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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2화 (12/205)

<012화 훈육이 가지는 의미4>

‘막을 수 있었을까?’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멍한 상태로 등굣길이 시작되었다. 옆에서 걷는 종혁이도 생각이 많은지 말이 없다. 우리는 같은 속도로 걸으면서 다른 생각에 침잠하고 있었다.

교문이 보이고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나눌 수 없었다.

점심시간 평소 같으면 경수가 반 대항 축구에 나를 끌고 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평소와 다르게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응 붉은 벽돌집 아저씨 시신이었어.”

“그럼 그 누나가 그 아저씨를?”

“아니, 은영 누나는 경찰서에 붙잡혀 있다며 그럴 수 있을 리가···.”

“내 생각에는 그 아줌마가 한 것 같아.”

“뭐? 경찰이 현장체포 했다면서 얼굴 본 거야?”

“아니 얼굴이랑 다 가리고 나와서 그렇지만 성인 여성인 건 확실했어. 그리고 어제 봤던 그 아줌마 표정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어.”

“뭐?”

“공허하고 무언가 결심한 듯한 그런 표정.”

“그리고 보니깐 너 뭔가 감 잡은 거지? 그래서 그 허 순경이라는 경찰 아저씨한테 DNA 검사도 해보라고 한 거잖아?”

종혁이의 질문은 경수가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처음 우리가 신고한 날 이전부터 경찰은 은수하고 그 아저씨 친자관계가 아닌 걸 알고 있었어.”

나와 종혁이는 경수의 말에 놀라 둘이 동시에 외치듯 말했다.

“경찰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처음 은수를 본 날 주인이하고 내가 파출소에 신고하러 갔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날 경찰이 은수하고 그 아저씨하고 친자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고 하는 거야?”

“그건···그날 신고하면서 허 순경이라는 경찰 아저씨가 우리한테 한 말 때문이야. 은수 아는 것 같았잖아?”

“우리 말고도 신고가 여러 건 있었던 것 같기는 해. 그런데 그게 왜?”

“그날 허 순경이라는 아저씨가 심은수라고 했어.”

“뭐? 붉은 벽돌집 아저씨 이름은 최제인인데?”

“그래서 주인이가 DNA 검사 받으라는 소리를 하는 걸 듣고서 하는 경찰의 행동에 아. 친자가 아니라는 걸 경찰은 알고 있다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은수네 가정폭력으로 신고가 많이 들어가긴 했는데 은수가 병원에 간 건 손에 꼽히는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우리 엄마가 동네 소식통인데···이 난리가 나니깐 아무래도 동네병원에 누가 다녀갔냐 하고 물어보고 다니더라 그걸 옆에서 보니깐 자동으로 알게 된 거고. 은수가 병원에 다녀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데···그것도 은영 누나가 잡혀간 이후에···.”

“그럼 폭행의 대상자가 은수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경수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인이 너 은영 누나가 오열할 때 은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했다고 했지?”

“응.”

“그럼 은영 누나는 최소한 그 붉은 벽돌 집 아저씨가 은수를 안 때릴거라고 생각한 거야.”

“뭐?”

“그렇잖아. 은수가 그 아저씨 친자가 아니라는 걸 조사할 정도로 경찰이 조사를 했는데도 그 아저씨를 잡아가지 못 한 건 수사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던 거지.”

“그럼 피해자는 그 은영 누나야?”

“정확하게는 은영 누나의 어머니하고 은수의 어머니야.”

“뭐?”

“아마 은수는 자기 엄마가 그 아저씨한테 맞고만 있을 때 엄마 앞을 막아서다가 맞은걸 거야. 그러니깐 이번에만 병원에 방문해서 치료 받은 거지. 가정폭력은 습관성이기 때문에 한 번만 병원에 갔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너 뭔가 전문적인데?”

“이번에 형법이랑 형사소송법 관련해서 공부하다 보니깐 판례도 보게 되거든. 흥미로운 판결이 많더라···.”

“애가 우리랑 같은 중학생이라니. 믿어지냐?”

종혁이의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뒤로 경수가 계속 말했다.

“주인이 말대로 그 아줌마 행동이 이상했잖아. 자기 자녀 어쨌든 그 아저씨한테는 친자가 아니더라도 그 아줌마한테는 친자인 은수가 맞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무기력해진 거야.”

