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훈육이 가지는 의미2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할 채비를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오늘도 도서관 가서 늦을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저녁 먹기 전에는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어린이 도서관에 동생이 들어간 걸 확인하고 어린이 도서관 앞에 마련된 좌석에 둘러앉은 나와 종혁이 그리고 경수.
“넌 어떻게 알고 온 거냐?”
“종혁이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부르던데?”
“내가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사건이라고 안 거야?”
“어제 엄마가 자기 전에 말하더라고 오늘 골목 앞 붉은 벽돌 집 네에 큰일 생겼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아니 너랑 너희 부모님 외식하고 늦게 오신 거 아니야? 그건 어떻게 아는 건데?”
“엄마도 휴대폰 있거든 어제저녁 먹는 내내 전화통만···크흠···어쨌든 아침부터 저 녀석이 튀어나올 때 딱 감이 오더라고.”
“무슨···내가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몰랐냐? 너 사건 몰고 다니는 것 같은데?”
“뭐? 저런 둔탱이가 어떻게 감이 좋지?”
“너는 이제 비범한이 아니라 곰탱이다.”
“인체의 신비쯤으로 하고 어제 무슨 일이었는데?”
“어제 늦게 가서 혼났거든 기분이 좀 그래서 골목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는데.”
“그런데?”
“붉은 벽돌 집 앞에 경찰차하고 구급차하고 몰려오고 주변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와 있더라고.”
“붉은 벽돌집이면 은퇴한 은행장 집인데···.”
“뭐 좀 알아?”
“붉은 벽돌집에 은퇴한 은행장···자산가가 산다고 엄마가 그러더라고. 거기 큰딸이 엄청 예쁜데 집 밖으로 자주 안 나온다고···.”
“예쁘다니···꿈에 나올까 무섭던데.”
“뭐? 그 누나 봤어? 난 한 번도 못 봤거든 엄마가 예쁘다는 소리하는 것만 들었지. 엄마도 사진만 봤다던데?”
“어제 붉은 벽돌집 앞이 난장판이 된데 일조했지 완전 욕하고 소리치고 울고···불고 난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어.”
“엄마 말로는 엄청 미인이라던데. 유학 갔다고.”
“어제 직접 들었는데 유학간 게 아니라 집을 나간 거래.”
“뭐? 말도 못 붙였다면서?”
“엄마가 버려지듯 집 앞에 있는 게 마음에 쓰였는지 저녁 차려주면서 질문 몇 개 던졌는데.”
“던졌는데.”
“잡혀갔어.”
“뭐?”
“잡혀갔다고? 경찰이?”
“어제 우리가 봤던 젊은 경찰 기억나?”
“아···친절하고 좋은 사람 같았는데.”
“그 경찰이 허 순경이래···동네 아저씨가 말했던 친절 하다고 했던. 그 허 순경 하고 다급해서 제대로 못 봤는데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아. 경찰 두 명이 갑자기 집에 찾아와서 그 은영 누나 잡아갔어.”
“잡아갔다고?”
“응 무슨 이유인지는 말을 안 해서···그런데 아마 동생을 폭행한 혐의일 것 같아.”
‘뭐, 나한테 직접 말한 건 없지만 사진 같은 영상과 들리던 소리를 유추해보면 그런 거지. 그런데 진짜 그 여자가 동생을 때렸을까? 동생이 다친데 엄청 화가 난 것 같았는데···.’
“그건 말이 안 돼.”
“경수 넌 뭔가 알아?”
“아니, 어제 나랑 주인이랑 파출소에 은영 누나? 어쨌든 그 은수라는 아이가 매 맞는 아이인 것 같다고 신고했거든. 근데 그 누나가 가출했다고 하면 언제 그 동생을 때려? 밖에서? 그럼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그것도 그러네.”
“잡아간 허 순경이라는 아저씨도 믿는 것 같지는 않았어. 얼굴이 ×씹은 표정이었거든.”
“나 아저씨 아니다. 부를 거면 형이라고 불러.”
“네?”
나와 경수 종혁이는 깜짝 놀라서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우리 뒤에는 뒷짐을 지고 있는 허 순경이 우리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도서관 앞에 놓인 벤치 뒤로 조용히 다가온 것 같았다.
