오르는 불꽃은 더 커지고 말았다.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는 허 순경이 보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잘못된 질문 한마디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종혁이와 주신이가 들어간 골목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울리던 카메라 셔터음과 굉음에 가까운 취재요청 소리 그리고 구경꾼이 된 주민들의 웅성거림이 단 몇 발자국 떨어지자 멀리서 들려오는 뭉개진 바람 소리처럼 느껴졌다.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런 작은 의문이 천장에 난 작은 구멍처럼 희미하게 마음의 틈을 벌리고 들어왔다. 비가 올때 마다 천장에서 새는 물방울처럼 축축하고 차갑게 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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