“무기력?”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되면 사람이 무기력 해진데 그런데 그런 아줌마한테 큰 사건이 일어난 거야.”

“사건? 은수 폭행으로 은영 누나가 경찰에 잡혀간 거?”

“뭐 비슷하지. 은영 누나가 나타나면서 오열할 때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된 거지 폭력은 잘못된 거라고 말이야. 거기에 경찰은 조사하고 체포까지 한 거야. 자기가 이제까지 감내해야 했던 폭력이 잘못된 거라는 걸···이제야 알게 된 거지. 그리고 복수한 거야.”

“뭐? 주인이 너도 그렇게 생각해?”

“경수 말처럼 그 아줌마가 아저씨를 죽인데 그런 이유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뭔데?”

“난 은영 누나도 그 아저씨 친자가 아닐거라고 생각했어.”

“뭐?”

“그 아줌마 단순히 지금까지 당해온 폭행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아저씨를 죽인 것 같지 않아. 살고 싶어서 그래서 죽인 게 아닐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건데?”

‘그때 봤던 장면 은영 누나만 아니라 그 아줌마의 장면도 겹쳐져서 나타난 게 아닐까? 그래서 은수한테서 봤던 그 장면보다 더 공포스럽고 두려웠던 게 아닐까?’

“종혁아, 은영 누나네 어머니 이혼하신 거야?”

“아니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그럼 너무 오래된 폭행으로 사망한 걸지도 몰라.”

‘이건 그 공포로 가득한 장면과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는 소음을 보고 들은 나로서는 확신이지만······.’

“뭐?”

“은영 누나 엄마를 그 아저씨가 죽였다고?”

“정확하게는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습관적인 폭력이 점점 강도가 심해지더니 사망에 이르게 한 거겠지.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은영 누나는 두려움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집을 나간 거고···.”

“두려운 건 이해가 가는데 죄책감은 어째서?”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아이들을 방패로 그 엄마들을 때린 게 아닐까?”

“뭐?”

“나···가끔 생각하거든. 엄마가 돈 많은 아저씨랑 결혼해서 고생 안 했으면 하는 생각. 그런데 엄마라고 그런 생각 안 할까?”

“그럼 붉은 벽돌 집 아저씨가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필요한 그런 사람하고만 재혼했다는 거야?”

“나는 상습폭행범이라고 생각해.”

종혁이와 경수가 내 충격적인 발언에 잠깐 숨을 멈춘 사이에 어느새 가까이 온 건지 옆 반의 반장이 찾아와 나를 불렀다.

“남주인, 선생님이 찾으시는데?”

아직도 멍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종혁과 경수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교무실 들렸다가 교실로 바로 간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왜 부르지? 설마, 성적 때문에?’

어떻게 교무실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운동장의 왁자지껄한 소음에서 한 걸음 떨어진 정적이면서 딱딱한 사무실의 느낌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 문수옥 선생님의 자리에 다가가 서자 그제야 내가 교무실에 온걸 알았는지 담임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상담실로 장소를 바꾸었다.

‘간단한 일이면 바로 교무실에서 언급했을 텐데 상담실까지? 진짜 성적 때문에 상담하는 건가?’

“주인아, 학교생활은 어떠니?”

“좋아요.”

“이번에 큰일 치르느라 많이 힘들었지?”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만 가족하고 친구들 덕분에 힘내고 있어요.”

“주인이는 어른스럽구나. 그런데 이번에 모의고사 성적이 많이 떨어진 건 알고 있지?”

“네···아무래도 책을 볼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혼내려고 부른 건 아니야. 다만 이번에 인문계로 진로 방향을 정했다고 했지? 저번에 선생님하고 상담했을 때는 실업계 학교로 간다고 했었잖아?”

“네. 그런데 이번에 큰일 겪고 나니깐 어머니 말씀대로 인문계로 가려고요.”

“그렇구나. 나쁜 생각은 아니야. 지금은 조금 신경이 분산되어서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긴 했지만, 항상 반 평균 이상으로 성적을 유지했으니깐. 이렇게 부른 이유는 너를 찾아오신 손님이 있어서야. 그래서 선생님이 상담실로 부른 거란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신데 네가 싫다고 하면 선생님이 잘 말해서 돌려보낼게.”