“어제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네. 그렇지만 잘 모르면서 이런저런 소문을 내면 나중에 사실이 아닌 일로 당사자가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깐 사건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입 조심해야 돼.”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그 누나가 범인이라니 이상하잖아요.”
“맞아요. 은수라는 애는 주신이 말만 들어도 최소한 몇 년 동안 계속 학대당한 것 같은데 그 누나는 가출했었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동생을 폭행해요?”
“그 붉은 벽돌 집 사장님 은퇴한 자산가라고 했지만 정말로 은행장이 맞는 거예요?”
“우선 진정하고 나도 조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가정폭력의 경우 진술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증언도 중요한 참고가 되는데 아버지인 최제인 어머니인 조춘희 씨가 큰딸 최은영이 작은딸 최은수를 질투해서 계속적으로 폭행했다고 진술했어. 거기다가 집안 망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조용히 넘기려고 했는데 이번에 크게 다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큰 딸에 대해서 진술하는 거라고 말이야.”
“유전자 검사 한번 해봐요.”
“뭐?”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할 것 아니에요?”
“그게···무슨”
“최소한 그 누나가 자기가 동생을 때렸다고 증언하지는 않았을 것 아네요.”
“그렇기는 하지.”
“엇갈린 진술이지만 그 지방에서 유명한 유지와 그 부인의 진술과 가출이나 하는 불량아의 진술이라서 진술에 대한 무게 중심이 누나가 범인이라는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어제 그대로 체포해간 것 아네요?”
“역시···.”
“뭐가 역시야?”
“붉은 벽돌 집 말이야. 안 좋은 소문이 하나 있었거든.”
“무슨 소문?”
나와 경수 허 순경의 집중이 모이자 종혁이 입을 열었다.
“그···은퇴한 은행장이라고 말하는데 그게 거짓말이라는 소문이 있어. 사실은 사채업으로 돈을 벌어서 은퇴한 은행장 행세하는 거라는 말이 많았거든. 뭐 소문이지만.”
“뭐?”
놀라는 우리를 두고 종혁이 허 순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경찰 아저씨, 아니 형 그 조춘희라는 아줌마가 둘째 부인인 건 알아요?”
“어? 진술 중에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런데 사실 둘째 부인이 아닐지도 모르지.”
“너는 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쨌든 진술을 뒤집을 증거가 필요하면 DNA 검사해 봐요. 금방 나오지 않아요?”
“금방은 무슨 이유도 없이 검사를 해줄 리가.”
“어쨌든 피해자는 최은수고 가해자를 최은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피해자와 가해자 DNA 검사는 할 수 있지 않아요?”
“그거야···.”
“너 뭔가 아는 거지?”
“무슨 감 같은 게 왔어?”
“나도 확실히는 몰라.”
‘너무 공포스럽고 어지러워서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거든. 그래도···.’
“형도 계속 마음에 걸리니깐 이렇게 밖으로 나온 거 아네요?”
허 순경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파출소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 양손에는 우리에게 줄 음료수가 가득 이었다.
“형 고맙기는 한데 이렇게 가져다줘도 돼요?”
“파출소에 음료수가 많이 들어오거든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해. 거기다가 이건 신고하러 오는 민원인들에게 주려고 준비해둔 거니깐 괜찮아. 그리고 저번부터 말하고 싶었지만 너 경찰 해 보지 않을래?”
“저요?”
“아니 왜 주인이한테만 그래요? 어제 저도 같이 신고하러 갔는데···.”
“딱 봐도 넌 공부 잘하게 생겼는데?”
“히힛···형이 뭘 좀 아네요. 제가 전교에서 탑이에요.”
“그런 애를 경찰하라고 하면 너희 부모님한테 한소리 듣겠지.”
“아니 저는 그럼 만만하다는 거예요?”
“아니, 경찰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저 경찰 못해요. 아니 안 해요.”
단호한 내 말에 경수와 종혁이가 놀라서 나를 돌아봤다.
“왜?”
“경찰 제복 멋있잖아.”