“네? 누가 절 찾아왔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사건 관련이라서 말해주지 않고 경찰인데 네가 신고해준 내용 확인차 방문한 거라고 하더라. 부모님 계실 때 이야기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깐. 사실확인만 잠깐 하면 된다고 해서. 협조 부탁한다고···.”

“아···.”

‘혹시? 허 순경이 찾아왔나?’

“아는 사람이니?”

“하굣길에 동생 데리러 가다가 가정폭력 당하는 걸로 생각되는 아이를 신고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확인차 온 건 가봐요.”

“그래?”

문 선생님 입장에서는 담당하는 학생에게 경찰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긴장하고 있었는지 내 대답을 듣고는 표정이 풀린 상태였다.

‘그런데 왜 학교까지 찾아온 거지?’

“주인이는 아직 학생이어서 선생님이랑 동석해야···.”

“괜찮은데요.”

단호한 내 대답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시는 담임선생님은 상담실 한편에 위치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 뒤로 허 순경과 은영 누나를 체포할 때 같이 있던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허 순경은 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사복을 입고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경찰 아저씨.”

“형이라고 부르라니깐.”

“그런데 학교까지 무슨 일이에요?”

“어제 파출소에 와서 은영 누나 엄마가 이상하다고 신고했는데? 그건 왜 그런 거니?”

“그걸 물어보려고 학교까지 찾아오신 거예요?”

토지신의 술법으로 악의를 가진 사람의 생각이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지.

“그냥 처음부터 표정이 이상했어요. 어쨌든 은영 누나가 은수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 간 거잖아요. 그럼 보통 엄마는 걱정하거나 화가 나거나 그럴 텐데 뭔가 포기한 것 같은 표정이어서···.”

“그렇구나. 어제 그 아줌마를 목격한 위치가 어디니?”

“백신 초등학교 쪽 도로에서 봤어요. 학교 통학로 근처라서 천천히 지나가는 검은색 세단이어서 눈에 띄었어요.”

“거기서 목격한 거니?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지?”

“그 아줌마 표정이 너무 이상해서 그것까지는 못 봤어요.”

“어째서 그 아줌마 표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니?”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에요. 보통 자기 자녀가 맞았다고 하면 화를 내거나 아니면 속상해하거나 걱정하는데 그 아줌마는 처음 은수가 맞았다고 신고가 들어가서 경찰들이 온 날도 계속 표정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아줌마 친딸이 은수가 맞았다고 경찰 아저씨 아니 형이 말했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표정이 죽어있을 수 있을까 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허 순경과 같이 온 형사과 수첩을 통해서 서로 의논하는 모습이 보이자 이내 담임선생님이 멀리 떨어져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만하면 사실확인은 끝난 것 같은데요. 더 질문이 필요하시면 다음에는 주인이 어머니랑 동석해서 질문해주시겠어요?”

“아닙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나는 익숙해지지 않는 아찔한 두통과 귀속에서 울리는 이명을 참으면서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했다.

흐릿한 오래된 사진 속 장면처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사진이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이명이 섞인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점차 대화 소리가 선명해진다.

허 순경과 옆에 있던 형사가 훨씬 나이를 먹은 모습으로 포장마차로 보이는 술집에서 한잔하고 있었다.

“팀장님, 정년 축하드립니다.”

“뭐,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건가?”

“아쉽습니다.”

“그래,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만 보낼 거였으면 좀 더 무리를 해서라고 팀원을 모집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확인되지 않은 녀석을 팀원으로 받으면 분명 수사하다가 정보가 흘려나갈 텐데요. 분명 그 정보를 가지고 수사를 방해할 테고요.”

“그래서 일부러 미제사건 피해자들의 가족만 팀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형사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깐.”

“IMF만 아니었어도 특채도 가능했을 텐데···.”

“말하면 입만 아프지. 허 형사···아니, 진수야···앞으로 미제사건 팀 부탁한다.”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상담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담실 문이 열리면서 허 순경과 형사가 나가자 담임선생님이 표정이 안 좋은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미제사건 피해자들을 팀원으로? 내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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