“위험한 일하면 엄마가 걱정해서 안돼. 주신이도 내가 돌봐야 하고···.”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경수와 종혁이의 표정이 변하면서 말했다.
“주인이는 경찰하면 안 되겠네.”
“그럼 뭐 하고 싶은데.”
“돈 잘 버는 거···.”
“뭐?”
어이없다는 듯 다들 웃는 가운데도 허 순경은 끈질기게 나에게 경찰을 한번 권유하더니 이내 자기 연락처까지 주고 파출소로 사라졌다.
“저 형도 끈질기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안 물어보는 거야? 할 생각도 없었지만, 기분이 좀 그런데?”
종혁이의 말에 경수가 놀리기 시작했다.
“딱 봐도 어리바리한 거지.”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에 나는 허 순경이 주고 간 명함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경찰이라···.’
지금은 경찰이 하는 일이 험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IMF가 터지고 나면 오히려 경찰을 동경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집에 조금만 늦게 가도 걱정하시는 어머니가 있고 아직 어린 동생이 있는데 경찰은 힘들지. 그리고 회귀까지 했으면 성적이야 뭐···.’
그리고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모의고사에서 점수가 처참했다. 비가 내리는 내 시험지를 보더니 경수가 오히려 깜짝 놀라서 나를 붙들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집에 무슨 일 있냐? 그 누나 걱정돼서 그래? 그래도 반타작도 안 되면 어떻게? 학력고사 봐도 성적순이 아니라 뺑뺑이라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성적은 나와야지. 성적이 너무 안 나오면 담쌤이 지원서도 안 써줄지도 몰라. 야, 정신 차려. 인문계 간다며?”
“아···몰라.”
‘나도 이렇게 성적이 안 나올 줄 몰랐지.’
학교 다닐 때 만해도 중간성적은 늘 유지해왔는데···졸업하고 한 번도 안 펴 본 교과서 내용이 회귀했다고 갑자기 기억 날릴 만무했다. 그 덕분에 암기과목은 과락 수학은 틀린 개수 보다 맞은 개수를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종혁이도 내 시험지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야, 너 인문계 간다더니 성적이 더 떨어지면 어떻게?”
“그나마 성적표가 따로 안 나와서 다행이긴 한데···.”
“응?”
“몰랐어? 모의고사잖아. 중간이나 기말은 이미 쳤고 이제 학력고사만 보고 뺑뺑이 돌리면 끝이니깐. 그런데 우리 바로 위에는 성적으로 학교 갔는데 우리부터는 또 뺑뺑이래. 그런데 언제 교육방침이 바뀔지 모르니깐. 어쨌든 모의고사라서 학생기록부에 남지 않으니깐 다행인데···.”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서 모의고사 본 사실을 우리 마나님에게 말씀드리지 안아주마.”
내 목에 헤드록을 걸면서 종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종혁이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기억나지 않는 중학교 교과과정을 다시 공부해야 할 상황에 웃을 수 없었다.
‘전 과목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셋이 다 같이 하굣길로 주신이가 기다리고 있는 백신초등학교를 향하는데 길가에 쉽게 보지 못하는 대형 세단이 천천히 지나가는 게 보였다. 스쳐 지나가는 차에 여성 운전자를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잘 걷다가 멍하니 걸음을 멈추자 의아한 듯 종혁이와 경수가 말했다.
“뭐야? 뭔데? 성적 때문에 현타가 갑자기 온 거야? 괜찮아. 본 시험 전까지···.”
“아니···그게 아니야. 방금 지나간 차 운전자 빨간 벽돌집 아줌마야.”
“뭐?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그 집 아저씨만 봤지. 아줌마는 거의 못 봤는데 인상도 흐릿해서.”
“그날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억이나.”
“무슨 일 있었어? 뭐? 아줌마가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응? 그런데 인상적이라고?”
“자기 자식이 폭행당해서 구급차까지 불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게 인상적이었거든.”
“뭐? 어떻게 자기 딸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 은영 누나가 미친 듯이 울고···불고 화내면서 소리치는데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게···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이상해.”
종혁이와 경수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렇지 않았다고?”
“우리 엄마는 내가 넘어지기만 해도 난리부르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